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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40년 외길 인생, 한지 만드는 안치용 선생 

천년의 세월 품은, 전통 한지에 깃든 장인의 인생 

전민규 기자
충북 괴산에 터 잡고 40여년 전통 한지 제작 몰두
씻고 말리는 보름의 과정 거쳐야 명품 한지 완성


▎국가무형문화재 안치용 한지장(왼쪽)이 충북 괴산 작업실에서 온돌 바닥에 한지를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장은 65년 넘게 3대째 전통한지를 만들어오고 있는 공간이다.
"근현대 문화재 등재를 추진해 시민들이 우리 한지와 한지 문화에 관심을 기울일 공간으로 거듭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3대째 한지를 만들어온 안치용 한지장이 온돌 바닥에 한지 건조 작업을 하며 말했다. 충북 괴산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65년 넘게 전통 한지를 만들어온 공간이다. 느티나무 아래서 뽑아 올리는 용천수 우물과 세월을 품은 가마솥, 아궁이 등이 반백 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돈만 있었다면 신식으로 바꿨을 것”이라는 안 한지장은 “한지 산업이 고꾸라지면서 그럴 형편이 못돼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20명 넘는 직원을 둔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 한지장과 세 명의 조교가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작업실 인근의 한지체험박물관은 2013년에 개관했다. 안 한지장이 반평생 수집한 한지 유물과 그와 관련된 작품이 전시돼 있다. 괴산군에서 건립하고, 안 한지장이 수탁해 관장직을 맡았다. 한지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다. 전통 한지 뜨기, 야생화지 뜨기, 한지 소원등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곳에는 현대식 작업장도 갖추고 있어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사용해 새로운 한지를 만드는 연구도 하고 있다. 박물관 앞뜰에서는 한지의 필수 재료인 닥나무도 재배한다. 주재료인 닥나무 외에 한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부재료로 황촉규(닥풀)가 있다. 닥 섬유의 결합을 도와주는 황촉규의 양을 조절해 한지의 두께와 강도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백 번째 사람이 비로소 만진다고 해 ‘백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한지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먼저 닥나무는 11월부터 새순이 나기 전인 2월 사이에 섬유질이 풍부하고 수분이 적당한 1년생 햇닥을 베어 사용한다. 채취한 닥나무는 가마에 쪄서 말린 후 흑피, 청피를 벗겨내고 백피를 만든다. 백피는 맑은 물에 불리고 말리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친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마솥에 잿물과 함께 넣고 약 8시간 푹 삶으면 닥 섬유가 된다. 삶은 닥 섬유는 흐르는 물에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깨끗하게 씻고 햇볕에 말려 표백하는 작업을 한다. 이후 닥 섬유의 물기를 뺀 다음 나무 방망이로 두드리는 ‘고해’, 고해가 끝난 섬유를 종이를 뜰 수 있도록 ‘지통’에 황촉규와 함께 물에 푸는 ‘해리’ 과정을 거친다. 해리 과정이 끝나면 종이 뜨는 발을 사방으로 흔들면서 종이를 뜬다. 종이를 뜬 발은 널빤지 위에서 압착해 물기를 뺀 후 온돌 바닥이나 건조 목판에 붙여 햇볕에 말린다. 말린 종이는 홍두깨나 디딜방아를 이용해 건조 과정에서 생긴 주름을 펴주고 표면을 매끄럽게 해주는 ‘도침’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한장의 명품 종이가 탄생하게 된다. 닥나무가 한지로 변신하는 이 모든 과정은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안 한지장은 지난해 7월 국가무형문화재가 됐다. 40년 넘게 한지 제작에 바쳐 온 시간을 국가가 인정해 준 것이다. 안 한지장은 “질 좋은 닥나무와 황촉규, 맑은 물 그리고 장인의 손길을 더해 천 년 이상 가는 세계 최고의 종이를 계속 만들 것”이라며 갓 만든 한지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안치용 한지장이 천연염색 기법을 이용해 만든 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 한지는 세상에 하나 뿐인 것들로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한지체험박물관 내 작업장에서 안치용 한지장이 한지를 뜨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닥나무를 채취 후 분리한 나무껍질. 추가 작업을 해 흑피와 청피를 벗겨내면 한지의 주재료인 ‘백피’가 된다.



▎안 한지장이 닥 섬유의 물기를 빼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고해’ 작업을 하고 있다.



▎갓 떠 올린 한지를 건조 목판에 붙여 건조 작업을 하고 있는 안 한지장.



▎한지체험박물관에는 안 한지장이 반평생 수집한 한지 유물과 관련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 사진·글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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