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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핵 무력 법제화’와 김정은의 입체 도발 저의는? 

‘북핵과의 동거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핵 무력 법제화로 ‘선제 불사용’ 원칙 폐기하고 선제공격 공식화
비핵화 노선 대신 한반도 핵 균형 전략으로 미국과 담판 노려


▎북한이 9월 16일 공개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 (IRBM)인 화성-12형 발사 장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핵무기가 방어용이라는 명분을 버리고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 사진:연합뉴스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핵 버튼 푸시 장면이 푸틴의 입에서 거론되고 있다. 가상현실이 아니다. 덩달아 김정은의 핵 도박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모스크바와 평양의 스트롱맨 행보가 범상치 않다. 국정원은 7차 핵실험의 D-day까지 예보했다. 새벽이건 심야건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발사 지점도 자강도, 평안도에서 강원도 문천시까지 다양하다. 10만t 급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가 참가하는 한·미연합훈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연료도 부족한데 10년 만에 전투기 150대를 동원해 대규모 공중 시위를 벌였다. 미사일은 보름간 이틀에 한 번꼴로 발사했으니 실전 수준이다. 과거와 패턴이 다른 입체적인 도발이다.

우선 북핵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북핵이 국제 문제로 공론화한 시점은 영변 핵시설이 정찰위성에 포착된 1989년이지만, 김일성이 핵에 관심을 가진 시점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공산군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만주 폭격을 건의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당시 북한은 미국의 핵 사용 위협을 공갈로 규정하고 핵 위협의 부당성을 성토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전날 맥아더는 핵 사용을 재차 트루먼에게 요청했다. 원자탄 34발을 북한 전체 지역과 만주, 연해주 등 21개 도시에 투하하자는 의견이었다. 트루먼은 이를 거부했지만 이듬해(1951년) 4월 5일 미국 합참은 중공군이 대규모로 북한 국경 안으로 진입하거나 소련 폭격기의 공격이 시작됐을 경우에 한해 원자탄을 사용한 보복 공격을 하도록 명령했다.

김일성, 미국의 핵 공격 공포에 핵 개발 박차


▎김일성 북한 주석은 한국전쟁 직후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1994년 특사로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 주석의 만남은 제네바 합의를 끌어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에 핵폭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던 김일성은 1954년 인민군을 재편성하면서 인민군 내에 ‘핵무기 방위부문’을 설치했다. 1956년 물리학자 30여 명을 소련의 드부나 핵 연구소에 파견한 게 북핵 개발의 효시가 됐다. 1959년 9월 조소(朝蘇)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 핵 개발 정책을 공식 출범했다. 이어 1962년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하고,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과대학에 핵 연구부문을 창설해 인력 육성에 나섰다. 1965년 6월에는 소련으로부터 IRT-2000 원자로를 도입, 본격적인 핵 연구를 시작했다. 김일성은 1965년 평양을 방문한 조총련 대표단 접견에서 10년 안에 핵을 보유하겠다는 염원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치한 지 44년 만인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공식적이지는 않으나 북한은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substantial nuclear country)’으로 평가된다. 최소 100기에 이르는 핵무기와 투발 수단인 각종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김정일 집권 기간에 31회,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159회, 2022년 한 해에만 10월 9일까지 25회에 걸쳐 미사일 50발을 시험발사했다.

3대에 걸친 핵 개발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디자인하고 체계를 구축했다. 아버지 김정일 시기 2006,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으로 기반을 닦았다. 손자 김정은 집권 이후 2013년, 2016년 1월과 9월, 2017년 등 4차례 핵실험으로 완성 단계를 거쳐 실전 배치 수준에 도달했다. 이처럼 사회주의 정권 70년에 걸친 핵 개발로 북한은 지구상의 9번째 핵클럽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승전핵(核)이라는 키워드는 북한 대내외 정책에서 대대로 최우선 순위로 자리 잡았다.

북한의 핵 개발은 기술 발전과 함께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려는 정책적 진화를 계속했다. 당초 북한은 ‘방어용’이라는 명분을 천명했다. 2005년 2월 외무성 담화에서 ‘핵 보유’를 선언한 데 이어 2006년 10월 첫 핵실험 직후 ‘억제·방어용’으로만 핵을 보유한다는 로키(low-key) 전략을 구사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핵 무력을 법제화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2012년 개정헌법 전문에 ‘우리 조국은 불패의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한 데 이어 2013년에 제정한 ‘자위적 핵 보유법’에는 대남 및 대미 핵 억제 전략을 표명했다. 이때까지도 ‘방어용’이란 명분은 유지했다. 이미 5차례 실험을 진행한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는 상대가 핵을 사용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을 선언하면서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했다.

북한의 핵전략은 김정은 집권 10년을 기점으로 양적 변화의 임계치에 도달하면서 질적 변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질적인 정책 변화의 핵심은 ‘핵 선제 사용’이다. 2022년 4월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군복 차림으로 선제 핵 공격 가능이라는 북한판 ‘핵 독트린’을 선언했다.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는 핵 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해 파문을 일으켰다.

모든 정책이 법제화로 완성되는 체계는 북한의 독특한 통치 방식이다. 핵심이익을 수호하지 못하는 5대 상황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선제 사용한다는 핵무력 법제화는 북핵 보유가 정책적·기술적으로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표현대로 100년의 제재에도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일까? 야금야금 목표에 도달한 핵 무력 법제화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한 전략의 저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전략이다. 평양은 핵 무력 법제화로 향후 워싱턴과 협상에서 비핵화는 국내법상 불가하다는 명분을 쌓았다. 핵무기 사용 문턱을 확 낮춤에 따라 비핵화 문턱은 비례해서 높아지는 만큼 중·러의 유엔 안보리 거부권으로 형성된 ‘블록 안보체제(Bloc security)’에서 기존 북핵 협상 구도는 성과를 거두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판 핵 독트린’ 선언하고 비핵화 폐기


▎4월 25일 북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대적인 열병식에서 대원수 군복을 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식을 사열하고 있다.
둘째, 유엔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는 전략이다. 북한은 소련의 권유로 1985년 핵비확산조약(NPT)에 서명하고 가입했으나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반발해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경수로를 받기로 한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1994년)로 재가입하는 등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다가 2003년 최종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고 핵을 개발한 인도, 파키스탄과 달리 북한은 NPT 규정상 탈퇴가 허용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대북제재가 가능한 이유다. 북한은 핵 무력 법령으로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중·러의 묵인하에 지속해서 모색할 것이다.

셋째,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론화하는 전략이다. 핵무기 사용 5대 조건은 김정은이 결심하면 사실상 선제 사용(first use)할 수 있는 고무줄 기준이다.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한·미의 확장억제전략이 가동되면 핵무기 사용을 구체적으로 위협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핵무기가 억제 수단에서 공격 수단으로 전환한 냉엄한 현실을 체감하는 양상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다. 핵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미치광이 전략인 ‘광인 이론(madman theory strategy)’을 구사할 상황을 조성할 것이다. “우리는 최강의 핵 강국 중 하나, 다른 나라가 개입하면 경험한 적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푸틴의 위협을 벤치마킹할 것이다. 향후 북한의 다양한 핵무기와 투발수단이 조선중앙TV에서 자주 등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10월 16일 중국의 시진핑 3연임을 위한 공산당 20차 전국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중국의 압력에 법제화라는 ‘말 폭탄’ 성격의 핵 도발 수위조절 전술을 구사했다. 중국은 경제위기에 직면한 북한 관리 차원에서 올 9월 단둥-신의주 간 교역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2020년 8월 운행을 중단했다가 경제난이 깊어지자 2022년 1월 운행을 재개했고,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다시 중단했던 걸 경제난을 극복하려는 북한의 요청으로 다시 운행해 교역길이 열린 것이다. 열차 운행 재개와 핵 개발 수위 조절 카드를 교환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비핵화가 핵 보유보다 국가이익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하도록 대북제재를 지속하고 강화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이란과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1975년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배하고 철군한 이후 1986년 도이모이 개혁을 선언할 때까지 10년 동안 지속한 제재들은 실효성을 절감하게 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 반대급부로 수혜할 경제적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만 경제적 당근만 가지고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재할 것인가 인정할 것인가, 국제사회 딜레마


북한은 그동안 미국 등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안보를 위협받고 있어 핵무기 개발로 전쟁을 억제하고 안전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왔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경제적 보상 외에 북·미 관계 정상화나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통제 등 북한의 이른바 ‘안보 우려’를 해소할 정치·외교·군사적 상응조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과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난 당시 상황을 살펴볼 때 북한 비핵화의 조건은 경제나 안보 등으로 단순하지 않다. 전체 보유핵 중에서 절반만이라도 궁극적으로 보유하려는 북한의 야심이 비핵화 협상 자체를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며 “절대로 먼저 핵 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말했다. 경제적 보상에 따른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확고한 방침이다. 이어 “나라의 생존권과 국가와 인민의 미래 안전이 달린 자위권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다”며 “그 어떤 극난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미국이 조성해놓은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하에서, 더욱이 핵 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은 “백날, 천날, 십 년, 백 년 제재를 가해보라”며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 무력 정책의 법제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 77주년(10월 10일)을 맞아 한 달 동안 지하벙커에서 미사일 발사 지시를 내렸던 김정은은 전술핵부대 훈련을 지도했다고 밝혔다. 사진 수십 장을 공개한 것은 김정은의 지도력 부각과 함께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노림수다.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백악관의 입장에 대해 김정은은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핵 전투무력 백방 강화를 선언했다.

북한의 완강한 비핵화 불가 입장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노딜의 원인이었다. 김정은이 핵 개발 성지(聖地)인 영변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2016년 이후 민생과 관련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1건 중 5건 해제를 요구한 데 대해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당신은 회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You are not ready for the deal)’며 결렬을 선언했다. 영변 이외에 분강, 강선 등 다양한 핵시설을 위성으로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부분 비핵화가 대북제재 전체를 무력화하는 조치라는 평가를 내렸다.

결국 북한의 바람은 핵 군축일 뿐이다. 부분 비핵화 전략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와 최대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에 핵보유국의 당당한 위상을 유지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략이다. 비핵화 협상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사실상 평양은 기존 비핵화 협상에서 핵 군축 협상 등 핵균형(nuclear parity) 전략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 일부의 북한 군사력 평가는 무사안일 수준이다. 핵무기는 차치하고 재래식 전력만 놓고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해보자.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그 폐쇄성 때문에 국방부의 [국방백서]와 각국의 군사력 평가기관 보고서 등에서도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공통되게 북한의 공군력은 ‘미흡’하고, 해군력은 ‘미지수’이며, 육군력은 ‘강력한’ 수준으로 요약된다. 국방부가 발간한 [2020 국방백서]에는 남북한 간 전력 비교가 ‘정량적’으로 표시돼 있다. 북한군 병력은 2019년 12월 기준 128만여 명으로 한국 55.5만 명의 2배가 넘는다. 전차는 한국 2130여 대, 북한 4300여 대, 전투함정은 한국 100여 척, 북한 430여 척, 전투기는 한국 410여 대, 북한 810여 대다. 황해도 이남에 전투기의 40%가 배치돼 있어 수도권은 5분 이내에 근접한다. 아무리 우리가 보유한 F15, F35 전투기가 우월하더라도 침공 시 수도권 피해는 불가피하다.

핵이 가져온 전력 불균형, 재래식 무기론 한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귀를 막고 미사일 발사 장면을 참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월 29일부터 보름간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시찰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미국 군사력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2022년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한국 6위, 북한 30위로 평가했다. GFP는 재래식 무기 수량만으로 육·해·공군의 잠재적 전쟁 능력을 분석하고, 가용 자원과 경제력 등 50여 가지 지표로 파워 지수를 산출한다. 하지만 우리 사병이 18개월, 북한군이 10년을 근무하는 인적 소프트파워의 숙련도와 전투태세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또 GFP의 물리적 파워 추정은 북한의 은밀한 무기체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만포, 강계 등 자강도 북·중 국경지대 지하 요새에 숨겨진 각종 무기는 특급비밀이다.

재래식 전력에다 최대 60개인 북한 핵무기를 더하면 모든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비대칭 무기인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은 이미 76년 전 일본 열도에서 증명됐다. 그나마 남북한 군사 균형의 린치핀(linchipin) 역할을 하는 주한 미군은 결코 한반도 붙박이 군대가 아니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의지가 약해지면 동맹은 언제든지 떠나는 게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눈부시게 진화하는 북한 핵무기에 대한 우리 대응은 역설적으로 무대응 전략이다. 지난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16년 동안 6차례 핵실험이 이뤄졌으나 실험 후 석 달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망각 증상이 고착화했다. 보수 정부는 한·미 동맹의 확장억제전략, 진보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선의를 신뢰하면서 북핵은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1975년 NPT에 가입한 한국이 북한처럼 핵 개발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지만, 빨간불 켜진 NPT 국제 핵 공조에만 안보를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추가(7차) 핵실험이 이뤄진다면 한·미 확장억제에만 의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16년간의 핵실험 역사를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비핵화 협상은 제재를 피하면서 시간도 벌 수 있는 북한의 수단으로 활용돼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러시아 흑해 함대를 침몰시키는 것을 비롯해 러시아의 병력과 장비를 파괴할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 최고사령관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푸틴의 핵 사용을 강력히 경고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이 미국과 나토를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미국과 나토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는 10월 2일 미국 ABC 뉴스 인터뷰에서도 “(러시아가 핵 공격을 할 경우) 방사능이 나토 국가들에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이는 아마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바야흐로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핵전쟁 시나리오가 구체화하는 모양새다.

안보(安保)는 평시에는 안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우리가 나토(NATO)식 핵공유(nuclear sharing)를 검토하는 것은 남북 공멸의 길이라고 결사반대한다. 귀납적으로 북한만 핵을 가져야 하고 남한은 재래식 군사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과 동시에 자강불식 계책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은 전환점이 돼야 한다. 핵 무력 법제화에도 무덤덤한 한국이 북핵 위협의 일순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억제 위한 핵균형 전략 검토해야 할 때

입체적 도발의 외환(外患) 상황에도 국내 정치는 친일 국방 논란으로 내우(內憂)에 빠져 있다. 정치권 일부에서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에 “대선 과정에서 언급된 선제타격론이 원인”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북핵 개발의 역사를 간과한 오판이다.

9월 한·미·일 동해 합동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행위’라고 한 야당 대표의 말을 두고 여야는 말싸움이다. 러시아 침공 전 친러와 반러로 갈려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던 우크라이나 국회를 연상시킨다. 한·미·일 대잠수함 훈련 장소는 독도와 185㎞ 떨어져 있고 일본 본토와 120㎞ 떨어져 오히려 일본에 가까웠다.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다가 가슴에 안고 사는 ‘북핵과의 동거(with the nuclear)’ 시대에는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지양점과 지향점을 구분해서 성역 없는 담론과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핵 위협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응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평양에서 7차 핵실험 소식이 들려오면 북핵을 억제·상쇄하기 위한 우리의 핵균형(nuclear parity) 수립이라는 제3의 전략을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의견을 경청해서 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한반도가 선 곳은 정책 변화가 불가피한 변곡점이다.

※ 남성욱 -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한 뒤 2002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 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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