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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금융 진입 규제 풀어라 

“시중은행보다 느슨하게 규제하되 감독 강화해 부실 억제해야 … 장기적으론 정부 정책자금 폐지 필요”
‘관계형 금융’으로 강소기업 키우자 - 지역금융 육성 과제 

강성원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sungwon90.kang@samsung.com
대기업에 비해 돈을 빌릴 수 있는 신용과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지역 금융 활성화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혁신적으로 생각을 바꾸고, 과감한 제도 개혁이 필수다. 시혜성 정부 자금은 장기적으로 폐지하고, 지방은행을 육성해야 한다.

중소기업 자금난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사진은 2000년 열린 중소기업 금융지원 박람회.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은 한국 경제의 투자와 고용을 주도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고용을 충분히 확대하지 못해 사회 통합에는 실패했다는 평을 듣는다. 대기업 집단의 주력 제조업체들이 부품·소재 조달을 국제적으로 다변화하고 있어 대기업 성장이 중소기업의 수요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도 관찰되고 있다.

더욱이 노동집약적 중소기업은 중국 등 가격에 비교우위가 있는 경쟁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반영돼 지난 10년간 제조업과 수출의 고용창출 효과는 계속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해 가야 한다.

그러므로 국내 대기업에 의존하는 거래가 아닌 해외기업으로 확대하거나 최소한 국내 대기업의 부품·소재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갖춘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상생의 경제’는 작동하기 어렵다.

외환위기 후 지역금융 쇠퇴

금융시장과 관련, 중소기업의 기술 축적에 가장 중요한 장애 요인은 민간의 중소형 금융회사 부재, 공적자금의 비효율성, 워크아웃 시장 부재다. 선진국의 경우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장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정부의 비대칭을 극복할 수 있는 중소 은행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재무 정보는 물론 비재무적 정보를 포함해 여신 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이라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에 의해 은행이 대형화되고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국민은행, 주택은행, 중소기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기능이 약화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중소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해 왔지만 기업 성과가 약한 기업에 시혜 차원에서 우선 배분된 경향이 있었다. 적절한 워크아웃 경로도 없어서 투자 실패에 대한 부담이 가중됐고 그로 인해 투자가 다시 억제되는 모습도 보였다. ‘더불어 성장하는 시장경제’, 상생의 경제 메커니즘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원에 특화된 중소은행의 활성화, 정부 정책자금 지원의 효율화, 중소기업 워크아웃의 실효성 제고 등 작업이 긴요하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에는 신용이 건전한 대기업에 대한 여신 제공보다 중소기업 여신 제공이 훨씬 어렵다. 따라서 당분간 중소기업 자금 지원은 현재와 같이 민관병행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지방은행, 상호저축은행 등 지역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민간 역량을 키우고, 혁신적 중소기업 지원을 제외하고는 민간이 주도하는 지원체제로 재편돼야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외부 자금 조달 중 은행 차입은 절대적이다. 은행의 기업 대출 중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약 90% 이상이다. 특히 대표적 지역 금융회사인 지방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의무대출 비중 상한선까지 중소기업에 여신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은 지역금융에서 돈을 빌릴 수요가 있고 지역 금융회사는 여신을 공급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은 대부분 중소기업 금융을 중소기업과 지역 경제권을 공유하는 소규모 지역 은행들이 담당하고 있다. 지역 경제와 지역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건전성 규제를 지역 금융회사에는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또 기술·신용대출 비중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지원이 요구된다.

아울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금융기업을 설립하려는 민간자본을 지원하고 지방은행의 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지방은행은 250억원의 최저자본금을 유지해야 하는 진입 장벽이 있다.

정부 출연 지방은행의 신용대출 역량 강화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 이원화도 생각해 볼 사안이다. 또한 상호저축은행의 지점 설치 규제 역시 지역 상황을 반영해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바젤Ⅱ가 도입되면 신용 위험이 큰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더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또 상호저축은행은 전국적으로 지점을 설치할 경우 자기자본 규제(8% 이상)와 자산건전성 규제(고정이하 여신 8% 이하)를 적용 받게 되기 때문에 신용은 낮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제약이 있다.

특정 지역과 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지역 금융회사의 특성상 최적의 최저자본금 수준과 여신 건전성은 지역별로 다를 수 있다. 이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면 위험이 큰 지역에는 충격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한 지방은행이 초과 공급되고 위험이 낮은 지역에는 과소 공급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지방은행은 6개에 불과하고 일반 은행 여신의 약 15%만 공급한다. 외환위기 전 260여 개에 달했던 상호저축은행의 본점 수는 106개로 줄었다. 지방은행 최저자본금 규제와 상호저축은행 지점 개설 규제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 현실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은행건전성 기준을 강화한 신BIS협약(바젤Ⅱ) 시행에도 국내 영업 특성상 신용 위험이 큰 대출을 주로 취급해야 하는 지방은행의 경우에는 유예해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도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초거대은행에만 바젤Ⅱ를 적용할 예정이다. 이 경우 바젤Ⅱ의 적용을 받는 시중은행과 적용이 유예되는 지방은행으로 금융 규제가 이원화될 수 있다.

단 지방은행의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건전성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에 비례해 감독활동은 강화해야 한다. 또 공시의무 강화를 병행해 예금자들의 은행 경영 감시를 강화하면 은행 부실을 억제할 수 있다. 일부 지방은행이 지역 유지들의 사금고처럼 유용되는 폐단도 공시의무 강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지역 금융회사 여신의 양적 공급 확대와 함께 서비스의 질적 향상 역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지방은행 여신에서 담보·보증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중은행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지역 금융회사가 관계형 금융을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역 금융회사의 신용대출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 금융회사를 중소기업 지원 은행으로 특화하기 위해 국내 3대 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과 국책 은행인 중소기업은행에 축적된 중소기업 대출 자료를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지역 금융회사에 제공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향후 10년간 한시적으로 보증기금-중소기업은행-지역 금융회사가 중소기업 대출관련 자료를 공유한다면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은행이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지역금융의 대출심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중소기업 관련 경험이 있는 산업·금융계 출신 중 중고령층 퇴직자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해 지역 금융회사와 연계된 역할을 수행하게 할 필요도 있다.

지방은행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지역 경제의 침체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지방은행의 진입 촉진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은행을 설립하려는 민간자본에 정부나 지자체가 일정한 비율의 자본을 공동 출자하는 형태로 제공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신 지역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지자체가 함께 중소기업 대출 실적으로 감독하고 그 성과가 유지되지 않으면 정부가 출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특화된 기관으로 지방은행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다만 이들 정부 출연 지방은행에 대해서는 신용대출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조치를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주기적으로 대출의 수익성을 평가해 대출 부실화를 방지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현행 정책자금 지원을 점차 축소해가는 것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정부의 시혜성 자금 지원은 장기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재정자금을 통한 지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 일원화하면서 혁신형 중소기업 지원 자금으로 특화해 갈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의무대출 등 금융자금 지원은 지역 금융을 통한 금융자금 지원을 제외하고는 점차 폐지돼야 할 것이다.

물론 지역 은행 중심의 관계형 금융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므로 과도기적인 정책자금의 존재는 인정된다. 단 정책자금 지원 대상은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대상으로 한정함으로써 중복 투자를 방지해야 한다. 정책자금 지원이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 가능성이 큰 기업에 우선 지원돼야 한다.

이와 함께 기존 정책자금 지원 기준을 규모에서 업력으로 전환해 규모 확대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려는 유인을 중소기업에 부여해야 한다. 정책자금 지원을 담당하는 공공기관들을 분할하고 경쟁을 도입해 재원을 효율적으로 나누는 동기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이 큰 기업에 재원이 우선적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수출·기술·연구개발 투자에 우선적으로 재원을 배분하고 단순한 금융성 지원은 축소해야 한다.

이를 한결같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 각 부처에 산재돼 있는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통합해 특정 기관 관리하에 둬야 한다. 또 중소기업이 정책자금 수령 시 투자안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정책자금을 통합 관리하는 기관은 투자안의 성공 가능성 여부에 따라 재원을 지원하면 된다.

또한 현재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고용 인원 300명 미만 기업으로 고정해 중소기업이 규모를 확대해 생산성을 증진할 수 있는 동기를 극단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대상 선정 기준을 업력 기준으로 전환해 자금 지원을 통한 경영 개선 성과가 뚜렷한 창업 초기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지원대상 ‘업력’으로 전환돼야

이는 창업 중소기업에 지원이 될 수 있는 기간 내에 민간 금융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할 수 있고, 기업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해 정책자금 지원을 받으려는 기존의 왜곡된 현실을 바꿀 수 있다. 다만 기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10년간 경과기간을 둬 지역 금융기관에서 관계형 금융을 제공받을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통합 관리하는 일원화된 기관과 신용보증 기구는 여러 기관을 분할해 이들이 실적 기준으로 경쟁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각 분할된 기관이 투자 실적과 수익률에 따라 추후의 예산 분배를 연동시키는 것이다. 또한 3대 신용보증기금 중 역할이 불분명한 지역 신용보증재단은 신용보증기금과 합병하고 신보와 기보를 각각 중소기업과 혁신형 중소기업 전문 보증기관으로 정착시킨다.

양대 보증기관은 지역별로 쪼개 보증채무 제공 실적, 워크아웃 실적 및 사고율 등을 기준으로 예산 지급을 차등 적용한다. 끝으로 정부는 좋은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촉진할 수 있다. 정책자금 지원 시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평가되는 기업의 지원조건에 경영 컨설팅 수주를 의무화하되 그 비용을 정부가 바우처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현재 중소기업청이 ‘쿠폰제 컨설팅 사업’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정책자금을 제공받는 기업이 이 사업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도록 할 수 있다.

지역금융 육성을 위한 제언
■ 선진국 대부분 중소기업과 지방은행 간 관계형 금융 형성
■ 혁신 중기 지원 제외하고는 민간 주도의 지원 체제로 재편돼야
■ 지역 금융회사의 건전성 및 설립 규제를 탄력적 적용
■ 정부·지자체가 지역 금융사 설립 위한 민간자본 지원
■ 지방은행 감독 및 공시 의무 강화 병행
■ 정부기관 축적된 중기 대출 DB 지역금융과 공유
■ 산업·금융계 출신 퇴직자 투자심사자 역할 부여
■ 각 부처에 산재된 정책자금 관리 일원화


983호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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