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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23)] 함께 성장한 자본주의와 국가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와 돈, 냉정과 열정 사이 

자유 시장경제와 문화 간 충돌이 혼재된 시대,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의 이종결합 횡행
국가 자본주의는 정치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미국과 유럽도 정치자금 조달 통로 달라


▎민간 기업의 놀라운 성장과 공산당 정권의 통제 시도를 보여주는 중국 기업 알리바바의 항저우 본사. / 사진:위키피디아
1992년 일본계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출간해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민주주의나 경제적 위기 상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았으나 ‘종말’이라는 단어는 종교적 광신도나 사용할만한 극단적 표현이었다.

충격적 제목만큼이나 후쿠야마의 핵심 주장도 논쟁거리였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상을 목표로 추진하는 세력들의 다툼이다. 그런데 이제 온 인류가 ‘시장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이상향을 갖게 된 만큼 역사는 끝났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경제 분야에서는 시장 자본주의가 효율적 생산 체제로 확인됐다는 시각을 반영하는 진단이었다.

정치적 자본주의

당시 역사적 흐름은 후쿠야마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소련 붕괴로 20세기를 지배했던 냉전의 대립이 종결됨으로써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자유 민주주의가 독재를 무릎 꿇게 했기 때문이다. 공산권에 속했던 다수 국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려고 노력했고,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거센 민주화 바람으로 수많은 독재체제가 무너져 내렸다.

물론 후쿠야마의 주장에 대한 많은 반론과 비판도 끓어올랐다. 가장 강력한 비판은 흥미롭게도 그의 스승 새뮤얼 헌팅턴에게서 나왔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을 통해 문화와 기본적 가치관을 달리하는 집단들이 여전히 세계 역사를 놓고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래의 역사는 이런 투쟁으로 점철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헌팅턴과 후쿠야마의 상반된 시각은 21세기 현재 여전히 지구촌 현실을 비추는 틀이 될 수 있다. 세계의 통합과 분열 현상은 상반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존하면서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일 수 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국가를 대립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아이콘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정부는 우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국가와 자본주의는 손잡고 함께 성장한 동반자다. 자본주의 생산품이 우리의 일상을 점차 지배하는 동안, 국가는 등기소를 만들어 재산의 기록을 관리했고 법원을 통해 분쟁을 해결했으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보호함으로써 비즈니스의 질서를 제공해왔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면서 정치는 폭력과 지배의 영역이고, 경제는 교환과 계산의 영역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런 구분은 이론적인 것으로 현실 속에서 정치와 경제의 논리가 항상 공존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흐름이 과거에는 대부분 폭력 즉 정치에 의존해 물질적 수탈이나 축적이 이뤄졌으나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점차 독립적인 영역을 형성하게 됐다고 설명할 수 있다.

베버에 따르면 고대부터 소위 ‘정치적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존재했다. 물질적인 축적을 자본주의 현상으로 본다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국가가 주변 지역을 지배하면서 계속 부를 약탈해 축적하는 구조를 정치적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고대 사회를 지배했던 제국들은 모두 무력을 통해 경제적 부를 징수하거나 약탈하는 방식으로 중심부의 물질적 축적을 이뤘다. 고대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로마의 콜로세움은 모두 정치적 지배가 물질적 동원력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세력이 지구촌을 누비며 상업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물질적 교환을 활발하게 추진했던 대항해시대에는 ‘상업적 자본주의’가 지배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정치와 교환의 논리가 공존했다. 유럽은 세계의 상업을 지배하기 위해 순수한 물질 교환의 논리뿐 아니라 대포와 함선, 군사력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사과 자르 듯 절반으로 나눠 각각 차지한 황당한 역사도 유럽의 압도적 군사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향신료를 세계 시장에 배포한 일이나, 18세기 영국이 중국의 차(茶)와 인도의 천을 세상 곳곳에 유통한 배경 또한 막강한 해군력에 있다. 자본주의 역사를 정확하게 해석한다면, 산업 혁명 이전까지의 단계는 군사력으로 발현되는 정치력이 적어도 상업만큼 중요한 자본주의였던 셈이다.

정치권력을 활용해 물질적 축적을 추구하는 행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1917년 자본주의를 부정하면서 등장한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국가도 본질적으로는 물질적 축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폭발적인 생산을 통해 물질적 축적과 풍요를 얻고자 했다. 실제 1960년대까지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이나 영국을 물질적으로 따라잡아 추월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 시도가 여지없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국가 자본주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부를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 1846년 독일 레오 폰 클렌체 작품. / 사진:위키피디아
현대 사회에도 다양한 정치적 자본주의가 존재한다. 평화로운 경제 활동보다 물리력이나 폭력을 활용하도록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해 더 큰 이익을 얻는 상황이다. 일례로 아프리카의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에서는 지지자들을 모아 무기를 나눠주고 군사력을 키워 내전을 일으킨 뒤, 국가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쉽게 돈을 버는 길이다.

반드시 실패한 국가가 아니더라도 정치가 사업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정치적 자본주의가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유능한 젊은이가 국가 선출직으로 나가 나라의 돈을 쉽게 주무르며 축재할 수 있다면, 굳이 골머리를 앓으며 취직하거나 사업할 이유가 없다. 21세기까지 그리스와 같은 사회에서는 정치 활동이 수월하게 많은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런 현실은 그리스 정치를 구조적으로 부패하게 만들어 심각한 그렉시트(Grexit) 위기를 초래했다.

자본주의적 성공을 거둔 일부 사회에서도 정치는 부자가 되는 지름길을 제공한다. 21세기 현재 중국이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의 주도 아래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경제 발전을 이뤘으나 여전히 정치 논리가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중국에서 마윈과 같은 혁신적 사업가는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활용해 알리바바라는 초대형 기업을 키워냈다. 중국을 단순한 정치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부를 창출하는 시장과 강한 국가가 공존하는 구조다. 하지만 공산당은 마윈처럼 성공한 기업가를 정치 논리를 동원해 통제하고 길들이려 하고 있다.

중국의 ‘붉은 자본주의’에서 성공하는 또 다른 길은 정치적 커넥션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자녀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경제적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공산당의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요직에 있는 정치인들과 친분만 가지면, 경제적 성공의 길은 수월하게 열린다. 2022년 중국에서 유능하고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공산당에 입당해 권력을 활용한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이런 선택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현실은 국가 자본주의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다수결의 부상

아프리카의 ‘실패한 국가’나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에서는 정치가 돈을 벌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반면 전통적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경제력이 정치권력을 얻는 길이 된다. 자율성을 가진 시장이 존재하고 사회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상황이라면 돈을 가진 사람이 정치인의 길로 나아가 당선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나 지주, 의사, 변호사, 약사 등 지역 유지로 통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사례는 선거를 치르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19세기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 선거로 의원을 뽑는 나라에서 경제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토지나 자본을 소유하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르다고 여겼고, 교육도 받아 분별력을 가진 집단으로 간주했다. 세금 납부 여부나 교육 수준에 따라 피선거권이나 투표권을 주는 자유주의의 논리다.

지금은 민주주의 사고가 워낙 보편적이라 1인 1표 제도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다수가 옳다는 생각은 매우 생소한 주장이었다. 많은 문명에서 다수는 군중을 의미했고, 군중이란 미련하고 우매하며 충동적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성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란 다수결보다는 치밀한 토론 끝에 만장일치라는 형식으로 귀결돼야 하는 성격이었다. 민주주의 사상가로 통하는 장 자크 루소가 말하는 ‘일반 의지’(volonté générale)란 다수의 결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선을 향한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수의 선택을 따라야 한다는 사고는 오히려 자본주의와 주식회사 원칙에서 비롯되는 양적 논리였다. 물론 자본주의 주식회사는 개개인의 평등이 아닌 주식 1표의 평등을 의미했다. 대주주는 소주주보다 목소리가 커야 했다. 민주주의가 말하는 일반 의지나 공동이익에 대한 철학적 고민보다 사업에서는 빠른 결정을 내리는 효율성이 더 중요했다. 이 단순한 논리는 정치로 옮겨갔다. 19세기가 되자 더 많은 자본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주식회사의 결정을 지배하듯 더 많은 사람 수를 대표하는 세력이 국가와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퍼졌다.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인간 평등이 선포된 후, 평등의 원칙은 점차 사회를 지배했다. 20세기에는 국민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일반 투표와 다수결 제도가 굳건하게 정착했다.

민주정치와 돈: 기부와 세금


▎1766년 장 자크 루소의 초상화, 루소가 중시했던 ‘일반의지’는 실제 민주적 다수결보다 토론을 통한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 사진:위키피디아
경제 발전을 이룬 평등 사회에서는 재계가 자신들에게 이로운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대는 현상도 빈번하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는 정치자금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CNPF(프랑스 경영자 전국협의회)라는 재계 조직이 탄생했다. 다수의 정당과 정치인 가운데 자본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세력에게 자금을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대중 정치 시대에 수적으로 우위를 점한 노동자나 농민을 대표하는 정당들은 크게 성장했다. 유럽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내건 노동 계급의 정당은 전성기에 수십만 명에서 백만 명을 넘는 당원을 거느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공산당은 1940년대 말 200만 명의 당원을 자랑했다. 이들 당원이 대부분 당비를 냄으로써 정당은 거대한 자금을 주무르는 기관으로 부상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정치는 점점 더 많은 자금을 요구하는 ‘돈 먹는 하마’로 돌변했다. 특히 포스터, 집회, 방송 등 정치선전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지면서 선거를 치르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다. 21세기 미국에서는 대선과 총선에 쏟아붓는 비용이 30억 달러 규모일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같은 자유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라도 미국과 유럽은 정치자금을 규제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적자금 제공을 중시한다. 세금으로 정당의 활동을 지원하고 선거 결과에 따라 자금을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덕분에 유럽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유럽이 오랜 정치의 구(舊)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상당한 역동성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반면 미국은 민간이 자금을 특정 후보에게 기부하는 시장적 분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정당의 역할은 무척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당보다 정치인 개인이 자금을 받아 관리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정당 제도는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정당의 선택보다는 특별한 자금 동원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 동료 정치인을 규합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21세기 세계 자본주의의 시대에도 정치와 경제를 연결하는 방식은 국가별로 매우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정치는 많은 경우, 국가의 이름을 앞세워 국제 지원금을 차지하는 일이 급선무다. 중국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놀라운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는 국가 자본주의다. 미국과 유럽은 같은 시장 민주주의지만 정치와 경제가 서로 다른 영역을 형성해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다. 미국의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금동원(Fundraising) 능력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유럽의 정치인은 공적 지원에 기대며 참신한 아이디어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정치라는 비즈니스조차 사회와 문화에 따라 이처럼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의 기업인 미셸 알베르는 1991년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Capitalisme contre capitalisme)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으나 자본주의에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이들 사이의 경쟁이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알베르는 특히 모든 것을 상품화해 시장의 법칙으로 관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이 지배적인 프랑스식 자본주의, 그리고 은행과 기업, 노조의 협력을 제도화한 독일식 자본주의를 구분했다.

그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해 일반 독자도 자본주의 국가 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했다. 첫째는 상품과 시장의 중요성이다. 미국처럼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나라에서는 시장의 원칙을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한다. 교육을 상품으로 여겨 학비를 지불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건강을 담당하는 의료도 민간 중심으로 꾸린다. 심지어 인간의 피나 신체와 관련된 시장도 -예를 들어 정자, 난자, 대리모 등- 부분적으로 형성된다. 국가가 운영하는 의무교육이 지배하고, 의료 분야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유럽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교육이나 의료 시장은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크다. 미국의 의료비 지출은 2020년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17%로 선진국 클럽인 OECD 평균 8.8%의 2배에 달한다. GDP 대비 8%를 지출하는 이탈리아의 평균수명(83세)이 미국(79세)보다 높다는 결과를 놓고 보면 미국은 더 많은 돈을 들이지만 시민들은 일찍 사망하는 비효율적인 제도를 운용하는 셈이다.

두 번째 기준은 국가가 개입하는 정도다. 유럽은 전형적으로 국가의 개입과 규제가 강한 지역이다. 반면 미국은 규제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 예를 들어 유럽의 환경이나 보건 규제는 강력하다. 양계장도 닭 한 마리당 A4 한장 크기의 최소 생활공간을 보장해줘야 하고 성장 호르몬을 투입한 고기는 판매가 금지된다. 반면 미국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모든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한다.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2008년 아동의 군사 동원에 반대하는 포스터. / 사진:위키피디아
세 번째 기준은 국가가 관리하는 부의 수준이다. 국내총생산 가운데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들여 분배하거나 재분배하는 수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2020년 정부 수입을 보면 미국(30%)이나 스위스(33%)는 상대적으로 낮고, 프랑스(52%)나 스웨덴(49%)은 상대적으로 높다. 대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리하는 예산이 많으면 국민의 복지가 높아지고, 반대로 미국처럼 시장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기업의 자유와 성장이 수월하다.

국가의 역할이 강할수록 공무원의 수도 늘어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자본주의가 발전했으나 핵심적인 역할을 국가가 담당해 온 프랑스는 2019년 현재 560만 명의 공무원을 자랑하며 이는 총 고용의 20% 정도에 해당한다. 유럽에서 인구 대비 공무원이 가장 많은 나라는 덴마크인데 인구 1000명당 145명의 공무원을 유지하고 있다.

후쿠야마가 바라보는 ‘역사의 종말’이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시장이란 합리적인 사람들로 가득 찬 ‘천국’이다. 민주주의도 시장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당이 제시하는 정치적 상품을 이성적으로 고르는 일이 아니었던가.

헌팅턴이 예감하는 문명의 충돌은 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나운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면서 싸우는 세상이다. 냉정한 계산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나 정당의 프로그램을 보고 판단해 합리적으로 투표하는 선거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열정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열정보다 이익이 앞선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일찍이 [열정과 이익](Passions and Interests)이라는 역작을 통해 16~18세기 유럽에서 열정이 이익으로 돌변하는 과정을 분석한 바 있다.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중세 세상은 열정이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기사(騎士)는 사랑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준비가 돼 있었고, 공동체의 신앙은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강한 삶의 중심이었다. 당시 기독교적 도덕관에서 부정적으로 취급된 열정은 탐욕이었다. 상인들은 탐욕이 가득한 사악한 사람들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부상하는 시기부터 상인의 탐욕에 대한 평가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돈과 물질에 대한 병적인 욕심이 아니라 해로운 열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능력으로 보기 시작했다. 허쉬만은 부정적 탐욕이 문명적 이익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순간을 포착해서 조망한 셈이다.

그의 역사적 분석은 후쿠야마와 헌팅턴의 관점을 통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인은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익, 맹목적 행동과 합리적 계산을 구분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같은 기원을 가졌다.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것을 계산으로 판단하는 극단적으로 냉정한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극단적 이기심에 기반을 둔 왜곡된 합리성을 추구하는 냉혈한이라는 뜻이다. 열정, 온정, 인정이 없다면 정상적인 인간이라 할 수 없다. 현대인은 여전히 후쿠야마의 이성과 헌팅턴의 열정이 혼재한 상태로 서로 다투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은 열정보다 이익이 앞선다. 특히 서구에서 시장 민주주의란 합리성을 통해 이익을 재는 인간들로 가득 찬 사회다. ‘가성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국을 강타한 9·11 테러처럼 목숨을 바쳐 ‘이상’을 실현하려는 과격한 열정의 사람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지구인이 이익의 영역, 자본주의적 계산으로 넘어온 듯하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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