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강연에서 ‘창설 80주년’ 유엔 미래에 대한 통찰 제공‘인류의 의회’ 시스템 본질은 협조·대화와 중심의 소프트파워
▎1994년 6월 1일, 이케다 SGI회장이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에서 강연했다. 청중들은 “오늘만큼 볼로냐가 빛난 적이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볼로냐대학교가 이케다 SGI회장에게 명예박사학위 증표로 ‘닥터 링’을 수여했다. / 사진:S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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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025년, 유엔(UN)은 창설 80주년을 맞는다. 이 역사적인 가절을 맞아 혼미한 국제정세 속에서 유엔이 달성해야 할 역할을 다시금 인식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1994년 6월 1일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이 볼로냐대학교에서 강연한 ‘레오나르도의 안목과 인류의 의회 - 유엔의 미래에 대한 고찰’은 그 역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는 발표 30주년을 맞은 이 강연의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해 유엔의 미래를 재검토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제2회는 12월호)존경하는 로베르시 모나코 총장님의 관대한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또 영예로운 ‘닥터 링(명예박사학위 증표)’을 받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로베르시 총장님을 비롯해 볼로냐대학교의 여러 선생님과 내빈 여러분 그리고 경애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볼로냐대학교에서 강연하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로베르시 총장님을 비롯해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라체(감사합니다).가장 바쁜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참석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특별히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총장님과 교수님들에게 삼가 부탁드립니다. (웃음, 박수)오늘은 유엔에 관해 조금 논하겠습니다.저는 유엔이 담당해야 할 지구적 과제를 생각하기에 볼로냐만큼 적절한 곳은 없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합니다.5년 전(1989년) 도쿄에서 총장님, 부총장님과 회담할 때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주권국가의 틀을 초월해 유엔이 국제적인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귀(貴) 대학의 900년 전통에 맥동하는 ‘보편성’과 ‘국제성’의 기풍이 참으로 귀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일찍이 13∼14세기에 귀 대학에는 그 명성을 우러러본 학생들이 유럽 곳곳에서 모여들어, 자치(自治)의 기풍이 드높은 국제적인 대학도시를 형성했다고 합니다.그 의기충천한 모습은, 학생들이 신성(神聖)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횡포에 “우리는 바람 한 번에 굴복해버리는 호숫가의 갈대가 아니다. 이곳에 오면 그런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일화에서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기개야말로 세계시민의 골격이기 때문입니다.
유엔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신의 기반’ 구축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도서관 전경. 볼로냐대학교는 10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이케다 다이사쿠 SGI회장은 1994년 6월 1일 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뒤 기념강연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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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SGI도 유엔 비정부기구(NGO)의 일원으로서 여러 활동을 지원했습니다.1982년 이후, 세계의 도시 수십 곳에서 ‘핵무기 - 현대세계의 위협전’을 비롯해 ‘전쟁과 평화전’, ‘환경과 개발전’ 등을 유엔과 공동으로 개최해 지구적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한 영지(英智)의 결집을 호소했습니다.또 지난해(1993년) 12월에 ‘세계인권선언’ 45주년을 기념하고, 또 올해(1994년) 2월 유엔 인권위원회의 회기(會期)에 맞춰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인간의 존엄을 호소하는 ‘현대세계의 인권전’을 각각 개최했습니다. 재작년(1992년)에는 런던에서도 개최했습니다.부인평화위원회가 실시한 ‘어린이의 인권전’과 ‘세계의 어린이와 유니세프전’ 등도 색다른 시도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또 청년을 중심으로 수많은 난민구호모금을 비롯해 캄보디아에 약 30만대에 달하는 라디오를 지원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저도 유엔 군축특별총회에 세 차례 제언을 발표하고, 해마다 평화제언을 발표해 세계에 평화와 군축, 유엔의 개혁을 위한 시안(試案)을 수없이 제기했습니다.SGI는 정치단체도, 단순한 사회단체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 내면의 개혁을 촉구하는 불교운동을 기조로 하는 단체입니다.오늘은 유엔 개혁의 구체적인 측면보다는 이 ‘인류의 의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신적 기반과 그것을 이끌어갈 세계시민의 에토스(도덕적 기풍)라는 이념적인 측면을 고찰하고자 합니다.특히 귀국의 위대한 문화에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낳은 ‘만능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초점을 맞춰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와 ‘끊임없는 비상(飛翔)’이라는 두 가지를 논하겠습니다.왜냐하면 유엔이라는 국제적인 시스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협조와 대화를 기축으로 하는 소프트파워에 있고, 그 파워를 강화하는 데에는 멀리 돌아가는 듯이 보여도 정신과 이념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가까이는 보스니아 정세에서 볼 수 있듯이, 어쩔 수 없이 하드파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있었다고 해도, 유엔의 첫째 사명은 어디까지나 소프트파워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내년 1995년에 창설 50주년을 맞이하는 유엔의 역사는 짧다면 짧습니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너무나도 단명(短命)으로 끝나버린 국제연맹의 비운(悲運)을 생각하면, 반세기에 걸친 유엔의 발자취를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유엔 창설 정신 ‘우주적 휴머니즘’, 결코 몽상 아냐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영국, 소련 3국 정상을 중심으로 지구적 분쟁을 막기 위해 유엔(UN)이 창설됐다. 1943년 11월 테헤란회담 당시 연합국 정상들. 왼쪽부터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 뒷줄 왼쪽부터 첫 번째 홉킨스(미국 대통령 보좌관), 두 번째 몰로토프(소련 외상), 다섯 번째 이든(영국 외무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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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평화유지활동(PKO) 등 유엔의 움직임이 몰라볼 정도로 활발해지고 창설할 때의 정신이 이제야 간신히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오늘날, 이 흐름을 어떻게든 희망의 21세기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유엔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입니다. 그는 국제연맹의 기수(旗手)인 윌슨 대통령의 뜻을 이어 이상주의, 국제주의, 인도주의를 내걸었습니다. 그 신념이 ‘유엔 창설’의 정신이 되고, 원동력이 된 것은 두루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스탈린이나 처칠 같은 강자(强者)를 상대로 보편적 안전보장의 이상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모습을 가리켜, 후세의 어느 역사가는 반쯤 야유를 섞어 ‘우주적 휴머니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 ‘유엔 창설’ 정신으로 회귀(回歸)와 부흥이 거론되는 가운데 ‘우주적 휴머니즘’은 결코 허풍이나 몽상이 아닙니다.렌즈를 정확히 조정하면 카메라의 필터에 피사체의 윤곽이 명확해지듯이, 여러 생각들 가운데 우뚝 솟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이 저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선악(善惡)의 저편’을 유유히 홀로 걷고 있는 듯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어마어마한 이해타산이 소용돌이치는 유엔과는 차원이 크게 달라, 둘을 잇는 것은 뜬금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짧은 스팬(간격)과 긴 스팬의 시야를 아울러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거시적(巨視的)으로 보면, 카를 야스퍼스가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두 개의 세계이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다가서려고 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고, 미켈란젤로는 애국자이다”라고 평한 대로 레오나르도적 시야가 지금처럼 요구되는 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케다 다이사쿠(1928~2023) - 국제창가학회(SGI) 회장 역임.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409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의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