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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Talks - 기업분쟁 해결엔 중재가 지름길 

서울을 국제중재 허브로 

사회·정리=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윈스탠리 런던국제중재법원 총재-박은영 국제변호사협회 아·태 중재그룹 의장 대담



국제 기업분쟁 해결의 허브 역할을 할 서울국제중재센터가 올 5월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대한상사중재원을 비롯해 국제상업회의소(ICC)중재법원·런던국제중재법원(LCIA)·홍콩국제중재원(HKIAC)·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등 대표적인 국제중재기관 사무소들이 입주했다. 이와 맞물려 국제중재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11월 7일 국제중재정상회의를 시작으로 8일에는 LCIA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11~12일에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가 법무부·대한상사중재원과 공동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재법 개정: 기회와 도전’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제중재 분야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제상사중재(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의 저자 개리 본(Gary Born)도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서 대규모 국제중재 행사가 잇따라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국제중재센터 개원 이후 우리나라 중재 환경에 대한 외국 중재인들의 관심이 커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코노미스트는 LCIA 주최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애드리안 윈스탠리(Adrian Winstanley) LCIA 총재와 박은영 변호사(김앤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1883년 설립된 LCI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중재기관이다. 윈스탠리 총재는 2000년부터 LCIA를 이끌고 있다. 올 3월 LCIA 아시아-태평양 평의회 의장으로 선임된 박 변호사는 국제변호사협회(IBA) 아·태 중재그룹 의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중재 전문가다.

사회자 “국제중재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에 따라 그만큼 기업 간 분쟁도 늘어난 때문일 듯하.”

애드리안 윈스탠리 LCIA 총재(이하 윈스탠리) “기본적으로 중재가 가진 장점 때문이 아닐까? 중재가 여러 면에서 소송보다 빠르고 효율적이다. 일단 기업 간 분쟁이 생기면 해결방법은 두 가지다. 법정으로 가거나 중재 신청을 하거나. 소송에 비해 중재는 기업이 선호하는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고도로 복잡한 기업 간의 분쟁에서 당사자는 법 지식에 따르는 법관보다는 사안별로 전문성을 가진 중재인의 판단을 원한다. 또 소송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중재는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지만 소송은 상대방이 항소하면 2심, 3심으로 가야 한다.”

박은영 세계변호사협회 중재위원회 부의장(이하 박은영)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간에 분쟁이 발생해 소송을 시작했다고 하자. 한국에선 한국 기업이, 미국에선 미국 기업이 유리하다. 공평하다고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중재는 중립성 확보에 유리하다. 또 한국 기업이 미국 법원에서 승소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집행은 쉽지 않다.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겨도 실제로 배상금을 받아내는 건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재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유엔협약(뉴욕협약)’에 따라 중재 판정을 받으면 협약 가입국에서의 집행이 보장된다. 비밀유지 역시 기업에겐 중요하지만 소송은 일단 시작되면 어느 정도의 비밀 유출이 불가피하다. 중재는 소송 당사자와 중재인만이 내용을 안다.”

사회자“국제중재의 중심축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아시아로 옮겨지는 분위기다.”

윈스탠리 “국제중재는 매우 큰 시장이다. 아시아에서 일어난 분쟁을 해결하려고 굳이 미국이나 영국에 올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각 지역에 중재기관이 생기고 활성화되는 건 매우 고무적이다. 앞으로 세계 경제는 아시아가 성장을 이끌 것이다. 대륙별로 독특한 비즈니스 문화가 있고, 중재인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LCIA가 최근 두바이·모리셔스·인도 등지에 사무소를 설립해 국제적 기반을 넓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은영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중재 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은 한국이 더 크다고 본다. 산업과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법조계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한·중·일의 경제 규모를 합하면 미국과 맞먹는다.

경제 규모에 비해 일본은 중재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 중국은 국내 중재가 활발한 편이지만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을 정도는 아직 아니다. 우리나라는 대형 로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해외에서 인정 받을 만큼 변호사들의 개인적인 역량도 뛰어나다.”

사회자 “한국이 국제중재의 허브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나?”

윈스탠리 “한국이 중재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이 따라야 할 모델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특정 지역에서 운영하는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긴 어렵다. 오히려 빠르게 키우겠다는 욕심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중재는 분쟁을 오랜 기간 다루면서 기업과 중재인 사이에 신뢰가 형성돼야 하고, 그 신뢰는 역사가 축적된 만큼 쌓인다. 그래야 기업이 중재인을 믿고 의뢰하지 않겠나? 한국은 훌륭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박 변호사의 말처럼 법조인의 수준이 매우 높다.”

박은영 “사실 LCIA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국제상업회의소(ICC)중재법원도 60년이 넘었다. 대한상사중재원 또한 50년 가까이 됐지만 국내 중재를 주로 해온 게 사실이다. 중재는 지적인 배경과 가치판단 능력이 필수적인 분야다.

그만큼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협력하고,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 중재는 영미권에서 출발한 제도고 영미법계의 요소가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영미법계를 공부한 법조인도 많다. 중재를 신청한 기업이 어느 법 체계에 속해 있든지 양쪽을 잘 융화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본다.”

윈스탠리 “그렇다. 좋은 중재인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좋은 중재인은 법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계약의 관행, 노사관계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되야 한다. 어학 능력이 필수적이고, 문화적 배경도 잘 따져봐야 한다. 중립성 또한 중요하다. 기업의 영향력이나 압박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특정 교육에 의해 달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길러지는 자질이라 생각한다. 경험이 중요하다.”

박은영 “아직 국제중재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중재는 하나의 법률과 규칙이 아니라 여러 법률과 제도가 만나 가장 공평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분야다. 각국 다양한 법 체계를 열린 사고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자 “이번 심포지엄은 어떤 의미가 있나?”

박은영 “심포지엄에서는 중재에 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오갔다. 운영 방식에 관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았다. 사실 뉴욕협약은 중재 결과의 집행에 관한 협약일 뿐 운영 방식에 관한 협약은 아니다. 실무적으로 좋은 사례를 나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윈스탠리 “중재 문화와 환경에 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이 번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에서 중재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길 기대한다. 소송에 비해 중재가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더 많은 기업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서울국제중재센터 내에 설립한 LCIA 사무소를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박은영 “주요국 중에 중재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미얀마와 북한 정도다. 하지만 최근 미얀마는 중재 협약을 따르기로 했다. 미얀마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훨씬 안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신뢰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중재는 기업 간의 상사 분쟁 해결뿐만 아니라 국제 분쟁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주권과 영토에 관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앞으로 국제중재의 영역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제중재에서 중요한 허브가 될 지, 들러리로 남을 것인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지금이 최첨단 지식산업인 국제중재 서비스 시장에서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중재(Arbitration) 당사자 간의 합의로 사법상의 분쟁을 법원의 재판 대신 제3자(중재인 또는 중재기관)의 판정에 의해 해결하는 절차다. 소송과 달리 중재로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중재 합의가 있어야 절차가 시작되고, 판사 아닌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중재인이 결정을 내린다. 일반적으로 3심제인 재판과 달리 단심으로 끝난다.




1212호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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