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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취재] 반복되는 ‘관치 금융 논란’ 해법 있나 

‘제재 시스템’부터 바꿔야… 인적 제재보다는 강력한 벌금이 효과적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관료 출신 임종룡 내정되며 논란 격화
“주인 없는 회사 견제” vs “기업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팽팽


▎1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회장 후보 포함에 따른 우리금융 노동자 긴급 기자회견’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등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NH농협 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면서 제기된 관치 논란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특히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내정되면서 관치 논란이 한층 격화됐다. 최근 임명된 3개 금융지주 가운데 2곳이 관료 출신이다. 은행을 향한 금융 당국의 견제가 최고경영자(CEO) 선임, 금리 조정 및 지배구조 개선까지 이어지면서 개별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에 정부가 시시콜콜 개입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은행법에 은행은 주주의 이익과 공적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는 금융기관이라는 공공적 측면이 있는 만큼 일정 수준 견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 정부는 주인이 없는 금융그룹에서 회장이 권한을 독점해 장기간 연임하는 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사실 관치 금융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터져나왔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외환위기 때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들여 은행 붕괴를 막은 만큼 공공성, 즉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또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이 5대(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금융지주 체제의 과점 형태가 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견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금융시스템에 위기가 발생하면 국민세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견제의 필요성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법 1조에는 “은행은 예금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난해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될 위기에 처하자 금융당국이 나서 은행에 원활한 자금중개와 유동성 공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관치 논란이 제기되지 않았다. 은행의 공적 기능에 대한 측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견제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다. 더 구체적으로는 조직의 인사나 금리 조정, 지배구조까지 개입하는 것을 용인할지 여부다.

부정론 “관료 출신 CEO로는 은행 공공성 담보 불가”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내정되면서 관치 논란이 격화됐다. 개별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에 정부가 시시콜콜 개입한다는 지적이다. / 사진:연합뉴스
은행의 공공성은 자금이 남는 경제 주체로부터 예금을 통해 모은 뒤 이를 다른 주체에 대출하는 자금 중개 기능과 자금 지급 및 결제 서비스를 한다는 점이다. 금융은 우리 몸에 비유하면 심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타격이 매우 크기 때문에 관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어쩌면 관치라는 측면보다 금융 시스템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당국의 책임이라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은행장은 “은행은 정부의 진입 규제를 받는 규제산업으로서 공적 기능이 존재하기에 당국의 견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금융 당국이 견제할 수밖에 없고, 방치로 인해 더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방임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이 규제산업이라 과점화할 수밖에 없어 최소한의 관치는 필요하다”면서도 “요즘처럼 CEO 지배구조나 금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관치의 최극단이며, 불필요한 개입을 넘어 시장 경제를 훼손하는 지나친 개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공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금융당국의 말처럼 공공재일 순 없다”며 “정부 지분도 없는 만큼 은행은 국유자산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은행이 법에 따라 자율권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관료 출신을 금융지주 회장으로 임명하는 것만으로는 은행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관치 금융은 법 제도나 시장원리가 아니라 행정기관에 의한 불투명한 거래를 조장하는 만큼 자유 시장 경제를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지만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 교수는 “관치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전문성 없는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와 2~3년 CEO로 재직하다가 다른 자리로 옮기는 다리 역할을 한다면 잘못된 관치금융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러나 “우리은행의 경우 이와 다른 케이스로 본다”며 “임 위원장이 금융전문가인 만큼 금융지주 가운데 상대적으로 방향성이 모호한 우리금융을 개혁할 최적의 인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라임사태 같은 불완전 판매가 발생하면 강력하게 제재한다. 벌금만으로도 한해 수익이 마이너스가 될 정도다. 그러면 주주들은 배당을 못 받으니 CEO 교체를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중징계라고 해도 과징금이 너무 작고 주주의 감시 기능도 약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은행의 경우 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 700억원대 횡령사고, 직원 갑질 논란 등 내부통제 문제가 발생한 만큼 공공재라는 의미에서 관치라는 말도 나오지만,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할 때 견제의 필요성도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현 세계경제연구원 원장)은 “금융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두 규제 산업이다. 이유는 금융 시스템이 잘못되면 전체 경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면서 “모든 규제가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규제의 대상과 범위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EO 인사 문제와 관련해 현 이사회가 과연 객관성을 가지고 제대로 역할을 했느냐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며 “미국처럼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데 대해서는 더욱 엄격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전 위원장은 “시장 질서 확립 또는 소비자 보호 부분은 당연히 금융당국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금융이 고객 돈을 가지고 하는 비즈니스인 만큼 자기 돈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고 더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긍정론 “횡령 등 사고 예방 위해 견제 필요”


▎지난해 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면서 제기된 관치 논란이 한층 가열되는 모양새다. 최근 임명된 3개 금융지주 가운데 2곳이 관료 출신이기 때문이다. / 사진:연합뉴스
CEO 인사 문제 외에 인위적 금리 개입을 두고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수신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금과 대출금리가 올라야 하는데, 오히려 떨어지면서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통화정책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주주 사이에서는 금융당국의 지나친 개입이 주가 저평가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낮추는 것이 목적인데, 현 경제 상황에서 과도하게 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간 금리격차를 고려해 미국과 일정 부분 보조를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면서도 “경제가 과도하게 침체되면 그 자체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이것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도 당국의 책임인 만큼 현 경제 상황에서 ‘관치’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정부의 개입이 과도한지 정도의 문제다”라고 해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당국의 적극적 견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국이 그동안 ‘거수기’ 역할만 해왔다고 비판받아온 사외이사 인사에 대해서도 견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대다수 금융지주사 사외이사가 지주사 CEO와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되다 보니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을 표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이사회가 독립적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금융지주 CEO들이 3연임, 4연임 등 장기집권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10년 동안 4연임에 성공했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연임해 9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금융지주 CEO 임기는 최소 3연임이 보장됐다는 소리까지 공공연히 나온 게 사실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당국은 공공재 측면이 있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독립적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데도 견제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방임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이유도 그 근거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은 있다. 금융당국이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지배구조에 직접 관여한다는 측면에서 관치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인적 청산보다 사고 재발 방지에 초점 둔 美 배워야

다른 나라 사정은 어떠할까? 미국은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주주와 시장이 CEO 퇴진운동을 주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관치 논란이 아예 없다. 미국은 인적 청산보다 금융사고 재발 방지와 시스템 개선이 우선이다. CEO 퇴진을 금융당국이 아닌 시장과 주주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문제가 생기면 금융당국이 직접 직무 정지 등 인적 제재를 내리고 금융사에 대한 처벌 격인 과태료는 적게 물리기 일쑤다. 한국은 관치 논란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미국은 은행 경영에 대한 주주의 감시 기능이 잘 작동한다. 반면 국내 4대 금융지주의 대주주는 외국인이고, 지분이 많은 곳은 70%대다. 국민연금 지분이 10%가 안 되고, 나머지는 소액주주다. 진짜 주주는 10~15% 정도라 주주를 감시하기가 어렵다. 금융당국도 견제하기 어려운 구조라서 가계대출 위주의 안정적인 비즈니스에 치중하는 면이 있다. 그게 바람직한지는 근본적으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헌법에는 없지만 대법원 판례는 은행의 공공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채용비리와 관련해 실형을 선고한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은행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사기업”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은행은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과 정부의 규제산업이라는 측면을 인정해 사기업이지만 공공성을 띠고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5대 금융지주사 중심의 과점 형태인 데다 은행이 규제산업인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당국의 견제가 공공성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느냐는 점이 중요하다. 당국이 금융사의 인사나 금리 및 지배구조까지 견제해야 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재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다. 미국처럼 금융당국이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이 알아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주주와 이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CEO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만 마련해주면 된다. 인적 제재는 시장에 맡기고 다른 나라보다 미미한 수준인 벌금부터 대폭 상향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9월 개인 중심의 인적 제재를 과태료 등의 금전 체재로 전환하는 내용의 ‘금융 분야 제재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개혁 방안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당국이 문제가 존재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한 관치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jky9618@naver.com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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