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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위협적인 중소기업 견제하는 수단 

특허 공격에 취약한 중소업계 

함승민·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대개 소송 못 버티고 마지못해 합의 … ‘특허 괴물9특허관리전문회사)’도 만만한 중소기업 노려



국내 중소기업들이 특허 분쟁 탓에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 기업과 특허관리전문회사(NPE)가 국내 중소기업을 공격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다. 공격 방법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나 인력에서 특허 공세에 대응할 역량이 부족하다. 중소기업의 특허 분쟁 유형과 대응책을 알아봤다.

#1. 지문인식 기술을 보유한 슈프리마는 연 매출 500억 대의 국내 중소기업이다. ‘세계 지문인식 알고리즘 대회’에서 2005년과 2006년 연속 대상을 받을 만큼 기술력을 인정 받은 회사다. 그런데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면서 특허 분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10년 처음 경쟁사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침해 무효 판정을 받아냈다. 50억원의 소송 비용과 2년이란 시간을 날려 보내야 했다. 그런데 지난해 다시 비슷한 소송에 휘말렸다. 다른 경쟁사가 특허 침해로 슈프리마를 제소한 것이다.

#2. 국내 중소 보안업체인 A사는 지난해 유럽의 거래업체 B사로부터 “특허 문제를 먼저 해결할 때까지 거래를 보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국의 한 특허관리전문회사가 “A사가 우리의 특허를 침해했을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경고장을 B사에 보낸 것이다.

해당 기술의 특허 침해 여부는 모호했다. 소송에서 A사가 이길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A사는 특허관리전문회사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문제를 매듭지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B사와 거래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봤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 간 국제 특허 분쟁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 간 국제특허 소송 건수는 21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1건)보다 130.8% 증가했다. 이 중 중소기업이 소송에 휘말린 건수는 42건이다. 166건인 대기업보다는 적다.

그러나 이 수치는 국내 기업의 지적재산권 분쟁 사례 중 비소송 사건을 제외하고 국내외 법원에서 다뤄진 국제특허 분쟁 사건만을 모은 것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소송까지 가기 전에 발을 빼는 경향이 강하고, 거래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 거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쟁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분쟁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분야별로는 정보통신 분야 분쟁 건수가 91건으로 43.3%를 차지했다. 전기·전자가 73건(34.8%)으로 뒤를 이었다. 전기·전자 분쟁 건수는 지난해 연간 49건이었으나 올해 가파르게 증가했다. 한국의 대표적 수출 산업인 정보통신·전기전자 두 분야의 분쟁 건수가 상반기 국제특허 소송 210건 가운데 164건(78.1%)이다.

이처럼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특허 소송이 증가한 건 기술이 복잡해지고 융·복합 제품이 보편화하면서 특허권의 적용·해석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강민수 광개토연구소 대표변리사는 “하나의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수많은 기술과 부품이 들어간다”며 “디자인과 서비스까지 더하면 제품 한 개당 수십만 개의 특허 분쟁 가능성이 도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중소기업 합의 잘해 주더라”

특허 분쟁이 급증한 다른 이유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커짐과 동시에 해외로 진출하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서다.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약할 때는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이제는 대등한 기술력을 갖추고 미국·중국 등 같은 시장에서 부딪치게 됐다. 가격 경쟁력은 오히려 국내 기업이 우위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해외 기업들이 대응 수단으로 특허를 빈번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발전소 설비를 생산하는 D기업은 해외 경쟁 입찰에서 이기자 바로 경쟁 업체로부터 특허 소송을 당해 많은 소송 비용을 물었다. 전종학 대한변리사회 부회장은 “글로벌 기술 평준화로 지적재산권 공격이 신흥국 후발 주자의 진입을 막는 선진국 기업의 방어 전략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기업과 일본 기업의 국제 특허 분쟁은 이런 사례가 대다수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는 일본 기술을 모방해 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 기업은 국내 기업의 기술 차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수출기업이 성장하고 중국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오래 전부터 쓰던 기술에 대해 특허 소송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 일본 기업과의 분쟁 건수는 115건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겹치는 중국에서 특허로 충돌하는 한·일 기업의 수도 늘어날 거라고 내다봤다. 특허관리 전문회사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노리기 시작한 건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미국·일본 이어 중국과의 분쟁 증가세

광개토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특허관리전문 회사에게 특허 침해를 사유로 제소 받은 중소기업은 11개 업체다. 2005년 이후 매년 한 두건에 불과했던 특허관리전문회사 소송이 급증한 것이다. 지난 한 해 발생한 소송 건수보다 많다. 전 부회장은 “경쟁사 간 특허 소송도 늘고 있지만 특허관리전문회사가 제기한 소송이 훨씬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특허관리전문회사의 먹잇감이 된 건 대기업과 달리 라이선스 계약 등으로 분쟁을 마무리 지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강민수 대표변리사는 “중소기업은 분쟁이 생기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발을 빼거나 합의로 끝내는 경우가 많아 특허관리 전문회사가 쉽게 돈을 버는 상대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중소기업 전문 변리사는 “미국 특허관리전문회사 사이에서 ‘한국 중소기업이 합의를 잘해주더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해외에서 특허 분쟁에 휘말릴 경우 끝까지 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용과 인력부담 탓이다. 해외에서 발생한 특허 소송 비용은 국내에 비해 규모가 크다. 미국에서 특허 소송에 걸리면 비용만 10억원이 넘는다. 항소 절차를 거칠 때마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기간은 최소 2년 이상이다. 길게는 10년 이상 가는 사례도 있다.

또 소송 기간 동안에는 특허권자(특허소송을 제기한 측)의 권리를 인정한다.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할 수 있지만 나중에 만약에 소송에서 지면 그동안 영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수익에 징벌적 손해 배상까지 해야 한다. 결국 일단 영업을 중지하고 소송을 진행한다. 소송을 거쳐 승소하더라도 최소 2년 이상 영업에 차질이 생기는 셈이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의 특성상 영업이 잠시 중단돼도 회사 전체가 휘청댈 정도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인력과 시간의 낭비도 중소기업 경영진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결국 대부분 특허 소송으로 가기 전에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해 마무리 지으려 한다. 분쟁 당사자는 합의에 따라 합의금과 특허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하게 된다. 합의금 역시 10억원을 웃돈다. 로열티는 업종별 영업이익 수준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보통 매출액의 1~5% 수준이다.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은 특허를 보유하기 어렵다는 것도 국제 특허 분쟁에선 불리한 점이다. 특허 전쟁에서 특허권 수는 일종의 무기다. 많을수록 분쟁에서 유리하다. 혹시 상대방이 침해한 특허를 찾으면 그만큼 협상의 여지가 커진다. 삼성과 애플의 분쟁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몇 개의 특정 기술만 가지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대응력이 부족하다.

거래처 통한 간접 특허 분쟁도 골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간접적인 특허 분쟁에도 자주 노출된다. A사와 같은 사례다. 특허 소송을 제기하는 해외 기업은 중소기업과 직접 부딪치지 않고 중소기업에게서 납품 받는 거래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에 특허 침해 소지가 있으면 부품 업체가 아니라 대기업에게 특허 침해 가능성을 알리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거래 기업은 쓸데 없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특허 침해 여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중지하거나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다른 부품업체와 거래한다.

지난해 영국 다이슨과 국내 제조사와의 분쟁이 비슷한 사례다. 당시 국내 홈쇼핑 회사들은 인기 많은 ‘날개 없는 선풍기’를 국내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 받아 판매하려 했다. 그러자 날개 없는 선풍기 대표 업체인 다이슨이 국내 중소기업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홈쇼핑사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홈쇼핑사에서는 이 상품 판매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특허 침해 상품을 판매하면 유통업체에도 책임이 돌아갈 가능성이 있어서다.

전 부회장은 “원청 기업들은 납품 받는 물건의 특허 침해 소지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악의적인 경쟁사나 특허관리전문회사는 객관적으로 특허 침해 소지가 크지 않아도 일단 소송을 걸고 경고장을 보낸다. 해당 중소기업의 거래를 방해하기 위해서다. 소수의 판매 채널에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소기업에게는 이 방법이 큰 압박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빈번히 발생하자 대기업에서 특허 분쟁에 대한 면책 조항을 미리 요구하기도 한다. 거래 물건에 대한 특허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하청 중소기업이 지고 분쟁으로 인한 대기업의 손실도 부담한다는 내용이다. 간혹 관련 조항을 확인하지 않고 계약했다가 특허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쟁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비용만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대기업이 분쟁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경쟁사나 특허관리전문회사의 무리한 합의 요구 조건을 그대로 수락하면 중소기업은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 거래계약을 할 때도 특허 분쟁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내용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기술이 복잡해지고 융·복합 제품이 보편화하면서 특허권의 적용·해석 범위가 넓어졌다. 특허 소송이 증가하는 배경이다.



안방서 ‘특허 맷집’ 길러야

전문가들은 특허 침해에 관대한 국내 환경이 국내 기업의 특허 분쟁 내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전 부회장은 “특허에 관대한 환경에서 사업하던 국내 기업은 분쟁의 기술도 경험도 적어 ‘특허 맷집’이 없다. 온실에 있다가 척박한 해외 시장으로 나가면 대응력이 없어 두드려 맞고 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내 특허 인프라는 주변국에 비해 미약하다. 일본과 대만은 일찌감치 기술 기반의 중소기업이 발달했다. 40년 전부터 특허 분쟁에 대비해왔다. ‘일본에는 대장간에도 특허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국내는 1989년 삼성전자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송사를 겪은 것이 본격적으로 특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다. 불과 20여년 전이다. 중소기업은 그보다도 뒤늦은 10년 전에서야 특허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특허 침해 소송에서 얻는 이익도 손실도 크지 않다. 손해배상액이 작기 때문이다. 이해영 리앤목특허법인 부소장은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의 특허 손해배상액은 비교적 작은 수준”이라며 “특허에 대한 인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무디게 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특허의 효용성이 크면 비용을 감수하고 특허를 준비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배상액을 감수하고 특허를 침해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이에 따라 방어적인 특허 개념에서 공격적 특허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내에서 국가가 기업을 보호하기보다는 시장에서 기업이 특허에 대한 경험과 경쟁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한 특허권을 활용해 기업 경쟁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국·유럽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특허박스(patent box)’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특허박스는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을 통한 수익에 대해 소득세를 감면하는 제도다.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기업의 특허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다는 취지다. 프랑스·영국 등 유럽 8개국과 중국 등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이 높다. 그 덕분에 특허권에 대한 인식과 투자가 보편적이다. 또 특허권자 위주의 판결 경향이 강하다. 소송 절차도 까다롭고 배상액 규모가 크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다. 고의 침해가 인정되면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해야 한다. 분쟁에서 한 번 지면 국내 중소기업이 휘청거릴 수 있는 규모다. 또 특허 무효 소송 때 투자자-국가소송제도(IDS) 의무를 잘 준수했는지도 엄격하게 보는 편이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중소기업은 규모가 큰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적별 국내 기업의 분쟁 수를 보면 미국 기업과의 분쟁이 가장 많다. 올해 상반기 미국 기업과의 분쟁이 882건으로 71.4%를 차지했다. 미국 기업의 제소가 762건, 한국 기업의 제소가 120건이다. 일본 기업과 분쟁이 115건(9.3%)이었고 그 외 독일·대만·스위스에 본사를 둔 기업과의 분쟁이 많다. 중국은 ‘짝퉁의 천국’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특허 수준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다. 중국 내 특허 소송 건수가 늘고 있고, 특허 출원 수도 급증했다.

최규승 리앤목 특허법인 변리사는 “특허권자에게 우호적 판결이 나오는 분위기는 한국보다 강한 편”이라며 “과거와 같이 중국에 만만하게 접근하다가 큰 코 다치는 국내 기업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특허권 보호가 해외 기업과 자본 유치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한 중국 정부가 적극 나선 결과다. 이에 따라 팔이 안으로 굽던 과거에 비해 자국 기업과 해외 기업 승소 비율에서 큰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향후 중요한 특허 분쟁 시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싱가포르 ‘특허 허브’로 나서

중국을 등에 업은 싱가포르도 새로운 ‘특허 허브’로 주목 받는다. 싱가포르는 최근 세계 특허 거래 허브 플랜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특허금융·평가·담보대출·출원명세서·분쟁·소송·중재 등 모든 특허 관련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고객은 중국의 기업과 조세회피 목적의 부유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싱가포르에서 특허를 사들여 미국처럼 공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특허 준비가 제대로 안된 한국 중소기업에게는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관리전문회사(NPE, Non-Practicing Entity) 실질적인 생산활동 없이 지적재산권만 보유만하면서 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해 로열티를 챙기는 특허전문 기업. ‘특허 괴물’이라고도 불린다.

1201호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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