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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사업 만든 괴짜 대부호 

글로벌 파워 피플 ④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우주관광까지 아이디어형 벤처만 400여 개 창업 … 특유의 사업 감각에 창조성 겸비



리처드 브랜슨(63) 영국 버진그룹 회장이 또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3월 29일 브랜슨 회장이 설립 운영하는 우주여행사 버진겔랙틱의 민간 관광우주선 ‘스페이스쉽2’가 자체 로켓 엔진으로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 때문이다.

이날 스페이스쉽2는 대형 운반기 화이트나이트2에 실려 고도 1만5000m까지 올라간 뒤 분리됐다. 잠시 자유 낙하하던 우주선은 로켓이 점화하면서 꼬리에서 불꽃을 뿜으며 다시 솟구쳤다. 속도가 순식간에 초음속을 돌파해 마하 1.2까지 올라간 우주선은 16초 뒤 1만7000m의 고도에 도달했다. 그 뒤로는 활강으로 상공을 비행하며 서서히 고도를 낮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의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고공에서 우주선 로켓을 점화해 초음속 비행을 하기는 버진 겔랙틱이 처음이다. 시험 20만 달러의 요금으로 우주관광이 가능해질 수 있는 길이 이번 시험비행으로 열리게 됐다고 영국 BBC방송 등 서구 언론이 보도했다. 이날 대기권 밖으로까지는 시험비행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우주여행의 실현 가능성이 입증됐다. 버진 겔랙틱은 추가 시험비행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해 안에 첫 대기권 밖 비행 시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존의 우주비행은 수천만 달러의 비용이 드는 로켓을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방식이었다. 우주선이 지상에서부터 올라가야 했기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하지만 브랜슨 회장은 우주를 여행하는 관광우주선을 운반 항공기에 실어 고도 1만5000m까지 올라간 뒤 로켓을 점화해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지상 100㎞ 고도의 우주경계까지 올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비용이 훨씬 덜 드는 획기적 방식이다. 이번 시험비행 성공으로 브랜슨은 내년 상반기 첫 상업 우주관광에 도전한다. 우주관광 비즈니스가 활성화하면 브랜슨은 세상에 없던 사업을 새롭게 창조해 거대 시장으로 키운 공로자가 된다.

20만 달러짜리 우주여행 시대

스페이스쉽2는 한 번에 2명의 조종사와 6명의 승객을 싣고 우주 경계에서의 6분간 무중력 상태 경험을 포함한 3시간 비행에 나선다. 러시아의 우주관광처럼 엄청난 체력 조건과 장기간의 훈련은 필요 없다. 요금은 20만 달러다. 러시아에서 수개월에 걸친 우주인 훈련을 포함해 받는 우주관광비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이미 560여 명의 예약자가 2만 달러의 계약금을 내고 예약했다.

고객 중에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부부, 애쉬튼 커처, 톰 행크스 등이 포함됐다. 개인 우주관광은 전 세계 수많은 부호를 끌어들이는 VVIP 관광으로 자리 잡았다. 우주 관광을 다녀온 순간 유명 인사가 되는 것도 매력이다. 홍보를 위해 유명 인사들의 여행 참여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그런데, 브랜슨은 1호 우주여행은 자신과 가족이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브랜슨은 1969년 TV로 지켜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잊지 못해 자신과 가족의 우주여행과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로 키울 꿈을 키웠다. 그래서 2004년 우주관광사업 구상을 밝혔지만 당시에는 엉뚱한 발상이라고 사람들의 코웃음을 샀다. 하지만 9년 만에 일반인 우주 여행의 꿈이 실현 직전 단계까지 온 것이다.

브랜슨 회장은 올 3월 기준 재산이 46억 달러다. 미국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272위, 영국 6위의 대부호다. 하지만 그의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력은 재산이나 사업 규모로만 따질 수 없다. 우선 그는 고교 졸업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평생을 도전적인 삶을 살며 자수성가로 거대한 버진그룹을 일군 신화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그가 창업한 회사는 한결 같이 아이디어형 벤처 기업이다.

대부분 생활밀착형 서비스형 비즈니스다. 창조적인 경제활동으로 거대 서비스 시장을 일군 것이다. 그는 버진그룹을 운영하며 400개가 넘는 기업을 창업한 공로로 2000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의 비즈니스 성공 비결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아직 없는 것을 개발해 공급하라’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돈을 벌라’는 말로 요약된다.

뿐만 아니다. 재산을 좀 모으자 요트·열기구 등 온갖 탈것으로 대양을 횡단하고 세계일주를 시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 자신이 화제를 몰고 다니며 미디어를 떠들썩하게 하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면서 자신을 브랜드화한 것이다. 화제의 인물이 되기 위해 그만큼 노력하는 부호도 찾기 힘들다.


1985년 ‘버진 애틀랜틱 챌린저 2호’를 몰고 세계 기록을 2시간 단축하면서 대서양을 횡단했다. 다음해부터는 ‘버진 애틀랜틱 플라이어’라는 이름의 대형 열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수시로 횡단했다. 1991년 1월에는 태평양 횡단에도 성공했다. 일본에서 캐나다 북부 북극지역까지 1만800km를 열기구를 타고 비행했다. 평균 시속 394km로 날아 비행 속도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2004년 3월에는 수륙양용 차량을 이용해 1시간 40분 6초의 기록으로 영국 도버 해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웠다. 브랜슨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운영하는 버진 그룹을 동시에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1998년 자서전을 냈는데 책 이름이 『처녀성을 잃으며(Losing My Virginity)』였다. 버진그룹을 패러디한 것이겠지만 이 괴팍한 책 이름때문인지 자서전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렇게 극적인 삶은 그 자체로 화제를 만들어왔다. 이는 버진 그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물론 영업에도 도움이 됐다.

세계 272위, 영국 6위 부자

그는 고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이 아니다. 1950년 영국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대법관, 아버지는 변호사인 법조인 집안이었다. 부모의 교육열로 사립학교에 다녔으나 난독중(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는 정서장애)이 있어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고교 졸업장을 받고 학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입 예비교’에 진학하는 대신 사업으로 진로를 잡았다. 그의 어머니 이브는 “네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아들을 격려했다. 브랜슨은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브랜슨은 남들이 모두 좋아하지만 아무도 사업으로 삼지 않은 비즈니스를 찾아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아이디어 서비스 벤처의 시작이다. 1966년 첫 사업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심고 잉꼬를 길러 팔려다 실패했다. 첫 실패를 맛본 그는 교회 지하실을 빌려 음반 우편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튜던트‘라는 이름의 잡지도 발행했다. 당시 한 직원이 “사장이나 직원이나 일하는 사람 모두가 사업에 초보이니 브랜드 이름을 버진이라고 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버진’이라는 회사 브랜드가 탄생했다.

브랜슨의 전략은 모든 비용을 극도로 줄여 무조건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고객은 원하는 상품을 싼값에 사면 만족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아울러 잡지를 이용한 파격적인 광고 전략을 펼쳤다. 우편 사업으로 시작한 음반사업은 곧 매장 개설로 이어졌다. 1971년 21세의 브랜슨은 런던 번화가인 옥스퍼드 거리에 매장을 열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 한다

1971년 모은 돈을 털어 음반제작사 버진레코드를 세웠다. 하나의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그 다음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브랜슨식 연쇄 비즈니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임대료가 싼 시골에 스튜디오를 열고 데뷔조차 하지 않은 풋내기 음악가들에게 스튜디오를 빌려줘 연습과 작곡을 하게 했다. 기존 음반사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기괴하거나 기상천외한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벤처사업이다.

‘섹스피스톨’ 같은 개성 넘치는 그룹이 발탁돼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파우스트’ ‘캔’, 보이 조지의 ‘컬처클럽’ 같은 새로운 음악인을 발탁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음반사업을 다른 사업가가 하지 않는 벤처 방식으로 벌인 것이 주효했다. 1980년대에 당시로선 충격적인 게이 나이트 클럽도 열었다.

브랜슨은 1984년 세계적인 해외 여행붐을 미리 예상하고 버진 항공(버진 애틀란틱 에어웨이스)을 세웠다. 버진 항공이 1992년 일시 자금난에 빠지자 이를 살리기 위해 잘나가던 버진 레코드사를 EMI에 5억 파운드에 팔았다. 1993년에는 철도 민영화가 한창이던 영국에서 버진트레인을 설립해 철도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94년엔 휴가지에서 마실 버진 콜라와 버진 보드카를 내놨다. 휴가와 레저라는 현대인의 삶의 개념에 맞춘 일관형 비즈니스 제국인 버진그룹을 이렇게 착착 건설했다. 1999년에는 버진 모바일을 세워 글로벌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캐나다·인도·미국·호주·남아공·프랑스·칠레·카타르·싱가포르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벌였다. 2006년 10억 파운드를 받고 영국 케이블 TV사인 NTL에 사업권을 넘겼다.

발 빠른 사업 감각이란 말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과 성공담이다. 2004년 시작한 우주선 사업을 포함해 브랜슨은 21세기에 가장 창의성이 넘치는 비즈니스 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삶 자체가 창조적이다. 창조경제로 경제를 살리려면 드라마 같은 브랜슨의 삶부터 벤치마킹 해야 하지 않을까.

대입 예비교 영국에선 16세 때 졸업시험을 보고 고교 과정을 마친 뒤 대학 진학을 원하는 사람은 2년간 대입예비교를 다닌다. 일종의 예과인 셈이다. 대신 영국 대학은 3년제다.

1187호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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