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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9월 이탈리아 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권 대회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 분투기 

“눈 감고서도 ‘스위트 스폿(sweet spot)’ 적중한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특수 제작된 테니스공 내부의 벨 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테니스 패럴림픽 노크할까


▎제13회 한·중·일 시각장애인 테니스 대회가 지난 6월 전주 우석대에서 열렸다. / 사진:㈔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눈이 보이는 사람이 눈을 감는 것과 원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도쿄공업대 리버럴아트학과 부교수로 있는 이토아사는 저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서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과의 인터뷰, 토론회, 일상의 대화를 통해 접한 ‘귀로 보는 세상’, ‘손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이토 아사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다리가 4개인 의자와 3개인 의자는 균형을 잡는 방법이 다르다”는 비유를 제시했다. “원래 다리가 4개인 의자에서 다리 1개를 빼면 그 의자는 기울어진다. (다리가 1개 결핍됨으로써) 망가지거나 불완전한 의자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원래 다리가 3개인 의자는 결핍이 아니라 다리 3개로 온전한 전체를 이룬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얻는 정보의 80~90%를 시각에 의존한다. 물리적으로는 똑같은 사물과 공간이라 할지라도, 눈 이외의 수단으로 볼 때는 눈으로 볼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눈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세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지 못한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세계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능력자란 바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즉 시각장애인이다.”

오는 9월 24일부터 29일까지 이탈리아 리냐노사비아도로(Lignano Sabbiadoro)에서 개최되는 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들도 앞은 잘 보이지 않지만, 테니스를 통해 숨은 재능을 발휘하는 승부사들이다.

전북맹아학교 소속 임이삭 선수와 한재경 선수가 그 주인공. 이들은 (사)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KAVIT, Korean Association of Visually Impaired Tennis)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 대회에 출전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귀와 발의 활용이 눈이 보이는 사람과 다르다. 조금만 사용 방법을 바꾸면 시각 없이도 설 수 있는 균형 감각을 찾는 게 가능하다고 이토 아사는 말한다. 보통 구기 종목은 눈으로 공을 쫓아 진행하지만, 시각장애인 테니스 경기는 눈이 아닌 다른 감각에 의존한다. 바로 청각과 촉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귀를 주로 활용한다. 소리를 듣고 테니스공에 반응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오는 소리와 멀어져 가는 소리가 발신하는 서로 다른 음은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에게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공과 내 몸과의 거리감 익히기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선수들이 참여하는 B1 부문 출전자는 안대(眼帶)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한다. / 사진:㈔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소리가 나는 테니스공은 일본의 시각장애인 다케이 미요시가 처음 개발했다. 지금 국제대회에서는 일본 쇼에이(Shoei Industry Co)에서 제작한 공이 사용되며, 공 색깔은 노란색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특수 제작된 공 내부에 소리를 내는 벨이 들어 있다. 여기서 공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낸다. 바닥에 튈 때는 그 소리가 더 커진다.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가 청각을 이용해 날아오는 공을 쫓아가 라켓으로 되받아치는 방식으로 경기는 진행된다.

시각 장애는 크게 전맹(全盲)과 저시력(低視力)으로 유형이 나뉜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의 경우 청각만으로 게임에 나선다. 저시력 장애인은 공이 시야에 들어올 때는 일부 시력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청각에 의존해 시합을 치른다. 일반 테니스보다 작은 경기장에서 시력에 따라 세번 이내(B1, B2 부문), 혹은 두번 이내(B3 부문) 바운드된 공을 받아넘겨야 한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선수들이 참여하는 B1 부문은 미세한 시력 격차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출전자들이 아예 안대(眼帶)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한다.

한 저시력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는 자신의 실천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연히 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날아올 때가 있다. 그때는 그걸 캐치해서 공을 쳐 넘긴다. 또 어떤 경우 상대방이 쳐올린 공이 경기장을 비추는 조명을 가로지를 때가 있다. 그때 그림자가 살짝 진다. 불빛이 한순간 비었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이용해 공을 받아치기도 한다.”

테니스 경기는 라켓에 정확하게 맞힐수록 우위를 점하게 된다. 라켓에는 맞을 때 공이 가장 잘 날아가는 포인트가 딱 하나다. 이를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 하는데, 공과 선수의 몸이 적정 거리를 유지할수록 이 지점에 맞힐 가능성은 커진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의 공을 정확하게 받아 목표 방향으로 보내는 게 시각장애인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는 지름길이다.

이와 관련해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들은 이 공과 자신과의 거리감을 익히기 위해 부단하게 연습한다”고 전성범 우석대 교수는 설명했다. 이번 이탈리아 대회 한국 선수단 감독을 겸하고 있는 전 교수는 “이 분야가 아직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분들이 제대로 레슨을 받으면 성적을 낼 수 있는 스포츠”라고 덧붙였다.

직선과 포물선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다


▎9월 24일 이탈리아 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임이삭 선수(왼쪽)와 한재경 선수. / 사진:㈔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이번 대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여하는 임이삭, 한재경 선수도 이런 고된 여정을 거쳐 선발됐다.

2023년 테니스 라켓을 잡은 임이삭 선수는 데뷔하던 그해 한·중·일 시각장애인 테니스 대회에서 B2 부문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도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경기 운영도 날로 노련미를 더해간다. 공이 바운드되는 소리를 듣고 백 스매싱으로 넘길지 오버 핸드로 응수할지 결정한다. 일직선에 가깝게 날아오는 공과 포물선을 그리는 공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같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훈련을 반복하면서 그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익혀 실전에 임한다”고 임 선수는 설명했다.

특히 테니스공을 받아넘기는 자세와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는 기량이 승부를 좌우한다고 임 선수는 강조한다. “제 시야에 흐릿하게 공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공이 좀 높다 싶으면 청각으로 대처한다. 훈련할수록 감각이 생긴다. 공이 어디로 올지를 예측하고 받아넘기는 것도 처음보다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시각장애인 테니스 경기는 일반 테니스장보다 작은 코트에서 2~3회 이내 바운드된 공을 넘겨야 한다. / 사진:㈔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테니스는 그의 삶에 활력소 역할을 하는 듯했다. 임 선수는 “예전에는 몰랐던 긴장감 같은 걸 시합하면서 느낀다. 경기에 임할 때마다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든다. 테니스를 하니까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당초 출전 선수단에 선발됐다가 발목 부상으로 도중 하차하게 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우석대학교 특수교육과 4학년 재학 중인 김준협 선수는 179㎝의 장신에 힘이 좋아 유망주로 주변의 기대를 모았다. 이번 대회를 대비한 훈련 과정에서 발목 부위를 다쳐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김 선수에게는 국제대회에서 체격 조건이 우월한 외국 선수와 맞붙어 일방적으로 밀린 기억이 있다. “그들은 완전히 테니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팔이 긴데다 동물적 감각에 가까운 운동신경도 자랑했다. 저의 경우 올해 들어 스포츠 지도를 연구한 교수님들로부터 테니스의 기본기와 전문적 기술을 익히면서 기량이 쑥쑥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김 선수는 큰 키와 육중한 체구에도 순발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운동에 접근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뭔가 즐길 수 있는 걸 하게 돼서 좋았다”면서 “언제든지 시합을 한다면 최선을 다해 이길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 선수를 대신해 이번 이탈리아 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한재경 선수는 전북맹아학교 중2 재학생이다. 테니스 라켓을 잡은지 2년밖에 안 되는 여중생이지만 올 한·중·일 시각장애인 테니스 대회에서 페어플레이어 상을 받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세계대회 출전 선수 두 명 모두 테니스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동안 빠르게 성장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IBTA, International Blind Tennis Association)이 주최하는 2024 세계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권 대회 역사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2017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로 열리는 대회다. 스페인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 당시에는 B2 부문에 출전한 소병인 선수가 랭킹 2위, 김주상 선수가 랭킹 8위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올 9월 이탈리아 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권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140명 안팎의 선수들이 자웅을 겨룬다. 이탈리아·독일·폴란드·영국·스페인·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호주·아르헨티나·콜롬비아 등 오세아니아와 남미에서도 대표단을 파견한다.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 선수 2명과 일본 선수 4명이 참가하게 된다.

대회가 열리는 이탈리아 리냐노사비아도로는 베네치아에서 약 95㎞ 떨어진 해변 마을이다. 대회 참가 선수들은 9월 23일 현지에 도착, 24일까지 시각장애 등급 분류 검사를 받게 된다. 9월 24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경기를 진행하여 우승자를 가린다.

이번 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은 테니스를 통한 시각장애인의 여가 선용과 사회활동 참여 촉진을 목표로 2009년 출범했다. 서울맹학교, 전북맹학교 등 각종 학교와 기관에 테니스 장비를 보급하고, 교육을 지원해왔다. 2011년부터는 해마다 한·중·일 시각장애인 테니스 대회를 개최했다. 올해는 우석대학교 전주캠퍼스에서 제13회 대회를 치렀다. (사)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테니스를 통해 장애를 넘어 세상과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테니스는 현재 20여개 국가 시각장애인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하고 있다. (사)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은 시각장애인 테니스 경기의 패럴림픽 종목 채택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410호 (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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