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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사업구조 재편 이어 지배구조 변화 

삼성에 무슨 일이? 

계열사 지분 구조 단순화 …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 시작’ 관측



삼성생명이 삼성그룹 내에 흩어져 있던 삼성카드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삼성생명은 12월 13일 장 종료 후 삼성전기와 삼성물산·삼성중공업으로부터 삼성카드 지분 6.38%를 매입했다. 이로써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율은 34.41%로 높아졌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삼성카드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삼성전자(37.45%)와 삼성생명 두 곳으로 정리됐다. 같은 날 삼성물산은 삼성SDI로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5.09%를 사들였다.

2.72%이던 지분율은 7.81%가 됐다. 최대주주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 큰 변화는 없겠지만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사 업종끼리 지분 구조를 단순화는 모양새여서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이룬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2월 23일 대기업집단 계열사간 신규 순환출자 금지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공정거래법)을 통과시켰다.

연내 본회의 통과가 예상된다. 물론 신규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라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하는 강제성은 없다. 삼성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많은 이유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 정리

하지만 순환출자 고리가 지나치게 복잡한 점, 일부 계열사 지배력이 낮은 점은 삼성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 3세 경영인의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핵심 계열사 지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체제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3세로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여러 사전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산 규모 550조원에 가까운 초대형 그룹을 혼자 이끄는 것 또한 무리가 있다. 그러려면 산업군별로 계열사를 묶어 3세 경영인 간 향후 역할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 이병철 회장이 전자와 유통·식품 등을 자녀들에게 분할·승계한 것과 같은 원리다.

이번 삼성생명·삼성물산의 계열사 지분 매입은 산업군별 지분 관계를 정리하는 취지라는 게 증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주력 사업이 ▶전자·정보기술(IT) ▶금융 ▶건설·리조트 ▶패션·광고 4가지로 재편되리라 내다본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 체제에서는 순환출자든 지주 회사든 큰 무리가 없지만 원활한 승계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계열사 지분 정리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며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부분 인수, 삼성SDS의 삼성SNS 흡수합병 등과 함께 이번 지분 인수 역시 사업구조 개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삼성물산은 지분 추가 매입을 통해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지분 매입으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13.1%)에 이어 삼성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가 됐다. 2013년 초에는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이 한 주도 없었지만 3분기부터 장내에서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24일을 기점으로 총 19차례에 걸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꾸준히 매입했는데 액수는 1400억원 정도였다. 삼성 관계자는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부진한 3분기 실적 및 유상증자 가능성 등의 이유로 단기적으로 삼성물산의 부담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배구조 단순화의 덕을 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강승민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와 협업해 발전, 화공 플랜트, 해상·육상 플랜트 등 사업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할 것이란 소문 역시 시장은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과 삼성화재(1.09%)가 보유한 지분까지 추가로 매입해 22%까지 지분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연구원 역시 “삼성물산과 엔지니어링은 합병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합병에 지분 인수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꾸준한 지분 매입 자체가 합병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립 현실적으로 어려워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인수는 그룹 내 금융계열사 간 지분 교통정리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다. 장기적으로 삼성생명 아래 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카드를 두는 구조를 말한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지분 34.41%를 비롯해 삼성화재 지분 10.36%, 삼성증권 지분 11.14%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지분 인수로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보유 지분이 30%를 넘어섰다는 점이 관심거리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자회사 편입 요건(상장사 30%)을 갖춘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일각에선 삼성그룹이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놨다.

중간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되 금융회사가 일정 규모 및 숫자 이상인 경우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설치하고 그 밑에 금융회사만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인정하되 중간 지주회사 설치를 강제해 금산분리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이지만 법 개정이 늦어져 아직 도입되진 않았다.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주식 현물출자나 교환으로 발생하는 양도세와 법인세가 과세 이연된다. 2015년 12월 31일까지 적용된다.

증권가에선 삼성에버랜드를 그룹의 중심축으로 삼고,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금융 계열사를 지배할 계획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모 연구원은 “일차적으로 해당 업종의 시너지 효과를 위한 지분 이동으로 보이지만 금산분리 등 경제민주화 법안의 영향과 지배력 강화와 연관돼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립 또한 개연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이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2011년부터 꾸준히 자사주 매입을 늘려온 것도 맥을 같이 한다는 관측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 세번째)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2년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을 마친 후 딸들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 두번째),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제일 왼쪽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3~4년 두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삼성 측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삼성물산이 실탄 확보를 위해 삼성카드 주식을 처분했고, 삼성생명은 투자 목적으로 삼성카드 주식을 사들였다는 게 삼성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3년 전 일부 여당 의원들이 제안한 내용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안”이라며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할 이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예정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중간 금융지주회사는 삼성 측의 주장대로 현재로선 가능성이 작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우선 삼성생명이 추가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삼성화재와 삼성증권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야 한다. 키움증권은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와 삼성증권에 대한 지분율을 30%까지 높이려면 약 3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중간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비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1%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15조원어치에 이른다. 하지만 한꺼번에 팔 경우 순자산이 크게 감소해 재무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이 정도 액수를 매입할 계열사가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12.79%를 추가로 사들여 중간 지주회사로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려면 약 26조원이 필요하다. 삼성생명의 순자산 규모(약 20조원)를 생각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번 계열사 지분 거래가 그룹구조 개편의 출발점이라기보단 각 계열사의 자금조달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삼성 측의 논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체질을 바꿀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다. 정부가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등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에 의지를 보이는 상황인데다 승계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삼성으로선 지주회사 체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상헌 연구원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의 핵심은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가 돼 실질적인 지분율로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라며 “몇 단계의 인적 분할 없이 지주회사 전환은 엄청난 자금이 소요될 것이므로 향후 3~4년 기간을 정해놓고 단계별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3년 사이 삼성그룹 내에서 일어난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했고, 급식 및 식자재 부문은 삼성웰스토리로 물적 분할했다. 건물 관리 사업은 4800억원에 에스원으로 이관했다. 정보통신관련 계열사인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3세 경영인들의 최근 행보와 연결시켜보면 대략적인 향후 구도가 그려진다.

2010년 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겸 삼성에버랜드 전무는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본격적인 후계 경영 시대가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예상 밖으로 큰 폭의 승진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재용 사장이 부회장 자리에 올랐고, 올해는 이서현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전자·정보기술(IT)과 금융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 등 건설·리조트·유통은 이부진 사장이,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과 제일기획 등 패션·광고는 이서현 사장이 맡게 되리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기업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에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비중을 5%까지 낮추기로 한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 등 3세 경영인의 지배력이 현재와 같이 유지되려면 순환출자를 해결하고, 지주회사를 도입해 금산분리를 유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지주회사 전환에만 수십 조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맞교환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팔아 삼성생명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물론 삼성SDS(상장 가능성 큼) 지분 매각 등 추가 자금이 필요할 전망이지만 이를 활용하면 삼성전자 지분매매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삼성전자 간접지분율을 유지하면서, 삼성생명 등에도 직접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삼성 관계자는 “논의된 적 없다”고 일축했지만 전문가들은 유력한 방법으로 본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 지분 맞바꾸면 부담 줄어

그룹 내 계열사 지분율이 낮은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 역시 앞으로 자신이 맡을 계열사의 지분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부진 사장은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9%,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 삼성SDS 지분 3.9%를, 이서현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 삼성SDS 지분 3.9%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SDS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한 뒤 각각 건설 부문과 패션 부문 등 다른 계열사 지분을 늘릴 것이란 예상이다.




1219호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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