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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정도전도 반대한 천도 태종 때 이뤄 

김준태의 왕의 결단 (24) - 태조의 한양 천도 

김준태 칼럼니스트
민심 동요 진정 시키고 신흥 세력 기반 다질 목적…서울 600년 역사 시작 태상왕의 행렬이 정릉(貞陵: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의 능) 앞에 멈췄다. 한 때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불패의 명장 이성계는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되어 주름 가득한 두 손으로 아내가 묻혀있는 봉분을 어루만졌다. 능 구석구석을 두루 살펴보고 떠나려다 다시 발길을 돌리고, 떠나려다 다시 봉분을 하염없이 바라보길 여러 차례. “처음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오직 나 혼자만의 뜻은 아니었다. 나라 사람들과 다 의논해서 한 것인데…”라는 탄식에는 부인의 곁을, 부인이 묻혀있는 한양 땅을 떠나기 싫은 노(老)임금의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태상왕은 눈물을 흘리며 한양 땅을 떠났다(정종1.3.7).


1399년 3월, 조선은 도읍을 옮긴지 채 몇 해 되지도 않아 옛 수도 개경으로 환도(還都)를 단행한다. 『정종실록』의 기록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서 왜 ‘환도’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뭇 까마귀가 모여서 울고, 들까치가 와서 깃들고, 재이(災異)가 여러 번 보였사오니, 마땅히 수성(修省)하여 변(變)을 없애야 하고, 또한 피방(避方)하셔야 합니다”는 서운관(書雲觀:천문을 관측하는 기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옮겼다는 기록만 나와 있을 뿐이다(정종1.2.26). 아마도 ‘1차 왕자의 난’ 등으로 인해 야기된 정국의 혼란과 민심의 동요를 진정시키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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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5호 (201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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