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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23장 베를린 

1945년 봄 베를린 방어는 더는 무의미했다. 살의를 채운 전장의 군인들은 이내 독일 여성들을 광기의 제물로 삼았다. 전의를 상실한 히틀러의 권총은 제2차 세계대전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총성을 울렸다.
1945년 4월 20일은 히틀러의 56회 생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화창해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베를린 거리도 좀 덜 음산했다. 부서진 건물들에 “베를린 전쟁 당국은 총통께 인사 올립니다”라고 씌어진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괴벨스는 아침에 총통의 생일을 축하하는 방송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역설했다. 모든 독일 사람들은 총통이 지금 독일이 맞은 어려움을 끝내 극복하고 독일의 영광을 이루리라 믿어야 한다고. 언제부턴가 괴벨스는 “우리는 이겨야 하므로, 우리는 이길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괴벨스의 얘기를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었다. 그들은 총통이 마지막 순간에 “기적의 무기”를 사용해서 전황을 단숨에 바꾸리라는 꿈에 매달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독일의 패배를 받아들인 터였다. 총통에 대한 환상을 지니기엔 독일의 현실이 너무 비참했다. 두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히틀러의 생일에 날씨가 좋으면 거리에서 지나치는 낯선 사람들도 “총통 날씨”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총통의 신통력이 날씨에까지 미친다는 함의를 품은 인사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골수 나치 당원이 아니면 총통이나 히틀러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보통 시민들은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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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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