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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과 김관영 전북지사의 ‘지방 살리기 파격 제안’ 

“대기업·명문대, 자발적 지방 이전 가능하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서울서 멀어질수록 법인세·상속세·부동산 거래세 더 많이 감면”
■“시장 논리 적용하면 경쟁력 키우려 지방 가는 기업, 대학 나와”
■“파업 없는 ‘노스트라이크’ 존, 환경 점검 사전 예고제 전북도 시행”


▎2월 9일 서울 논현동 하림타워 15층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김관영(왼쪽) 전북도지사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월간중앙의 ‘구루와 목민관 대화’는 올 2월까지 총 19회에 걸쳐 이뤄졌다. 지역균형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이 대화에 기업인, 그것도 재벌의 오너가 구루로 참여한 예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처음이다. 인구 감소, 지역 소멸이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한다고는 하지만 이것 때문에 기업이 당장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니다. 그건 훗날의 일일 뿐이다. 정책, 정치 현안에 기업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문 이유다. 그럼에도 김홍국 회장은 “시장(市場) 원리를 지역 회생 정책에 투영하고픈 마음에 대담에 참여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기업친화적인 전북도의 면모를 널리 알리고자 특별히 김홍국 회장을 모셨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과 정치·행정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젊어서 자수성가했다는 점과 그래서 실용주의자라는 사실이다. 김 지사는 대학 2년 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뒤 지금은 도정(道政)을 이끈다. 김 회장은 고교 시절 세운 양돈·양계 관련 사업체를 국내 자산 규모 27위인 글로벌기업으로 키웠다.

대담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 지사는 전북에서 기업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노조 파업이 없는 ‘노스트라이크(no strike)’ 존 조성, 순발력 있는 인력 수급 시스템 가동, 환경 점검 사전 예고제 시행 등을 통해 전북의 기업이 성공스토리를 쓰는 데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중앙당의 친(親) 노동, 친(親) 환경 기조와 별개로 전북도 살림살이를 펴게 하는 일이면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김 회장은 비수도권 전체의 자생력, 경쟁력과 관련한 파격적 주장을 전개했다. 수도권 소재 대기업과 명문대에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부동산 거래세 등을 대폭 감면하거나 아예 면제하면 자발적으로 지방행(行)을 택하는 기업과 학교가 반드시 등장한다고 확언했다. 통념을 깨는 경쟁과 시장 논리가 지역 회생의 견인차가 된다는 믿음이다. 리더십 컨설턴트인 마이크 베이어는 저서 [베스트 셀프]에서 “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 아니라 새로운 안경인 경우가 있다”고 썼다. 김 회장도 지역균형발전 관련 정책 담당자들에게 이 같은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림그룹은 국내 30대 대기업 중 유일하게 지방도시(익산)에 본사를 두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행안부 고위 관료들이 전북 익산에 있는 (주)하림 본사와 공장을 찾아 김 회장과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화’는 2월 9일 논현동 하림타워 15층 회장 집무실에서 열렸다.

“실용주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 자리는 이색적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된 근본적인 동인(動因)을 꼽는다면?

김관영 전북도지사_ 김 회장이나 저나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었다. 제가 생각해봤을 때 우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실용주의다. 저는 정치와 행정에서, 김 회장은 경제에서 이념, 이상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의 성과를 내는 데 진력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_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실용주의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은 잘할 수도 있다. 열정적으로 하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고 피곤하지도 않다. 이게 바로 진보(進步)다. 한 걸음 더 나가는 것. 영어로는 업그레이드(up grade)다. 항상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는 게 진보 아닌가. 회사 임직원에게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5도 정도 비스듬하게 비탈진 길을 향해 쉼 없이 오르자고 격려한다. 경사를 더하면 지쳐 못 올라간다. 실용주의란 이렇게 꾸준하게 갈 수 있는 길,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일 때 금상첨화다.

두 분의 고향인 전북에 이런 신념을 투영해 어떤 제안을 하고 싶나?

김 지사_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다고 했다고 했던가. 전북도가 오랜 침체기를 딛고 전북도만 가지는 장점과 경쟁력을 확인하는 계기를 요즘 마주하고 있다. 과거 1차 산업이라 등한시하던 농생명과학, 바이오 식품 같은 친환경 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전북도만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기회를 잘 살리면 도약은 물론 새로운 지방 시대의 성공 모델을 제시할 것 같다. 특히 강조하고픈 게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도시’ 전북의 매력이다. 성공하는 기업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 지난해 말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년 뒤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2006년 7월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는 4000개 이상의 권한을 중앙부처로부터 이양받아 독자적인 자치권을 실현하고 있다. 이게 전북도가 가야 할 길이다.

김 회장_ 저는 새만금에서 전북도의 미래를 본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새만금을 중심으로 아시아권 15억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호주·일본 등 동북아 지역을 아우르는 중심이 새만금이다. 게다가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는 수심과 굉장히 넓은 부지를 갖춰 사업하기에 아주 최적의 입지를 자랑한다. 이곳을 잘만 개발하면 중국의 푸둥 못지않은 글로벌 허브로 성장할 것이다. 또 한국은 식량 자급률이 가장 낮은 국가로 분류된다. 해외에서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새만금에 동북아 식품 허브를 만들고 세계적인복합전시컨벤션(MICE) 산업도 일으켰으면 한다.

전북도가 기업인들이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한다면?

김 지사_ 기업을 경영하는 데는 인력 수급, 노조, 환경 이 세 가지 요소가 관건이라고 하더라. 인력의 경우 교육 프로그램이 인력 양성 체계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적시에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교육부로부터 고등교육에 관한 권한을 이양받아 학과별 정원 조정 등 순발력 있는 인력 수급 시스템을 기업인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력 공급을 기업 유치 단계에서 약속할 것이다. 실례로 저는 A 기업에 이렇게 확언했다. ‘생산 설비를 착공하고 완공하는 데 걸리는 2년 동안 당신네가 원하는 인력을 제공하도록 방안을 연구해서 맞춰주겠다’고 말이다. 국내 노동력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분은 해외에서 충당한다. 법무부 장관 권한인 이민자에 대한 비자 발급권을 도지사에게 위임하는 방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대통령도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북도는 현재 시범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400명을 받아들여 관내 기업에 할당했고 반응이 고무적이다. 내년에는 윤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그 규모를 4000명까지 늘리고자 한다.

김 회장_ 농축산, 식품에 능한 네덜란드 상인들이 새만금에서 조인트벤처를 세운다면 이곳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김 지사가 말했듯이 환경만 조성해주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제공하면 알아서들 투자가 들어온다. 미국 텍사스에 삼성전자가 투자하는 것 봐라. 미국 주 정부는 받던 세금을 감면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을 받지 않는 것이니 손해 볼 일이 없다. 거기서 고용이 일어나고 세수가 확보되고 지역이 번창하는 것이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든다. 한겨울에 아무리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환경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일이 성사된다. 전북도가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최고의 환경을 만들면 그만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기업은 파업, 인력 걱정 없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노동 문제, 환경 규제도 변수로 작용한다고 했는데?

김 지사_ 노동 문제가 성공하는 기업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노총·민주노총과 노사 상생 협약을 통해 노사가 협력하는 전북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의 절박한 사정을 잘 아는 전북도 내 개별 노조가 노사 협력을 하고 싶어도 상급 단체의 지침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 아예 민주노총에서 직접 개별 기업과 협상하는 경우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 노조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이 전북도 내 개별 노조의 경우 예외로 다뤄줬으면 한다. 저는 전북도를 노동자가 불이익을 입지 않는 각종 안전장치를 만들어 파업 청정지역으로 한번 만들어보고자 한다. 실질적인 ‘노스트라이크’ 지역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수차례 대화를 통해 한국노총 계열 노조들은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환경 규제도 문을 열어둘 참이다. 과거 불시 단속하던 것을 지금은 도내 1000여 개 기업에 환경 점검 일자를 예고하고 점검을 한다. 그전에 문제점을 다 해소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김 회장_ 미국도 그렇게 하더라. 단속에서 적발되더라도 언제까지 개선을 완료하면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벌주는 것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니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해서 하는 말인데, 두바이를 벤치마킹해보자. 두바이는 투자자들의 천국과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 심지어 러시아의 마피아 자금도 흘러들어와 아파트 사고 빌딩 사면서 합법화했다. 인도네시아 노동력을 대거 받아들였으며, 두바이의 해외 근로자 인건비 수준은 국내의 3분의 1정도이다. 두바이는 다른 나라 사람 돈으로 두바이를 건설했다. 남의 코로 숨 쉬는 격이다. 새만금도 음압(陰壓) 환경이 공기를 빨아들이듯 규제를 확 풀어 국외 자본이 한국으로 빨려들어오게 해보자.

김 지사_ 새만금을 국제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할 근거는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했다. 일단 국제투자진흥지구로 지정되면 규제를 풀고 세금 혜택까지 준다.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새만금 유역 개발권은 새만금 개발청이 갖고 있다. 그 권한도 전북도에 과감하게 이양하는 쪽으로 특례규정을 만들면 좋겠다.

“실효성 없는 지역균형발전 예산 투자 이제 그만”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전경. 전북도는 새만금의 국제투자진흥지구 지정을 추진한다. / 사진:새만금개발청
지난 16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144조원을 쏟아부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도 지역 불균형은 심화했다. 역대 정부의 재원 투여 전략 및 방향 설정에 문제가 있었을까?

김 회장_ 인구 학자 얘기를 들으면 한국 인구 분포 구조는 이미 돌연변이에 가깝다고 한다. 인구 감소 및 지역 소멸에 각각 100조원 이상의 돈을 퍼부었다. 관련 법령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인구는 더 줄고 지역 소멸은 더 가속한다. 입법 조치나 예산 집행이 실효성이 없다는 말이다.

지방의 회생과 지역의 균형발전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즉 기업과 대학이 지방에 진출해야 한다. 저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과 명문대가 지역으로 가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 시책에 따른 강제적 이전이 아니라 제도 자체가 혜택이 되면서 자발적으로 지방으로 가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언젠가 계산해봤더니 서울의 한 명문대 부지는 아파트, 상가 등 다른 용도로 개발하면 15조원의 가치로 평가되더라. 이 대학이 부지를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세금 등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서울에서 멀리 갈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자. 해외 명문대 중에는 시골에 자리한 대학이 많지 않나. 대학부지 매각 대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고 오로지 학교 이전과 발전에 쓰게 하는 것이다. 15조원 중 대학 타운과 기숙사 등 최고의 캠퍼스를 만드는 데 7조원을 들이고 나머지 8조원은 대학이 보유, 활용하면 세계 최고의 명문대로 도약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재원이다. 게다가 서울의 명문대가 온다면 부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지자체도 나올 수도 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방으로 가는 대기업은 법인세 절반을 깎아주자. 더 먼 지방으로 가는 경우 법인세를 아예 면제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상속세를 감면하거나 면제해줄 수도 있다. 독일에서는 한 지역에서 고용을 7년 유지하면 상속세를 100% 탕감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은 그런 저력으로 수출 대국, 무역흑자 3000억원의 나라를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세수(稅收)에 큰 구멍이 생긴다는 반론에 직면하지 않겠나?

김 회장_ 16년간 지역균형발전에 144조원을 쏟아부었다. 성과가 없었다. 차라리 이런 돈을 법인세 부족분에 충당하면 된다. 대기업과 명문대가 지방으로 이전하면 관련 중소기업들도 쫙 따라간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원리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면 기업, 대학이 지방으로 가게 된다. 사실 대한민국은 엉뚱한 데 돈을 억지로 써버려 정책이 실패하는 나라다. 농업 보조금 많이 주는데도 농업 경쟁력은 꼴찌다. 저출산 대책에 그렇게 큰돈을 퍼부어도 출산율은 꼴찌다. OECD 국가 중 중소기업 예산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1년 생존율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는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돈을 넣어 모든 게 해결된다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근본적으로 순리(順理)에 어긋나는 정책은 100% 실패하게 돼 있다. 원리에서 벗어난 자유는 메마른 땅 위의 물고기에 주어지는 자유와 다를 바 없다고 저는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엉뚱한 데 돈 써서 실패하는 나라”


▎김관영 전북도지사를 비롯한 도내 14개 시·군 단체장들이 2월 8일 ‘전북특별자치도 성공 출범’ 협약식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 지사_ 김 회장 말씀은 대기업과 명문대 지방 이전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인데 백분 공감한다. 법인세·상속세·증여세의 과감한 면제 내지는 감면 이런 게 수반된다면 시장은 분명히 기능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현실에서는 그게 참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가자면 구조를 바꿔야 하고, 결국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분포를 보면 수도권 출신이 더 우세한 실정이다. 수도권 소재 대기업과 대학의 지방 이전에 이들이 호응할지 의문이다. ‘중앙지방협력회의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분기별로 열리는 중앙지방협력회의가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중앙지방협력회의는 대통령 주재로 국무총리, 중앙부처의 장관, 17개 광역지자체장 등이 지방 자치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국정운영 플랫폼이다. ‘제2의 국무회의’라고도 불린다.

이 자리서 저를 비롯해 많은 광역지자체장이 법인세, 상속세 획기적인 감면, 교육부의 대학 정원 조정기능 지방 이전, 지자체의 비자 발급 등 지역 발전에 필수적인 의제들을 공론화하고 있다. 전기요금만 해도 그렇다. 전기는 현재 전국 단일요금제로 공급된다. 그런데 발전소의 대부분은 지방에 있다. 지방이 전자파, 환경오염 등 불이익을 안고 만든 전기를 서울에 공급하는데, 서울과 지방의 요금이 동일하다는 건 난센스 아닌가.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를 시행하면 지방 회생 재원도 확보하고 한국전력의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다.

김 회장_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국·실장 관리들과 함께 회사를 방문했다. 윤석열 정부 첫 국무회의를 세종시에서 개최하기에 앞서 대통령에게 보고할 지방소멸 대응책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제가 언급한 대기업, 대학 이전 방안을 얘기했더니 공감하더라. 저도 이게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방안을 누구든 선언적으로라도 꾸준히 주장해줘야 그 사업에 탄력이 붙는 법이다. 그걸 제가 계속 제기하고 있다. 지방에 가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쪽으로 제도를 다듬으면 나머지 문제는 알아서 해결된다. 심지어 지방에 가는 대기업에는 중소기업에 주는 혜택을 주겠다고 하면 시장의 반응은 뜨거울 것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받지 못하는 혜택이 100개도 넘는다. 지방의 대기업이 이런 혜택을 누린다? 갈 기업은 가게 된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인센티브 준다고 지방으로 내려갈까?

김 회장_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기업 경쟁력에서 격차가 나게끔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노동의 경우 외국의 싼 인력을 수도권 기업에는 못 쓰게 하고 지방에는 확 풀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식으로 제도를 통해 지방에 있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경쟁력을 갖게 환경을 만들어 주면 상대적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기업들도 지방으로 가게 된다.

“지방 회생하면 법인세, 상속세 안 걷고도 세수 증가”


▎김홍국(왼쪽) 하림그룹 회장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통념을 깨는 시장경제 역발상이 지역을 살리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역균형발전 관련 많은 아이디어가 번번이 중앙정부 관료들의 반론에 직면하곤 했다. 중앙정부가 움직일까?

김 지사_ 지금까지 쭉 그래왔지만, 앞으로 계속 더 설득하면 된다. 안타까운 점은 지역에 살지 않으면 겪어볼 수 없기에 지역 소멸 위기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에 가장 절박한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시도지사들이다. 전국의 시도지사들이 연대해서 줄기차게 관련 어젠다를 제기하면 언젠가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김 회장_ 기업의 법인세, 상속세를 감면하면 세수에 결함이 생길 수 있다. 단기적으로 부족한 세수는 지역균형발전 예산으로 대체하면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세수 결함이 주는 불이익보다는 국토균형발전에서 나오는 이익이 훨씬 클 것이다. 지방이 회생하면 줄어들 법인세, 상속세를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세수가 새로이 걷힐 것으로 확신한다. 이는 확실한 철학을 갖고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김 지사_ 기존의 지역균형발전 예산은 지역별로 나눠주는 식이어서 실용적이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 일단 윤 대통령이 상당히 많은 공감을 보내준다. 중앙정부가 가진 권한의 지방정부 이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절박한 호소에 중앙정부에서도 수긍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는 8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는 1991년 강원 고성대회 이후 32년 만인데.

김 지사_ 8월 1일부터 세계에서 몰려든 4만5000명의 청소년이 새만금에서 12일 동안 야영을 한다. 훗날 각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이들이 젊어서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과 인상을 남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막식에 윤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정부에서도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고 있다. 나아가 새만금 내부를 십자형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올해 7월이면 완공된다. 저는 기업인들에게 직접 차를 몰아 새만금 안쪽으로 달려보라고 권한다.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얻게 될 것이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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