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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전시] 7년 만의 개인전, 김우일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빛, 물, 돌, 바람이 만들어낸 위대함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우주의 끝에서 바라본 듯한 한탄강… 수직적 구도엔 절대자의 시선 담겨
전시회 작품은 모두 후가공한 메이킹 필름, ‘배제’ 통해 자연적 요소 강조


▎전시 첫날 김우일 작가는 갤러리를 찾은 모든 손님들에게 큰 목소리로 “사진 찍자!”며 손을 잡고 포토존으로 이끌었다. / 사진:뉴스프링프로젝트
셔터가 눌리는 속도는 0.002초, 눈 깜빡이면 지나갈 찰나의 순간에 세상을 담아낸다. 조리개를 여닫고 셔터 스피드를 조정하는 것은 우주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사각형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이미 우리가 아는 세상과는 다른 별세계다. 이 과정은 또 다른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이 순간 창조주와 동일한 위치에 올라선다. 사진의 세계가 매력적인 이유다.

김우일(75)은 보통의 사진작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71년 대학을 졸업하고 충무로에서 광고사진을 시작했다.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사진을 찍던 작가에게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여지는 많지 않았다. ‘일하기 위해’ 찍는 사진이 아닌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을 하고 싶었다. 늘 도전하는 그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순간을 포착하는 그의 예술은 수십 년을 거치며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 석스튜디오 대표이자 핀크스비오토피아 전속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마음이 움직이면 일도 제쳐놓고 카메라 가방을 메고 한탄강을 찾아갔다.

그리고 4년, 김우일 작가는 이번 [가늠할 수 없는] 전시회에서 한탄강 연작을 선보였다. 네 번의 사계절은 몇만 장의 촬영본으로 남았고 그중 17작을 엄선해 내놓은 것. [섬같은 사진 섬같은 사람](2015) 이후 7년만에 선보이는 4번째 개인전이 그렇게 서울 한남동 ‘뉴스프링프로젝트(NewSpringProject)’에서 11월 8일부터 21일까지 열렸다.

예술은 같은 소재를 두고도 작가만의 관점으로 색다르게 해석해내는 장르다. 따라서 ‘낯설게 보기’란 모든 예술가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김우일 작가가 한탄강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그동안 작품 대상을 사막 모래언덕, 섬 등 피사체로 한정 짓다 보니 사진가로서 보여주고 싶은 본질을 표현하기에 한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탄강이라는 자연 공간을 설정했다. 작가 본인이 그동안 천착했던 피사체들이 한탄강 곳곳에서도 드러났다는 점도 소재 선정 이유로 작용했다.

외계의 시선으로 지상의 사물을 보다


▎한남동 이태원에서 진행되는 [가늠할 수 없는] 전시 포스터. 전시회장에는 스타 래퍼 ‘레디(REDDY)’ 등 유명인사들이 방문했다. / 사진:뉴스프링프로젝트
이번 [가늠할 수 없는] 전시에는 작가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이라는 영역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한탄강은 DMZ 내에 있어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이다. 202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둘레길 공원의 경우 절벽 위에 다리가 만들어져 아름다운 자연을 내려다볼 수 있게끔 조성됐다. 김우일 작가는 지척에서 촬영할 수 없었기에 둘레길 다리 난간에 매달려 망원렌즈로 강줄기를 내려다보며 찍어야 했다. 김우일 작가는 촬영 소회를 밝히며 “자연은 대하면 대할수록 알 수 없는 세계”라고 말했다.

김우일 작가와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한 윤재갑 큐레이터에게도 이번 전시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김우일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절간으로 들어가 수없이 읽으면서 이번 전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나온 작품소개 첫 꼭지가 “김우일, 라그랑주의 경계 밖에서 지구를 찍다”였다. 라그랑주 포인트(Lagrange point)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중력 평형상태에 존재하는 특정 지점을 일컫는다. 그래서 ‘우주의 끝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말은 사진의 시선이 수평이 아닌 수직 구도로 그려진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인간세상을 뛰어넘는 절대자의 관점이 깃든다. 윤 큐레이터는 김우일 작가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시선의 각도를 표현한 유일무이한 작가”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같은 수직적인 시선에 대한 해석은 마치 이슬람 전통 세밀화를 떠올리게 한다. 세밀화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풍 미술사조와 대조되는 개념인데, 인체 비례나 입체적인 거리감 등 정밀한 묘사보다는 모든 인간군상을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시선이 작품에 담겨 있다. 세밀화가들은 눈을 감고 그려도 똑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연마했고 이러한 장인의 경지에는 절대자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처럼 사진가도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우주 그리고 절대자와 동일한 존재가 된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바이크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자연을 탐방하는 김우일 작가의 분방함은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우일 작가는 이번 전시의 특이점으로 ‘one and only(유일무이)’를 꼽았다. 전시회를 주최한 뉴스프링프로젝트와 작가는 ‘필름만 있다면 무한정으로 복제 가능한’ 사진의 제1 특성을 과감히 배제했다. [가늠할 수 없는] 시리즈 모두 유일무이한 원본으로 사진 한 장, 한 장이 유니크한 작품이다. 미술 시장에서 ‘유니크’는 보통 유일한 작품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각종 이미지가 난무하는 미디어 범람 속 사진 작품이 가치를 잃어가는 현실에 반격을 가하고, 이와 거리를 둠으로써 ‘오리지널리티(원본성)’에 대해 재고해보고자 합심한 것이다. 김우일 작가는 “사진을 단 한 장만 뽑는다는 것도 뉴스프링프로젝트가 제안한 전시 조건 중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지만 유화로 착각할 만큼 ‘이질적’


▎[가늠할 수 없는 1] 컬렉션 중 하나. 수묵화와 닮은 표현 기법이 인상적이다. 강의 구성 요소 외 다른 것들을 ‘배제’했다. / 사진:뉴스프링프로젝트
사진은 테이킹 필름과 메이킹 필름으로 나뉜다. 테이킹 필름은 현상의 순간을 포착해 프레임에 담아내는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 투하로 인해 화염이 옮겨붙은 옷을 벗어던진 채 울먹이며 도망가는 소녀의 사진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테이킹 필름’이다. 반면 [가늠할 수 없는] 전시회 작품들은 전부 원본에서 후작업을 거친 ‘메이킹 필름’이다. 일종의 편집본이다. 따라서 5000만 화소로 출력한 고화질 ‘사진’이지만 물감을 덧칠한 유화로 착각할 정도로 이질적이다. 가까이서 작품을 접하면 사진의 질감이 독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전시는 3개의 넘버링으로 분류된다. [가늠할 수 없는 1]은 표현방식이 수묵화를 닮아 있다. 사진 속 암석이나 강변 같은 요소 외의 다른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여백’을 표현했다. 작가의 7년 전 전시회 [섬같은 사진 섬같은 사람]에서 섬이라는 소재 외의 요소들은 전부 여백으로 처리한 것과 유사한 연출이다.

[가늠할 수 없는 2]는 강이 갖는 원관념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다. 이 컬렉션에는 색상이 더해져 다른 콜렉션과는 또 다른 강조 효과를 냈다. 강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는 굽이쳐 흐르는 푸른 물결이다. 노을이 비치는 강의 표면은 붉은 기운을 띠기도 했지만 컬렉션 전반적으로 푸른색이 도드라졌다. 강물이 비비드한 파란 색감을 띤 것을 두고 김우일 작가는 “한탄강 사진을 원본 그대로 표현한다면 강물 속 쓰레기 등이 비치기 때문에 후작업을 통해 배제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가늠할 수 없는 3]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클로즈업된 프레임은 관람객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흑백 처리된 바위에 음영이 짙게 드리운 것은 우리가 절대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신비로움을 제공한다. 흑백 대비는 사진에 강렬한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작가의 에너지 원천은 ‘도전하는 삶’


▎[가늠할 수 없는 2] 컬렉션 중 하나. 다른 컬렉션과 달리 색상이라는 효과가 추가돼 ‘푸르게 흐르는’ 한탄강의 원관념이 더욱 강화됐다. / 사진:뉴스프링프로젝트
인화지 소재 또한 이번 전시와 맞춤형으로 골랐다. 김우일 작가가 주로 6~7m 사이즈의 초대형 작품을 해오던 것과 달리 이번 [가늠할 수 없는] 전시작은 1m 남짓한 사이즈로 인화한 것도 이 인화지와 관련이 있다. 전시회를 도운 김선희 석스튜디오 총괄이사는 “하네뮬레 인화지를 이용한 이유는 한탄강의 물결을 살리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라며 “북한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이다 보니 어느 날은 회오리치듯 물결이 일기도 한다. 그 역동적인 결을 살리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네뮬레 인화지의 사이즈 규격이 한정적이어서 이번 작품의 규모가 이전과 비교해 작아졌다”고 덧붙였다.

오랜 작품 활동을 끝마친 김우일 작가에게 차기 작품 계획에 대해 묻자 “한탄강에 좀 더 몰입하고 싶다”며 애정을 담아 답했다. 그는 “한탄강도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공간”이라며 “자연의 공간은 계속 바뀌고 깎여내려가고 소모되지 않나! 그것을 좀 더 기록해두고 싶다”고 말했다.


▎[가늠할 수 없는 3] 컬렉션 중 하나. 작품에서 제공되는 정보가 적다는 것은 관객에게 묘한 신비감을 안겨준다. 인간은 평생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이 이렇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된다. / 사진:뉴스프링프로젝트
김우일 작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고심하는 작가다. 오랫동안 광고업계에 몸담은 만큼 패션 감각이나 생각이 젊은이들보다 더 ‘영’(young)하다. 그는 Mnet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5]에 출연한 래퍼 ‘레디’(REDDY)와 협업을 진행할 만큼 유행에도 민감하다. 한탄강에서 사계절을 오롯이 사진 찍는 데 몰입했던 에너지의 원천은 꾸준히 도전하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 우리 삶이 그렇듯이 자연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함과 그 깊이와 어둠을 만들어낸다.
이번 한탄강 작업에서는 요소를 찾아다닌 기존 작업과 달리 한 공간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작은 모래가 쌓여 거대한 사막을 만들고 우주가 만들어낸 섬들은 나의 삶의 과정이었으며, 지금 머무른 이 한탄강 어귀에서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연의 유산인 이 한탄강에서 단순한 요소들인 하늘, 빛, 물, 돌, 바람이 만들어낸 왜곡되지 않는 위대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자 한다. _작가노트 중

※ 라그랑주의 경계 밖에서 지구를 찍다
“인간의 눈은 [지상-하늘(대기권)-우주]로 점차 확장돼왔는데, 김우일은 우주의 끝에서 지구를 바라보듯이 사진을 찍고 사물을 감각하는 매우 특이한 작가다. 우주의 끝으로 향하던 보이저 호가 고개를 180도 돌려 태양계와 지구를 찍은 [창백하고 푸른 점]처럼 김우일 선생의 눈은 그와 동일한 위치와 각도,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나는 김우일 선생의 사진 작업에서 그가 마치 은하계 밖으로 탈주한 상태, 외계의 시선으로 지상의 사물과 인간을 비스듬히 굽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이저호와 그가 찍은 것은 모두 [창백하고 푸른 점], 지구다” _ 윤재갑 큐레이터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202212호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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