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힐링 열풍의 명암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



1999년 12월 마지막 주에 발간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는 ‘20세기 부상한 산업, 21세기 부상할 산업’이라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이 가운데 20세기에는 ‘몸짱(Physical Fitness)’을 만드는 다이어트가 성장산업이었지만 21세기는 ‘멘짱(Mental Fitness)’을 만드는 산업이 각광 받을 것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20세기는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굶주림에서 벗어난 시기였다. 20세기 초반 화학비료의 발명에서 시작된 녹색혁명으로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인류가 파멸할 것이라는 맬더스의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가 됐다. 반면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비만이 새로운 문제가 됐다.

21세기는 건강한 마음이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IT기술이 발달하고 정보가 많아질수록 세상살이는 빨라지고 복잡해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이 요인이다. 많은 사람의 물질적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에 반비례해서 내면은 더욱 불안해지고 정신적 행복감은 줄어들기 때문에 21세기에 부상할 분야는 종교, 명상, 요가, 심리상담 등이라는 예측이었다.

불과 10여년 전의 예측이 의외로 빨리 눈 앞에 펼쳐지고있다. 최근 유행하는 웰빙, 행복, 힐링, 치유 등의 단어는 모두 마음의 평화(Mental Fitness)와 맞닿아 있다. 심지어 신세대 유행어인 ‘멘붕(멘털 붕괴의 줄임말로 정신적 충격을 의미)’도 같은 맥락이라도 생각한다. 심리학이 인기를 끌고 휴가철에 템플스테이에 사람들이 몰려들며, 마음의 평화를 논하는 스님들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여러개가 들어가 있다. 젊은이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기성세대 몇몇은 인기 연예인과 같은 관심을 끌고 있고,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분도 젊은이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이른바 힐링 멘토로 명성을 얻었다.

웰빙에 이어 힐링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힐링뮤직, 힐링콘서트,힐링여행, 힐링푸드, 힐링스포츠 등 기존 서비스에 힐링이라는 단어를 붙여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급기야 ‘마음치유사’란 자격증까지 생겨났다.웰빙에 이은 힐링 열풍을 보면서 21세기에는 마음짱, 멘짱 관련 산업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어 ‘마음의 평화’는 마치 무지개처럼 쫓아갈수록 멀어지게 마련이다.

힐링트렌드는 21세기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서 한계도 분명함을 느낀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삶이란 현실적 기반에 있고 자신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가능성을 찾는 것이라는 이해가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힐링, 치유라는 관점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삶으로 유도하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자칫 나약한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쉽사리 빠져들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사람은 ‘한 눈 뜨고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감은 눈으로는 이상을 꿈꾸고 뜬 눈으로는 현실을 냉정하게 보라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힐링이 몸과 마음의 치유가 되려면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주는 위로와 함께 몸을 지탱하는 현실적 삶에 대한 긍정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1153호 (201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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