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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코스피 2000, 누구 덕인가? 

전문가들 정몽구·이건희 회장 꼽아 … 박건영·서재형 등 자문사 CEO도 선정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한국 증시가 새해가 밝기 전에 지수의 첫째 자리를 갈아치웠다. 2007년 7월 2004.22를 기록한 지 3년여 만인 2010년 12월 14일 2009.05로 장을 마감한 것.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로 2008년 10월 지수가 938.75까지 내려갔을 때 언제쯤 ‘2’자를 볼 수 있을지 깜깜하기만 했다.

선진국 경기침체, 남유럽 재정위기, 남북관계 악화 등 악재에도 다시 2000 고지를 점령한 한국 증시는 2011년 재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학습효과 때문인지 분위기는 차분하지만 잠재된 기대는 3년 전 못지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스피 2000 시대가 과거보다 오래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주춧돌이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위기 이후 한국 증시에 주춧돌을 깔고 대들보를 세운 이는 누구일까. 금융계 고수 74명에게 돌아온 코스피 2000 시대의 주역을 물었다. 선정된 인물에게서 2011년 증시의 밑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설문 결과에서 눈에 띄는 점은 1, 2위 모두 금융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1위는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23표)에게 돌아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표)은 2위에 올랐다. 위기 이후 대형주가 시장을 이끌어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 총수는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을 개선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회장은 경기침체기에 역발상으로 R&D(연구개발)·마케팅 비용을 늘려 현대차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웠다. 유동성 위기 직전에 몰린 기아차가 사상 최대 이익을 낸 것 역시 추천 이유였다.


이재용·정의선 뉴 리더로 꼽혀

이 회장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비롯한 젊은 세대를 앞세운 개혁과 조직 혁신으로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평가 받았다. 응답자들은 2011년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에도 삼성전자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가 상승의 공을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돌린 응답자도 있었다. 이재용 사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역시 부친의 뒤를 이어 앞으로 한국 증시를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로 선정됐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2006년 취임해 기존의 석유화학 사업을 키우면서 전기전자 소재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6위를 차지했다. LG화학은 2010년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로 세계시장에 진출해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시장에서는 LG화학이 2011년 3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조사에서 ‘잘 모르겠다’ ‘답하기 어렵다’는 응답자가 많았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독보적 존재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자주 언급된 인물이 있었다. 3위를 차지한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12표)다. 5위에는 이제 막 회사를 설립한 서재형 한국창의투자자문 대표(9표)가 올랐다. 2007년 코스피 2000 시대에 펀드가 주인공이었다면 2010년에는 자문형 랩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문형 랩은 투자자문사의 자문에 따라 증권사가 운용하는 맞춤형 서비스로 현재 시장 규모가 4조원에 육박한다.

랩의 대표주자로 꼽힌 브레인투자자문은 설립 1년6개월 만에 계약액 2조8000억원을 달성했다. 박 대표는 자문사 설립 전에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인디펜던스·디스커버리 펀드를,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 칭기스칸 펀드를 운용하며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다.


서 대표 역시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리서치본부장으로 맹활약한 이력이 있다. 12월 초 인가를 받은 한국창의투자자문은 설립 일주일 만에 9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흡수해 자문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두 CEO 외에도 권남학 케이원투자자문 대표와 김택동 레이크투자자문 대표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권 대표와 김 대표는 경북대 경제학과 동기로 박 대표(경영학과 졸업)와 함께 ‘경북대 3인방’으로 불린다. 응답자들은 이들이 자금 흐름을 주도하는 ‘큰손’으로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전망했다.

위기 이후 한국 증시에 돈을 뿌린 인물이 4위에 올랐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10표)이다. 버냉키 의장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을 주도해 글로벌 유동성을 공급한 주인공이다. 이와 관련해 2010년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21조원을 순매수한 외국인이 7위에, 돈이 9위에 올랐다. 조사에 응한 증시 전문가들은 매수 강도는 약해지겠지만 외국인의 매수세는 2011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높은 점수를 줬다. 이 대통령은 7위에 올랐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빠른 속도로 경기를 북돋우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 미국·유럽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인지도를 높였다는 것이 추천 이유였다. 사공일 서울 G20 준비위원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혔다는 공을 인정받아 9위에 올랐다.

자문사 대표를 제외한 금융인 가운데에서는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위기 이후 코스피 2000 시대의 주역으로 뽑혔다. 김 회장은 급변하는 은행 업계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외환은행 인수 같은 굵직한 사안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경영권과 관련한 내부 진통을 겪는 동안 하나금융지주는 금융업종의 대표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10위권 턱걸이

한국에 펀드 시대를 연 박 회장은 2007년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펀드에 대한 불신이 커져 돌아온 코스피 2000 시대에서는 9위에 머물렀다. 이외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등이 꾸준히 펀드 시장을 이끌어갈 주역으로 회자됐다.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도 돌아온 코스피 2000 시대의 주역으로 꼽혔다.

1069호 (201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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