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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없는 창구시대 활짝 열다 

국내 첫 스마트 브랜치 개점…전자식으로 계좌 개설하고 입출금 




겉으로 봐도 여느 은행 지점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은행 하면 상품 소개 포스터가 벽에 걸려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대신 환율과

증시 상황 등을 알려주는 대형 멀티비전이 고객을 반긴다. 창구 직원들의 책상도 훨씬 깔끔하다. 어떤 차이인지 곰곰이 살펴보니 어디에도 종이가 없다. NH농협은행 노량진역지점 얘기다. NH농협은행은 8월 2일 첨단 IT 기기를 이용해 창구를 전자식으로 바꾼 스마트 브랜치를 열었다. 일부 창구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한 사례는 있지만 지점 전체를 전자식으로 바꾼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셀프데스크다. 기존 영업점의 경우 원탁에서 전표를 작성한 뒤 순서를 기다려 창구 직원을 만난다. 하지만 스마트 브랜치에서는 전표 대신 셀프데스크 터치스크린 화면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누르면 된다. 고객이 셀프데스크에서 작성한 전자신청서는 곧바로 창구 직원과 공유되고 금융결제원의 전자인증을 거쳐 거래가 진행된다. 금융결제원의 타임스탬프(TSA)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각종 조작과 위조의 위험도 사라졌다.

덕분에 전 과정에서 종이를 사용할 일이 없다. 입금(송금), 출금, 예금신규, 전자금융신청, 자동이체신청, 제신고 등 6개 서비스를 셀프데스크 안에서 직접 해결할 수 있다. 지점을 찾은 김동성(34)씨는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며 “처음이라 셀프데스크를 쓰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한두 번 더 이용하다 보면 훨씬 편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벽면에서 설치된 멀티비전과 미디어월은 주변 지역 정보와 유가 등 각종 금융정보를 제공한다. 화상상담시스템을 이용하면 현장에서 콜센터 직원과 화상으로 상담할 수 있는데 예·적금 상담 및 세무·법무·재테크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고객을 위해 예약제로 운영되는 화상상담실도 따로 마련해뒀다. 대기석에서는 태블릿PC를 통해 NH농협은행이 지난해부터 제공 중인 NH매거진 등 다양한 콘텐트를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있다. 최명규 NH농협은행 업무지원부 팀장은 “종이를 없앤다는 점은 탄소 배출을 줄여 환경 보호에 앞장선다는 농협 전체의 컨셉트와 잘 어울리고 경비 절감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지점 전체 전자식으로 바꿔

실제로 한해 동안 NH농협은행 전국 1180개 지점에서 전표나 거래신청서 등으로 사용하는 문서만 2억3000만장에 달한다. 많이 쓰는 것도 문제지만 고객의 중요 정보가 담긴 문서다 보니 전자 파일로 스캐닝하고 별도의 장소로 옮겨 보관해야 하는 등 A4용지 한 장당약 120원 가량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평균 거래 시간도 줄이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신동순 업무지원부 차장은 “스마트 브랜치는 대면과 비대면의 융화를 이뤄내는 공간”이라며“고객이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부분과 직원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명확하게 구분해 전체적으로 거래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충식 NH농협은행장은 최근에만 두 번이나 노량진역지점을 방문하며 스마트 브랜치 사업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는데 첨단 금융시스템을 발 빠르게 도입해 스마트 금융기관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신 행장은 “스마트 브랜치 1호점을 확대·운영해 지속적으로 고객맞춤형 특화점포를 개발하고 마케팅 중심의 영업점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국내 그린금융의 리더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NH농협은행은 앞으로 5년 동안 전국 1180개 지점 전체를 스마트 브랜치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NH농협은행은 스마트폰 연동 상품이나 태블릿 매거진 서비스 등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화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2011년 출시한 ‘채움사이버패키지’와 ‘내사랑 독도’ 등이 대표적이다.올해 3월에는 금융권 최초로 그마트폰뱅킹 위·변조 방지 솔루션을 개발해 발표하기도 했다. IT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른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도 정보기술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병문 NH농협은행 업무지원부장

거래 시간 줄이고 상담의 질 높이겠다


스마트 브랜치가 갖는 의미는?

“사실 스마트는 최근 금융권 전체의 화두다. 하지만 어떤 콘텐트를 가지고 스마트라고 할 것인지 대해서는 각 사의 전략이 다르다. N H농협은행은 종이가 없는 (Paperless) 거래 프로세스를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부터 영업부 창구 2곳과 양재점 창구 3곳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고객의 반응이나 효율성 등을 검토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노량진역지점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됐다. 노량진은 입시학원 밀집 지역으로 20~30대 젊은 층의 수요가 많다. IT 기기에 익숙한 세대라 빠르게 정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스마트 브랜치의 장점은 무엇인가?

“업무 프로세스 개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에게 최대한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 우선 종이 업무가 사라지면 거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고객으로서도 좋은 일이지만 직원들에게도 그렇다. 업무량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게 되면 나머지 시간을 고객에게 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거래 시간은 짧아질수록 상담 시간은 더 길어진다. 간단한 상품 정보도 더 구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회사 전체를 고려해도 스마트 브랜치의 의미는 크다. 은행이 수익성을 제고하려면 과거처럼 예대마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새로운 수입원은 창출하면서 반대로 고정비용은 줄여야 한다. 기업에서 종이값은 결코 하찮은 비용이 아니다. 보안성도 훨씬 좋아졌다. 고객이 작성한 내용은 금융결제원의 인증과정을 거치고 직원이라도 임의로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위조가 불가능하다. 얼마 전 모 은행에서 대출 서류를 조작한 사건이 밝혀졌는데 스마트 브랜치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거래 방식이 바뀌는데 따른 고객의 불편함은 없나?

“은행이 담당하는 업무는 많게는 수백 가지에 이른다. 이 중에서 거래빈도가 가장 높은 예금, 자동이체 등 6개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시작했다. 생소할 순 있지만 거래하는 절차나 방식이 바뀐 게 아니라 수단이 바뀐 개념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쉽게 적응하리라 본다. 실제로 창구에 가보면 고객이 작성하는 내용을 직원들이 같은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작성을 도와줄 수 있다. 펜으로 쓰던 걸 화면에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것뿐이다. 안내를 해줄 전담 직원도 배치해 놓고 있어 IT 기기에 익숙하지 않는 장년층도 사용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앞으로 전 영업점으로 확대되나?

“어차피 1~2년 이내에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리모델링이 필요한 지점이나 새로 여는 지점을 중심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프로세스를 정밀하게 가다듬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통장이나 카드를 개설할 때는 별도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불편하다. 종이도 낭비고 시간도 낭비다. 앞으로는 유사

한 서비스 간에 고객 정보를 연동시켜 같은 내용을 2~3번씩 작성하지 않아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1152호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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