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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가 오히려 일자리 만든다’ 논란 

부도 위기 넘긴 美정부 새 화두 

박성균 중앙일보 워싱턴지사 기자
‘지역 경제 회복에 도움 vs 불법체류자 증가’ 맞서 美 연방의회 이민개혁안 선택 갈림길

▎이민자 옹호단체 회원들이 10월 14일 미국 애리조나주의 피닉스에서 불법체류자 추방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민개혁안을 두고 미 연방의회가 친(親)이민과 반(反) 이민으로 나뉘어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게다가 미국에서도 경제난을 심하게 겪는 중서부 지역의 지역정부들이 도시 활성화를 위해 이민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들과 주요 도시 시장들이 대거 참여한 ‘새 미국 경제를 위한 파트너십’과 아메리카스 소사이어티 미주위원회는 최근 ‘미국의 도시들과 이민’ 보고서를 발표했다.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마이클 너터 필라델피아 시장, 짐 맥너니 보잉 CEO,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전 CEO 등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새 미국 경제를 위한 파트너십’은 여타 이민개혁 사회운동 단체들이 이민자에 유리하도록 편향된 자료를 발표하는 것과 다르다.

이들은 신뢰성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것으로 정평이 난 단체다. 이번 보고서의 내용은 한마디로 ‘미국의 도시 회생을 위해서는 이민자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인 지역은 일자리 증가와 세입 확대, 주택가격의 상승 등으로 지역경제 회복과 발전에 큰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들이 많을수록 일자리도 일정 비율로 증가하고 주택가격도 상승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활성화로 지역 경제가 회복했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3000개 이상 자치주의 경제를 조사한 결과 이민자 1000명이 몰렸을 경우 미국 태생 시민들도 270명이 증가했다. 인구 증가는 서비스 수요 증대로 이어져 소규모 비즈니스 창업과 일자리 창출이 늘어났다.

이민자 1000명이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 제조업에서만 46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미국에 사는 이민자의 수는 4000만명 정도다. 이 보고서는 이들로 인해 미국 전체적으로 18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창출되거나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민자 1000명이 늘어난 지역의 경우 평균 주택가격은 1만1000달러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들이 직간접적으로 내는 세금 덕에 지역정부의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이민자 덕에 일자리 늘고 집값 올라”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입은 지역으로는 텍사스주의 해리스 카운티가 꼽혔다. 이 카운티에는 휴스턴이 포함돼 있다. 해리스 카운티의 주민 420만명 가운데 이민자는 9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했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1000개씩 지난 40년 동안 4만3299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창출됐다. 해리스 카운티의 2010년 주택 중간가격은 13만1700달러다. 이 가운데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이민자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분은 2만6700달러로 평가됐다. 주택가격의 20%가 이민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국의 카운티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주민 976만명 가운데 이민자 수가 348만명으로 전체 주민의 35.6%를 차지한다. 이민자 덕분에 제조업에서만 16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주택가격은 3300달러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옆에 있는 오렌지 카운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전체 주민 300만명 가운데 이민자 비중은 30.5%로 90만명 정도로 집계됐다.

이민자들로 인해 오렌지 카운티의 제조업 일자리는 4만1500개가 증가했고 주택 가격은 6200달러가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 인근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 카운티에선 105만명의 주민 가운데 30만명이 이민자였다. 주민의 29%를 차지하는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85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창출되고 주택가격은 7400달러가 올랐다.

지역경제 회생에 이민자들의 영향이 커지자 경기침체가 심한 중서부 도시들이 친이민 정책을 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 같은 경향을 심층적으로 보도해 이민자들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오하이오의 데이튼 시정부는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지렛대 삼아 지역경제를 회생하려는 대표적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경제난으로 주민들이 떠나자 이 지역에는 빈집이 늘었다.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자 주민의 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자 데이튼 시정부는 2년 전 획기적인 부흥정책을 가동했다. 참담한 상황에 처한 이 도시를 되살릴 구원투수로 이민자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민자들을 적극 유치해 주민으로 데이튼시에 정착시켜 경제도 살리고 도시도 되살리는 지역 활성화 정책을 편 것이다.




▎미국 북버지니아의 신규 주택단지 건축현장에서 한인과 라틴아메리카계 노동자가 지붕 작업을 하고 있다.
중서부 도시 친이민 정책 활기

데이튼시의 북부 지역은 슬럼가로 불릴 정도로 폐허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터키계 주민 400가구가 이주해오면서 이 지역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 가정씩 이사올 때마다 동네가 바뀌었다. 하얀 담장이 세워지고 폐가에 가깝던 집이 말끔하게 재건축됐다.

중서부에서 데이튼시와 비슷한 정책을 펴는 도시가 증가하고 있다. 중서부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시카고는 물론 클리블랜드와 콜럼버스·인디애나폴리스·세인트루이스·디트로이트 등이 친이민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민자들의 창업정신이 신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들 도시의 이민담당 공무원들은 올해 6월 디트로이트에 모여 공통 네트워크를 구축,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에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대표적으로 친이민 정책을 펴는 캘리포니아주도 이민자를 통한 외국 투자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10월 4일 주지사 사무실 내 경제사업개발팀을 설치해 해외 투자유치와 관련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AB1067)에 서명했다. 제정된 법에 따르면 경제사업개발팀은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이민서비스국(USCIS)의 투자이민(EB-5) 프로그램을 지원·감독하게 된다.

특히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지역센터를 열 수 있도록 행정적인 절차도 지원한다. 법안 상정자인 호세 메디나(민주·리버사이드) 하원의원은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는 EB-5 프로그램은 외국인에게는 영주권을, 주정부에는 일자리 창출을 가져다 준”며 “프로그램이 활성화된다면 외국인 투자가 더 늘어나 캘리포니아 경제 활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B-5는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해 신규 일자리 10개를 창출하면 조건부 영주권을 받고 2년 후 정식 영주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또 지역센터로 지정된 곳에는 50만 달러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USCIS에 따르면 EB-5 투자자는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USCIS가 최근 발표한 2013회계연도(2012년 10월~2013년 9월) 상반기 신청서 접수 현황에 따르면 투자이민 신청서(I-526)는 3285건이 접수됐다. 조건부 영주권자의 정식 영주권 신청서(I-829)는 427건이었다. 이는 2012회계연도 한 해 동안 접수된 투자이민 신청서(6041건)와 정식 영주권 신청서(712건)의 절반을 상회한 규모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증가가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민자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체류자다. 이들은 미국 경제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경제 주체로서 긍적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세금으로 충당되는 사회보제도 등의 무임승차자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미국 내 불법이민자 수는 지난해 현재 11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불법체류자 수는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DC의 퓨리서치센터 산하 히스패닉트렌드프로젝트가 9월 발표한 2009~2012년도 불법체류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0만명이 증가했다. 보고서는 1990년대 350만명에 그친 불법체류자가 2007년 1220만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가 2009년도 1130명으로 줄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가 시작되고 불법체류자 사면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2010년 1140만명, 2011년 1150만명, 지난해 현재 1170만 명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퓨리서치센터는 이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불법체류자 규모는 2007년 들어 3분의 2로 감소했으나 여전히 미국 내 불법체류자의 52%인 600만명은 멕시코 출신이라고 전했다.

불법체류자들의 증가에 반이민 단체들은 날선 비판을 가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反)이민 단체인 이민연구센터(CIS)는 1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불법체류자 때문에 국민의 세금이 축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증가로 연방정부 적자 늘어

CIS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세금납부액보다 각종 사회보장 서비스 등을 통해 사용하는 세금지출액이 많다는 내용의 반이민 보고서를 매년 한두 차례 발표한다. CIS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한 해 160억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는 한편, 264억 달러 규모의 사회보장 서비스를 받아 연방정부가 104억 달러의 적자를 내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연방의회가 불법체류자들에게 합법신분을 줄 경우 연방정부 적자 폭이 한해 290억 달러로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10월16일 막판 타협에 성공하며 국가 디폴트를 가까스로 면한 미국에서는 이제 이민개혁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이민정책 전문가들은 “10년 정도의 주기로 불법체류자에게 합법신분을 주며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민정책 패턴”이라며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이 향후 이민정책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아메리칸 드림’의 불씨를 살려 경제를 회생시킬지 아니면 침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09호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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