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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중국 영물(靈物)이 일본 자동차에 절을··· 

김세원의 비교문화경영 

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전통문화·자존심 건드리는 광고 금물 … 진출국 역사공부는 필수



2003년 12월 ‘자동차의 벗’이란 중국 자동차 전문 잡지에 도요타자동차의 스포츠 유틸리티차(SUV)인 랜드크루저 프라도(覇道) 광고 두 가지가 게재됐다. 한 광고는 도시를 배경으로 다리 난간에 서 있는 돌사자상이 지나가는 프라도 자동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사진이다.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두 마리의 돌사자상 중 한 마리는 오른쪽 앞발을 들어 거수경례를 하고, 다른 한 마리는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하는 내용이었다. 중국 문화의 상징이자 중국인들이 영물(靈物)로 여기는 돌사자가 앞을 지나가는 일본 자동차 ‘패도(覇道)‘에 고개를 숙이는 광고가 나가자 현지인들은 격앙했다. 이 광고는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확산됐다. 베이징의 도요타 사무실과 ‘자동차의 벗’ 편집실로 분노한 중국인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더구나 광고 속 돌사자상이 1937년 일본이 일으킨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된 장소인 노구교(盧溝橋)의 돌사자상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이를 본 많은 중국 소비자는 “이 광고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만행을 상기시킨다”며 “노구교의 사자상이 일본차에 경례한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모독”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중국 모독으로 비쳐진 도요타 광고

또 다른 광고는 도요타의 프라도가 눈 덮인 산비탈에서 청녹색의 중국산으로 보이는 트럭을 쇠사슬로 연결해 끌고 올라가는 장면이다. 모델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형태나 색으로 보아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용트럭 ‘둥펑(東風)’이 틀림없다는 게 중국 네티즌의 여론이었다. 프라도를 중국식으로 음역한 ‘패도(覇道)‘란 이름도 문제였다. 알다시피 ‘패도’는 무력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중국권위의 상징인 돌사자가 ‘무력에 의한 통치’란 뜻을 가진 일본차에 고개를 숙이고, 그 일본차가 중국 군용트럭을 끌고 가는 장면을 표현했다고 간주했다. 일본에 의해 권위와 군사력을 모두 잃어버린 치욕적인 근대사를 상기시켰다고 중국인들은 흥분했다.

광고제작사인 ‘사치 앤 사치’ 베이징 지사는 비난이 빗발치차 “판촉 효과가 목적이지 전통문화를 깎아 내릴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하면서 “다른 사진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도요타도 재빨리 중국내 30개 일간 신문에 사과 광고를 내보내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광고를 실은 잡지사도 중국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사과를 받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중국 인터넷 포털에는 도요타의 중국 비하 광고에 반발한 패러디 광고가 잇따라 실렸다. 화가 난 거대한 돌사자상이 프라도를 발로 밟아 짓뭉개는 장면과 눈 덮인 산길에서 나귀가 노끈으로 연결한 프라도를 끌고 있는 장면이 그것이다. 패러디 광고 속의 나귀는 “이 차를 짓밟아 버리고 싶지만 일본인들보다 품위가 있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겠나”라고 독백했다.

도요타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만인 2004년 11월 말 ‘공포의 방’이란 이름이 붙여진 90초짜리 나이키 운동화 광고가 중국의 TV 방송에 등장했다. 당시 미국 프로농구(NBA)의 떠오르는 스타 르브론 제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광고는 제작비만 수백만 달러가 들었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 형식을 빌려 제임스가 쿵푸 고수인 노인과 두 마리의 용, 중국 전통 복장을 한 두명의 비천녀(飛天女)들을 차례로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공포의 방’은 농구장 입구에 있는 두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로 백발이 성성한 ‘무림고수’ 노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은 제임스와 대결을 펼치다가 제임스가 던진 농구공에 맞아 쓰러진다. 다음 장면에서는 연기를 뿜던 용 두 마리가 제임스가 던진 농구공에 맞아 산산이 부서진다. 마지막으로 둔황(敦煌) 벽화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선녀들이 두 팔을 벌린 채 제임스를 향해 달려오다가 역시 농구공에 맞아 연기처럼 사라진다.

광고가 방송되기 시작하자마자 이 광고는 중국의 문화 상징인 용, 백발의 무림고수, 비천(飛天) 선녀를 모독하고 중국의 문화를 멸시하는 행위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많은 시청자가 전화로 TV방송사에 항의했다. 일부 시민들은 TV방송사에 찾아가 광고방송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광고를 본 시청자들이 늘어날수록 반발은 점점 거세졌고, 며칠 사이에 나이키 광고는 언론의 화제에 올랐다. 인터넷 게시판들에는 격렬한 비판의 글이 나붙었다.

지식인과 기자들은 TV방송사와 광고 심의를 총괄하는 중국 방송영화TV총국에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나이키 광고에 대한 반발은 중국은 물론 해외 거주 화교 사회로 확산됐다. 나이키는 이 광고에서 뽑은 그림을 싱가포르의 700여개 버스역에 붙였는데, 싱가포르 화교들 역시 이 스틸컷 광고에 항의했다. 같은 내용이 방영된 한국과 일본에서는 광고에 반발하는 집단적 움직임이 없었다.

결국 2004년 12월 7일, 중국 방송영화TV총국은 나이키 광고가 중국 ‘방송TV광고잠행관리법’ 제6조 ‘모든 중국 내 광고는 국가의 존엄과 이익을 지키고 중국 고유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과 제7조 ‘중국 민족의 풍속과 관습을 모독하는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위배한 것으로 판정해 방송금지 결정을 내렸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외국 기업 광고에 대한 첫 번째 방영중단 조치였다.

나이키 중국 대표는 이에 대해 중국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것이라면서도 “이 광고는 중국 정부의 인가를 받아 방영됐으며 중국과 중국인을 비하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광고의 4개 장면에서 2개 장면은 중국과 무관한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젊은이들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광고의 취지였다”며 “나이키 웹사이트에 오른 ‘공포의 방’ 조회수는 열흘도 안돼 265만회를 기록했는데 이는 중국 청년들이 이 광고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비하 의도 없다고 하지만…

이에 앞서 2004년 9월, 일본의 니폰(立邦)페인트는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황금빛 용이 조각된 전통적인 중국의 정자 기둥 네 개 중 (니폰 페인트를 바른) 하나만 황금빛 용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광고였다. 이 광고 역시 외국인에게는 니폰페인트 제품의 우수성을 재치있게 보여준 유머 소구의 크리에이티브 광고라고 평가될 수 있었을 지 모르나 중국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상징인 용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은 중국 문화와 중국인들에 대한 멸시라고 받아들였기때문이었다. 광고주가 일본 회사라는 것도 국민감정을 증폭시키는데 한몫 했다. 결국 니폰페인트는 광고를 내리고 광고 제작사인 레오 버넷도 중국 국민에게 사과했다.

미국 몬태나대 리 펭루 교수는 ‘논란 소지 있는 다국적 기업의 중국 내 광고캠페인 : 도요타와 나이키에서 얻는 교훈’이란 논문에서 ‘돌사자·용·쿵후 같은 중국의 민족 문화적 상징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그릇된 시각과 광고주의 역사 둔감성이 중국 소비자의 공분을 불렀다. 나라마다 사회 통념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자존심을 건드릴 만한 광고는 자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186호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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