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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경제 위기’ 먹구름 드리운 한국 경제, 비상구가 안 보인다 

물가 잡기 위해 일자리도 성장률도 희생할 판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한은, 가계부채 부담 감수하며 환율 방어 위해 3% 기준금리 시대로 회귀
주식·부동산 침체 불가피… 근본적 문제는 산업경쟁력 약화와 정치 리스크


▎경제 정책의 핵심은 고용과 물가다. 일자리가 줄어든 건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 물건 하나 집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물가도 무섭다. /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경기침체가 현실화하고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신인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느 정도 침체로 가야 물가가 잡힌다. 단 ‘어느 정도의 침체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 말은 글로벌 경제가 연착륙과 경착륙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연착륙을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선제적 대응(front-loading)’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 연준은 3월(0.25%p), 5월(0.5%p), 6월(0.75%p), 7월(0.75%p), 9월(0.75%p) FOMC마다 금리를 올리며 매파로 돌변했다. 미국 기준금리는 3.0~3.25%까지 치솟았다. 11월과 12월 FOMC에서도 연준 피벗(긴축에서 완화로 정책 전환)은 없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런 환경에서 지표가 좋을수록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그 반대면 폭등하는 ‘뉴노멀’이 펼쳐지고 있다. 일례로 10월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의 9월 실업률이 최근 5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3.5%)로 발표되자 주식과 암호 화폐는 하락했다. 이로써 11월 FOMC에서 연준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0.75%p)이 기정사실로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출신인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과하게 하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성장률과 고용을 훼손하더라도 물가 안정에 우선을 두겠다는 행보다. 미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다. 하지만 10월 13일 나온 9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8.2% 상승이었다. 도대체 금리를 얼마나 더 올려야 목표치에 도달할지 가늠이 안 될 지경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미국이 속으로는 경기침체를 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온다.

고통스러운 ‘긴축의 시대’


▎2022년 10월 11일 하루 동안만 원·달러 환율은 21원 치솟는 등, 현기증을 유발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펼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2년 3월 이후 7개월 연속 8%를 웃돌고 있는 미국의 물가는 “끈적끈적하고 광범위하며 상당히 오래간다”는 특징을 띤다. 그동안 에너지와 식료품 등 공급 측면 요인으로 물가가 상승했다면, 서서히 수요 측면에서 발생하는 ‘근원물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일례로 렌트비(월세), 외식비가 오르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생활물가’는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게다가 임금 상승을 압박할 수 있는 요인이라 인플레 악화가 우려된다. 하지만 수요 인플레는 금리 인상으로 억제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정도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은행은 10월 12일 0.5%p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한은 역시 5번 연속 금리를 올렸고, 이 중 최근 두 차례는 빅스텝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기준금리 3.0% 시대로 복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5% 이상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하면 경기를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물가 중심의 통화 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고통스러운 긴축’을 예고했다.

물가가 안 잡히고 경제성장률이 내려가는 것은 한·미 공통 현상이지만, 한국의 고용지표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미국보다 열악하다. 게다가 한국은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달러가 아쉬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한은의 금리인상 배경에는 ‘원화가치 방어를 위한 정부와의 공조’ 의지도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40원 안팎에서 널을 뛰고 있다. 환율을 진정시키기 위해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이 시작됐지만, 2008년 이후 다시 등장한 ‘도시락 폭탄(외환 당국의 달러 대량 매도)’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달러당 1400원 돌파를 막지 못했다.

한·미 통화스와프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관여했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그때는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공조 체제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이 원한다고 미국이 응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고 밝혔다.

과거 강(强)달러 시대에는 수출이 잘된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무역수지는 4월부터 6개월 연속 적자다.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9월 무역수지(-37억7000만 달러)는 8월(-94억 9000만 달러)에 비해 적자 폭이 줄었지만, 이미 누적 적자는 288억76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미 역대 최대 적자였던 1996년(206억 달러) 기록을 훌쩍 넘겼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0~12월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추세를 반영하며 연간 적자 규모를 480억 달러로 예측했다.

적자의 주범은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원자재 가격 폭등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컸다. 그러나 수출이 거의 늘지 않았다는 대목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한국 수출의 약 20%를 책임지는 반도체는 8월 이후 역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9월 통계에 따르면, 15대 주요 품목의 수출액 증감률에서 자동차와 부품, 석유제품, 선박, 2차전지를 제외한 전 섹터가 마이너스였다. 특히 철강(전년 동월 대비 -21.1%)과 석유화학(-15.1%)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던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국가미래연구원장)는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 경제의 침체가 현저하다. 유럽은 이미 몹시 나쁘고, 미국은 내년에 침체될 것으로 보이니 수출이 잘될 리 없다”고 우려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수출이 안 된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활로를 열어줬던 중국의 사정은 예년과 딴판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 후유증과 미국의 봉쇄에 직면한 중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4개월 연속 줄었고, 9월 수출액(133억7000만 달러)은 전년 동월 대비 6.5% 감소했다.

게다가 한국 주력 산업의 공장 상당수는 외국에 이미 나가 있다. 환율 상승의 수혜를 누리기 힘든 구조다. 결국 환율이 오를수록 국내 물가만 올리고, 달러 수요가 올라가며 주식·채권 과매도를 유발하는 등, 득보다 실이 훨씬 큰 구조다. 실제 한은은 한국의 9월 외환보유고가 전달에 비해 196억6000만 달러(약 27조7200억원)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274억2000만 달러를 소진한 2008년 10월 이후 최대 폭이다. 한국은 2019년부터 분기별 외환시장 개입액을 공개해왔는데, 2022년 2분기(4~6월) 최대 순매도(154억900만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여전히 세계 8위(4364억 달러)로 유동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위기에 취약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유행했던 ‘금 모으기’를 연상시키는 ‘달러 모으기’ 정책이 검토되는 배경이다. 개미투자자가 보유 중인 해외주식을 팔아 원화로 환전하면 양도소득세 혜택을 주는 방안이 그것이다. 해외주식의 양도세 비과세는 원래 연 250만원이다. 그 이상의 수익에 대해서는 양도세 22%를 매긴다. 기획재정부는 일시적으로 비과세 한도를 올려주거나 양도세율을 내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평소에는 정부가 주식 투자자들의 세금에 신경도 안 쓰다가 다급해지니 저런다”는 냉소적 반응이 주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지금 처한 상황은 금융에서 파생된 과거의 위기와 다르다. ‘복합위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정의했다. 환부를 콕 집을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처방도 난해하다는 뜻이다. 첫째,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은 글로벌 경제 침체의 예고탄이다. 둘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올겨울 유럽의 에너지 대란을 암시한다. 이런 와중에 사우디 등을 포함한 23개국 산유국 연합체 OPEC+는 ‘하루 200만 배럴 원유 감산’을 선언했다. 셋째, 미·중 패권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과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 규제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으로선 경시할 수 없는 악재다. 넷째, 미국의 압박과 중국 공산당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극적으로 풀리지 않는 한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은 명약관화하다.

암울한 환경에서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10월 7일 내놓은 3분기 잠정 실적은 ‘어닝 미스’에 가까웠다. 매출(76조원)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10조8000억원)이 31.73%나 빠졌다. 반도체 시장의 겨울이 장기화하고 있어서 4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매출액에서도 대만 TSMC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현대·기아차도 미국 정부가 IRA를 설계하며 삽입한 ‘북미 최종 조립’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며 악전고투 중이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총력 대응하고 있지만, 적어도 11월 8일 미국의 중간선거 전까지는 바뀌기 어렵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아직은 아니지만, 고금리에 따른 내수 침체도 곧 벌어질 것 같다”고 경계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영끌족


▎2022년 10월 12일 빅스텝 발표 후 기자간담회에 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그의 솔직하고 명료한 화법은 시장에 적잖은 호평을 불러왔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주식시장에 선(先)반영되고 있다. 2022년 1월 3일 시점과 비교해보면, 10월 14일 코스피지수는 776.22p나 떨어진 2212.55를 찍었다. 코스닥지수는 상태가 더 심각해서 359.59p 하락한 678.24였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연초 대비 무려 241.70원 급등한 1433.50원을 찍었다.

10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빅스텝을 결정한 직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종 금리 3.5%’를 사실상 인정했다. 5%대에 달하는 물가가 진정될 때까지, 한은은 부동산 하락이나 가계부채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금리를 올리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금리 인상을 통해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상단 기준 0.25%p로 좁혀놨지만, 11월 미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 한·미 금리 역전은 1%p로 다시 벌어진다. 이 폭이 커질수록 환율이 요동칠 개연성이 올라간다. 이는 곧 물가 자극 요인이고, 주식·부동산 등 한국 자산시장의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빚내서 주식 한 사람이나 부동산 영끌족처럼 ‘존버’가 불가능한 이들의 형편은 절망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6월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1869조원에 달한다. 기준금리가 0.25%p만 올라도 대출이자가 3조3000억원 늘어나는 구조다. 2% 후반대였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8% 진입이 시간문제로 비친다. 심지어 집값 하락 탓에 영끌족 중 38만 가구는 빚내서 매입한 집을 팔아도 부채를 다 갚을 수 없는 지경에 몰려 있다.

“괜찮다”고 할수록 더 불안한 이유

현금 보유자들은 주식과 부동산 대기자금에서 빠져나와 은행 예금으로 향하고 있다. 김광두 교수는 “풀린 돈을 미국이 다시 흡수하니까 자산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고,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금융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채권시장에 5조원을 투입했고, 증권시장 안정펀드(증안펀드) 가동도 준비 중이다. 공매도 한시적 금지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틀 간격으로 제9차(10월 5일)·제10차(10월 7일)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엄중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민생과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재정 건전성 회복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괜찮다’만 연발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윤 정부 경제팀의 현실 인식이 안이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현 경제팀은 인적 배경이 동일한 탓인지,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점이 너무 강하다. 다양한 시각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희숙 전 의원은 “언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정부 말을 믿다가 나라가 망한 25년 전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팀은 ‘괜찮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근거를 가지고 소통해야 국민이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윤 전 의원은 “그런 점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간담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솔직할 수 있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까지도 고민하는 모습을 (윤 정부 경제팀이)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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