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예술인 대상 시범사업 통해 긍정적 효과 확인농어민·체육인·기후행동·아동돌봄으로 넓혀 본격 시행
▎경기도가 지난해 예술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기회소득 사업을 실시한 결과, 신체·정서적으로 참여자들의 긍정적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해 3월 9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예술인 소통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경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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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와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A씨는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일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표정이 환해지고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불과 작년까지도 집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고 종일 누워서 지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는 일주일에 1만 보 이상 꾸준히 걸으며 생활방식에 변화를 줬다. 그 결과, 당화혈색소 수치가 감소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복용 중인 당뇨약도 줄였다. 장애인 기회소득 사업에 참여한 뒤 얻은 값진 변화였다.화가 B씨는 얼마 전 개인전시회 개최라는 오랜 꿈을 이뤘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그림을 그렸지만, 월 소득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에 30만원가량 들어가는 그룹전시회에 참여하는 것도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경기도의 예술인 기회소득 사업에 참여해 벌써 두 번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의기소침했던 B씨는 자신감도 되찾았다. “꿈을 좇으면서도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기회소득 사업에 참여한 뒤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2년 차에 접어든 기회소득 사업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회소득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를 보상해 역량을 키우는 일종의 사회적투자 사업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핵심 정책으로, 지난해부터 예술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부분적으로 시작했다. 첫해 사업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업에 참여한 이들의 생활과 심리 상태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기회소득 사업은 참여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해 일주일에 최소 2회 이상, 한 시간 이상 활동하고 움직이면서 스스로 건강을 챙기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건강이 개선되면 사회적 비용(의료비, 돌봄비용)이 감소해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 7월에 선발한 참여자에게는 월 10만원씩 6개월간 지급됐다. 이후 관심이 높아지면서 9월에 3000명을 추가 모집해 지난해에만 7000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장애인 기회소득 참여자 삶의 질 눈에 띄게 향상사업 참여자는 건강이 두드러지게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복지재단이 지난해 장애인 기회소득 사업 성과를 분석한 결과, 사업이 시작된 7월에 비해 말기인 12월의 활동시간이 5.25배 늘어났다. 일부 참여자 중에는 체중이 감소하기도 했다. 정서적 변화도 뚜렷했다. 사업 참여자의 스트레스는 평균 15.41점으로, 같은 지표를 사용한 유사 연구의 성인 대학생 평균 16.12점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해진 활동량을 채우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우울, 불안, 집에만 있을 때의 답답함이 해소되거나 자존감이 높아지는 등 주관적인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사업 참여 후 이전보다 신체적 건강상태가 ‘좋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79.7%, 정신적 건강상태가 ‘좋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80.6%였다. 규칙적인 일과와 활동량 증가로 인한 삶의 만족도 변화에 대해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2%였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일반적인 장애인들의 삶의 만족도가 절반 수준(55.8%)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놀라운 변화다.미션 수행을 통해 창출한 기회소득으로 지인이나 가족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여가활동(취미·체육·문화)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 관계망이 확대되는 효과도 나타났다. 참여자들은 도전 의식과 자신감이 높아졌고, 가족 간 관계도 개선됐다고 입을 모았다.예술인 기회소득 사업도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됐다. 지난해 예술인 기회소득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에게는 연 150만원(2회 각 75만원)을 지급했다. 창작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도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 예술인들의 활동에 대한 보상과 사전적 투자 성격이다. 지난해 27개 시·군에서 7200여 명이 참여해 기회소득을 받고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기회소득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들의 활동은 경기도 각지에서 도민의 문화생활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21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수원, 의정부, 가평, 광주, 파주, 평택, 인천공항 등 9곳에서 열린 ‘2023 기회소득 예술인 페스티벌’을 통해서다. 다양한 작품 전시와 공연이 이어졌고, 예술체험과 플리마켓도 열렸다.경기연구원이 경기도 예술인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책 효과 분석 연구에서 예술인 기회소득 사업이 시작된 뒤 주 평균 예술 활동 시간과 일 평균 예술 활동 시간이 각각 1시간 26분(7.4%), 17분(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 평균 자기 계발 및 학습 시간도 약 11분(9.7%) 증가했고, 행복감은 0.117(3.7%) 증가했다. 경기연구원은 정책의 목적대로 예술인 기회소득 사업이 예술 활동에 전념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기 계발 등에 들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장기적 관점에서 예술인 역량 강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탄소중립 실천하면 누구나 기회소득
▎2023년 7월 20일 김동연(왼쪽에서 두 번째) 경기도지사가 첫 예술인 기회소득 수령자들을 초청해 차담을 나누고 있다. / 사진:경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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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구체적인 성과에 힘입어 올 하반기에는 기회소득 참여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기존 장애인 기회소득 사업은 올해 상반기 월 5만원에서 하반기에는 월 10만원으로 지급액을 늘렸다. 사업 규모는 13~64세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1만 명이다. 예술인 기회소득도 예술활동 증명이 가능한 사람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여기에 4개 분야 사업이 신규로 추가됐다. 체육인·농어민·기후행동·아동돌봄 등이다. 우선 체육인에게 연간 150만원(2회 분할)을 지급하는 체육인 기회소득을 도입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현역 선수와 선수 출신 지도자, 심판 등으로 개인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120% 이하인 19세 이상 7860명이 대상이다. 7~10월에 신청받아 9~11월에 지급한다.농어민 기회소득은 농어촌의 고령화와 기후변화 등 농어촌 소멸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에 대해 보상한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월 15만원씩 연간 18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경기도에 주소를 둔 농어민 중 청년(50세 미만), 귀농어민(5년 이내), 환경농어민(친환경, 동물복지 등) 등 1만 7700명을 대상으로 한다. 9~10월에 신청받아 12월부터 지급을 시작한다.기후위기 대응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평가해 보상함으로써 탄소중립 실천을 생활화하도록 유도하는 기후행동기회소득 사업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8월 말 기준 참여 신청자가 39만 명으로 당초 목표인 1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15개 탄소감축실천활동 참여하면 연간 최대 6만원의 지역화폐를 받을 수 있다. 시범사업 첫해인 올해 하반기에는 지급 한도가 3만원으로 결정됐다. 실천과제는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PC 절전 프로그램 사용하기, 배달음식 다회용기 사용하기, 기후행동 서약, 환경교육 참여 등이다. 실천 여부 확인은 자체 개발한 플랫폼을 통해 관리가 이뤄진다. 향후 헌 옷 활용과 폐가전제품 수거보상, 전기·가스 절약 활동 등도 추가될 예정이다.마지막으로 마을 주민 모임이나 비영리 조직 등 공동체를 통한 아동돌봄도 기회소득이 지급된다. 공동육아를 통해 아동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자발적인 돌봄 활동이 지속돼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돌봄 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도 있다. 참여 대상은 5명 이상의 자발적 주민 모임이나 사회적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 500여 명이다. 월 30시간 이상 활동하면 2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새로운 기회소득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지난 7월 보건복지부와 협의도 마쳤다. 앞으로 3년간 추진해 성과를 평가한 뒤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사람 중심 경제’ 휴머노믹스 핵심 정책으로 추진
▎ 사진:경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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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소득 정책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대표 정책이다. 김 지사 취임 이후 경기도가 펼치는 주요 정책 전반에 깔린 핵심 키워드는 ‘기회’다. 김 지사는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더 나은 기회’를 국민이 누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기회소득은 바로 그 일환이다.기회소득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때 시행했던 기본소득과 곧잘 비교 되곤 한다. 일각에선 ‘기본소득의 아류작’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이 다르다는 게 금세 확인된다. 기회소득은 참여와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활동을 통해 얻는 보상적 성격을 띤다. 미래에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사전적 투자의 성격도 갖는다.반면 기본소득은 지원 대상 계층이면 누구나 받는 기초 보장에 가깝다. 청년, 농민 등 대상도 제한적이었다.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소비성 지출이어서 사회적 가치 창출과 연결 짓기가 어려웠다. 또한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현금을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기초적 개념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최근 김 지사가 이재명 대표가 주도해 입법한 민생회복지원금법, 이른바 ‘25만원 지원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런 개념 차이와 무관치 않다. 김 지사는 한 유튜브 경제 채널에 출연해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에 대해 “지급에 찬성하지만,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모든 국민이게 나눠주는 것보다, 두텁고 촘촘하게 어려운 사람에게 더 지원해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서울시가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안심소득도 기회소득, 기본소득과 비교되지만, 기존 사회보장체계의 근로 연계 복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저소득층에게 두텁게 지원하는 점에서 저소득층소득 개선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안심소득을 받은 가구나 개인의 역량을 높이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기회소득과 차이가 있다.임기 반환점을 돈 김 지사는 기회와 더불어 돌봄, 기후, 평화 등 4개 분야를 임기 후반의 중점 과제로 정했다. 이는 그가 올해 초 도정 핵심전략으로 제시한 휴머노믹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휴머노믹스는 양적 성장에서 불거진 불평등과 양극화 등을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역량 제고, 행복 실현 등으로 극복하자는 대안 경제 이론이다. 김 지사는 “후반기에도 사람을 중심에 놓은 휴머노믹스를 통해 대한민국이 처한 경제, 저출생, 기후 문제를 풀어낼 ‘경제해결사’로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