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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조선 후기史 팩트추적(21)] '춘향전' 두고 학자마다 의견 다른 이유 

“'열녀춘향수절가'를 '춘향전' 원본으로 보는 것은 잘못” 

한글 소설 천대하던 조선 시대 분위기 탓에 작자 미상 책으로 등장
공식적 기록을 남길 힘이 없는 서민들이 즐기면서 버전 다양해져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성춘향의 무덤인 ‘춘향묘’. 전북 남원시가 주천면 호경리에 조성한 곳으로, 춘향이 소설 속 인물인 만큼 시신이 있는 진짜 무덤은 아니다. / 사진:김홍준 기자
매년 11월 실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대학 교육을 얼마나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그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수능의 목적은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그 출제 범위는 대체로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수능에 내는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됐다. 또 대학 입시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라면, 수능에 내는 문제를 얼마나 잘 예상했는지에 따라 그 학원과 강사의 평판이 좌우된다. 한국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는 대학 입시에 맞춰졌기 때문에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이 없는 지식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교육 현장의 현실이다.

필자가 [월간중앙] 8월호에 쓴 판소리 관련 글에는 소설 [춘향전]은 판소리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판소리 ‘춘향가’가 소설의 내용을 노래한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이와 반대로 소설 [춘향전]은 판소리 ‘춘향가’의 사설을 문자로 정착시킨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는 것인가? 필자의 견해가 올바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맞는 것인가?

이번 호에서는 고전 소설 [춘향전]은 언제 어떻게 나왔으며 시대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변화했는지, 그리고 판소리와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또 소설과 판소리 중 어떤 것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문제가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함께 알아보기로 한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홈페이지에는 서울대에서 선정한 권장 도서 100선을 소개한 것이 있다. 여기에는 한국 문학 17권, 외국 문학 31권, 동양 사상 14권, 서양 사상 27권, 과학 기술 11권 등 5개 분야의 책 100권이 들어있다. 이 권장 도서에 대한 소개말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사고와 활동의 전범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 책들은 지식과 품성의 교양을 갖춘 지성인으로 거듭나게 하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도와준다. 나아가 독서력과 가독성을 고려하여 실존적 적실성이 높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창조적 지식인으로서 살고자 할 때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주요 대학 필독서이지만 학자마다 의견 달라

이와 같은 방식의 필독서 선정은 많은 대학에서 하고 있는데,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도 교수들로 구성된 ‘연세필독도서 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한 고전 200선을 별도로 만들어서 서비스한다. 연세대의 필독서는 크게 문학 분야와 사상·이론 분야의 둘로 나뉘어 있다. 위 두 대학의 필독서 목록에는 동서양의 다양한 서적과 함께 [춘향전]이 들어 있다. [춘향전]이 대학생이 읽어둬야 할 상당히 중요한 소설로 자리잡은 셈이다.

그런데 필독서로 지정된 대부분의 책과 달리 [춘향전]은 언제 누가 지은 책인지 알 수 없고, 매우 다양한 버전의 작품이 시중에 나와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많은 춘향전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연세대 도서관에서 [춘향전]을 검색하면 수십 종 이상이 나오고, 서울대 도서관에서는 더 많다. 게다가 이 많은 [춘향전]은 책마다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제목만 같고 내용이 같은 책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춘향전]은 필독서로 정한 다른 많은 책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예를 들어 두 대학의 필독서 목록에 들어 있는 [맹자]는 번역자의 번역 태도에 따라 내용에 작은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맹자]라는 책의 원래 텍스트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누가 번역하더라도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없다. 대부분의 필독서는 [맹자]처럼 정확한 원래 텍스트가 있고 작자와 창작 시기(또는 출판 시기)가 알려져 있는데, [춘향전]은 언제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설이다. 그리고 여러 종의 각기 다른 내용의 [춘향전]이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이 원본이고 어떤 버전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러므로 [춘향전]을 필독서로 정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여러 가지 [춘향전] 가운데 어떤 것을 읽는 것이 좋다는 지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춘향전]이라는 소설을 언제 누가 썼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다양한 분화를 이뤘는지에 대한 개략적 내용이라도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

판매 목적으로 제작한 방각본 등장하고 줄거리 제각각


▎조선인 통역관 김병옥이 1897년부터 20년 동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동양학부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면서 사용한 교본에 실린 [춘향전]. / 사진: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조선 시대 한글 소설은 최상층의 오락물로 시작됐고, 그 시기는 17세기 초중반 정도로 볼 수 있다. 이 무렵 한글 소설을 즐길 수 있는 계층은 궁중의 왕비나 그 측근 정도였고, 17세기 후반이 되면서 상층 사대부 집안의 여자들까지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17세기 초까지는 주로 중국 소설을 번역한 것을 읽었지만, 17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서 조선에서 창작한 소설도 나오기 시작했다.

왕실에서 즐기던 한글 소설이 민간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왕비가 시집간 딸이나 친정에 자신이 보던 소설을 보내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글소설은 이렇게 민간으로 독자가 확대되면서 부녀자 사이에서 급속히 퍼지게 되는데, 이러한 소설의 열기는 소설을 빌려주는 세책집(도서대여점)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여자들이 할 일은 안 하고 소설이나 빌려보면서 가산을 탕진한다고 탄식하는 양반 남성들의 글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18세기 후반 한글 소설이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한글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계층은 양반집 부녀자 정도고, 그 독서 범위는 서울에 한정된 것이었다. 18세기까지는 세책집의 독자도 상층 부녀자뿐이었는데, 19세기부터는 점차 서민으로 독자의 범위가 확대됐다. [춘향전]은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조선 시대에 나온 한글 소설은 작자와 창작 시기를 알 수 있는 작품이 없다. [춘향전]도 다른 한글 소설과 마찬가지로 언제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춘향전] 같은 한글 고전 소설은 수백 편이 넘는데, 이 가운데 작자가 알려진 작품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는 세책집에서 빌려주던 한글 소설을 쓴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알아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소설을 창작해야 할 필요가 있던 곳은 두 군데다. 하나는 궁중의 최상층 인물에게 소설을 공급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이들은 중국 소설을 번역하거나 한글 소설을 창작해 왕실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다른 한 곳은 세책집으로, 여기서는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냈다.

세책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이 필요했다. 세책집 주인은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던지, 아니면 어디선가 한글 소설을 가져와야 했다. 그런데 세책집에서 책을 빌려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읽는 소설이 누가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세책집에 소설을 제공하는 작가들도 한글 소설 쓰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의 소설가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춘향전]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 소설의 작자와 창작 시기를 알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한 책을 방각본이라고 하는데,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소설을 방각본으로 제작해 판매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방각본 업자들은 세책집에서 빌려주는 책의 분량을 3분의 1이나 5분의 1로 줄여 방각본소설을 제작했다. 이들 업자가 줄거리 위주로 책을 제작한 이유는 긴 소설 전체를 목판으로 제작할 금전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현재 서울의 세책집에서 빌려주던 [춘향전]이 몇 가지 남아 있고, 방각본으로 간행된 것도 여러 가지 있다. 세책집에서 빌려주던 책은 모두 붓으로 직접 쓴 ‘필사본’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거의 같다. 반면 방각본 업자들이 제작한 것은 분량이 다르고, 내용도 각기 다른 여러 버전이 있다. 19세기의 [춘향전]은 서울의 세책집에서 빌려주던 것과 방각본, 두 가지가 있는 셈이다.

고전 소설에 관해 사람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조선 시대에 한글 소설이 전국적으로 읽혔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서울 외의 지역에서도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전북 전주다. 전주는 서울에 이어 상업 출판이 나타난 지방으로, 소설 외에도 다양한 책이 방각본으로 제작돼 판매됐다. 전주에서는 1906년 무렵부터 서울의 세책이나 방각본을 바탕으로 여러 종의 방각본 [춘향전]이 제작됐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열녀춘향수절가]다.

이후 [춘향전]이 전국적으로 읽히게 된 시기는 1912년이다. 신소설 작가로 잘 알려진 이해조는 이 해 신문에 [옥중화]를 연재했는데, 이 작품은 기존 [춘향전]을 개작한 것이었다. 이해조의 이 신문 연재소설은 단행본으로도 출판돼 해적판까지 합쳐 수십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춘향전을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소설로 만든 작품이 바로 이해조의 [옥중화]다.

20세기 들어 개작이 원본으로 둔갑


▎춘향을 추모하는 제92회 ‘춘향제향’이 지난 5월 4일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특설무대에서 열리고 있다. 춘향제향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춘향사당을 짓고 단옷날인 음력 5월 5일에 제를 올린 것이 시초다. / 사진:남원시
대부분의 한국인은 20세기 초 전주에서 간행된 [열녀춘향수절가]를 [춘향전]의 원본으로 알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춘향전이 모두 이 전주의 방각본 [열녀춘향수절가]고, 판소리 창자들이 부르는 ‘춘향가’도 모두 이것이 대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녀춘향수절가]는 서울의 [춘향전]을 바탕으로 개작한 것이므로 원본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1930년대 연구자들은 조선 시대 한글 소설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초 전주에서 나온 [열녀춘향수절가]를 가장 오래된 [춘향전]의 원본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연구자들의 이와 같은 잘못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서 가장 나중에 나온 것을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몇몇 출판사에서 전주의 [열녀춘향수절가]에 간단한 주석을 붙인 [원본 춘향전]이나 [춘향전]이라는 이름의 책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 수없이 많이 생겨난 각 대학에서 이런 책을 교과서로 사용해 강의했고, 이를 배운 학생들이 국어 교사가 돼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칠 때 또다시 전주의 [열녀춘향수절가]를 춘향전의 원본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1940년대 후반부터 소설 [춘향전]은 판소리 ‘춘향가’의 가사를 옮겨놓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까지 나타난다.

1970년대까지는 소설이 판소리의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라는 학설이 학계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1980년대에 갑자기 중학교 교과서에 이러한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지난 약 40년 동안 이런 주장을 고등학교에서도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은 [춘향전]은 판소리 가사를 옮겨놓은 소설이라고 외우게 됐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외운 학생들이 고전 문학 연구자가 되면서부터 잘못된 이론을 검증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학계의 실정이다.

판소리가 소설보다 먼저일 순 없어

조선의 지식인들은 한글 소설을 천박하다고 말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춘향전]도 한글 소설이므로, 양반 사대부들은 이 소설을 거론하는 일이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조선의 공식 기록에서 ‘춘향전’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는다. [춘향전]은 공식적 기록을 남길 힘이 없는 서민들이 즐기는 소설이었고, 당시의 광대(지금의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들은 이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기 시작했다. 청중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노래로 부르면 쉽게 인기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판소리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판소리가 소설보다 먼저일 수 없다.

[춘향전]은 20세기 들어 소설뿐만 아니라 창극이나 영화 같은 새로운 예술 장르로 그 형식을 바꾸면서 대중에게 다가갔고, 20세기 중반부터는 민족의 고전으로 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때때로 수능에도 출제되는 중요한 고전 소설이 됐다. 앞에서 수능 얘기를 했는데, 화제를 거기로 돌려보기로 한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판소리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 소설이라는 문제가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이 있는가? 이런 문제는 수능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홍길동전]을 연구해 이 작품의 작자가 허균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고, 이제 이런 사실이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식이 됐다. 아직도 입시학원이나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전문 연구자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8년 9월 출제한 수능 모의고사 문제에서 [홍길동전]의 작자를 ‘미상’이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은 학계의 상식을 반영한 것이다.

관행적으로 중학교나 입시학원에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가르친다 하더라도, 국가기관에서 실시하는 수능에는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문제가 출제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 [춘향전]이 판소리 ‘춘향가’의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라는 것과 관련된 문제도 수능에 출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학계에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 문제를 수능에 출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한 데서 시작된 것이다.

※ 이윤석 -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다.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6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했다. [홍길동전]과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을 연구해서 기존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홍길동전] 이본(異本) 30여 종 가운데 원본의 흔적을 찾아내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 해석 방법을 서술했다. 고전소설과 관련된 저서 30여 권과 논문 80여 편이 있다.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와 같은 대중서적도 썼다.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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