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이 사람] 개그감 넘치는 팔방미인 김태은 아나운서 

“힘들어도 기쁘게 사는 방법? 무한긍정, 도돌이표 긍정이죠!”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개그우먼만큼 재미있는 진행… 양반고을 시민도 체면 잊고 포복절도
언제 어디서건 미소 잃지 않는 봉사 일꾼, 마음 따뜻한 ‘행사의 여왕’


▎김태은 아나운서. 방송생활 30년을 바라보는 그는 힘든 일도 무한긍정 에너지로 극복해내는 열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다.
다사다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경기 침체 여파가 덮쳤다. 설상가상, 10월의 마지막 주말 밤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국민의 가슴에 또 한 번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왠지 그에게는 이 어려움들을 이겨낼 해법이 있을 것 같았다. 긍정 마인드로 똘똘 뭉쳐 사는 사람, 누구든 힘이 나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 우리 시대의 명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 김태은(51) 아나운서를 떠올린 이유다. 김태은 아나운서는 근엄한 대통령도 무장해제시켜 웃게 할 정도로 당차고 유머감각 뛰어난 방송인이다.

그녀의 주특기가 발휘되는 현장, [김태은의 가요뱅크]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방송 경력 30년을 바라보는, 모범생 같은 이 관록의 요조숙녀는 손에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목소리 톤이 경쾌하게 밝아지고 높아지면서 어느새 30대 후반쯤 되는 귀염둥이 예능 진행자로 변신한다. “아~ 정말로요”, “아~완전 대박.” 그의 감탄사와 추임새는 얼음장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대번에 녹일 듯했다. 청취자들이 요청하면 체면 차리지 않고 노래 한 소절을 즉석에서 부르기도 하는, 타고난 예능감의 소유자다.

방송 진행을 아주 즐겁게 한다.

“제가 뻔뻔하게, 펀(Fun)펀(Fun)하자! 즉 재미있게 살자는 주의다. 상대방이 잘 얘기하게 배려해주면 누구든 기가 살아난다. 청취자들 가운데 센스 있는 분이 참 많다. 지난 명절에 ‘추석’ 2글자로 2행시 짓기를 하는데, 어떤 분이 ‘추라이하세요, 석세스할 거야’. 그러더라.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빵 터졌다.”

“전주에서 김태은 아나운서 모르면 간첩”


▎김태은 아나운서의 예능감과 유머 코드 주특기가 발휘되는 [김태은의 가요뱅크] 스튜디오 현장. 크고 작은 다양한 소품은 그가 만든 작품들이다.
[김태은의 가요뱅크]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라디오 방송도 앱으로 듣는 시대다. [김태은의 가요뱅크]의 장점은 동시간대에 유튜브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은 ‘보이는 라디오’다. 로컬방송이지만 전국에서 청취자들이 안부를 전해온다. 우리 전주KBS 유튜브 구독자가 무려 28만 명이다. 가수 임영웅이 지금처럼 뜨기 전 신인 때 제 방송에 출연했었다. 가수 별사랑, 영탁, 신유, 박보윤도 신인 때 제가 진행하는 방송에 다녀갔다. 신인의 등용문이자 중견 가수의 인기 확인 코스다.”

전주KBS 간판 아나운서다. 뉴스 앵커도 하고 예능 프르그램 진행도 하고 다재다능하시다.

“제가 방송을 한번 했다 하면 보통 10여년은 진행한다. 10년 넘게 [아침마당 전북] 진행을 맡고 있다. 이웃의 다양하고 진솔한 이야기로 안방에 훈훈한 감동과 희망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이다. [김태은의 가요뱅크]는 14년째다. TV와 라디오뉴스 진행은 20년이 넘었고, 쇼와 오락 MC도 대부분 제 차지였다. 전북지역 도지사 취임식 진행, 기초자치단체의 어지간한 축제 진행도 제가 많이 했다.”

시민들 중에 아나운서 김태은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하더라.

“오죽하면 저를 보고 수도꼭지라고 하더라. ‘(방송을) 틀면 나오는 사람’이라고.(웃음) 그렇다. 저는 언제든 스탠바이다. 방송인으로 살면서 ‘저 사람은 틀림없는 사람이다. 유머 있는 사람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는 평을 듣고 싶었다. 28년을 변함없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1994년에 입사해서 [6시 내고향] 전주지역 코너를 맡았다. 방송 첫 장면에 그날의 핵심적 내용을 간단한 콩트나 위트 있는 멘트로 선보이는 걸 제가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북 고창 특산물인 복분자를 소개한다고 치자. 서두에 제가 예쁘게 한복을 입고 연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복씨이고 분자예요. 복분자예요.’ 이런 꽁트를 제안했더니 제작자인 PD도 좋아하더라. 그 뒤로 다른 방송에도 많이 퍼졌다. 그런 마인드로 직장생활도 열심히, 재미있게 했다.”

열정이 대단하다.

“입사한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각이나 방송사고가 없었다. 그게 제 자랑이다. 시청자들은 제가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안 낳은 줄 안다. 늘 TV에서 보고 라디오에서 들으니까.(웃음) 제가 딸아이 낳고 딱 3개월 직장을 쉬었다. 초년 시절에는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아침 7시, 9시, 12시 뉴스하고 밖에 나가 행사 사회 보고, 또 돌아와서 저녁뉴스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바빴다. 그래도 ‘선배들이 나를 교육시키려고 하는구나. 배우는 게 있겠지’ 하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했더니 어느 날 선배들이 저보고 ‘김부장 방송은 편하게 들린다. 놀면서 하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 그 소리 듣고 뿌듯했다. 저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늘 웃는다. 언제나 무한긍정, 도돌이표 긍정이다.”

방송가에서 아나운서 가족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김용·81세)가 예전에 꽤 잘나가는 아나운서셨다. [일요응접실], [노래 따라 세월 따라] 등 유명한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하셨다. 내 또래 아이들이 인형이나 권총, 딱지, 고무줄을 가지고 놀 때 언니(김성은 KBS 아나운서)와 저는 줄 끊어진 마이크를 가지고 놀았다.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오시면 자매들 간에 ‘누가 누가 웃기나’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던지는 질문에 센스 있는 말로 답하고, 꼭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들어야 끝이 났다. 그런 밥상머리 유머 교육이 효과를 봤다. 제 남편도 방송인이다. KBS에서 기자로 일한다. 사내 커플이었다. 삐삐(무선호출기) 시대였는데, 동료 직원들 모르게 만나기 위해 소통했던 암호가 뭔줄 아나? 신랑이 영구, 제가 땡칠이였다.(웃음)”

아나운서 가족이 지닌 특별한 방송 DNA


▎김태은 아나운서가 자신이 펴낸 책 [대통령을 웃긴 여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지난 29년간 KBS전주총국의 간판 아나운서이자 진행자로 활동해왔다.
탁월한 개그감도 아버지로부터 배웠나?

“제 예능감은 아버지 덕분이다. 제가 어렸을 때 심형래씨 유행어인 ‘영구 없~~다’ 흉내를 내고, 시장 할머니들의 사투리를 따라 했더니 아버지께서 재미있어 하셨다. 아버지가 친화력이 좋고 애드리브의 대가시다. 우리 자매가 셋인데, 아버지가 남들에게 소개할 때 뭐라고 하시는 줄 아나? ‘2녀1녀’ 라고 하신다(웃음). 주위 분들에게 인정도 많으시다.”

양반고을 전주 시민도 김 아나운서의 유머에는 체면을 잊고 포복절도한다는 말을 들었다.

“제가 만든 말인데, ‘유자솔 법칙’이 있다. ‘유머 있게, 자연스럽게, 솔직하게’다. 유머 섞인 화법, 친근 화법, 서로 공통적인 점을 찾아가는 화법이면 다 통하더라. 얼마 전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서울의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러 오셨다. 정장을 입고 관객도 다들 엄숙한데, 저는 그런 긴장된 분위기를 못 견뎌한다. 제가 그날 꽤 우아하게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나갔다. ‘제 옷차림과 무대 분위기는 쇼팽이라도 연주할 것 같지만 제가 체르니 30번 치다 말았다. 체르니 30번 치다 말았지만 교양 있는 아나운서다… 오늘 최고의 교향악단을 전주KBS 최고령 아나운서인 제가 소개하겠다’. 이렇게 재미있게 얘기했더니 출연자도 관객도 한결 긴장을 풀고 많이 웃으시더라. ‘이 자리는 관객들께서 박수도 많이 쳐주셔야 하는데, 지금 눈빛은 왜 죄다 [경찰청 사람들]이네요. 오늘 오신 어머님들, 왜 우리 아들은 밤새 게임만 할까? 우리 며느리는 왜 아파트 이름이 복잡한 데서 살까? 이런 고민이 있는 것 다 안다. 그런데 오늘은 좋은 음악 듣고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오신 것 아니냐? 그러니 여기에서는 다들 박수 치셔야 한다’ 이렇게 가족처럼 딸처럼 친근하게 다가가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지역 방송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저는 쇼나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투리 구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살갑게 ‘어머니~’ 하면 출연자 입장에서는 우리 옆집 아이 같기도 하고, 딸 같기도 하면서 친근해진다. 그러면 ‘김태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네’ 이렇게 되는 거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청취자들과 재미있는 코너를 같이 짜기도 한다. 한 번은 쌀이 많이 나는 김제에서 오신 아름다운 분들이시기에 ‘미미(米美)시스터스’라고 이름 붙였다. 저를 내려놓고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손잡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방송 끝날 때는 ‘우리가 한가족이에요~’ 이렇게 된다. 어느새 그게 제 클로징 멘트이자 유행어가 됐다.”

근엄한 대통령을 애드리브로 웃긴 아나운서

[대통령을 웃긴 여자]라는 책도 냈던데?

“2007년 6월 초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였는데, 많이 경직된 분위기였다. 제가 겁도 없이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갔다. ‘자, 이제 분위기를 [국악 한마당]처럼 꾸며볼까 하는데 다들 표정은 [추적 60분]이군요… 아, 지금 대통령 내외가 입장하고 계십니다. 전주의 특산품을 증정하겠습니다. 부채 선물입니다. ‘부~채’가 아니고 부채입니다. 저희가 빚을 드릴 수는 없고요… 오랫동안 서서 진행을 봐도 무리 없는 저의 혈액형은 스탠드형입니다! 인형 아닙니다.’ 그러자 주빈석에 앉아 있던 노무현 대통령이 ‘저 아나운서 참 재미있네. 하하하’ 웃으시더라. 유머를 섞어가면서도 대담하게, 아주 편하고 즐겁게 했는데, 그걸 나쁘게 보지 않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신 거다. 덕분에 제가 그 뒤로 ‘대통령을 웃긴 아나운서’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지역 아나운서 최초로 방송국 3사에서 전국 동시 생방송하는 광복절 행사를 진행하는 기쁨도 맛봤다.”

연말이다. 얼마 전 나라에 큰 인명 참사가 있었다. 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14년 세월호 참사 때가 생각난다. 방송생활 21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방송을 했다. 슬픈 노래뿐만 아니라 위로의 의미가 있는 노래를 신중하게 선곡했다. 리아의 [눈물], 주니퍼의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MC 스나이퍼의 [글루미 선데이], 스카이의 [영원], 김수철의 [못다 핀 꽃 한 송이] 등 아마 제 방송을 통틀어 가장 슬펐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힘들어도 무한긍정 에너지로 지금의 이 슬픔도 잘 이겨내야 한다.”

나중에 방송계를 떠나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 같다.

“제가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사투리도 잘 구사한다. 기회가 되면 그런 장점을 발휘해 연기를 해보고 싶다. 아마 코믹물이 되지 않을까? 분위기는 배우 김희애인데, 말을 하면 모두를 웃게 만드니… 퇴직하면 가요교실도 열고 싶다. 무대에서 토크콘서트도 하면서 친분 있는 가수들과 예능도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버로도 대성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할 게 많다. 아직 꿈이 많다.(웃음)”

김태은 아나운서는 자신의 타고난 끼와 역량을 전주대학교 공연방송연기학과 겸임교수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전수해주고 있다. 그는 또한 아나운서로는 드물게 전국에 팬클럽(회장 전소영, 회원 3000명)이 있는 스타급 방송인이기도 하다.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요양병원을 찾아 연극공연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위로해 드리기도 하고, 연말이면 이웃을 돕고 나누기 위한 김장 봉사도 참여한다. 팔방미인, 봉사 일꾼을 만나니 힘이 났다. 힘들고 어려운 시대, 따뜻한 연말을 보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긍정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다.

- 글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na.kwonil@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202212호 (2022.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