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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8)] 파이오링크㈜ 조영철 대표 

“내 그림은 사람과 소통하는 작은 꽃밭” 

미술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의 꽃과 식물을 소박하게 표현
국내서 독보적 IT 솔루션 기업 일구며 그림으로 ‘소확행’ 실천


▎국내 데이터센터 솔루션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파이오링크㈜의 조영철 대표는 일상에서 만나는 꽃과 식물을 자기만의 감성으로 그려내는 아마추어 화가다.
"모든 그림은, 그 식물을 기른 사람들의 천국이다.” 파이오링크㈜ 조영철(52) 대표의 말이다. 그가 그림을 처음 시작한 것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앨범을 보다가 어렸을 때 형제들과 찍은 사진을 보게 됐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기른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왠지 그 꽃밭이 ‘어머니의 천국’처럼 느껴졌다. 불현듯 아이패드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마당에 핀 꽃을 그렸다. 이것이 조 대표가 그린 첫 그림이다. 이후 길을 걷다가 길가에 핀 꽃이나 작은 식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고, 결국 그림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 천천히 걷다가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좋아했다. 식물을 기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영철 대표는 서울대학교 제어계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제어계측학과에서 석사를, 전기공학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같이 연구·개발하던 선후배와 함께 파이오링크를 2000년에 창업했다. 2007년 어느 면에선 회사가 가장 힘든 시기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얼마 전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가 발생하면서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가 접속 장애를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이중화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파이오링크는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인터넷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서비스하는 연구·개발·제조 회사다.

국내 최초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처리를 위한 고성능 ADC의 국산화에 성공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현재는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데이터센터가 파이오링크 장비를 사용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다. 그렇다고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조 대표가 취임할 당시만 해도 수십억대의 적자 상태였다. 빚을 청산한 뒤 혁신적인 변화를 꾀할 때마다 고충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지치지 않는 힘의 원천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개발해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성취와 성장을 통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소확행인 그림 덕분이라고 말한다.

최근 경제 상황이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19와 세계 경제 불황 등으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쉽사리 완화될 것 같지 않다고들 염려한다. 2023년 1월, 새해 첫 인터뷰어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조영철 파이오링크 대표를 만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조 대표는 다른 사람들의 소확행과 교감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고, 자신만의 소확행(그림 그리기)으로 버티며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막 구운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에서 소확행을 느낀다고 했다. 네덜란드 국왕은 비행이 좋아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무려 21년간 한 달에 두 번 부조종사로 일하며 소확행을 즐겼다. 이처럼 일상에서 편안한 행복을 찾는 방법은 제각각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과 삶이 균형 잡힌 워라밸(Work-Life Balance)이야말로 더 멀리, 더 높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건실한 기업 일군 고단함, ‘소확행’으로 재충전


▎조영철 대표가 그린 그림의 주된 소재는 마당이나 길가에 핀 꽃이나 누군가 심어놓은 식물이다. 그는 다양한 기법과 채색으로 소박한 풍경을 아이패드에 그려낸다. / 사진:조영철
조 대표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아무래도 IT 관련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고, 쉽게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디지털 그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그림 그리기 앱을 이용해 유화, 수채화, 한국회화(동양화) 등의 특성을 살려 질감 표현을 조합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원근법이나 일반적인 구도와 명암을 벗어나려 하거나, 손맛을 좋아해 손으로 문지르며 그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조 대표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배울 생각이 없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작은 꽃밭에서 꽃을 가꾸고, 낡은 화분에 파를 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 꽃이나 식물은 그것을 기르는 사람들의 천국이고, 이 세상에 거저 피는 꽃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의 소확행을 통해 위안을 받았듯이 자신의 그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고 있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IT 분야에 종사해 디지털 아이패드는 평소에 친숙한 도구다.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붓이나 물감 같은 준비물이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그릴 수 있어 편리하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따로 배우지 않아도 쉽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 외에도 디지털 그림은 장점이 참 많다.”

그림에 주로 어떤 내용을 담나?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큰 맥락에서 보면 그림에 담고자 하는 내용은 같지만, 그림마다 담긴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손님이 많지 않은 20년 된 미용실 앞을 자주 지나다녔는데, 작은 화단에 매일 물을 주며 꽃을 정성 들여 길렀다. 어느 날은 가꾼 사람이 고생한 만큼 나리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미용실 아주머니와 닮아 보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활짝 핀 꽃처럼 미용실도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식물 아이패드에 쓱쓱 그려


▎조영철 대표에게 그림은 누구나 행복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천국이자 작은 꽃밭이다. / 사진:조영철
‘그림은 모두 그 식물을 기른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나는 주로 사람들이 기른 식물을 그린다. 그림 중에 낡은 화분에 기른 파 그림이 있는데 그 어떤 화려한 꽃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작은 것을 키우고, 가꾸며 행복해하는 주인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어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무엇인가 찾을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문득 사업 역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어떤 행복과 기쁨을 찾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꽃밭이야말로 자신만의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사진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찍으러 다니지 않는다. 대부분 산책길이나 걷기에 좋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음에 들어오는 식물을 만나면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모아두고 사용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어떤 영감이나 스토리를 줄 수 있는 사진을 폴더에서 꺼내 그린다. 예를 들어 ‘맨드라미 그림’은 형태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따라 그리지 않고, 인상적인 꽃의 특징만 가져와서 내 느낌대로 그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매일 조금씩 그리는데 보통 10~15일 정도 그리거나, 오래 그린 것은 한 달 정도 소요된다. 간혹 1시간 안에 모두 끝나기도 하고, 그리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미술 전공자뿐 아니라 비전공자, 중장년층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디지털 그림을 많이 보지 못했다. 특히 다른 사람의 그림과 내 그림을 비교해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지만, 디지털 작가는 현대적이거나 현대적인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디지털 체계를 이용하다 보니 더욱 디지털적으로 표현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디지털적인 시스템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사실 다른 사람 그림과 비교했을 때 같거나 다르다는 점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는 그림 안에 내가 느낀 감정이 잘 전달되도록 표현되었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누군가의 평가보다 나 자신의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

지치지 않는 힘의 원천은 직원들의 성장


▎조영철 파이오링크㈜ 대표의 ‘인생 컷’은 어릴 적 살았던 경기도 평택의 집 마당에서 형제들과 찍은 사진이다. 어머니가 꾸며놓은 화단에는 늘 알록달록한 꽃이 풍성했다. / 사진:조영철
파이오링크 회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한마디로 인터넷 데이터센터에 꼭 필요한 서버 이중화를 개발해 제공하는 회사다. 국내 유일 기업으로 이 분야에서는 선구자다. 데이터센터의 이중화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전송 컨트롤러(ADC)와 웹방화벽, 보안스위치 등은 최고의 성능과 안정성을 보장한다. 미국 회사들과 경쟁하다가 2016년부터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많은 회사다. 직원들이 오래 다니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점에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파이오링크는 2013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그리고 2013년 산업기술상(산업통산자원부)과 2020년 정보보호산업 유공자 포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제15회 대한민국 인터넷 대상으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대한전기학회 기술혁신상을 받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년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남다른 이유가 있을까?

“직원들이 잘해서 가능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쓰는 모든 데이터센터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 기술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한 점도 있다. 국내 ADC 시장 1위를 점유하는 PAS-K는 애플리케이션을 최적의 상태로 전송한다. 부하분산, 가속, 보안 기능으로 트래픽 폭주 상황에서도 연결을 보장한다. 그리고 최고 성능과 보안을 자랑하는 ‘WEBFRONT-K’는 웹 애플리케이션에 특화된 보안 솔루션으로 해킹, 부정 로그인, 웹사이트 위·변조 등을 차단하고 신·변종 공격까지 대응하는 국내 최고 성능의 웹 방화벽이다. 일본에 수출한 지 17년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사업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실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찾아간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업이라는 것이 바람을 잘 타고, 시장의 트렌드를 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들이 잘 맞아서 잘된 점도 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직원들의 성장이다. 사업이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거나 지치지 않는 힘의 원천은 직원들이 성취하고 성장할 때, 그리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세상에 필요한 물건, 세상이 불편해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장해가는 것 그 자체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을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키우고, 기업 내에서 성장시켜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나의 책무다.”

사업을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위기를 겪을 수 있는데 극복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

“회사가 어렵다면 내 문제이거나 외부 상황 때문인데 외적인 부분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일단 순리에 따른다. ‘현재는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자. 미래는 우려하지 말고 기대하자’는 문장이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태도다. 과거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후회하고 불평하고 우려하는 세 가지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감사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습관을 들이면 행복해지는 것 같다. 처음엔 어렵지만 습관이 될 때까지 의도적으로 반복하면 가능해진다. 나를 좀 더 행복한 순간에 머물게 하는 행위를 습관적으로 했는데 그것이 그림 그리기였다. 사업을 하다 보면 매 순간 어려움이 따른다. 그럴 때마다 그림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림은, 천국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즐거움

조영철 대표에게 그림이란?

“누군가의 천국이자, 내가 가꾸는 나의 천국이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천국을 엿보며 공감하고, 감상하고, 동시에 체험한다. 그림으로 재생산한다는 것은 그 천국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즐거움이자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천국인 것이다. 노동도 하고, 힐링도 하고, 완성해놓으면 남들이 와서 구경도 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도 열어주는 작은 꽃밭이다. 그림 그리는 시간은 기도나 명상의 시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림을 꾸준히 그리다 보니 훈련이 된 것 같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내가 경험했던 소소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아가 내가 누군가의 꽃밭에서 위로를 받았듯이 다른 사람들 역시 나의 그림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한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어릴 때 살았던 우리 집 마당에서 형제들과 찍은 사진이다. 앨범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어렸을 때의 순수한 모습도 좋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이다. 어머님이 가꾼 채송화, 달리아, 사루비아, 백합, 맨드라미 등 갖가지 꽃과 앵두, 사과, 살구, 포도 등 과일나무도 많았다. 방학 때 형제들과 부모님을 도와 모래와 시멘트로 마당에 깐 육각형 모양 보도블록을 만들었던 추억도 생각났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 살았던 집에 대한 추억이 문득문득 너무 그리웠다. 작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앨범에서 봤던 우리 집 마당을 갑자기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이 사진 때문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이것도 이 사진 때문에 꿈꾸게 되었다. 지금은 평택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마을 전체가 수용돼 우리 집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사진을 보면서 부모님과 만든 육각형 벽돌은 어디에 있을까, 가끔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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