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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Ⅲ - 동남아 웃고 러시아·중동 울다 

미국발 셰일 에너지 혁명의 정치경제학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에너지 가격 하락의 나비효과로 세계 정치·경제·자산시장 지각변동



미국발 셰일 에너지 혁명이 세계의 정치·경제·자산시장을 흔들고 있다. 원유·가스 수출로 부를 축적한 러시아가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원유 생산의 중심지로서 중동의 오랜 지정학적 중요성도 퇴색하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 쏟던 에너지를 동남아로 돌려 중국을 견제한다. 덕분에 동남아 경제와 증시가 호황을 누렸다. 셰일 에너지 혁명의 파장을 내다 봤다.

올 들어 4월 23일까지 미국 S&P 500 지수는 10.6% 상승했다. S&P500 지수와 다우지수는 장기 박스권을 뚫고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국은 주요 글로벌 증시 중 가장 뜨거운 시장이다. 동남아에서도 미국 못지 않은 강세장이 나타났다. 필리핀 증시의 연간 상승률이 20.1%에 이른다.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증시도 10%를 넘는 상승세를 기록했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많이 매장돼 있는 러시아 증시는 올 들어 12.6% 급락했다. 브라질 증시 역시 9.9%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중동 지역의 사우디 증시도 연간 4.7% 상승으로 글로벌 평균 수준을 밑돌았다. 왜 그럴까? 여러 요인이 상이한 주가 흐름을 만들었겠지만 미국의 셰일 에너지 생산 확대가 경기와 주가 차별화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본다.


미국의 셰일(Shale) 에너지 혁명은 여러 변화를 야기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졌다. 지하 깊숙한 퇴적암층의 셰일 가스와 오일을 분리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개선됐다. 에너지 가격이 떨어져 제조원가를 낮출수 있어서다.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이 다시 돌아오고, 독일 화학업체 바스프를 필두로 유럽 유수 기업도 미국에 생산기지를 만들었다.

미국 에너지 과소비국에서 자립국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IEA는 2035년경 미국이 에너지의 자급을 이루는 에너지 독립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셰일 에너지 생산 확대는 미국의 경상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미국이 직면한 막대한 대외 불균형(경수지 적자)은 늘 심각한 통상 분쟁을 일으켰다. 1980년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고 일본 엔화 가치 절상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대이던 엔·달러 환율은 플라자 합의 이후 120엔대로 떨어졌다.

미국이 일본만 건드린 건 아니다. 또 다른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던 한국과 대만을 1998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강력한 통상 규제 법안인 수퍼301조를 1987년 도입해 동북아 수출국을 압박했다. 1990년대 초 동북아 수출국들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급격히 축소돼 심각한 경기 하강을 경험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면 대미무역수지 흑자국에 대한 통화가치 절상 요구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 굳이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 절상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에너지 수입 비용이 줄어들면 경상수지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1980년대 후반 동북아 경제가 경험한 고통을 최근에는 자원 부국들이 겪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생산 증대로 기존에너지 생산국의 기득권이 흔들렸다.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러시아 경제는 미국 셰일 가스 생산 확대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기준 러시아의 전체 수출에서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70.2%에 달했다. 천연가스를 수입하던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 확대에 따라 수입 물량을 크게 줄이면서 러시아가 곤경에 처했다. 잉여 천연가스가 러시아의 주력 수출시장인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커져서다. 지난해 3.4%를 기록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2.8%에 그칠 전망이다. 2%대의 성장률은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이 있던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이었던 2009년을 제외하면 개방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러시아도 활로를 찾으려 노력한다. 러시아는 2011년에 잇따라 열린 한·러 정상회담과 북·러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 가스관을 한반도로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또 3월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주변국에게 손을 벌리고 있지만, 아시아 국가에 셰일가스를 수출하려는 미국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러시아의 성장 신화는 이미 타격을 받았다.

중동도 셰일 혁명의 불똥을 피하지 못했다.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으로 국제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1970년대와 2000년대 중동발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강화된 중동의 오일 패권은 크게 흔들렸다. 이에 따라 글로벌 원유 생산의 중심지로서 중동이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도 퇴색했다.

미국의 국방전략 변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알 퍼거슨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자리잡은 건 압도적인 군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봤다. 실제로 미국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세계 최대다. 국방비 규모 2~21위 국가의 지출 총합과 비슷한 규모다.

그렇지만 미국은 국방비 지출 축소가 불가피하다. 정부 재정 건전화 과정에서 국방비 감축이 1차 표적이 됐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앞으로 10년 간 9500억 달러 규모의 국방비 감축에 합의했다. 미국이 과거처럼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미국의 대외 정책도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중국의 패권 견제할 여력 생겨

미국의 국방전략은 중동보다는 아시아 중시로 분명히 달라졌다. 지난해 1월 발표된 국방부의 ‘국방전략 지침’에서 미국은 사실상 2개 지역에서의 동시 승리전략(two-war)을 폐기했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전과 같은 대규모 장기 지상군 투입 전쟁도 포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장기적인 국방비 지출 축소를 반영한 국방전략 수정이 가시화한 것이다.

미국의 국방전략은 1개의 국지전에서 승리를 추구하고,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는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원 플러스’로 바뀌었다. 지상군 인력의 전반적인 감축 기조 속에서도 동아시아와 태평양 주둔 미군은 감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이 아시아로 귀환했다”고 선언했다. 이런 전략 변화가 가능한 건 셰일 에너지 생산확대로 중동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방전략은 중국 견제에도 초점을 맞췄다. 동남아 지역은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통로다. 미국이 동남아를 품을 수 있다면, 기존에 미국에 우호적인 대만, 일본 오끼나와, 한반도를 잇는 봉쇄선을 완성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남중국해 영유권 논란으로 중국·필리핀·베트남 등의 이해 관계가 엇갈리자 동남아 국가 편에 섰다. 미국은 동남아 지역에 자기 모델을 심으려고 노력한다.

정치적으로는 미얀마에 서구식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식하고자 노력했다. 경제적으로는 동남아 전반에 걸친 투자 확대를 추구했다. 이런 지정학적 배경이 동남아 증시의 호황을 설명하는 한 요인이라고 본다. 셰일 에너지 혁명 덕에 미국은 한정된 자원을 중동 대신 동남아에 투입할 수 있었다. 셰일 혁명은 간접적으로 동남아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셰일 혁명은 유럽에도 영향을 줬다. 미국과 경합하는 유럽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저렴한 에너지원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국이 셰일 가스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단기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프랑스 기업인들도 셰일 에너지 개발을 촉구하고 있지만 올랑드 정부는 환경 훼손을 우려해 반대했다. 유럽은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탄소배출권 거래에서 선도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독일은 원전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제조업의 원가 경쟁력에서 미국에 뒤져 상대적으로 고비용 구조일 수밖에 없는 녹색산업에 투자하기 어렵게 됐다. 얼마 전 유럽연합(EU) 의회는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대책을 부결시켰다. 탄소배출권 거래 최대 시장인 유럽의 이런 결정은 자신들이 주도한 기후변화 대책의 입지를 축소시켰다. 미국의 셰일 혁명은 나비효과처럼 전 세계를 넘나들면서 이미 정치·경제·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셰일 가스: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셰일)층에 존재하는 천연가스를 말한다. 생성 과정은 전통 천연가스와 같다. 전통가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동해 지표면 가까운 곳에 모여 있지만 셰일가스는 다르다. 암석층에 막혀 퇴적암층에 넓게 흩어져 있다. 1800년대에 발견했지만 전통가스보다 깊은 곳에 있어 시추하기 어려웠다. 이런 탓에 생산 단가가 전통 천연가스보다 높아 매장량이 풍부한데도 채굴되지 않았다.

물·모래·화학물질 혼합액을 퇴적암층에 고압 분사해 균열을 만들어 바위 속에 갇혀 있는 가스를 뽑아내는 ‘수압파쇄법’이 1998년 고안된 후 채굴비용이 줄었다. 더불어 전통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셰일가스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급부상했다. 단, 화학물질 사용에 따른 수질오염, 가스 유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환경 오염 가능성이 있다.

셰일 오일: 셰일가스와 마찬가지로 셰일층에서 나오는 원유를 말한다. 함유량이 많고 황 함량이 적은 경질유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와 비슷한 성질이다. 한 곳에 집적되지 않고 셰일층에 넓게 분포했다. 전통 원유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매장량도 풍부하지만 시추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시추 방법은 셰일가스 채굴때와 비슷하다. 셰일오

1186호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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