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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상상력, 다채로운 표현 기법... 발달장애 작가들의 전시회를 가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 예술의전당서 17~27일 ‘드림어빌리티 전’ 개최
■ 발달장애 작가와 기성작가 참여한 콜라보 눈길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1~2관에서 열리는 ‘드림어빌리티(Dreamability) 전’에 참석한 8발달장애 작가 80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앙포토
유년 시절부터 미술 활동을 통해 정서적, 사회적 장애를 극복한 작가들이 예술계의 유명 기성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발달장애 작가들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장애라는 초점에 맞춰 그들의 작품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이재옥 작가의 말처럼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취지에서다. 17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1~2관에서 열리는 ‘드림어빌리티(Dreamability) 전’은 80명의 발달장애 작가와 김인·박행보·이재옥·정정식·스토니강 작가, 이기원 조각가, 양종훈 사진가 등 기성작가들이 함께 참여해 총 137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발달장애 작가들에게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요소가 작품 모티브다. 강렬한 색채가 우선 눈에 들어오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 디테일한 부분에 놀라게 된다.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공룡 그림은 강예진(24) 작가의 그림이다. 화석의 뼈를 보고 안킬로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등 수천만년 전에 존재한 공룡을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제목은 ‘별구경’. 별 축제를 즐기는 공룡들의 모습이 묘사됐다. 강예진 작가는 “화석만 남아 있으니까 공룡의 몸이 어떤 무늬인지, 어떤 색인지 자유롭게 떠올리는 게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야광 세포가 섞인 공룡의 몸을 생각하게 됐고, 은하수를 받은 공룡이 아름답게 빛났을 거라 상상해서 그리게 됐다”고 밝혔다. 강예진 작가는 13살 때 처음으로 기성작가들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시절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그림으로 사회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작품으로서만 봐달라"

작품을 감상하던 중 김혜윤(20) 작가의 가족들을 만났다. 부모와 조부모의 사이에서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바라보던 김혜윤 작가에게 작품에 대한 소개를 요청하자 또렷한 발음의 설명이 이어졌다. ‘혜윤이는 발레리나’라는 작품은 고양이에 작가 자신을 투영해서 그린 작품이다. "왜 고양이로 자신을 표현했느냐?"는 질문에 김혜윤 작가는 “뮤지컬 캣츠가 소재가 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고양이를 길러서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발레리나의 옷이며 배경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담았다. 공연에 나가려 노력하고 또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복한 감정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여는 것은 기성작가들에게 낯선 일이다. 그럼에도 작품 기획의 초점을 장애에만 두지 않고 대등한 예술가들이 모여 하는 전시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충남대 서양학과 졸업 후 등단한 이재옥(52) 작가는 “발달장애인들을 가르친 적 있는데, 일단 했다하면 끝까지 하는 장점이 있다. 사실 예술을 시작했다가 삶의 여러 고난으로 도중에 그만두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갈 길을 끝까지 가는 것은 예술의 가장 큰 힘이다. 발달장애 작가들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수차례의 개인전과 아트페어 이력이 있는 정정식(64) 작가는 “발달장애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작품으로서만 평가해야 한다. 일상적인 소재에 착안해 다채로운 표현과 기법으로 훌륭한 작품을 내놓지 않는가. 이렇게 함께 전시하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예진(24) 작가의 ‘별구경’, 권한솔(26) 작가의 ‘낭만고양이’, 양서연(24) 작가의 ‘어촌풍경’, 김혜윤(20) 작가의 ‘혜윤이는 발레리나’. 중앙포토
발달장애 작가들의 상업미술 진입로 확장은 숙제

발달장애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기까지는 부모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다.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남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가족들의 헌신이 뒤따른다. 이들이 앞으로 바라는 것은 전시회의 목적처럼 예술계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허물어져 자식들이 상업작가로 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든 엄마는 자식이 자립하는 게 꿈이다. 우리 딸도 자기 앞가림하고 먹고 살 수 있도록 상업작가로의 길이 열렸으면 한다.” 강예진 작가 어머니의 소망이다.

현재는 발달장애 작가들의 부모들이 만든 ‘아트림’에서 작품을 렌탈하는 사업도 한 방편이 되고 있다. 아트림 김경희 대표의 아들도 자폐를 앓는 권한솔 작가다. 김경희 대표는 “작품에 대한 렌탈비로 작가들에게 급여와 재료비를 주고 있지만 외부의 지원을 받고 하는 사업이 아니어서 쉽지만은 않다"며 "앞으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렌탈이 더 활발하게, 또 적절한 가격으로 이뤄져서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비채아트뮤지엄 전수미 관장은 “그간 진행됐던 장애인 미술 전시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작가들을 대우했는데 이 방법의 한계에 대한 지적들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장애 여부가 미술 전시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되지 않고 오로지 작품성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며, 이 전시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시회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부인 정우영 여사가 참석해 작품들을 감상하며 작가들을 격려해 눈길을 끌었다. 정우영 여사는 “남편이 발달장애인 황진호 작가의 ‘아빠와 함께’라는 작품을 구매해서 거실에 걸어둘 만큼 관심이 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를 넘어 함께 한다는 취지를 응원하고자 참석했다”고 밝혔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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