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에이, 치사해”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예나 지금이나 최대의 경제 현안 가운데 하나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다. 고부간, 노사간, 여야간, 남녀간 문제처럼 골치 아픈 문제다. 어찌 보면 해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대학 강단에서도 강의하기 가장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직장인이 대다수인 특수대학원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학생이 고루 분포돼 있어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게 마련이다.한번은 수업 중에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왜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을 갈까?’라는 주제로 토론할 때였다. 요즘엔 대형 마트에서 쇼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말에는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가벼운 군것질거리로 배도 채우는 게 일상의 풍경이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대형 마트를 놔두고 시장통으로 몰려들까. 토론의 결론은 ‘그림이 좋아서’였다. 서민의 상징이요 온 국민의 어릴 적 애환이 서린 재래시장의 특성과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또는 동네의 인심 좋은 아주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재래시장이야말로 거길 방문하는 사람의 서민적 풍치를 한껏 높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바라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니지않은가.

그들이 현장과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면 기업형 수퍼마켓(SSM) 논란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골목상권 침해 논리를 앞세워 SSM의 휴일 영업을 막았다. 그러나 영업 규제에 대한 부작용을 간과했다.결국 SSM의 휴일 영업 규제는 유야무야 됐다. 평소 실생활에서 느낀 현장 감각으로 실효성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려운 문제라서 그런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는 시대상황에 따라 용어도 자주 바뀌었다. 함께 살자는 상생(相生)이나 공생(共生), 같이 성장발전하자는 상성(相成), 그리고 최근에는 동반성장까지. 해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양보하길 기다리고, 정책 당국은 자율적 해결을 바라고, 종국에는 특정 현안이 불거져야 허둥지둥해법을 찾다 보니 땜질식 처방이 나오는 건 아닐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다룰 기준이 되는 분명한 원칙이 하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에게 들은 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나 계약에서“에이, 치사해”라는 말을 서로 듣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치사하다는 건 ‘행동이나 말 따위가 쩨쩨하고 남부끄럽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과자나 달라고 손 벌리면서 징징대는 어린아이처럼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나만 자꾸 못살게 구는 양아치’로 여긴다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중소기업 사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보호육성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그리고 주장한다. 다만, 치사하게만 하지 말라고. 공존하는 기업생태계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과욕을 부리면 그것은 국가는 물론 기업 자체도 치사(癡事:어리석은 일)한 일이 될 것이다. 그에 따라 결국은 대기업도 치사(致死:죽음에 이름)에 이르게 될 지 모른다. 상생과 동반성장에 진정성을 보여야 치사(致詞·致辭:다른 사람을 칭찬함)를 들을 수 있다.

1154호 (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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