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해외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에서 미래를 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변신 

주식·채권 일변도 벗어나 포트폴리오 다각화 … 국내 자산운용업계 돌파구 될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자산운용업이 세계적으로 회복세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운용자산(AUM) 규모는 62조4000억 달러로 2007년 역대 최대치(57조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좀 다르다. 2000년대 중반 펀드 열풍 덕에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08년 이후 정체됐다.


최근 저금리·저성장 기조와 주식 투자심리 위축, 채권 가격 급락으로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자산운용업의 위기’이라는 비관론이 대세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해외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통해 그 잰걸음을 들여다 봤다.

2007년 중국 상하이 미래에셋타워(3934억원) 매입, 2009년 호주 담수화 시설(1450억원) 투자, 2011년 미국 아큐시네트(1조3657억원) 인수 참여….

최근 몇 년간 미래에셋자산운용(이하 미래에셋)의 주요 해외 투자 내역이다. 사모투자펀드(PEF)·사회간접자본(SOC)·부동산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지난해 브라질 호사베라타워(5473억원)에 이어 올 들어서도 미국 시카고 225웨스트웨커빌딩(2516억원), 호주 시드니 포시즌호텔(4284억원)을 차례로 매입했다.

9월 13일에는 미국 글로벌 커피 전문업체 커피빈앤티리프 인수도 마무리했다. 이른바 ‘대체투자(A lternative Investment)’다. 대체투자는 전통적인 투자 대상인 주식·채권 등 증권 외에 부동산·SOC·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시절인 2004년 6월 부동산펀드 ‘맵스프런티어부동산1호’를 설정하면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특히 해외에선 랜드마크 부동산에 적극 투자했다. 회사 측은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를 벗어나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 부동산 투자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한다. PEF·SOC 투자도 같은 맥락이다. 해외 진출 가속화는 주력 상품인 국내 주식형 펀드의 최근 수익률 부진과 무관치 않다.


“해외로 나가면 실패해도 경험 남는다”

미래에셋은 2003~2004년 인디펜던스·디스커버리 펀드로 국내 주식형 펀드 열풍을 주도했다. 2008년만 해도 국내 주식형 펀드의 연간 평균 누적 수익률이 업계 1위(39.1%)였다. 하지만 이 회사가 운용 중인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최근 3년간 수익률은 올 8월 기준 마이너스 8%대다. 2007년부터 운용한 인사이트 펀드는 9월 기준 마이너스 15%대였다. 컨슈머 펀드처럼 양호한 성적을 기록 중인 상품도 있지만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품도 적잖다. 포트폴리오 분산을 통한 위험 관리가 절실해졌다.

2004년경 미래에셋이 해외로 나간 초창기만 해도, 국내 관련 업계나 고객에게 해외 대체투자란 낯선 이야기였다. 펀드 시장은 활황이었다. 새로운 모험을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반신반의하는 일부 임원들 앞에서 한 사람이 확신에 찬 어조로 강조했다.

“우리가 해외로 나가서 부진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 봤을 땐 이 경험이 자산으로 남는다. 설령 해외로 나가서 실패한다고 해도 사람(직원)들의 경험은 남지 않느냐? 이들은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시 해외로 나갈 것이다. 이런 자산은 사회에 고스란히 남는다. 사명감을 갖자. 우리는 할 수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2002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다. 자산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봤다. 쉽지는 않았다. “그리 크지도 않은 자산운용사가 무슨 해외 진출이냐?” 처음에는 고객들 반발이 거셌다. 펀드 수익률이 좋지 않았던 일부 고객은 회사로 항의 전화를 걸기도 했다. “뉴스로 봤는데 지금 대체투자 얘기가 왜 나옵니까?

수익률 높이려고 기를 써도 모자랄 판에 너무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갖는 거 아니에요?” 홍보실에선 기자들에게 해명하기 바빴다. 삼성전자·LG전자가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 뻗어나간 덕에 오늘이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묻자 ‘비교 대상이 되느냐’ ‘국내에서나 잘하라’는 면박이 돌아왔다. 같은 업계에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그로부터 10년여가 지난 지금,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일각에선 여전히 몇 년 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긍정적 평가가 많다. 이익도 남겼지만 무엇보다 미국·홍콩 등에서 해외 채권을 직접 운용하며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도 자산으로 남았다.

박 회장은 2008년 무렵 주식시장 상황이 좋았을 때 공식석상에서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체투자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주식·채권 일변도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야만 회사와 고객 모두 혹시 모를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증시 상황에 안주한 개인투자자들로서는 파격적인 얘기였지만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적립식 펀드 열풍을 일으키며 자산관리 패러다임을 ‘저축’에서 ‘투자’로, ‘직접 투자’에서 ‘간접 투자’로 바꾼 미래에셋이 또 한번 변신하고 있다. 해외 대체투자로 새로운 투자 신화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식 영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자산관리 명가’로 거듭나려는 포석이다. 특히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노후를 준비하는 고객에게 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투자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미래에셋은 2007~2008년을 기점으로 해외 대체투자를 강화했다. 성적표는 어떨까. 2007년 4000억원 가까이 들여 2008년 준공한 중국 상하이 미래에셋타워는 올 초 세계 최대 규모 국부 펀드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에서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짜리로 평가했다. 5년여 만에 자산가치가 3배로 불어났다.

이 건물은 매입 당시 박 회장이 수 개월간 중국을 오가며 거래를 성사시켰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박 회장은 이때 속된 말로 ‘죽기 직전까지’ 현지 관계자들과 술을 마시며 관계를 돈독히 했다. 이른바 ‘관시(關係)’ 였다. 인맥이나 친분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며칠 밤을 술로 지새우며 우애를 다진 것이다. 평소 박 회장은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경우 주중엔 술을 마시지 말라고 엄격히 주문한다. 또렷한 정신으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라는 뜻이다. 그런 박 회장도 이 때만은 허허실실 전법을 썼다.

적립식 펀드 이어 자산운용의 새 場

올 6월 기준 미래에셋의 운용자산은 63조1285억원. 지난해 3월에 비해 3조원 가까이 늘었다. 해외 자산 비중은 36.5%다. 50%로 확대할 계획이다. 임명재 미래에셋 상무는 “잇단 해외 투자로 수탁고가 줄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짐작과 달리 자산이 오히려 늘었다”며 “세계 11개국에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무형의 성과”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해외 진출을 성사시키면서 중개자(Broker) 사이에 미래에셋 브랜드 인지도 역시 높아졌다. 특히 금액 규모가 컸던 2011년 아큐시네트 인수가 화제가 됐다. 이전까진 미래에셋이 어떤 회사인지 몰라 낯설어하던 해외 거래처들이 최근에는 매물을 들고 먼저 접근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회사로선 더 좋은 거래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2010년 무렵부터 비중을 키운 해외채권 운용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와 경험은 큰 힘이 된다. 임 상무는 “업계 전문가뿐 아니라 현지 개인 고객들에게까지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덧붙였다.

해외에 투자하는 동안 자산이 증가하는 가시적 성과를 얻었지만 비판 여론도 없지 않다. 대체투자에 역량을 나누느라 주식 운용에서 부진을 떨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대체투자는 주식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주식형 펀드의 부진한 수익률을 만회하기 위해 운용 방식에도 일부 변화를 주고 있다.

손동식 미래에셋 주식운용 부문 대표는 “펀드매니저의 판단 위주로 운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리서치 중심의 모델포트폴리오(MP)를 개발하고 펀드매니저는 MP 복제율 70% 이상을 지키면서 나머지 부분은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투자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종목을 고를 때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에 좀 더 집중할 계획이다. 손 대표는 “최근 주식 매매 회전율을 70~ 80%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투자에 따른 간접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급변하는 금융시장 환경에 대응하고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래에셋은 주식시장이 살아나면 다시 해외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포트폴리오 분산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기본전략을 유지할 계획이다.

박현주 회장은 그간 비판론이 나올 때마다 “고객 자산을 한국에서만 소화하면 소화불량에 걸린다”며 정면 돌파를 고집했다. 주식시황이 좋지 않을수록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2010년 이후 배당을 받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59.8%)·미래에셋캐피탈(48.7%)·미래에셋컨설팅(48.6%) 등의 지분을 절반 안팎 가진 박 회장은 경쟁사 대비 10분의 1 수준의 배당만 받는다. 자기 몫의 배당을 받는 대신 해외 진출에 필요한 자금에 보탠다는 취지다.




연초 이후 운용자산 오히려 3조원 늘어

회의 스타일도 실용적이다. 미래에셋 경영진의 전체 회의는 분기당 1~2회로 많지 않다. 웬만한 업무보고에선 사업 검토 배경 등의 긴 서론을 걷어낸다. “거두절미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핵심만 말해봅시다.” 시각이 중요하지 탁상공론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번은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모두 내 말을 받아 적고 있는데 고정관념”이라며 “필기는 한 명이 정리해서 나중에 공유하면 되고 나머지는 집중해 대화를 나누는 게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수하동 본사(미래에셋센터원빌딩) 1층 로비에 장식한 ‘초침 없는 시계’는 투자할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원칙을 상징한다. 비판을 뒤로 하고 공격적인 해외 대체투자에 나선 미래에셋의 최근 분위기와 맞닿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자산운용업계는 미래에셋을 어떻게 볼까.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국내 투자심리 위축으로 수익성이 계속 나빠지는 악순환 우려가 커졌다”며 “해외 진출만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대체투자 필요성은 분명 커졌다”고 말했다. 종전처럼 주식·채권만으로는 투자자들의 기대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대체투자 비중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KB자산운용은 부동산·인프라 투자를 총괄한 이희권 부사장을 최근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주로 주식 매니저 출신이 CEO에 오른 관행을 거스를 만큼 대체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대체투자 순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74조5000억원으로 2008년(31조6000억원)의 2.4배로 늘었다. 전체 순자산(339조5000억원)의 22%로 2008년 (10.6%)보다 비중이 커졌다.

경쟁 운용사도 대체투자 늘리는 추세

해외 진출 움직임도 늘고 있다.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모·공모 펀드 설정액은 올 6월 말 기준 21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5% 늘었다. 사상 최대치다.

이 가운데 2분기에 조성된 해외 부동산 투자 펀드 규모는 6000억원에 달한다. 삼성SRA자산운용은 5월에 영국 런던 인근의 30크라운플레이스 건물을 2500억원에 매입하면서 처음 해외로 진출했다. 연기금도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렸다.

국민연금은 2009년 이후 영국 런던 HSBC빌딩(2009년), 독일 베를린 소니센터(2010년), 미국 뉴욕 헴슬리빌딩(2011년) 등 건물 14채를 매입했다. 주로 임대 수요가 많은 대형도시의 랜드마크에 집중됐다. 연기금까지 공을 들일 만큼 해외 대체투자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한국예탁결제원 고위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이 투자 시장 다변화에 전략적으로 나서서 양호한 수익률을 내면 국내 투자자의 수요와 투자도 증가하는 선 순환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해외 대체투자가 위기론에 휩싸인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재도약을 이끌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신중론도 있다. 대체투자라고 언제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진 않는다. 대체투자 자산은 표준화가 덜 돼 있다. 자산가치평가와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이 높지 않을 뿐더러 정보도 부족하다. 또 거래 단위가 크고 유동성이 작기 때문에 현금화할 때도 불리하다. 정책과 환경변화에 따른 위험이 주식이나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대상보다 크다는 것도 위험 요소다.

다른 자산운용사 임원은 “해외 대체투자라는 방향은 맞지만 준비 없이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걸음마 단계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철저한 현지 시장조사와 분석•예측이 필수다. 또 SOC 등의 대체투자는 눈앞보다 미래 수십 년을 내다봐야 하는 과정이라 긴 호흡도 필요하다.

사모투자펀드(PEF): Private Equity Fund. 소수 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로 자금을 모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Exchange Traded Fund. 주식처럼 매매가 가능하고 특정 주가지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정해지는 펀드.



1205호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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