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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간첩단 사건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논란 

간첩 못 잡는 국정원, 이러다 ‘간첩 천국’ 될라 

문재인 정부 때 강행 처리한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2024년에 시행
남한 내 자생 간첩에 속수무책,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원점 돌려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1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서 압수 수색을 시도하고 있다. / 사진:민주노총 트위터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직업은 첫째가 매춘, 둘째가 스파이라고 한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2명의 첩보원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당시 매춘부였던 라합의 집에 갔다.

매춘과 스파이를 인류와 함께 시작된 유서 깊은 직업으로 끄집어내는 이유는 21세기에 간첩이 있냐고 묻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간첩은 싫든 좋든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고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분단 한반도에서 간첩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발병과 잠복을 반복할 것이다.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냉전시대 반공교육을 받았던 50대 이상이라면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배포한 포스터를 기억할 것이다. 새벽에 이슬을 맞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단파방송을 듣는 사람 등 남한 사람과 다른 행색을 보이는 이를 발견하면 무조건 112로 신고하라는 내용의 홍보물 말이다. 하지만 세상 만물 멈춰있는 것은 없다는 진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시구처럼 간첩의 모습도 세월처럼 변해갔다.

간첩 수사에는 최소 5년, 길면 10년이 소요된다. 수사는 장기전이고 인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유명 정치인의 발언이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냉전시대에는 평양에서 최소 20년 이상 집중 교육을 받은 특수공작원이 직접 남한으로 내려오는 간첩 형태였다. 말투나 직업, 행색을 완전히 바꿔 서울에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영화 007에 나오는 수준의 교육을 받고 제주도나 남해안에 상륙해 옷을 갈아입고 평양에서 점찍은 친북 좌경 인사들을 접촉해 지하당 구축 명령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필자가 원장으로 근무(2008~2012)했던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도 북한에서 직파된 간첩들이 완전히 귀순해 연구원으로 근무한 사례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충남 부여에서 안기부와 경찰에 체포된 간첩 K는 서귀포 해안 10㎞ 해상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해안에 상륙했다. 야자수를 보고 대만 해안에 잘못 상륙했나 고민하다가 우리말을 듣곤 남한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상륙했다.

과거에는 간첩 수사도 이미 잠입한 남파 간첩을 통해 남한 내 접촉자나 평양에서 파견할 간첩을 예상해 일망타진하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 중반 부산 다대포에서 체포한 L 간첩단은 안기부가 이미 포섭된 국내 인사들로부터 이들이 부산으로 상륙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유인 공작 끝에 일부를 사살하고 L을 체포한 사건이었다.

냉전시대에는 정예요원 남파해 지하조직 건설


▎1983년 12월 3일 부산 다대포 앞바다로 침투하다 격침된 북한 무장간첩선을 해군이 인양하는 장면.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훈련받은 간첩을 직접 남파하는 전술이 주로 쓰였다.
1990년대 대표적인 남파 간첩은 전설적인 할머니 간첩 리선실(1916~2000)이다. 제주도 출신의 리선실은 4·3 사건 이후 남로당에 가입하고 1950년 4월 한국전쟁 직전 월북했다. 이후 수차례 서울에 나타났고 일본을 오가며 간첩 활동을 전개했다. 1990년 북한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한의 지하당 구축 공작을 주도했다. 이후 1991년 김일성과 재독 친북 음악가 윤이상의 면담에 배석하는 등 정치국원 서열 22위에 올라 북한에서 실세로 불렸다. 2000년 8월 사망한 그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치됐다.

1992년 10월 6일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리선실이 대남공작 지도총책으로 주도한 남한조선로동당은 중부·경인·영남·호남 등 4개 지역당으로 분할돼 있으며, 이중 충북과 강원도를 포괄하는 ‘중부지역당’이 조직돼 있다. 안기부는 리선실 등의 관리하에 포섭된 황인오, 최호경, 은재형, 정경수 등 네 명이 1991년 7월 강원도 호산해수욕장에서 중부지역당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때 황인오는 책임비서 겸재야 종교 담당, 최호경이 강원도당 지도책 및 농촌 군사 담당, 은재형이 충북도당 위원장 및 노동중소 기업 담당, 정경수가 충남도당 위원장 및 청년학생 담당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으며, 리선실이 민중당 지하 지도부인 손병선을 ‘단선연계 복선 포치(조직원끼리는 모르게, 상부선과는 각자 따로 연계)’라는 지하당 조직의 기본 원칙에 따라 별개 조직으로 구성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당시 사건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재조사를 벌여 실체를 인정했다. 당시 위원회는 ‘실체는 있으나 확대·과장된 사건’이라며 남파 간첩 리선실이 남한의 재야 민주화운동가들을 포섭해 지하조직망을 구축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만, ‘민족해방애국전선’, ‘조국통일애국전선’ 등은 별개의 조직으로, 안기부가 남조선로동당이나 북한과 관계없는 별개 사건들까지 엮어서 과대 포장해 대선 전 북풍몰이를 했다고 부연했지만, 존재 자체는 부인하지 못했다.

2000년대부터 직파 대신 남한 내 자생 간첩 키워


▎전설적인 간첩으로 꼽히는 리선실의 묘비. 제주도 출신인 리선실은 4·3 사건 이후 남로당에 가입해 한국전쟁 이후 1990년 북한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한의 지하당 구축 공작을 주도했다.
2000년 들어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술도 변신을 시도했다. 평양에서 훈련받은 직파 간첩을 보내기보다 남한의 친북 인사를 육성하는 공작이 효과적이었다. 평양 통전부는 남측의 반정부 및 좌경화된 세력을 예의주시하다가 제3국에서 포섭해 무인기 조종하듯 원격으로 컨트롤한다. 국내 자생 및 토착 간첩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배경이다. 북한은 남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소프트한 위장 활동을 전개한다. 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이 담당기관이다. 민족 공조라는 감성적인 구호가 가장 적합하게 연계된 단어는 ‘문화’로서 남한 인사를 포섭하는 데 효율적인 문화교류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문화교류국은 남한의 시민·노동 단체 인사들을 포섭해 지하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기밀 수집, 북한 체제 선전 등을 목표로 삼았다. 간첩을 남파시켜 유사시 무장봉기를 유도하거나, 반(反) 김정은 인사에 대한 테러와 암살 등 임무도 맡고 있다. 문화교류국은 북한의 대남 공작 기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조직이다. 북한 정권 초기인 1946년 북조선노동당 산하 ‘서울공작위원회’가 모태가 됐으며 이후 문화연락부, 사회문화부, 대외연락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꾸다가 2015년 4월 문화교류국이 됐다.

문화교류국 산하에는 공작원을 양성하는 ‘봉화정치학원’, 공작에 필요한 장비 등을 개발하는 ‘314연락소’ 등이 있다. 한국의 거리나 시설과 비슷한 환경을 구현해 놓은 ‘남조선 환경관’, 외화벌이와 공작금 조달을 위한 ‘무역상사’도 운영한다. 북한에서 ‘선생’이라는 호칭을 듣는 문화교류국 공작원들은 뼛속까지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정예요원 중에서 선발되며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에 해박하다. 이들에 의해 포섭된 국내 좌경 인사들은 남북이 한민족으로서 문화교류를 통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활동이 무슨 불법이냐고 법정에서 항변한다. 자신들이 어떤 위법 활동을 했는지 모른 채 부지불식간에 평양의 충성스러운 투사가 되는 것이다.

통상 자생 및 토착 간첩은 3단계 과정을 거치며 반정부 투사로 변신한다. 잘못된 국가관으로 남한 정부를 부정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게 첫 단계다. SNS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과 활동을 공유하면서 북한의 공작망에 의해 포섭 대상으로 선정된다. 2단계는 북측 공작원과 접촉을 시작하는 단계다. 북측 공작원으로부터 남북 문화교류라는 명목으로 제3국에서 회합을 제안받고 비행기를 탄다. 제3국에 가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향응과 공작금을 받으면서 투사가 된다.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북한 공작부서의 지령에 따라 활동 방향 등을 정하면서 고정간첩으로 변신한다.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은 2016년 창원 총책을, 2017년엔 제주 총책을 각각 동남아에서 접촉해 지하조직 건설을 지시했다. 이후 ‘윤석열 규탄’ ‘민노총 침투·장악’ 같은 지침을 하달했다. 진보정당 간부는 2017년 중국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제주에 ‘ㅎㄱㅎ’라는 지하조직을 만들고 농민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북측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

마지막 3단계에는 단순히 국내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전달하는 하급 수준에서 벗어나 노조 및 정치권 등의 간부로 신분을 세탁해 거점을 구축하고 공식 활동을 전개한다. 정당 등 제도권에 진입해 남한 상층부를 대상으로 고도화된 공작을 전개한다. 합법적이고 객관적인 신분으로 위장해 여의도 정치권을 대상으로 고급정보를 수집하고 포섭 범위를 확대한다. 정치권 인사가 연루된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 일심회 사건이다. 일심회 조직원은 중국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군, 행정부 및 국회 등을 통해 수집한 국가기밀을 북측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일련의 사례는 노조 간부, 정당원 등 합법적인 신분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수사가 어려운 ‘그럴듯한 직장인 간첩’ 스타일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친북 좌파 분위기와 일부 좌경 정치권이 간첩 활동에 방어막을 형성해준다. 간첩 수사가 내사에만 최소 5년이 걸리는 이유다.

국정원은 지난해 말부터 그간 비공개 내사 단계였던 여러 사건을 압수 수색을 통해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간첩 혐의 실체가 어느 정도 파악됐다는 의미다. 국정원과 경찰청이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민주노총 등 기관을 압수 수색 하는 과정에서 해당 노조원들이 보인 반응은 무소불위였다. 압수 수색을 강제로 막고 욕설로 공권력 집행관들을 모욕하고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명백한 증거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는데도 막무가내다. 구속된 간첩 혐의자들은 조사과정에서 무조건 묵비권을 행사한다.

대공수사 뒷전이었던 文 정부의 국정원


▎2006년 정치권을 뒤흔든 일심회 사건은 자생 및 토착 간첩을 육성해 남한 사회 상층부에 거점을 구축하고 고도화된 공작을 전개하는 북한의 대남 공작 전술의 변화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2023년 간첩 수사는 대공수사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시사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간첩 수사나 대북 정보 수집 기관이 아닌 남북 대화 창구로 변질시켰다. 지난 정부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만 매달렸다. 2011~2017년 26건이던 간첩 적발 건수는 문재인 정부 때 3건으로 급감했다. 문재인 정부 때 북한의 손길이 제도권 노조에까지 미치는 등 간첩이 활개를 쳤지만, 이를 색출해 내기는커녕 수사를 무마한 정황도 드러났다. 수사팀이 ‘압수 수색 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올리자 국정원 고위 간부가 휴가를 내고 며칠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재를 안 하면 직무유기가 되고, 수사하지 말라고 지시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예 자리를 비운 것이다. 국정원이 민주노총 인사들과 북한 공작원의 접촉을 확인한 시점이 2017~2018년인데도 무려 6년이 흐른 2023년에야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졌다.

국정원과 경찰 등 방첩 당국은 2017~2019년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북한 대남 공작원들과 해외에서 접선해 ‘노동당 입당, 충성서약’을 하고 간첩 교육을 받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들은 베트남 하노이와 캄보디아 프놈펜 등지에서 리광진 공작조를 만나 공작금을 수령하는 한편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 ‘사이버 드보크’ 등을 교육받고 국내로 돌아와 지령과 보고를 주고받으며 본격적인 간첩 활동을 수행했다.

노동·사회단체 침투해 친북·반정부 여론 조성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서울 남북정상회담이 논의될 시기에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활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그 해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위인맞이 환영단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 초에는 소위 ‘청주간첩단’ 혐의 관련 증거를 확보했지만, 서훈 당시 국정원장이 재가하지 않아 재판에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대공 분야 관계자에 따르면 “서 전 원장이 ‘남북관계가 개선 중인데 간첩 사건이 터지면 악영향을 미치니 보류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서 전 원장은 수사 결재 보류를 부인하고 있다. ‘청주간첩단’은 간첩단 혐의를 받는 ‘충북동지회’가 청주를 중심으로 2017년부터 북한 지령에 따라 F-35 스텔스기 도입 반대 운동을 벌이다 2021년 4명 중 3명이 기소돼 재판받고 있는 사건이다.

국정원 수사가 중단된 사이 민노총 간부들은 3년간 북한 공작원과 수차례 접촉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중국 다롄에서 만났다. 이들은 민노총 내부에 세력을 넓혔고, 창원·진주·제주 등 전국에 지하조직을 만들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서울 남북정상회담이 논의될 시기엔 북한 지령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여론 공작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 창원에선 ‘서울 남북정상회담 창원시민환영단’이 발족했고, 같은 시기에 13개 진보단체가 참여한 ‘백두칭송위원회’ 주최로 서울 시내에서 김정은 서울답방을 환영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문 정부는 2020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내년에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독점하는 근거다. 경찰은 해외방첩망도 없고, 최소 5년이 소요되는 수사를 지속할 수 있는 근무체계도 없다. 전문성과 특수성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대공수사력은 비교 불가다. “국내정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민주당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역설적으로 국정원의 대공수사를 차단해 북한 공작원들이 국내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창원·제주 간첩단의 전모가 밝혀지면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앞두고 국정원은 연말까지 검·경과 대공합동수사단을 상설 운영하기로 했다. 국정원은 합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대공수사 기법을 경찰에 공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임시기구인 대공합수단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년이면 간첩이 활개 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우리 안보를 지키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간첩의 활동 행태를 간파하지 못한 대응책이다. 2000년대 이후 간첩은 더는 평양에서 장기간 훈련받고 내려온 직파(直派) 공작원이 아니다. 북한 통전부는 남한 출신의 자생 및 토착형 인물이 평양 남파 간첩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접선 및 활동무대가 한반도를 넘어섬에 따라 간첩 내사 및 수사는 반드시 글로벌 협력 기반이 구축돼야 한다. 세계 정보기관은 그들만의 정보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나라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해외여행객은 2871만 명이었다.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경찰 영사들은 교민과 해외여행객 보호 업무로도 일이 벅차다. 간첩 수사 여력도, 국제공조 네트워크도 부재하다.

합동수사단으로는 ‘21세기 간첩’ 못 잡는다

둘째로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은 간첩 수사의 장기성과 고충을 외면한 졸속 대책이다. 지금은 ‘새벽이슬 맞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간첩으로 잡아가던 1960년대가 아니다. 요즘 간첩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합법적인 신분으로 움직인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을 확보하는 데 적어도 5년은 걸린다. 민간이고 정부기관이고 모든 조직원은 승진 인사 속에서 움직인다. 강산이 변하는 10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수사할 조직은 현재 국정원밖에 없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부의 태생적 기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윤희근 경찰청장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과도기적으로 경찰과 국정원이 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주요 사건 몇 개를 같이 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수사 몇 건 같이 한다고 수사 역량이 생긴다고 판단하면 21세기 간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휴민트(인적 정보) 등 수십 년간 축적된 무형의 정보자산이 하루아침에 새벽배송처럼 전달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보안과 전문성은 분단과 함께 시작된 북한의 대남공작 기법을 간파하고 대응한 유구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임시방편의 합수단 구성은 ‘간첩 천국’으로 가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대공수사권 이양은 경찰이 스스로 요구한 사항이 아니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밀어붙인 것이다. 2020년 강행 처리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당시 국회 정보위 전문위원은 아래와 같은 검토의견을 달았다.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특수한 안보 상황으로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미사일 실험, 사이버 공격, 외국인·탈북자를 위장한 간첩활동 등 도발을 시도하고 있고, 그 수법도 첨단화·국제화되고 있으므로, 해외·대북정보 네트워크 및 안보 수사 노하우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국정원이 수사권을 가질 필요가 있음. 우리와 같은 통합형 정보기관 체제인 캐나다ㆍ오스트리아ㆍ중국 등의 경우 수사권을 보유하는 등 수사권 폐지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음.”

세계 어디에도 간첩이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나라는 없다. 상대국과 대화하면서도 정보기관은 치열하게 스파이와 전쟁을 치른다. 그게 정상적인 나라다. 내년 총선 이후 국정원법은 다시 개정돼야 한다. 안보 수사에 공백을 메울 특단의 조치가 한시적으로 필요하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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