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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포스트 기시다’ 시대 일본 경제 정책 전망 

日 차기 내각, ‘새로운 자본주의’ 이어달리기 나선다 

디플레이션 탈출·기업 지배구조 혁신·자산소득 증대 성과 이어갈 듯
호전된 한·일관계 기초로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 협력 강화 전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저임금·저물가·저투자’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냈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8월 14일 기자회견하는 모습.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21년 10월 출범한 기시다 정권은 그동안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을 내세웠다. 디플레이션 탈출, 자산운용 대국화, 한·미·일 공조 강화, 반도체 산업 부활, 그린 이노베이션 전략에 주력해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포스트 기시다 내각은 기시다 정권의 기본적인 방향을 중시하는 가운데 초금융완화 정책의 정상화, 재정적자 문제 개선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기시다 내각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에서 방점은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에 찍혔다. 분배를 통해 소비 수요를 증가시키면 성장력이 강화됨으로써 기업 수익도 증대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자연스레 세수 증대도 기대했다. 이에 기시다 내각은 최저 임금 인상에 적극 나서면서 일본 기업의 임금 인상을 권장했다. 실제로 일본의 춘투 임금인상률(전국노조 연합의 최종 집계 발표 기준)은 지난 2021년 1.78%에서 2022년 2.07%, 2023년 3.58%, 2024년 5.10%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시다 내각은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전략 강화, 데이터 센터의 확충 및 지방분산 촉진과 함께 지방 경제 활성화에도 주력했다. 산업계의 탈탄소화 투자 지원, 경제안전보장 전략 강화, 반도체 부문에 대한 외자 유치 및 대규모 투자 지원을 통해 일본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했다.

그 결과 일본 경제는 30년간 지속됐던 임금·가격 인상 자제, 투자 기피 등의 소극적인 심리를 억제하고 저임금·저물가·저투자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는데 일정한 성과를 냈다. 일본 경제는 올해 4~6월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연율로 7.4%를 기록(1차 GDP 발표치)하면서 처음으로 600조엔을 돌파(607조엔) 했다. 명목 GDP 600조 엔은 지난 2012년 등장한 2기 아베 정권부터 추구한 숙원이었다. 12년 전부터 디플레이션, 구체적으론 실질 GDP에 비해 명목 GDP가 부진한 점을 만회하는 것이 과제였던 셈이다. 기시다 내각은 이 같은 측면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3저’ 악순환 고리 끊은 기시다 총리


일본 정부는 그동안 기업지배구조 혁신에도 주력했다.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됐다. 기업 경상이익은 2021년 4~6월기 19조8000억엔에서 올해 4~6월기 30조3000억엔으로 확대됐다. 동시에 기업설비투자(명목 GDP 통계 기준)는 같은 기간 89조9000억엔에서 106조3000억엔으로 확대됐다. 일본 주가는 버블경제기인 지난 1989년 12월에 기록한 3만8916엔을 넘어서 올해 7월 11일에는 사상 최고치인 4만2224엔을 기록했다. 이후 주가는 세계적인 조정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으나 과거의 버블 붕괴기와 달리 장기적으론 상승추세가 예상된다.

이는 기시다 내각이 강조해 온 디플레이션 탈출과 기업 지배구조 혁신, 자산소득 증대 정책에 효과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일본 가계 금융자산은 올해 4월 기준 사상 최고치인 2199조엔을 기록했다. 나아가 가계 자산소득을 늘리기 위해 기시다 내각은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의 비과세 한도액을 1800만 엔으로 늘렸다. 주가 상승 여력 확대와 가계의 자산소득 증대에 주력한 것이다. 그 결과 올해 1월 시작된 신NISA는 3월 말 기준 계좌 수 2323만 건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는 지난 2021년 12월 말 기준 1765만 건 대비 30% 정도 확대된 수치다. 기시다 내각은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일본 기업도 과거와 달리 소액주주를 배려하기 시작했다.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비효율적인 자산 처분 등의 주주 배려 전략을 강화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울러 가계 금융소득 확대 선순환도 형성됐다. 자산 수익 확대 정책으로 일본 국민연금 운영수익도 2021년도 10조1000억엔에서 2023년도 45조4000억엔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연금재정 우려를 덜게 됐다.

물론 기시다 내각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있다. 우선, 포스트 기시다 내각은 각종 경제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가 부진했던 점을 해결해야 한다. GDP 기준 실질 소비지출은 올해 1~3월기까지 4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이후 4~6월기에는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경기 확장 국면에 이처럼 소비지출이 위축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경제가 완전히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다는 발표를 못 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지출의 부진은 명목임금 상승을 뛰어넘는 물가 상승세로 이어진다. 일본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2024년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한 것도 컸다.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하는 일본 은행의 돈 풀기 정책이 엔저,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함께 2%를 뛰어넘는 소비자물가의 상승세를 가져왔으나, 임금 인상 추세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결과 실질임금이 감소한 것이다. 실질임금의 상승률은 올해 6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유지, 소비지출의 견실한 확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포스트 기시다 내각의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실질임금과 실질소비의 부진은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하락 요인이었다는 점에서 해결이 시급하다. 기시다 내각에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재정자금으로 전력, 휘발유 등에 대한 임시보조금 확대 등 편법을 자주 사용했으나, 이는 재정 악화만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서민층의 불만은 한때 1달러당 160엔을 돌파하는 엔저로 인해 해외여행도 어렵게 되면서 더욱 고조되기도 했다.

소비 부진 해결, 차기 내각 당면 과제


▎일본 유력 차기 총리 후보들은 모두 방위비 확대에 적극적이다. 방위비가 향후 일본의 재정 부담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올해 1월 18일 일본 자위대 훈련 모습.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베노믹스 이후 엔저에 주력했던 일본 정부도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엔저 저지에 나선 것이다. 동시에 일본은행은 올해 3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하여 단기정책 금리를 0~0.1%로 인상했다. 다만, 이러한 소폭 금리 인상은 당초 외환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한정적이었다. 그 결과 엔저 현상은 지속됐다. 이 같은 기조는 올해 7월 말 일본은행이 0.25%로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월간 6조엔 수준이었던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물량을 분기별로 4000억엔씩 줄이고, 오는 2026년 1~3월까지 3조엔으로 감축하기로 함으로써 달라졌다. 지난 8월 초에는 세계적인 주가 급락도 작용해 엔화는 1달러당 145엔 전후로 급등, 안전통화로서의 엔화 부활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포스트 기시다 내각은 일본경제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확실히 하는 과정에서 초금융완화 정책을 정상화하고 지나친 엔저도 억제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서민층과 내수 중심 중소기업 활성화에도 주력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경제 및 글로벌 금융시장도 배려해야 한다는 과제를 갖고 있다. 일본과 달리 올해 하반기 이후 미국은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국제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제금융시장의 전환기에서 주식시장이 혼란을 보이는 국면에서 일본은 금융정책의 정상화 속도를 조절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할 전망이다. 이 같은 복합적인 과제와 다양한 배려 요인을 고려해 엔저 투기도 막기 위해 실시될 일본은행의 정책에 대해 사전에 금융시장과의 대화를 확대하고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도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로다 전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시장에 서프라이즈를 주면서 금리 인하 효과를 올리는 스타일이었으나, 우에다 현 일본은행 총재의 금리 인상 정책은 조금 다르다. 구로다 총재는 금융시장과의 대화를 상대적으로 중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세가 계속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내각이 주력했던 반도체 부활 전략 등의 디지털 혁신 전략(DX), 그린 이노베이션(GX)의 효과를 가시화하는 것도 포스트 기시다 내각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의 투자 유치 정책은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면서 지역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규슈 지역 반도체 클러스터가 안정적으로 생산량을 확대하면서 지속적으로 고객을 확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일본 정부의 강한 의지로 홋카이도에 설립한 첨단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가 목표로 하는 첨단 2나노미터급 미세 가공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면서 판매처를 늘릴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라피더스는 국책기업적인 성격이 강하고 출자한 일본기업들이 추가 투자를 꺼리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또, 상당 기간 적자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지출, 정책금융을 결정하면서 얼마나 신속하게 경영을 정상화하고 흑자경영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방위비 확대, 일본 경제 뇌관 되나

현 기시다 내각이 운을 띄운 그린 이노베이션 분야의 구체화도 과제다. 구체적으론 기시다 내각이 성립한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추진법을 기초로 향후 10년간 20조엔 규모의 GX 관련 채권을 발행하고 민·관 합동으로 150조엔 이상의 탈탄소 투자를 하기로 한 정책의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재생에너지, 원자력의 확대와 함께 송전망의 확충과 디지털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폐기 처리 계획의 확실한 추진도 주요 의제다.

9월 초 기준 주요 차기 총리 후보는 고이즈미 신지로, 고바야시 다카유키,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 하야시 요시마사, 모테기 도시미쓰 등이다. 주목할 점은 반도체 산업 육성, 그린 이노베이션 등으로 일본 정부의 재정부담이 향후 가중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들 총리 후보가 모두 방위비 확대에 적극적이란 점이다. 방위비가 향후 일본의 재정부담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 밖에도 저출생 고령화 대책 등의 증액도 예상되며, 디플레이션 탈출로 일본의 재정수입이 확대되긴 했으나 포스트 기시다 내각에서도 재정적자의 감축은 어려울 전망이다.

포스트 기시다 내각은 자민당의 기존 정책 방향과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낮다. 일본 주요 연구기관들도 일본 경제가 당분간 완만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 이후 연말에 미국 경제 향방을 두고 우려가 제기되지만, 고용 지표에 따르면 경기 급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금리 인하 가속화 가능성은 높다. 만약 미국 대선에서 동맹국을 중시하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면 세계 경제는 물론 일본 경제에도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전반적으로 일본 경제는 내년에도 임금 인상과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및 그린 이노베이션 분야에 대한 민·관 투자 확대, 생산성 향상 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일본기업의 투자 확대, 임금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실질 GDP 성장률은 올해의 0.5% 내외 수준에서 내년에는 1% 정도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시다 내각에서 호전된 한·일 관계를 기초로 추진되기 시작한 양국 간 반도체 및 배터리 공급망 협력, 탈탄소화를 위한 암모니아 및 수소 경제 조기 구축 협력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 및 인도를 중심으로 한 한·일 공동개발 사업, 스타트업 상호 투자 협력 등도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본부 특임강의교수 jplee11111@gmail.com

202410호 (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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