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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화제] M&A에 진심, 글로벌 ‘빅딜’ 나선 제약·바이오 

미국 바이오기업 품은 동아에스티·LG화학 

SK㈜의 해외 CDMO 크로스보더 딜 이후 글로벌 M&A 잇따라
LG화학,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이자 첫 번째 바이오기업 인수 쾌거


▎SK㈜가 2021년 3월 인수한 프랑스 세포·유전자 치료제 CDMO 이포스케시 연구원이 실험하고 있다. / 사진:SK(주)
불과 7~8년 전만 해도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딴 세상’ 얘기였다. 글로벌 기업들이 ‘빅딜’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것을 부러워하며 지켜봐야 했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기업이 다국적 제약사의 공장을 비롯해 외국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SK그룹 지주회사 SK㈜가 2017~2018년 BMS 아일랜드 생산 시설과 미국 앰팩을 인수하며 물꼬를 튼 이후 CJ제일제당과 GC녹십자(녹십자홀딩스), 롯데지주 등도 글로벌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최근 들어선 동아에스티(동아ST)가 미국 기업을 품었다. LG화학은 미국 바이오텍 인수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영토 확장 사례가 늘면서 딜을 성사시킨 이들의 면면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고경영자(CEO)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물론 외부 영입 인사가 일등공신 역할을 한 사례도 있다.

동아에스티는 최근 미국 바이오기업 ‘뉴로보 파마슈티컬스(이하 뉴로보)’를 자회사로 품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R&D) 전초기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아에스티는 지난해 12월 22일 미국에서 열린 뉴로보 임시주주총회에서 기존 확보 지분 65.5%의 전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최대주주가 됐다.

동아에스티와 뉴로보는 앞서 지난해 9월 글로벌 라이선스 아웃·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동아에스티가 개발한 2형 당뇨·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DA-1241’과 비만·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제 ‘DA-1726’의 전 세계 독점 개발권과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독점 판매권을 뉴로보에 이전하는 계약이었다. 동아에스티는 계약금 2200만 달러를 뉴로보 전환우선주로 취득했다. 또 뉴로보에 15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추가 취득했다. 뉴로보는 계약 완결을 위해 동아에스티가 투자하는 15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30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이에 지난해 10월 28일부터 11월 8일까지 미국 현지에서 공모를 통해 투자 유치를 진행했고, 총 323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뉴로보가 계약 완결 조건을 성립하고 동아에스티의 자회사로 편입될 수 있었던 데에는 김형헌 동아에스티 전무의 공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무가 2021년 7월 뉴로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에 선임되면서 동아에스티의 뉴로보 경영 참여가 본격화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전무는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제약 속에서도 한국과 미국을 분주하게 오가며 뉴로보의 동아에스티 자회사 편입의 초석을 다졌다.

‘뉴로보’ 자회사 편입 조력한 김형헌 동아에스티 전무

김 전무는 뉴로보가 공모 펀드를 대상으로 투자 유치를 하는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월스트리트에 찬바람이 불며 갈수록 투자심리가 악화하던 시기였다. 투자가들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지난해에는 얼어붙은 투자 심리 영향으로 초기 임상 물질이나 새로운 기술은 부담스러운 투자처로 변해버렸다. ‘DA-1241’ 등이 미국에서 생소한 한국 기업의 파이프라인이라는 점도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DA-1241’과 같은 퍼스트 인 클래스는 좀처럼 주목받기 힘든 환경이었다”며 “특히 뉴로보가 자금 조달에 나선 지난해 10월은 미국에서 상장한 기업들의 전체 공모 규모가 1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5%나 급감한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그러나 여건에 굴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투자가들을 만나 동아에스티 파이프라인과 뉴로보의 글로벌 전초기지로서의 기대 역할을 소개했다.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동아에스티 R&D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인정받은 뉴로보는 미국 자금 조달 시장 경색에도 불구하고 목표인 1500만 달러 대비 15.3% 초과한 173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총 3230만 달러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김 전무는 미국 워싱턴대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미국 뉴욕주 변호사 출신이다.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등을 거쳐 2012년 동아쏘시오그룹에 입사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해외법무팀장으로 그룹사 해외 법무를 이끌었고, 2018년부터 동아에스티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며 동아쏘시오그룹 법무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LG화학은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약을 보유한 외국 기업을 인수하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10월 18일 미국 ‘아베오 파마슈티컬스(이하 아베오)’를 5억66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 안에 아베오 지분 100%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아베오는 2002년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톤에 둥지를 튼 기업으로, 2010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임상 개발·허가·영업·마케팅 등 항암 시장에 특화된 종합적 역량을 확보한 곳으로 평가된다. 2021년 FDA에서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 품목 허가를 획득한 후 매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 증권가에 따르면 아베오는 지난해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한 약 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7년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5000억원 수준이다. 진행 중인 포티브다와 면역항암제의 병용 임상 성공 시 치료제 적용 범위가 확장돼 매출 추가 성장이 기대된다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아베오는 포티브다 외에도 임상 3상 중인 두경부암 치료제(피클라투주맙) 등 항암 파이프라인 3개를 보유하고 있다. 적기 개발 성공 시 모두 30년 내 FDA 승인이 예상된다.

LG화학은 아베오 인수를 통해 단기간 미국 내 항암제 상업화 역량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자체 개발 신약을 출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LG화학은 고형암 세포 치료제 등 9개 항암 파이프라인을 비롯해 통풍·비알코올성지방간염·비만 치료제 등 총 20개의 파이프라인을 지녔다.

LG화학 첫 바이오 M&A 이끈 신학철 부회장·손지웅 사장


▎SK의 글로벌 제약·바이오 빅딜을 진두지휘 중인 장동현 SK㈜ 부회장(왼쪽부터), LG의 미국 바이오기업 인수 작업을 주도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손지웅 LG화학 사장(생명과학사업본부장).
LG화학의 미국 바이오텍 M&A 히스토리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미국 제약·바이오 상업화 조직을 구축하기 위한 가장 수월한 길이 M&A라고 봤다. 신 부회장이 중심이 된 가운데 손지웅 사장(생명과학사업본부장), 이지웅 상무(M&A 담당), 박희술 전무(생명과학사업본부), 허성진 사업 개발 담당 등 10여 명이 2019년 극비리에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인재 영입과 신약 파이프라인 보강에 집중해온 LG화학이 바이오 재건의 마지막 퍼즐을 글로벌 M&A를 통한 미국 시장 진출로 정한 순간이었다.

LG화학 TF는 이후 성장 잠재력이 높은 미국 항암제 개발 기업을 중점적으로 물색했다. 우선 미국에서 FDA 승인을 얻어 상업화에 성공한 회사들로 리스트를 추렸다. 수백 곳의 기업을 하나씩 검토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인수 후보는 2021년이 돼서야 최종 몇 곳으로 좁혀졌고, 격론 끝에 미국 아베오를 타깃으로 결정했다. LG화학 TF는 아베오가 현지에서 포티브다만으로도 한 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5년 후엔 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확신했다. 또 향후 LG화학이 출시할 자체 개발 항암 신약의 판매 측면에서도 양사 간 시너지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8000억원 규모의 기업가치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곧바로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아베오는 2021년 극적으로 FDA 승인을 따내며 재건을 앞둔 상황이었다. LG화학 TF는 협상 과정에서 연구진 중심의 회사 문화를 존중하면서 신약 투자를 아낌없이 할 수 있는 인수자임을 강조했다. 신 부회장의 지시 아래 주요 실무진이 미국 현지에서 아베오 임직원과 유대를 쌓는 데도 공을 들였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서도 배터리 사업을 1위로 키운 LG화학의 ‘뚝심’은 마침내 아베오 경영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2022년 10월 아베오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수락하면서 LG화학은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이자 첫 번째 바이오 M&A에 성공했다. 신 부회장은 “LG화학은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신성장 동력을 통한 기업 가치 제고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추진해왔다”며 “LG 바이오 사업 40여 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정표인 아베오 인수를 계기로 해당 회사의 상업화·임상 역량을 내재화해 2027년 생명과학부문 매출 2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빅딜 사례가 늘면서 그 원조격인 SK㈜의 제약·바이오 사업 전략도 눈길을 끈다. SK그룹 지주사인 SK㈜에 따르면, 이 회사의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100% 자회사 SK팜테코는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해 SK팜테코를 글로벌 주요 CDMO로 성장시킨 장동현 SK㈜ 부회장의 사업 수완이 주목받고 있다. 장 부회장은 2017년 SK㈜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 직접 진출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SK㈜는 2015년 SK바이오팜의 CDMO 사업 부서였던 SK바이오텍을 물적 분할, 2016년 SK바이오텍 100% 지분 인수를 통해 SK㈜의 직접 자회사로 전환했다. SK㈜의 제약·바이오 사업은 장 부회장 취임 이후 날개를 달았다. 2017년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아일랜드 스워즈 공장, 2018년 미국 앰팩, 2021년 프랑스 이포스케시를 연달아 인수하면서부터다. SK㈜는 과거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볼 수 없던 해외 CDMO 대상 크로스보더 딜 3건을 단 5년 만에 성사시키며 입지를 강화했다. 2022년 초에는 미래 성장 사업인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사업 확대 일환으로 미국 CBM(The Center for Breakthrough Medicines)에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SK㈜는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 CGT CDMO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SK 바이오 빅딜 진두지휘한 장동현 SK㈜ 부회장

장 부회장은 2019년 글로벌 CDMO 통합법인 SK팜테코를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설립하면서 각 거점별 법인을 SK팜테코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등 글로벌 생산 시너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SK팜테코는 미국, 유럽, 한국에 8곳의 사업장과 5곳의 R&D센터를 보유 중이다.

SK㈜는 특히 현지 베테랑 전문가로 경영진을 구성하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피인수기업이 기존 경쟁력 강화는 물론 SK팜테코 내 다른 자회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처했다. 조이스 피츠해리스 SK바이오텍 아일랜드 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BMS 시절부터 근무해온 30년 이상 경력의 전문가로,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이포스 케시 기존 경영진도 그대로 남아 주력 사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SK팜테코 새 CEO에 선임된 요그 알그림 신임 사장 역시 글로벌 제약·CDMO 업계에서 약 25년 경력을 보유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 박스터와 CDMO 론자에서 바이오·합성 의약품 생산을 총괄했다. 합성 의약품은 물론 항체치료제, 단백질 의약품, 혁신 바이오 의약품으로 주목받는 CGT 영역까지 두루 경험한 베테랑이다.

SK팜테코는 합성 원료 의약품 사업에서 다진 기반을 바탕으로 신성장 사업인 CGT CDMO 사업을 중점 육성해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도약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CGT는 바이오 의약품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이 기대되는 분야다. 유전 결함으로 발병하는 희귀 질환을 1~2회 유전자 주입으로 완치하는 개인 맞춤형 치료제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월등한 치료 효과로 주목받고 있다. SK팜테코는 CGT CDMO 사업에서 치료제 생산의 처음인 원료 디자인부터 바이러스 매개체 생산, 최종 치료제 생산까지 통합 엔드투엔드를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과 프랑스에 대규모 우수의약품 제조관리(GMP) 생산시설을 확보한 CDMO로서 글로벌 입지를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SK팜테코의 프랑스 CGT CDMO 자회사인 이포스케시도 올해 1분기 완공을 앞둔 제2공장과 핵심 기술 역량을 앞세워 글로벌 수주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SK팜테코가 2대 주주인 미국 CBM은 CGT 단일 생산 설비 기준 세계 최대인 70만 제곱피트(약 2만 평) 규모 GMP 생산시설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SK㈜는 지난 1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장 부회장 주재 아래 SK㈜ 바이오 사업 신임 리더십인 김연태 SK㈜ 바이오투자센터장,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요그 알그림 SK팜테코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SK 바이오 나이트’ 행사를 진행했다. 투자자와 파트너사들을 초대해 SK㈜의 제약·바이오 사업 방향을 공유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자리였다. SK㈜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사업 협력과 투자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갈 계획”이라며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거점을 중심으로 바이오 사업 현지화를 통해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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