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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0)]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 ‘美의 원조’를 찾아서 

인류 심미안의 출발점, 고대 그리스와 로마 

피부관리 위한 전신 마사지, 흰 피부에 창백한 얼굴 만들기 지금도 성행
로마는 패션의 색깔과 헤어스타일을 통해 신분과 위상을 공식화한 나라


▎1955년 제작된 영화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에서의 마릴린 먼로. 왼쪽 볼에 점 하나가 새겨져 있다. / 사진:1955년 제작된 영화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에서의 마릴린 먼로. 왼쪽 볼에 점 하나가 새겨져 있다.
마릴린 먼로 관련 영화가 9월 말 개봉했다. [블론드(Blonde)]이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싱글 마더 손에서 자란 여배우의 극(劇)과 극(極)을 오간 인생을 다루고 있다. 한국인 상당수도 이미 166분에 걸친 영화에 빠져들었을 것 같다. 마릴린 먼로가 활동한 시기는 1950년대다. 한국전쟁이 매듭지어진 1954년 2월 나흘 동안 한국의 미군부대를 방문해 위문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고 했던가? 마릴린 먼로가 저세상으로 떠난 것은 1962년, 36세 때다. 아마 현재 한국 인구의 3분의 2 정도가 출생하기 전 활약했던 흑백시대 전설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것은 제목 ‘블론드’다.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압축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블론드는 풍성한 금발을 의미한다. 금발은 서양의 남녀노소 모두가 흠모하는 이상적 머리카락이다. 사실 마릴린 먼로는 원래 블론드가 아닌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카락이었다고 한다. 스타 여배우의 명성과 권위에 어울릴, 인공 염색을 통한 블론드였다고 볼 수 있다.

악화(悪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모두 원하는 풍성한 블론드지만, 전혀 반대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금발=낮은 지능 무식꾼’이란 희한한 편견이다. 영어 관용구로도 정착된 ‘블론드 섹스심벌(Blonde Bombshell)’이나 ‘블론드 멍청이(Dumb Blonde)’에서 보듯, 공부나 지적 활동과 무관한 색기(色気)로 살아가는 여성이란 의미가 블론드란 단어에 드리워 있다.

따라서 ‘마릴린 먼로=블론드=낮은 지능 무식꾼=몸으로 때우는 배우’라는 것이 영화 제목의 행간(行間)에 밴 의미다. 지금도 들을 수 있지만,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거론하면서 ‘크면 클수록 바보’라는 식의 얘기와 비슷한 편견이다. 여우의 ‘신 포도(Sour Grape)’ 우화와 같은 맥락이겠지만, 블론드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콤플렉스 군중이 만들어 낸 ‘집단 거짓말’의 하나일지 모르겠다.

영화 [블론드]의 포스터는 마릴린 먼로의 왼쪽 얼굴 절반으로 채워져 있다. 살짝 드러난 금발과 함께 왼쪽 볼에 새겨진 작은 점 하나가 인상적이다. 이른바 ‘먼로 피어싱(Monroe piercing)’으로 불리는 검은 점인데, 마릴린 먼로가 스스로 그려 넣었다. 인터넷에 퍼진 수많은 마릴린 먼로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점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로 피어싱을 흉내 낸 것인데, ‘마돈나 피어싱(Madonna piercing)’이라는 화장법도 20세기 말 등장한다. 가수 마돈나가 즐긴 화장법이며, 왼쪽 볼이 아니라 오른쪽 입술 바로 위에 점을 그렸다는 것이 다르다. 넷플릭스 영화 이전부터 정착된 마릴린 먼로의 외모에 관한 이미지지만, 블론드와 먼로 피어싱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금발과 검은 점이 마릴린 먼로의 외모를 초월한, 인류 역사의 흔적이자 전통으로 느껴진다. 비운의 여배우를 상징할 뿐 아니라, ‘2500여 년 전 인류 미(美)의 부활’이란 의미로 비쳐진다.

블론드와 먼로 피어싱은 이미 고대 그리스 때 유행했던 외모 가꾸기 중 하나다. 금발은 그리스 당시 이미 특별하고도 귀한 존재로 해석됐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금발도 숭배 대상이었다. 실크처럼 가늘게 흩날리는 금발은 모두에게 동경이었다. 20세기와 달리 ‘블론드=텅 빈 머리, 몸으로 때우는 섹스심벌’이라는 부정적 의미와 무관한 ‘신의 축복’으로서 금발이었다. 원시적이지만, 금발로 바꾸는 염색 재료도 이미 존재했다. 먼로 피어싱은 얼굴과 목, 이마 어딘가에 점을 찍는 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검은 점은 미적 차원이 아니라 신을 염두에 둔 화장법이었다. 그리스인의 세계관이지만, 신은 행복·축복과 무관한, 저주·복수의 화신으로 통했다. 늘 인간을 용서하는 신은 예수가 창조해낸 새로운 신의 개념이다. 그리스인들은 신에게 결례를 범하는 순간 기아·전염병·전쟁과 같은 대재앙이 따른다고 믿었다. 인간으로서 신에 대적할 만큼 완벽하게 비쳐질 경우에도 신의 질투와 분노가 이어질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신의 질투를 피하기 위한 화장법 ‘옥의 티’

맑고 깨끗한 피부를 원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장할수록 마지막에는 흠집을 내는 식의 화장법이 유행했다. 이른바 ‘옥의 티’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겸허함을 신에게 드러냈다. 그 결과가 얼굴에 점을 그리는 식의 화장법이다. 1개가 아니라 3~4개 복수로 그려 넣기도 했다. 20세기 ‘먼로 피어싱’을 신을 의식한 화장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완벽한 미인이라는 ‘증거’로서, 의도적으로 점 하나를 붙였다고 볼 수는 있다. 그리스 당시 풍습이지만, 노예나 하류층 시민은 얼굴에 점을 그리지 않았다. 신이 시샘할 정도의 수준과 무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는 2500여 년 전 화장과 미의 전통을 자신의 이미지로 재구성한 현대의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명 Venus)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자살자는 물결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 스스로 호수 안으로 뛰어든 나르키소스(Narcissus)다. 혼자 잘난 척하는 부정적 의미의 나르시시스즘(Narcissism)의 원조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면 인문 미학의 모델이 될 캐릭터다.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자살도 마다하지 않을 ‘미의 행동실천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돈·명예·자존심·병에서 비롯한 포기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류 최초의 심미안(審美眼) 지상주의자가 바로 나르키소스다. 그리스는 그 같은 미의 행동실천주의자를 배출해낸 땅이다. 그리스의 적이던 당대의 페르시아도 미적 감각과 미의식(美意識)이 남다른 곳이었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 아닌, 귀족이나 권력자에 집중된 심미안에 불과했다. 미의 발견과 추구는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신분이 아무리 천해도 더러운 것은 피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에 주목한다.

인류 최초의 자살자 나르키소스와 인류의 심미안

그리스 민주주의는 정치만 아니라 인간 본능으로서의 미에 충실한 민주주의이기도 했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특수층이 아닌 보통 시민 차원의 심미안에 주목한 최초의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다. 나르키소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리스가 남긴 수많은 조각과 유물은 그 같은 ‘시민 심미안’의 땅임을 알려주는 증거다. 1000여 개가 넘는 그리스 도시국가(Polis)의 대부분은 해양 국가다. 바다를 통해 이집트·페르시아·아프리카의 문명 문화를 직수입하게 된다. 그러나 ‘먼로 피어싱’에서 보듯, 미적 감각과 미의식의 원점은 올림포스산의 신들에 있다. 페르시아 왕이나 이집트 파라오가 아닌, 도시국가 구석구석에 스며든 신이 그리스인 미의식의 배경이자 근거다. 속(俗)·욕(欲)이 아니라 성(聖)·영(霊)으로서 미의식인 셈이다. 그리스의 미적 감각과 미의식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을 통해 국제화한다. 정복지인 페르시아의 문명 문화가 추가된다. 남성으로서의 그리스, 여성으로서의 페르시아 심미안이 하나로 합쳐진 헬레니즘 역사의 시작이다.

고대 로마는 그리스는 물론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을 통째로 수입한 초유의 인류 대제국이다. 1세기 로마는 그리스는 물론 동방원정 지역인 페르시아까지 점령한다. 무력으로 대제국을 창조해내지만, 정신은 그리스인에게 압도된다. 그리스인의 심미안이 로마의 최고 가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스 땅은 로마가, 로마인의 머리는 그리스인이 점령한 셈이다. 2000여 년 전 로마는 21세기 중국에 비견될 수 있다. 불법 복사와 훔치기 ‘짝퉁’ 역사로 점철된 독재국가 중국처럼, 당대의 로마도 주변국의 문명 문화를 120% 수입한다. 그러나 로마는 중국과 달리 수입 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문명 문화를 주변국에 수출한다. 바로 ‘대중적 차원의 심미안’이 5000만 로마대제국을 통해 지중해·아프리카·중동까지 전파된다. 그리스나 헬레니즘과 달리 종교·지역·민족·인종을 넘어선 글로벌 차원의 심미안의 수출인 셈이다.

속(俗)과 욕(欲)은 로마의 미적 감각과 미의식을 그리스와 비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개념이다. 그리스와 같은 성(聖)·영(霊)이 아니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희로애락에 도움을 줄 심미안이 로마의 주된 관심사다. 인간 본능을 파헤치던 그리스 극장은 검투사의 칼부림에 열광하는 광기의 무대로 변한다. 근친상간을 행한 오이디푸스가 뿌린 두 눈 속의 피가 아니라 검투사들이 흘린 약육강식의 피가 로마인의 주된 관심사였다. 정신적 성숙이 아닌, 육체적 만족이 로마 심미안의 대세였다. 그 결과지만, 로마는 인류 초유의 미의 경연장으로 발전했다. 집단뿐 아니라 개인 차원의 미의 경쟁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작됐다. 21세기를 기준으로 하면 ‘패션·액세서리·피부관리·향수’ 관련 산업이 본격 가동했다. ‘로마=목욕’인 것은 그 같은 미의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기원전 1세기 말, 제정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 당시의 자유 시민 인구는 460만 명 정도였다. 노예가 무려 4500만 명에 달했지만, 이들도 자유 시민의 미적 감각과 미의식을 흉내 내면서 로마발(発) 아름다움의 전파에 나섰다.

패션은 로마의 속과 욕을 나타낼 최고의 증거


▎고대 그리스 의상 토가와 스톨라. 몸에 바짝 달라붙는 형태로, 로마에 비해 간소하고 여분이 별로 없다. 로마인은 부풀린 형태에 장식용을 비롯해 한꺼번에 3~4벌을 입었다. / 사진:유민호
구체적으로 로마 당대의 미적 감각과 미의식은 어떤 식으로 표현됐을까? 수로(水路)나 신전, 조각, 원형 경기장 같은 집단 차원이 아닌, 시민 개인 차원에서 속과 욕으로서 심미안은 과연 어떻게 표현됐을까? 일단 피부가 중요했다. 여성은 희고 탄력 있는 피부가 최상이었다. 오늘날 고급 리조트에서 이뤄지는 마사지의 출발점이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있었다. 질병 치료이자 피부관리를 위한 전신 마사지를 황제 전용 의사 ‘갈렌(Galen)’이 창조했다. 오늘날 얼굴 팩(Pack)의 원형도 로마에 있다. 로마의 성 풍속이지만, 밤에 얼굴 팩을 하면 남편과의 잠자리를 아침으로 미룬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얼굴 팩 재료는 우유와 콩, 나아가 악어 배설물 등이 주성분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로마=목욕=마사지 천국=피부관리’로 연결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 여성이 흠모했던 피부색이다. 희고 탄력 있는 것을 원했지만, 붉은 핏기와는 무관한 창백한 얼굴을 선호했다. 태양빛에 탄 건강한 얼굴은 노예를 상징할 뿐이었다.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1969년 작품 [사티리콘(Satyricon)]을 기억할 것이다. 로마 네로 황제 당시 속과 욕의 세계를 다룬 환상 영화로서 당대의 세계관을 이해할 최적의 교과서 중 하나다. 영화에서 특이한 것은 동성애 대상인 미소년 ‘기톤(Giton)’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기묘한 화장법이다. 마치 회칠을 한 듯한 창백한 얼굴 분장이다. 한순간 사라질 짧은 인생이라는 점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같은 겸허한 자세가 창백한 얼굴에 표류한다. 로마의 미로 여겨진 창백한 얼굴은 21세기인 지금도 유럽 상류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전미의 기준이다.

최근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중부의 고대 로마 유적지에 들렀다. ‘성스러운 도시(Holy City)’라는 의미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유적지인데, 한국 관광객에게도 익숙한 파묵칼레(Pamukkale)와 인접한 도시다. 이미 다섯 번은 찾은 곳이지만, 수장된 로마 건축물로 채워진 노천 온천도 즐길 겸 다시 들렀다. 매번 들른 히에라폴리스박물관에서 그동안 무심하게 스쳐 지났던 새로운 유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로마 당시 사용하던 점토 다리미다. 길이 20㎝, 높이 15㎝ 정도이며, 추측건대 점토 안에 숯불을 넣어 다림질을 했을 것이다. 고대에 사용한 다리미를 다른 박물관에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전 세계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다리미일 것이다. 아마도 목면이나 가죽을 펴거나, 반대로 깊은 주름을 잡는 도구로 활용했을 것이다. 숯불이 너무 강하면 옷이나 가죽을 태울 화기(火器)로 돌변할 수도 있다. 로마 당시 법이지만, 노예가 잘못을 범했다면 죽여도 무방했다. 그릇 하나를 깨뜨리는 것만으로도 채찍질이 형벌로 내려졌다. 다리미를 사용할 정도의 옷이나 가죽이라면 고급품일 가능성이 컸다. 과장하자면 다림질을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점토 다리미 손잡이에 밴 노예의 공포와 불안이 느껴진다.

패션은 로마의 속과 욕을 나타낼 최고의 증거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지위는 물론 취미도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로마인 의복의 대부분은 큰 천 하나로 둘러싼 흰색 옷이다. 남성은 토가(Toga), 여성은 스톨라(Stola)로 명명한 옷이지만, 흰색만이 아닌 컬러 옷이 로마 패션의 주류였다. 흰색 토가는 원로원 등 최상류 시민의 옷으로, 청빈과 검소를 강조한 ‘공적 목적의 제복’으로 보면 된다. 원래 그리스·로마의 조각은 표면에 선명한 색상을 그려 넣었다. 흰 대리석이 전부가 아니며 컬러 조각이 그리스·로마의 원형이다. 그러나 2000여 년 전 세월과 함께 대리석 표면의 컬러가 퇴색하면서 마치 흰 옷이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게 됐다. 21세기 인류가 그러하듯, 휘황찬란한 컬러와 재료의 옷이 로마 패션의 주류였다.

로마인의 ‘신분증명서’는 군인 월급 25년 치의 실크

통일신라 때는 옷의 색으로 지위가 결정됐듯, 로마도 패션의 색을 신분의 상징으로 삼았다. 원로원은 흰색 토가는 물론 빨간색 옷도 곁들여 입었다. 정부 관료는 푸른색 옷을 선호했다. 그리스 대비 속과 욕에 빠진 로마인이었지만, 신을 향한 경외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옷의 색상은 자기가 믿는 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녹색 옷을 걸치고 있다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흰색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Athena: 로마명 Minerva), 붉은색은 전쟁의 신 아레스(Ares: 로마명 Mars), 푸른색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 로마명 Neptune)을 믿는다는 의미였다. 토가는 그냥 큰 천을 몸에 둘둘 마는 것이 아니라 주름과 곡선을 살리면서 기품 있게 입어야 했다. 다리미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상류 시민은 잘 차려진 토가를 입기 위해 의류 담당 노예 두 명을 따로 고용했다고 한다. 로마 문명 문화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토가와 스톨라도 그리스 의상을 본뜬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노예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입었다. 부풀리고 다리미 결로 장식한 의상을 좋아한 로마와 달리 그리스인은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선호했다.

옷에 관련된 재료는 로마인의 신분증명서에 해당한다. 실크는 로마 당시 최고급품으로 통했다. 필자가 직접 확인했지만, 서기 301년 로마의 기록에 따르면 실크 옷 한 벌은 로마 황제 경비원의 25년간 급여에 준했다고 한다. 월급 400만원 정도인 21세기 샐러리맨에 비추면, 실크 옷 한 벌에 13억원 수준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로마 당시 수입 실크는 중국산 천연실크가 아니었다. 현재의 이슬람권을 통해 새롭게 가공된 의류다. 실크·면화·무명을 적당히 섞은 2차 가공품이 로마로 넘어간 셈이다. 따라서 실제 돈을 번 이는 실크를 제공한 중국인이 아니라 중간 무역상이던 유라시아의 실크로드 주변 사람들이었다.

초고가인 실크와 달리 인도산 목면은 로마 시민 대부분이 선호한 일상복 재료였다. 탄력성이 있고 컬러 염색이 잘되는 재료여서 줄곧 로마의 인기 상품 1위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이 가장 추앙하고 흠모한 옷은 실크나 인도산 목면이 아닌 황제의 패션이었다. 보라색 옷이다. 보라색을 자연에서 추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부 아프리카와 현재의 레바논 근처에서만 가능하던 특수 염색법을 통해 신비한 보라색이 탄생했다. 보라색과 더불어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강렬한 붉은색도 로마 황제의 전용 색상이다. 로마 당대의 모든 염색은 자연산 재료에 기초했다. 21세기 패션의 색상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고도 신비로운 색상이 이미 로마 당시에 등장했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붉은색을 신성시하는 중국 문화에서 로마 황제 전용 색상의 흔적을 발견해낼 수 있다. 로마 황제의 권위를 본뜬 붉은색 옷이 페르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갔으리라 판단된다. 특수한 재료와 염색법을 필요로 하는 보라색은 중국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황제의 부인이 전파한 로마의 헤어스타일


▎고대 로마 당시 상류층의 헤어스타일. 가늘게 하나씩 인공적으로 다듬으면서 바늘과 실을 사용해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 사진:유민호
‘박물관 120% 분석 이해법’ 중 하나지만, 조각이나 그림 속 헤어스타일을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옷의 재료와 색상, 나아가 피부의 탄력성은 구별하기 어렵지만, 헤어스타일 하나만 보면 조각이나 그림 속 인물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어스타일이 복잡하고, 풍성한 머리숱이 하나씩 따로 관리된 모습일수록 상류층에 가깝다. 굵은 머릿결일수록, 그냥 땋아 올린 헤어스타일일수록 하층민에 해당된다. 로마 황제의 헤어스타일에서 보듯, 단정하고 가늘게 하나씩 결을 넣은 헤어스타일이 최고급으로 인식됐다.

로마는 헤어스타일로 신분과 위상을 공식화한 나라다. ‘지식인=권력자=부자’를 가늠하는 제1 증거가 헤어스타일이다. 로마의 명문가라면 토가·스톨라 등을 담당하는 의복 전문 노예와 더불어 헤어스타일을 맡는 이집트·그리스 출신 노예 두 명을 따로 두어야만 했다. 로마는 주로 숯불로 머릿결을 다듬었다. 특정 헤어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바늘과 실이 필수적이었다. 마치 옷을 만들 듯 머리 형상을 인위적으로 한 올 한 올 가공했다. 21세기 마릴린 먼로도 즐긴 금발 헤어스타일은 기본이다. 다양한 기법의 블론드 염색법이 그리스에 이어 로마에도 퍼져 나갔다. 블론드 염색 등 상류층에 걸맞은 헤어스타일을 만들려면 대략 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로마 상류층 여성은 하루 종일 마사지와 피부관리, 의상, 나아가 머리 관리를 하면서 보냈다. 필자의 주된 관심사지만, 황제 부인의 헤어스타일은 그리스 로마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전시품 중 하나다. 가문의 배경이나 개인의 캐릭터를 알려주는 증거가 헤어스타일에 녹아 있다. 황제 부인의 헤어스타일은 로마의 동전이나 대량 생산된 조각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로마 여성 전체의 첨단 패션으로 인식된 것은 물론이다. 동전이나 조각에 나타난 비슷한 헤어스타일이 순식간에 유행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Rome ne s’ est pas faite en un jour).’ 로마인이 들으면 처음 듣는 말일 듯한 경구(警句)다. 원래 12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며, 이후 16세기 영국이 전 세계에 퍼뜨렸다. 제정 로마 500여 년 역사는 장기간 축적한 인류의 노력과 땀의 결과라는 말이다. 필자가 보면 로마가 아니라 ‘그리스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타당할 듯하다. 로마 문명 문화의 출발점이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의 금발에서 보듯 그리스·로마의 심미안은 2022년인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2000여 년 전 개인주의 차원에서 등장한 성·영·속·욕 모두가 21세기 미적 감각과 미의식의 원조인 셈이다. 로마뿐 아니라 그리스도 하루아침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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