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창간 55년 특집] 자치분권의 역사 새로 쓰는 경기도의회 

100번의 토론이 ‘협치 의회’ 위상 높였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여야 동수의 난국 속에 시도한 협치 모델 제도화 성과 나타나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은 ‘반쪽 분권’, 조직·예산권 독립 절실


▎제11대 경기도의회는 여야 동수라는 초유의 구도로 출범했다. 파행의 난관을 극복한 힘은 ‘협치’에 있었다. 2022년 8월 10일 제11대 의회 출범을 자축하며 156명(민주당과 국민의힘 각 78명)의 의원들이 광교 신청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사진:경기도의회
2022년은 경기도의회의 역사에 남다르게 기억될 해였다. 32년 만에 대폭 개정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1월부터 시행되면서 지방의회의 독립성이 강화되고 권한이 확대됐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1993년 즈음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 중턱에 의사당을 마련한 지 30년 만에 수원 광교신도시의 공공청사 경기융합타운 내 신청사로 이전했다.

6월 지방선거를 통해 공식 출범한 제11대 경기도의회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위상 높아진 ‘광교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렸다.

하지만 공식 출범하기도 전에 난제(難題)에 부딪혔다. 전체 156석을 여야가 78석씩 나눠 갖는 사상 초유의 여야 동수 형국을 만난 것이다.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놓고 맞부딪혔다. 의장 자리를 두고 지난한 대치가 이어졌다. 상대의 양보를 요구하면서 타협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광교시대의 첫 장이 ‘시작부터 파행’이란 오명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늦어진 탓에 코로나 생활지원비도 묶였다. 민의(民意)의 전당이 민생(民生)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었다.

여야 동수 구도에도 예산안 제때 처리 성과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민생현안 협의를 위해 구성한 ‘여야정 협의체’가 지난해 11월 15일 출범했다. 왼쪽부터 김동연 경기지사와 곽미숙 국민의힘 대표, 남종섭 민주당 대표,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이 협약서에 공동 서명했다. / 사진:경기도의회
안갯속에 가려졌던 난국은 염종현 의장이 당선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인 염 의장은 2차 투표 끝에 가까스로 절반을 넘겨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됐다. 염 의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협치’가 주효했다. 염 의장은 ▷의정활동 지원기구 마련 ▷초선의원 의정지원 TF팀 운영 ▷도의회 공약이행기구 구성 ▷의회 사무처 전문성 및 독립성 강화 등을 약속했다.

공식 출범 3개월 만인 11월 25일 경기도의회와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간 ‘여야정 협의체’가 출범했다. 여야정 협의체는 의회가 출범하자마자 염 의장이 ‘김동연식 협치모델’의 조속한 구성을 촉구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앞서 김동연 지사는 취임 직후 도의회 양당과 도가 함께하는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약속한 바 있다.

여야정 협의체는 염태영 경제부지사와 남종섭 민주당 대표, 곽미숙 국민의힘 대표를 공동의장으로, 경기도 6명(도지사, 경제부지사, 정책수석, 정무수석, 기획조정실장, 소통협치국장)과 경기도의회 13명(도의회 의장, 여야 대표의원·수석부대표·정책위원장·수석대변인·민주당 정무·기획수석, 국민의힘 법제·기획수석) 등 19명으로 구성됐다. 도정 관련 주요 정책과 조례·예산안, 도의회 정책·전략사업 등을 합의하는 상설 협의체다. 이어서 경기도교육청과도 여야정 협의체가 만들어졌다.

의회와 집행부 간의 협치가 시스템화했지만, 여야 동수는 쉽게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었다. 첫 시험대는 지난해 12월 2023년도 예산안 처리였다. 법정 처리기한인 12월 16일을 넘기고도 30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안을 두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기한 내 처리하지 못하고 회기가 종료될 경우 준예산 사태를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야는 민생 안정을 위해 당리당략보다 신속한 예산 처리가 우선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결국 회기를 하루 연장하면서 밤샘 협상에 돌입한 끝에 이튿날 오후 예산안이 타결됐다. 법정 처리기한을 하루 넘겼지만, 극한의 대치 구도에서 여야가 합심해 거둔 성과로 기록될 만했다. 염 의장은 “국회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자평했다. 같은 시기 국회는 정부 예산안 처리에 법정기한을 넘기고도 13일 지나서야 합의를 도출해 역대 최장 지각이란 불명예를 기록했다.

집행부에 대한 도의회의 견제 기능도 강화됐다. 지방의회는 단체장과 같은 당 소속이 다수당일 경우 ‘거수기’란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도의회는 도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 검증 권한을 확대하는 게 지방의회의 감시와 견제 역할을 강화할 방편으로 봤다. 11월에 경기도와 공공기관장 인사청문 업무협약을 맺고 인사청문 대상 기관을 15개에서 20개로 확대했다. 이로써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28개 중 도지사에게 실질적 임명권이 없거나 경기도 출연금이 없는 곳, 특정 분야에 한정해 전문 인력을 임명한 곳 등 8개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이 모두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됐다.

개정 시행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도의회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대하는 시책도 빠르게 진행됐다. 우선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지원관을 배치해 의원들의 역량을 높이는 환경을 마련했다. 총 정원은 78명이다. 의원 2명당 1명꼴이다. 지난해 1월 조례 개정을 통해 35명을 확보했다. 43명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경기도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서류·면접 전형을 거쳐 오는 5월까지 채용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4100개 지역·민생 현안 발굴해 정책·제도화 추진


▎지난해 9월 경기도의회 인사권 독립 후 공개경쟁시험을 거쳐 처음 선발된 새내기 사무처 직원들의 임용식이 열렸다. / 사진:경기도의회
도의원들의 공약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약에 기반을 둔 민생정책을 발굴할 ‘공약정책추진단’도 발족했다. 염 의장이 의장 후보로 출마할 때 내세웠던 공약이었다. 단장은 여야를 대표해 윤태길·정윤경 의원이 공동으로 맡았다. 공약정책추진단은 ‘도민의 마음 담아 염원을 현실로 만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역 현안 이슈를 검토해 정책화 가능성을 분석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중점 추진 정책을 제안하거나 정책백서를 만드는 등 정책 발굴부터 형성, 제안, 반영,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반을 관리한다.

3월 현재까지 총 4100여 건의 지역 현안 정책을 발굴했고, 그중 680여 건은 중점 정책으로 분류해 제안서를 작성했다. 이달 중 55대 정책분야 104개 정책 과제에 대한 제안에 착수해 10월까지 집행부 협의와 시·군 현안 정담회를 통해 정책 반영 과정을 거쳐 내년 중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도민의 참여 기회도 더 많아진다. 5년 전 경기도의회가 처음 시작한 정책토론대축제에 올해는 경기도와 도교육청이 참여하면서 규모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2023 경기도-경기교육정책토론대축제’는 3월 15일 막을 올렸다. 주요 정책과제와 지역 현안에 대해 공론장을 만들어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고 정책을 심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3월 15일 열린 개회식에서 염태영 경제부지사는 “작년 토론회에 참여했는데 한 주제를 정해 깊이 있게 논의하고 의미 있는 정책과제로 숙성시키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행정과 의회, 그리고 교육청이 협치하는 뜻깊은 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올해 정책토론대축제는 100가지 주제를 놓고 연말까지 100회의 토론회가 진행된다. 의제를 제안한 도의원이 토론회를 주재하고 분야별 전문가와 이해관계자가 토론자로 참석해 정책 방향과 조례 제·개정안을 논의한다. 모든 토론회는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경기도민은 누구나 사전 신청 없이 방청할 수 있다. 개회식 직후 첫 토론회는 이기형 도의원이 발제한 ‘경기도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토론이 펼쳐졌다. 경기도의회 관계자는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도민과 머리를 맞대려는 노력이 의회의 품격과 위상을 높였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보여준 협치 모델은 남경필(민선 6기) 전 지사의 대연정과 이재명 전 지사(민선 7기)의 협치 구상보다 더 진일보했다. 오히려 지방자치 제도화를 규정한 지방자치법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그래서 11대 경기도의회의 역점 시책 중 하나가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다. 염종현 의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30여 년 만에 전부 개정돼 지난해 1월부터 시행 중인 지방자치법을 “반쪽짜리”라고 평가절하했다. 염 의장은 “인사권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예산권과 조직권을 부여하지 않고 지방의회가 요구한 1인 1 보좌관제도 2명 당 1명꼴로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반쪽짜리 법 개정, 자치분권은 시혜(施惠) 아냐”

도의회는 지방자치법 재개정과 제도 개선을 위해 역량 집중에 나섰다. 지난 10대 의회에서 의회 내 한시적 자체 기구로 운영했던 자치분권발전위원회를 조례에 근거한 상설기구로 전환했다. 자치분권발전위는 2월에 출범했다. 민간위원을 투입해 조직 규모를 키웠다. 도의원 25명과 민간위원 9명이 참여하는 작지 않은 규모다. 의장이 위원장을 맡고 3개의 분과위원회와 정책자문단을 뒀다. 실질적인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게 활동 골자다.

도의회는 당장 지방의회의 조직권 확보를 급선무로 꼽는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의회 사무처 인사권을 의장이 갖게 됐지만, 충분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도의회는 지난해 9월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후 처음으로 의회 사무처 소속 공무원 31명을 공개경쟁채용시험을 거쳐 자체 선발했다. 또 경기도 고위 공무원의 자리였던 사무처장(2급)을 개방형 직위로 바꿔 김종석 전 도의원을 발탁한 바 있다.

다만 도의회가 살림을 직접 꾸리기엔 여전히 벽이 있다. 의회 조직·예산권을 여전히 중앙정부와 도지사가 쥐고 있어 자율적인 운영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3급 직제가 없는 기형적인 조직 구조와 400여 명에 이르는 의회 사무처에 독립된 감사 조직이 없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염 의장은 3월 14일 제367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자치분권은 시혜(施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염 의장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정부와 국회는 언제까지 이토록 시혜적인 입장에서 지방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제도를 찔끔찔끔 개선할 것인가. 정부와 국회의 맹성(猛省)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4호 (2023.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