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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형(융합형·탐색형·간소형) 인사 시스템으로 인재 발굴 

재계의 이색 인사실험 

길거리 캐스팅에 ‘학당’ 운영 … 실적 못지 않게 장래성 주목



“이건희 회장의 평소 이야기 중 70~80%는 인사에 대한 겁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주요 회의에는 인사팀장이 꼭 배석합니다.” 삼성전자 인사팀장인 원기찬 부사장의 말이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한 삼성전자가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인사 혁신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원부사장은 “신경영 이전의 인사는 회사 전략을 뒤에서 지원하는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전략을 이끈다”고 전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다. 그러나 기업이 갈수록 중시하는 요소 중 하나가 인사다. 삼성처럼 ‘인사가 곧 전략’인 시대다. 재계 관계자는 “무한경쟁 시대에 기업은 종전보다 높은 효율을 원한다”며 “사람에 대한 투자나 재배치야말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인사 혁신이 쉽고 빠르게 더 높은 효율을 가져다 준다는 얘기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 재계에는 ‘인사실험’이란 말이 유행이다. 실험의 주요 사례를 유형별로 짚어봤다.

#C: Convergence(융합형)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의 공통점은 뭘까? 인문학을 공부한 후 정보기술(IT) 분야에 뛰어들어 엄청난 족적을 남긴 융합형 CEO란 점이다. 잡스는 리드대 철학과를 중퇴했다.

주커버그는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지만 심리학을 복수전공 했다. 두 사람의 인문학적 소양은 아이폰·페이스북처럼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히트상품을 만들고 성공한 기업을 일군 원동력이 됐다.

삼성도 이런 융합형 인재 발굴에 나섰다. 3월에 낸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 요강엔 인문계 인재를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채용한다는 이색 내용을 담았다. 일명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라는 일종의 학당을 만들기도 한다. 인문학 전공자가 6개월간 960시간의 소프트웨어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 삼성전자·삼성SDS에서 채용하는 방식이다.

상반기 채용이 끝났고 하반기까지 200명을 채용한다.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삼성전자 신입사원의 70~80%가 이공계로, 인문계 출신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주자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 시점에서 잡스나 주커버그 같은 융합형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정한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연구소장은 “사소한 것이 큰 차이를 낳는다. 문과·이과를 나눌 게 아니라 경계를 허물고 서로 융합해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좌뇌·우뇌 어느 하나만 써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시대입니다. 삼성은 인문학적 감수성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합니다.”

#S: Search(탐색형)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유명하다. 위기를 기회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 이런 적극적인 스타일은 최근 인사실험에서도 나타났다. 현대자동차가 6월 25일부터 시행한 ‘더 에이치(The H)’ 프로그램은 인사담당자들이 대학 캠퍼스 등을 방문해 직접 인재를 탐색하는 이색 채용방식이다. 인재가 오길 소극적으로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찾아 나서면 되지않겠느냐는 정 회장 특유의 스타일이 반영됐다.

내용은 이렇다. 우선 인사담당자 20여명이 암행어사처럼 비밀리에 대학 캠퍼스나 인근 주점 등을 찾아 후보자 탐색에 나선다. 인성 좋은 학생을 발견하면 신분을 밝히고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한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 예컨대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늦게 나가는 학생의 경우 성실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마치 길거리 캐스팅 같은 방식이다.

이른바 ‘스펙’을 보지 않고 100% 인성으로 뽑을 계획이라 회사 내부에서도 기대감이 크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선발 인원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며 “스펙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인성이 가장 중요한 인재 선발 기준이란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7월 말에 길거리 캐스팅이 끝나면 8월부터 11월까지 월 2회 대상자 모임을 만들어 인사담당자들과 서울 근교 여행, 봉사활동 등의 시간을 갖는다. 이어 면접과 직무설명회를 거쳐 대상자 면면을 파악한 뒤 12월에 최종면접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I: Inartificiality(간소형)

박용만 두산 회장은 친화경영의 대명사다. 회사에 가 기 싫다고 농담한 직원에게 트위터로 ‘내 차 보내줄까?’하고 농을 건넬 만큼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두산그룹이 6월 3일부터 시행한 새 인사 평가·보상제도는 박 회장의 리더십과 닮았다. 점수를 매겨서 서열화하는 종전의 고과제도가 아니다. 승진 대상자를 모든 임직원이 알 수 있도록 일괄로 발표하는 대신 업무상 필요한 사람에게만 알리는 방식이다.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절차를 간소화했다.

새 제도는 단순히 과거 실적을 점수화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인재 육성이 목표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공정성·소통·근성·혁신 마인드 등 45개 항목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후배를 잘 돌보는 덕목도 항목에 포함되는 등 친화력이 중요해졌다. 상사와 평가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눈 다음 공감하는 과제를 도출해 1년짜리 개선 계획을 세운다. 과거 실적이 아닌 1년 후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평가의 주요 잣대가 된다.

이렇게 평가한 개인의 성장성·역량·업무 적합성은 다음 업무책임자(승진 개념)를 선정하는 데 활용한다. 박진위 두산그룹 차장은 “점수로 매길 때에 비해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단 우려를 감안해 평가자와 인사 대상자 사이 끊임없는 대화로 객관성을 확보할 것”이라며 “개인의 성장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과거보다 미래 지향적인 인사실험이란 얘기다. 매년 6~7월에 정기적으로 하던 승진인사 발표도 없어진다. CEO급 정도만 대외에 드러나며 나머지는 업무상 필요한 사람만 알게 된다. 입사 동기 중 승진 대상자와 누락자가 나뉘는 일도 없게 됐다.




1197호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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