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한국인 특유의 섞는 능력, 국난 탈출 DNA 

“독창적 전략 수립에 능해 … 세계적 싱크탱크 만들어 전략가 육성해야”
송병락 교수의 비빔밥 경제학 예찬론 

지금은 사상 유례없는 경제 혹한기다. 대한민국호(號)는 위기극복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송병락(70)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비빔밥 문화에서 보듯, 우리는 다양한 재료를 섞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능하다”며 “이런 융합 능력은 불황 탈출의 DNA”라고 말했다. 근래 좀처럼 듣기 어려운 ‘희망가(歌)’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책 『세계경제전쟁, 한국인의 길을 찾아라』의 탈고를 마친 송 교수를 만났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9전9승하고, WBC에서 쟁쟁한 메이저리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송병락 교수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답변이 쉽게 나오지 않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체격이 큽니까, 아니면 경력이 출중합니까? 메이저리거가 수십 명 포함된 국가를 절대 이길 수 없는 스펙 아닙니까?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이 없었다면 위대한 도전은 ‘졸전’으로 막을 내렸을 것입니다.”

전략 없으면 ‘백전백패’

송 교수는 체력·경력·학력 등 눈에 보이는 ‘비교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쟁의 승패는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요소’ 이른바 전략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략가는 보통을 일류로 만든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뻔한 말로 들린다. ‘효과적 전략을 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병법의 기본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CEO도 이쯤은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가정 한 가지 해 봅시다. 김인식 감독이 미국통이고, 미국식 야구를 그대로 답습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승전보는커녕 고배만 연거푸 마셨을 것입니다. 김 감독이 자기만의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던 게 위대한 도전의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전략도 전략 나름이라는 것이다. 남의 것을 답습한 ‘모방’ 전략은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조언이다. 이를테면 모방이 아닌 KS모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타 공인 한국적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송 교수의 면모가 읽힌다. “삼성전자는 일본 소니가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전문화할 때 반대로 다각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당시 전자업계의 트렌드에 역행하는 전략이란 혹평도 받았죠. 하지만 이후 삼성전자는 부문별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많은 이윤을 창출했습니다. 반면 전문화에 전력을 기울였던 소니는 추락을 피하지 못했죠.”그에 따르면 효율적 위기극복책은 창조적 전략의 수립이다.

나만의 전략이 위기 탈출의 열쇠라는 것이다. 이를 만들기 위해선 여러 의견을 수용하고,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 방식이 무조건 옳다’‘글로벌 기관의 방식이 100% 맞다’는 획일적 사고는 창조적 전략수립의 장애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송 교수는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탁월한 융합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이는 위기 탈출을 도와주는 DNA이자 창조적 전략을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재료든 비비고 섞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냅니다. 비빔밥도 그렇고, 김치찌개도 마찬가지죠. 이를테면 섞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인데, 이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문제는 이런 융합 능력을 창조적 전략 수립의 밑거름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한국 경제가 ‘모방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유의 섞는 능력을 이용해 독특한 전략을 창조하기보단 세계 유수의 전략을 좇는 데 급급하다는 일침이다.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전 회장이 한마디 하면 우리는 바이블을 접한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반대로 한국 실정을 꿰뚫고 있는 국내 학자의 말에는 소홀하죠. 그런데 정작 잭 웰치 전 회장은 자신이 주창한 ‘주주가치 운동’을 스스로 비판했습니다.

세계적 권위의 싱크탱크 조직 설립해야

그렇다면 이를 그대로 답습한 우리는 뭡니까? 사실 우리나라처럼 세계경제포럼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국가도 드뭅니다. 모두 ‘보여주기’에 불과하고 ‘모방주의’의 산물일 뿐입니다. 스위스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1년에 단 한 번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또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이런 우를 저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기관의 조언을 진리인 양 받아들여 기업·금융 구조를 한국 실정에 맞지 않게 바꾼 탓에 글로벌 투기세력에게 곳간을 내줬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반대 논거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전 총리의 사례를 들었다. 마하티르는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다.

“마하티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긴축정책을 추진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어요. 반대로 고정환율제를 시행하면서 외화유출을 막았죠. 당시 IMF는 ‘말레이시아 경제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며 극단적 경고까지 했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슬기롭게 국난을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독창적 전략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인 특유의 융합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창조적 계층’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싱크탱크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를 가 보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세계적 연구소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발판으로 창조적 계층을 육성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 실정을 전혀 모르는 외국 학자 또는 기관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못하고, 우리도 그들의 말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한국적 경제학을 강조하면서 “서울경제학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송 교수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영문으로 된 『Better Way Different Way』라는 소책자를 전했다.

외국의 저명한 학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전략수립 책일까? 하지만 열어 보니 백지다. 그는 이곳에 해외 전략가가 만든 것 못지않은 자기만의 지혜를 담으라고 했다. 경제전쟁 시대를 정면돌파할 수 있는 ‘창조적 전략’을 스스로 수립하라는 익살맞은 권고다. KS전략을 만들라는 뜻이다.

송병락의 전략 10대 원칙
- 항상 더 좋은 방법이 있다.
- 자신의 강점을 알라! 단점보다 강점을 보완하라.
- 패러다임 변화를 잘 읽어라, 그리고 리드하라.
- 차이점을 차별화 전략으로 활용하라.
- 팀·조직·시스템의 힘을 잘 활용하라.
- 나만의 문화를 창조하고 나만의 브랜드를 관리하라.
-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혁신하라.
- 나도 남도 승자가 되게 하라.
-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라.
- 하늘이 보고 있다! 최선을 다하라.


984호 (2009.04.2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