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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창업 때 금융권 남녀차별 여전 

여성창업 홀대하는 금융권 

한국여성경제인학회·자본시장연구원 개선책 제안 … 업종별 밀착지원 필요



벤처 창업자인 김지민씨는 최근 연구개발(R&D) 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금융회사를 방문해 사업내용을 설명하는 도중 황당한 경험을 했다. 기술 관련 내용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는데 담당자들은 엉뚱한 질문 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대출금 회수가 가능하겠느냐, 남편의 직업은 뭐냐, 보증은 뭘로 할 거냐 등이었다. 김씨는 “기술에 대해선 별로 묻지 않고 자금 회수만 염두에 두고 평가해 기분이 나빴다”고 털어놨다.

새 사업을 일구는 창업은 남녀에 관계없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 기업인은 남성 기업인에 비해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여성이 창업을 준비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금융회사 자금 조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비중은 30%로 2008년 44.7%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았다. 담보를 남성보다 더 요구하거나 신용심사를 더 까다롭게 하기 일쑤다. 남편 보증을 요구하는 등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창업 기업 3곳 중 1곳 여성이 운영

사정은 이렇지만 여성 기업인은 해마다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신설 법인 중 여성이 설립한 사업체 수는 2010년 124만8000개사로 2004년보다 5배 수준으로 늘었다.

여성 기업 수는 전체 사업체 중 37.2%를 차지한다. 다만 이 중 5인 미만의 여성기업은 전체 92.7%로 대부분 영세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여성 기업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금융정책이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 중 32.7%는 창업 후 한 번도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부도 여성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정부는 여성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00년부터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물품·용역을 구매할 때 총액의 5% 이상 구입해주는 ‘여성 기업 제품 우선구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김한표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09∼2011년) 행정기관의 여성 기업 제품 구매비율은 2009년 2.8%에서 2011년엔 2.2%로 줄었다.

공공기관의 경우 2009년 2.1%에서 2011년엔 3%를 기록했다. 모두 법정비율인 5%에 미치지 못한다. 김한표 의원은 “여성 기업 제품의 구매 실적을 기관별로 평가해 우수기관을 포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여성 기업 지원과 육성을 위해 관련 위원회나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더 강한 제재수단으로 이행명령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경제학회와 자본시장연구원이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공동 주최한 ‘여성친화금융 생태계 조성방안 세미나’에서는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차은영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여성이 창업할 때 남성과 같은 조건이라도 금융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금융 지원은 정보기술(IT)이나 제조업 등인데 여성창업은 대부분 패션이나 캐릭터·소프트웨어 등 무형의 콘텐트 창업이 많아 제도적 혜택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성인지(性認知)예산서’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지원 기관에서 대출이나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도움을 받은 여성 기업은 16.9%에 불과했다. 또 창업지원 기관에서 도움을 받은 여성 기업의 비율은 2010년 18.2%에서 줄었다. 차은영 교수는 “여성의 창업에서 성별 격차가 여전히 상당하다”며 “여성창업자 지원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은행이나 정책기관도 여성 기업 금융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여성 가장에 대한 생계형 창업자금으로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시중은행과 연계해 여성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7월부터 1000억원, IBK기업은행은 1500억원 한도로 여성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 그러나 실적은 미미하다. 10월 말 현재 우리은행은 55억원, 기업은행은 245억원에 불과하다. 강소현 연구위원은 “은행에서 대출 받으려면 사업 규모와 매출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여성 기업은 영세한 중소기업이라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성 기업 자체의 한계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여성기업실태 보고서(2010년 기준)에 따르면 여성 기업인의 57.1%는 본인의 경험과 무관한 분야에서 창업하거나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업 아이템도 쇼핑몰이나 음식점 등에 집중돼 영세한 유통·서비스업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기업의 숙박·음식점업 비중은 31.8%로 남성 기업(10.7%)보다 월등히 높았다. 강소현 연구위원은 “여성 기업들의 업종이 제한돼 있고 영세하지만 이들 기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창업을 늘릴 수 있는 여성 기업 특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규모 영세 여성 기업에 대한 신기술·신제품 연구개발 자금 등을 지원해 중견기업으로 성장 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들은 육아 문제 등으로 장기간 경력이 단절된 경우가 많지만 재교육을 통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전문성 키우고 창업 분야도 늘려야

실제로 여성 기업은 여성의 섬세함과 유연한 조직력으로 남성 기업보다 수익성이 높은 편이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의 평균 부채비율(2008년 기준)은 155.5%인데 여성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40.2%다. 매출 대비 순이익률도 여성 기업이 14.9%로 중소 제조업 평균(3.2%)보다 높았다.

차은영 교수는 “창업 후에는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계속 밀착 관리해야 한다”며 “정부의 보증 확대와는 별도로 새로운 대출심사평가 방법을 적용하고 사업성과 같은 비재무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기업이 일부 업종에 몰려 있는 만큼 여성 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양영석 한밭대 창업경영대학원 교수는 “여성 기업의 수준이 질적으로 크게 향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술 중심의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1212호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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