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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수입차 업계 인사 갈등 - 본사 입김 세지면서 갈등 커져 

 

김태진 자동차 전문기자
장수 CEO 박동훈 사장 전격 사임 … “한국인 믿을 수 없다” vs “한국적 정서 중요하다”

▎박동훈 전 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은 9월 1일부터 르노삼성 영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8월 19일 수입차 업계가 술렁였다. 9년간 폴크스바겐코리아를 맡으며 승승장구한 박동훈(61) 사장이 9월 1일자로 르노삼성자동차 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옮긴다는 르노삼성의 발표의 후폭풍이었다. 박 사장은 2005년 폴크스바겐코리아 설립 때부터 사장을 맡아 한국에 폴크스바겐 브랜드를 안착시킨 주인공이다. 첫 해 1635대 판매에서 지난해 1만8395대로 10배 이상으로 키웠다. 올해 7월까지도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판매가 늘어나며 연말까지 2만대를 훌쩍 넘길 태세다.

르노삼성은 19일 오전 박 본부장 영입 자료를 냈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일부 고위층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직원들이 박 사장의 이직을 알지 못했다.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한 것이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이후 즉각 박 사장 사임 자료를 냈다. 회사 관계자는 “문의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사임 팩트만 전달했다”고 말했다.

6월에 이미 사표 제출

폴크스바겐은 7월 국내에 2696대를 팔아 처음으로 메르세데스-벤츠(2567대)를 제치고 수입차 판매량 2위에 올랐다. 박 사장 주도로 7월 초 출시한 7세대 골프가 한 달 동안 1000대 넘게 팔리면서 대박을 낸 덕분이다. BMW·벤츠·아우디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강세인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대중차 브랜드인 폴크스바겐이 2위까지 약진한 것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회사에서 박 사장이 갑자기 이직하자 뒷말이 무성하다. 국산차 업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르노삼성으로 옮겼다는 점 때문이다. 회사 내부 소식통은 이미 박 사장이 6월에 사표를 냈지만 수리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전한다.

박 사장은 국내 수입차 업계를 대표하는 장수 CEO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이종 조카인 그는 1989년 한진건설의 볼보수입차 사업부장을 거쳐 고진모터임포트 부사장,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을 맡았다. 특히 2005년에는 미국에서 2년만에 철수한 대형 세단 ‘페이톤’을 한국에 들여와 대박을 냈다.

폴크스바겐을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슷한 반열로 끌어 올린 것이다. 독일 본사에서는 그를 ‘페이톤 박’ 이라 부르며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박동훈 사장은 김효준 BMW 사장, 윤대성 수입차협회 전무, 송승철 한불모터스 사장과함께 수입차 1세대를 이끈 인물”이라며 “수입차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하던 초창기부터 뛰어들어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특이한 점은 박 사장의 공식 사임 발표 이전에 이미 독일 본사에서 후임 지사장을 선임했다는 것이다. 7월에 독일 본사 임원급인 토마스 쿠엘 인도담당 본부장을 한국 지사장으로 내정했다. 쿠엘은 이미 7월에 한국에 들어와 머물면서 수입차 시장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독일 아우디·폴크스바겐 그룹의 한국 법인인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는 요하네스 타머 사장이 법인 전체를 총괄하면서 아우디 브랜드를, 쿠엘은 폴크스바겐 브랜드를 담당하는 구도다.

사임 발표 전 후임 지사장 선임

폴크스바겐 독일 본사의 임직원 정년은 65세로 긴 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년에 대해 독일과 똑같은 적용을 하진 않는다. 박 사장은 지난해 만 60세였다. 지난해 하반기 독일 본사에서 후임 사장을 선임한다는 통보를 간접적으로 전달받았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당시 이미 헤드 헌터를 통해 후임 사장 자리를 제안해 박 사장의 거취가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같은 독일 자동차 회사인 BMW의 정년은 60세다. BMW는 메르세데스-벤츠를 추월해 세계 1위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라선 공로가 큰 헬무트 판케 회장을 2007년 7월 60세 정년이라는 이유로 라이트 호퍼(50) 회장으로 교체했다. 당시 판케 회장은 BMW의 성공을 들어 연임을 원했지만 퀀트 일가가 대주주인 BMW 감독이사회는 ‘정년 규정을 어길 수 없다. 조직이 우선’이라는 결정을 내려 화제가 됐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는 박 사장 이전에도 올해만 10여명이 자리를 떠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 회사 전체 임직원은 100명이 채 안 된다. 더구나 각종 비용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마케팅·재무담당 임원 같은 요직을 모두 본사 출신 독일계로 채워 본사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마찰도 잦아졌다는 것이다. 전임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은 비(非) 독일계로 본사에 대한 영향력에 한계가 있었다.

퇴직 직원의 상당수는 독일 출신 임원의 업무 간섭에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나 비용 집행 권한에 대해선 한국인 사장의 권한을 대폭 줄이고 오로지 판매만 독려하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새로 부임한 독일 임원은 “본사 임원도 손수 운전하는 데 한국 지사장에게 무슨 기사가 필요하냐”며 기사를 없앴다가 몇 달 뒤 다시 배정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퇴직한 한 직원은 “한국적 정서와 관행을 도외시하고 본사에서 온 독일인들이 ‘폴크스바겐 문화를 따르라’라며 완고한 자세로 대해 갈등이 커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퇴직 직원은 “‘한국인은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비하 발언에 이런 모욕을 견딜 수 없어 회사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박 사장의 사임이 본사와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수입차 시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하자 본사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회사 관계자는 “박 사장 사임 발표 전에 이미 신임 독일인 사장이 내정된 것을 알고 놀랐다”며 “앞으로 ‘하면 된다’ 같은 한국적 정서가 줄어들고 매뉴얼만 따지는 차가운 문화로 바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독일 브랜드가 수입차 시장의 70%를 점유하자 독일 본사에서는 한국 직원들의 노력보다는 ‘브랜드와 제품력이 뛰어나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분위기”라며 “한 때 일본 브랜드가 강세일 때 자만에 빠졌다가 무너진 전철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으론 국내 수입차 업계의 일부 불투명한 영업관행, 후진적 인사·감사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 사장은 박동훈 전 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과 안영석 전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을 영입했다.



한국인 지사장 입지 점점 줄어

시장 진출 초기에는 한국 사정에 능통한 현지인 사장을 내세웠다가 판매가 급증하면서 외국인 사장으로 전환하는 추세와 무관치않다는 시각도 나온다. 수입차 시장은 커지지만 한국인 지사장의 입지는 계속 줄고 있다. 2년 전 한국인에서 본사 출신 사장으로 교체한 A사의 경우다.

새로 온 외국인 지사장은 국내 딜러보다 본사의 이익을 내세우는 경향이 강해졌다. 딜러사 사장단과 해외 출장 때도 한국식 정서와 무관하게 행동해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외국인 사장들은 본사와 관계가 중요해 아무래도 본사 입장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 지사장은 치열한 한국 수입차 시장에 훤해 공격적인 가격을 주문하는 등 종종 마찰도 빚어 본사에서 버거워 했다는 것이다.

르노삼성은 박동훈 사장 영입으로 판매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복안이다. 올 1월 현대자동차 출신인 이성석 영업본부장(전무) 사임 이후 프랑수아 프로보(46) 사장이 직접 영업을 챙겨왔다. 회사 측은 “박 본부장 영입은 영업력 강화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요즘 호조인 SM5 TCE를 중심으로 판매량을 늘려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에 소형 SUV QM3 신차 발표까지 있어 반전을 노릴 새로운 자극제가 절실했다는 얘기다.

프로보 사장은 박 본부장보다 나이가 15살이나 아래다. 그는 프랑스 최고 명문인 에꼴 폴리테크닉 출신으로 르노 본사에서 엘리트 코스를 달려왔다. 하지만 2011년 10월 한국 부임과 동시에 실적이 곤두박질, 곤경에 빠졌다. 영업을 이끌 새로운 구원투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전 르노삼성 부사장은 “현재 잘나가던 회사(폴크스바겐)에서 어려운 회사로 이직한 케이스는 드문 일”이라며 “최근 르노삼성이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상품성이 뒤진 데다 판매 조직도 헝클어져 영업본부장이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르노삼성의 베팅 성공할까

르노삼성은 9월 1일자로 안영석(47) 전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을 연구소 상품기획 담당 상무로 발령했다. 안 신임 상무는 대우자동차 해외 영업 출신이다. 2004년 크라이슬러코리아 마케팅 담당 이사로 합류해 2008년 5월부터 2년간 사장을 맡았다. 재직 기간 동안 미국 본사를 설득해 상품성이 뒤진 크라이슬러 모델을 한국 실정에 맞게 고급화해 호실적을 내는 등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부터 국내 중견 부품회사로 옮겨 해외 영업을 총괄했다.

업계에서는 르노삼성이 박 본부장 영입에 따라 판매 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입지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회사의 영업 본부장은 최근 3년간 거의 1년 단위로 바뀌었다. 우선 국산차와 수입차 영업 영역이 다르다는 데 있다. 수입차는 직영점 없이 100% 딜러제로 판매된다. 수입차 업체는 본사와 가격 협상을 잘해 딜러에게 제때 물량을 인도해주는 게 중요하다.

딜러 관리를 할 뿐 영업사원과는 접촉 포인트가 없다. 르노삼성은 아직도 직영이 더 많다. 차만 공급해주는 게 아니라 영업직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 더구나 르노삼성의 모델은 네 차종에 불과하다. 폴크스바겐이 소형차부터 대형 세단, 소형·중형 SUV까지 2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차종을 구비한 것과 차이가 난다. 써먹을 무기가 SM3와 SM5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르노삼성의 국내 판매가 부진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판매망의 변화를 우선 꼽는다. 2011년 야심작으로 내놓은 뉴 SM7의 상품성에도 문제가 생겼지만 90% 이상 직영 체제에서 유럽식 딜러(대리점) 체제로 변화를 추구한 것이 자충수였다는 지적이다. 과거 ‘삼성맨’이라는 로열티를 바탕으로 영업을 하던 맹장들이 대리점 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보고 수입차나 현대·기아차로 이직했다.

지난해 141개였던 직영점은 올해만 30개가 줄었다. 대리점인 딜러수는 지난해 62개에서 올해 말까지 8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최근 5년간 르노 본사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그동안 회사 경영의 중심축이었던 삼성 출신을 물갈이했다. 현재 임원 가운데 삼성차 원년 간부는 한 명도 없다. 특히 영업이 심했다.

르노삼성은 삼성자동차 창립(1995년) 멤버인 오정환 영업담당 부사장이 2005년 퇴임하자 이후 삼성맨 대신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까르푸 출신의 박수홍 부사장까지는 탄탄한 직영 체제로 호실적을 거뒀다. 2010년 이후 한국닛산 출신의 그렉 필립스, 르노 본사의 프레데릭 아르토 전무,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출신 이성석 전무까지 영업을 맡았지만 부진의 늪에 빠졌다.

위르띠제 사장 시절 외부 영입으로 물갈이를 하면서 삼성 특유의 관리형 조직이 느슨해졌다는 평도 나온다. 각종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2011~2012년 르노 프랑스 본사에서 감사까지 파견돼 여러 명의 임원이 사퇴하는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다. 삼성식 관리형 조직 붕괴의 후폭풍이라는 것이다.

신차의 문제점은 연식 변경이나 부분변경 같은 마이너 체인지로 상품성을 보강하면 되지만 붕괴된 판매망을 새로 정비하는 데는 2~3년 이상 소요된다는 게 뼈아프다. 직영에서 대리점 체제로의 변경은 프로보 사장 전임인 장 마리 위르띠제가 시작했지만 프로보 사장이 결과를 책임져야 할 형국이다. 그나마 7월에는 전월 대비 15%가 늘어난 5089대를 팔아 올 들어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하면서 하반기 기대감을 높였다. 박동훈 본부장이 독일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프랑스 경영진과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춰 나갈지가 판매 회복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1202호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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