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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정부엔 中企 매출 통계조차 없었다 

중소기업 범위 개편 논란 

김태윤·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중기청·통계청도 매출 파악 제대로 못 해 … 민간 신용평가회사 데이터 빌려 써



“매출 분포별 중소기업 현황을 알고 싶은데요, 국내에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중소기업이 몇 곳인가요?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기자)

“정확히 알 수 있는 데이터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중소기업 매출을 정확히 파악하는 곳은 국세청뿐인데, 국세청이 우리에게 자료를 주지 않죠.”(중소기업청 A사무관)

“솔직히 말해, 중소기업 매출 실태는 알 수 없습니다. 모두 쉬쉬하는 고민이자 한계죠.”(중소기업연구원 B연구원)

“중소기업 매출 통계 같은 것은 없습니다. 통계청도 매출 전수 조사는 하지 않습니다.”(중소기업중앙회 간부)

믿기 힘든 답변이었다. 중소기업청이나 중소기업 유관기관 관계자 대부분 우리나라 중소기업 매출 현황 통계가 없다고 했다. 320만개 중소기업 중 매출 1000억원 이상은 몇 곳인지, 100억원 이하는 얼마나 되는지, 이 기본적인 데이터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앞으로 매출만을 기준으로 중소기업 여부를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어찌된 일일까.

정부는 12월 11일 제28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중소기업 범위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중소기업 범위를 기존 근로자 수나 자본금이 아닌 매출 기준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업종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별로 매출 기준(400억~1500억원)을 넘어가면 중소기업을 졸업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졸업 기준을 넘기더라도 중소기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예기간을 3년간 주기로 했다. 현행 제도와 같다. 다만, 유예기간은 단 1회만 허용된다. 중소기업을 졸업한 중견기업이 중소기업 혜택을 받기 위해 직원 수를 줄이거나 지분 변동을 통해 다시 중소기업이 되려는 행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개편안이 확정되기까지 진통이 있었다. 애초 중기청은 중소기업 기준 매출 상한선을 800억원으로 잡았다. 중기청은 “유럽연합 기준인 5000만 유로(약 770억원)를 참고했다”고 했다. 중소기업계 반발은 심했다. 준비도 없이 중소기원 지원 혜택이 끊기면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업계는 ‘기준을 2000억원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1500억원에서 절충됐다.

중기청은 내년에 개편안이 적용되면 중소기업 759곳이 졸업하고, 중견기업 683곳이 중소기업에 편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75개 감소하는 것이다. 전체 중소기업의 0.0023%에 불과한 수치다. 애초 정부안대로 상한선을 800억원으로 했더라도, 중소기업 수는 전체의 0.0027%인 880개 정도 주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개편안은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모호했던 중소기업 기준을 매출로 단일화한 것에 대해 대부분 언론이 비중 있게 다뤘다. 중소기업계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수 반대 입장은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개편안 발표 직후 보고서를 내고 “중소기업 범위 기준을 단순화했다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기준의 불안정성에 따른 갈등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미국을 빼고 매출을 단일 기준으로 중소기업 범위를 정하는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한정화 중기청장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근로자 수나 자본금 중 한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중소기업으로 인정받는) 기존 택일주의 기준으로 인해 피터팬 증후군이 발생하고 실제 성장한 기업임에도 중소기업에 잔류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이번 개편안이 시행되면 고용과 투자 촉진은 물론, 중소·중견기업 정책 실효성도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세청만 중소기업 매출 제대로 파악”

그렇다면, 2015년 제도 시행 후 3년 유예기간이 지난 2018년에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줄거나 늘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개별 중소기업의 매출 성장까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중소기업이 얼마나 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중기청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매출 실태와 관련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중기청이나 중소기업 유관기관이 내는 중소기업 매출 통계는 기본적으로 엉터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중기청 관계자는 “매출 전수 조사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중소기업 관련 연구기관 관계자들도 “매출 관련 연구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매월·매년 ‘중소기업 동향’ 보고서를 발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300만 곳의 중소기업 마이크로 데이터를 가공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마스킹 처리(별표로 숫자를 안 보이게 하는 것)가 많아 정확한 통계를 내는 데 애로가 있다”고 밝혔다. 한 간부는 “통계청도 중소기업 매출 조사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기청은 어떻게 ‘이번 개편안이 시행되면 중소기업 759곳이 졸업하고 중견기업 683곳이 중소기업에 편입된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을까. 이번 정책을 만드는 데 쓰인 데이터는 민간 신용평가회사인 한국기업데이타가 보유한 16만9000개 중소기업 자료다. 중소기업 전체의 5.2%에 불과한 수치다.

더 큰 문제는, 한국기업데이타 자료가 전체 중소기업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기업데이타가 제공한 중소기업 자료는 대부분 정부 정책 금융을 받은 기업들이다. 정부 돈을 빌리지 않는 우량 중소기업들이 빠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중소기업 범위 개편안과 관련해 정부 발표 숫자가 기본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며 “현재로선 정확한 중소기업 매출 실태를 파악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자료는 과세 관련 업무 외에는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기청 관계자 얘기다. 결국 정부는 이번 개편안으로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졸업하고 잔류할 것인지, 향후 정책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도 없이 “고용과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고 홍보한 셈이다.

중기청 관계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대로 “힘도 없고 예산도 부족해서”라는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중기청이 320만 개 중소기업 매출 전수조사를 할 시간과 비용이 없었다면, 이번 개편안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약 12만 곳의 중기업(50~300명)을 대상으로라도 매출 조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영세한 기업이 많아 전수조사가 의미가 없다면, 5년마다 1인 이상 전 사업체를 조사(경제총조사)하는 통계청를 설득하거나 국세청과 협의를 통해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받을 방법은 없었을까. 1996년 당시 산업자원부의 외청으로 신설돼 줄곧 중소기업 정책을 담당해온 중기청이 민간 신용평가회사에서 데이터를 얻어오는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중소기업 정책의 씁쓸한 뒷면이다.

1217호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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