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짠순이’가 샤넬백 왜 살까? 

여성의 소비심리 

전미영 서울대 연구교수·소비심리학
소비할 때 과정과 관계 중시 … 감성이 여성만의 구매 기준에 큰 영향



소비 영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힘이 세다. 증권시장 현황이 궁금하면 백화점·대형마트에 가서 주부들의 장바구니를 살펴보면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우리나라 소비의 70~80%를 차지한다. 소비경제의 핵심이다.

‘엄마’ ‘주부’ ‘여성’이 언제·어떻게·왜 지갑을 여는지에 기업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여자는 언제 지갑을 열까? 남자와 여자의 소비는 어떻게 다를까?

남성은 목표 지향적으로 구매한다. 구매하기로 한 제품이 있으면 매장으로 가서 살 것만 사고 집으로 돌아온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여성은 다르다. 일단 전체 매장을 돌아다니며 최신 유행을 파악한다. 고민하는 틈틈이 동행한 사람과 커피도 마시는데 이것도 쇼핑의 일부라고 여긴다. 쇼핑이 끝나면 계획에 없던 물건도 쇼핑백에 담는다.

여성에게 소비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구매의 효율성이나 소비의 결과는 그리 중요치 않다. 소비란 게임이자 놀이며 일종의 의식(ritual)이다. 여성의 소비를 알고 싶다면 과정자체에 여성이 부여하는 의미와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이해해야 한다.

여성은 소비 과정, 남성은 목적 중시해

근래 유행하는 ‘해외 직구(해외 직접구매)’를 살펴보면 여성의 과정 지향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해외 직구가 여성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쇼핑 과정의 즐거움 때문이다. 해외 직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첫 단계는 주문서 작성이다. 결제에 성공하면 여성들은 그 장면을 캡처해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다. 그러면 구매 성공을 축하하는 댓글이 달린다.

둘째 단계는 국제 배송 과정이다. 구글맵을 켜놓고 내 물건이 배송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 역시 캡처해 커뮤니티에 올린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또 한 번 축하한다. 마지막은 국내 배송 과정이다. 세관을 통과했다는 전화를 받고 무사히 물건을 받으면 제품사진을 찍어 게시판에 올린다. 사람들은 제품을 품평하며 부러움의 멘트를 보낸다. 해외 직구를 하는 여성의 모습은 마치 게임에서 미션을 수행하거나 관중 앞에서 운동 경기를 하는 남성과 같다.

여성의 소비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관계의 과정이다. 계산용 소프트웨어 매스매티카(Mathematica)로 유명한 스티브 울프램이 최근 페이스북 사용자들에 대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페이스북에 작성된 남성의 글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이었지만 여성은 기념일이나 친구·가족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여성이 더 관계 지향적이라는 의미다.

여성은 혼자 쇼핑하지 않는다. 구입할 제품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친구와 함께하길 원한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이라도 주변 사람의 평가가 좋으면 갑자기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성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다.

온라인에서도 타인의 영향력은 쉽게 발견된다. 일반인이지만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파워 블로거, 이른바 ‘OO맘’들은 셀러브리티 수준으로 다른 여성들의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은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블로그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거리며 그들이 구매한 제품을 부러워한다.

본래 소비는 타인의 욕망을 대신 욕망하는 경향이 강하다. 르네 지라르는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이상적인 무언가가 되고자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경향은 특히 여성에게서 두드러진다.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쉽게 치환한다.

여성이 커뮤니티 카페나 블로그 팬덤에 쉽게 열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온라인 회원들이 추진하는 공동구매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동참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마음이 그들을 모방해 구매하거나 그들과 함께 구매하는 행태로 발현되는 것이다.

여성 소비의 또 다른 특성은 감성 지향성 때문에 구매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여성 소비자의 구매 기준은 대단히 탄력적이다. 특히 가격이 그렇다. 어떤 제품은 지나칠 정도로 가격 비교를 하면서 다른 제품은 비싼 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뜻 지갑을 연다. 제품의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브랜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여성의 이런 소비 특성은 고가 제품 구매에서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여성 사이에서 흔히 ‘꿈의 가방’이라 불리는 ‘샤넬 2.55’의 가격에는 1955년 2월 코코 샤넬의 생일을 기념해 만들어진 점과 가방의 가로 길이가 25.5cm라서 ‘2.55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 값이 포함된다.

에르메스의 ‘켈리백’은 모나코의 왕비가 된 세기의 신데렐라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즐겨 썼다는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두 제품 모두 약간 고급스런 가방일 뿐이다. 그러나 이면에 녹아있는 스토리와 감성 때문에 여성은 제품의 품질보다 훨씬 더 높은 금액을 선뜻 지불한다. 기능이 가치의 대부분 남성과는 판이한 소비 행태다.

남성은 기업이 마음에 안 들어도 상품이 좋다면 산다. 여성은 만든 기업이 싫으면 상품도 사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보이콧도 여성이 주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논쟁의 중심에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여성 소비자가 남성보다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제품과 기업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감성적 특성이 강한 때문이다.

한없이 짠순이가 됐다가도 때로는 과감하게 소비하는 여성의 지갑을 열려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득 못지않게 공감과 소통의 메시지가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 시시각각 탄력적으로 변하는 그들만의 구매 기준을 파악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변하면 여성의 소비 패턴도 바뀐다. ‘여자는 이런 제품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형태의 소비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럴 때 일수록 여성 소비 패턴의 기저에 깔린 심리 파악이 시급하다.

기업 이미지 싫으면 제품까지 싫어져

최근 제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공간과 분위기, 그곳에서의 경험과 기억까지도 소비하려 드는 ‘공간 소비’는 소비 과정을 중시하는 여성 소비자의 과정 지향성과 맞닿아 있다. 타인과의 피상적 관계를 떠나 서로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배려를 기대하는 여성의 관계 지향성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일회성이 아닌 밀착 커뮤니케이션 관계로 바라보는 ‘일대일 선호’의 형태로 발현된다. 단순함에 끌려 시작한 유치한 스마트폰 게임을 주위에 퍼뜨려 전 국민적 상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감성 지향성도 최신 여성 소비 성향의 기저에 깔려 있다. 꼼꼼하게 가격을 따지면서도 공감과 소통 인간적인 따뜻함에 끌리는 여성의 감성 지향성은 불안 요인을 제거한 제품, 싸면서도 개인의 품격에 기여하는 제품에 지갑을 쉽게 여는 소비 행태로 나타난다.

주식·부동산·자동차·스포츠 등 남성의 영역이라 불리던 곳에서 활약하는 여성이 늘어날 수도 있다. 변화하는 여성은 여자다움뿐만 아니라 남성성까지도 포괄하는 다중 인격적 소비를 구사한다. 여성을 겨냥한 산업에서 여성적 특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남성 위주의 콘텐트가 증가하는 것은 변화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1189호 (2013.05.2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