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롯데 자산·시가총액 증가율 1위, 한진은 10위권 탈락 기로에 

10대 그룹 20년 성적표 

삼성그룹 자산·매출·시가총액 20년째 1위 … 대우·기아·쌍용 역사의 뒤안길로



경영은 당장의 수익을 보전하고,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이다. 그런 면에서 지속가능성은 기업가의 영원한 숙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건 순간의 판단이다. ‘순간’과 ‘지속’의 치열한 전쟁 속에 어떤 기업은 사라지고, 어떤 기업은 성장한다.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10대 그룹의 20년 성적표를 돌아봤다.

드라마는 ‘응답하라 1994’였지만 경영 성적표만 놓고 본다면 ‘응답마라’가 좋겠다. 자산·매출·시가총액의 모든 면에서 큰 폭으로 성장했다. 특정 그룹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진 건 걱정거리다. 그룹별 성공 배경, 실패 원인을 짚어보고, 앞으로 20년을 위한 미래 전략도 살펴봤다.


1990년대 초반까지 대우는 현대와 국내 1~2위를 다투는 굴지의 그룹이었다. 섬유 사업으로 출발한 대우는 전자·자동차·건설 등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며 1980년대 크게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 김우중 전 회장이 주창한 ‘세계경영론’은 한국기업 글로벌화의 표상이었다. 당시 진출을 꺼렸던 공산권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에 대우가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덩치는 커졌는데 실속은 그만 못했다. 과도한 차입경영의 한계는 1997년 외환위기의 삭풍 속에 여실히 드러났다.

1998년 말 시작한 구조조정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룹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일부 계열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경제에서 대우그룹의 자취는 거의 사라졌다. 1994년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린 기아그룹과 쌍용그룹 또한 대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됐고, 쌍용그룹은 쌍용양회 하나만 남았다. 한때 그룹의 주축이었던 쌍용건설은 두 번의 워크아웃을 겪으며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993년까지 현대와 대우에 이어 자산 규모 3위였던 삼성은 1994년 처음으로 1등 그룹이 됐다. 그룹 내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도 1993년엔 현대·대우·럭키금성에 이어 4위였지만 1994년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994년 15위였던 두산그룹은 10대 그룹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팔건 팔고, 살건 산다’는 강력한 구조조정 전략이 먹혔다. 자산과 매출이 각각 20년 전에 비해 626%, 561% 늘었다. 식품 중심에서 중공업 기업으로 체질을 바꾼 것도 성공적이다.

몇몇은 사라지고, 몇몇이 새로 편입했지만 10대 그룹 전체의 20년 성적을 매긴다면 평점은 ‘A’다. 이들의 자산은 1993년 150조300억원에서 2013년 1018조3430억원으로 거의 7배가 됐고, 매출은 170조8520억원에서 1015조730억원으로 487% 늘었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42조5570억원에서 649조2840억원으로 15배가 됐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 대비 10대 그룹 비중도 36.52%에서 56.37%로 대폭 커졌다.


10대 그룹 시가총액 비중 36.5%→56.4%

주역은 삼성이었다. 삼성그룹은 20년 새 ‘여럿 중 하나(One of them)’에서 ‘독보적 선두(No.1)’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삼성의 그룹 자산은 20년 전보다 12.5배 늘었다. 매출은 6배 증가해 2012년 처음으로 300조원을 돌파했다. 계열 상장사의 시가총액 또한 10조8460억원에서 280조4900억원으로 늘었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1151조8210억원)의 약 4분에 1에 달한다. 한때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반도체와 가전, 휴대전화 등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성장했다. 이제는 삼성이 없는 한국경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현대차그룹은 분리되기 전 현대그룹보다 5배 이상 커졌다. 매출 역시 현대·기아차의 선전을 바탕으로 320%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선 경쟁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5위에 올라섰다.

일본 기업들의 반격으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면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선 상황이라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 현대차 그룹과 함께 분리된 현대중공업그룹도 분리 전 현대그룹과 비교해 자산과 매출 모두 2배 가까이 커졌다.

현대그룹처럼 계열 분리한 LG와 GS 역시 각자 10위권 안에 포함됐다. LG는 4위, GS는 7위다. 두 그룹을 합해 1993년 럭키금성과 비교하면 자산과 매출액은 각각 673%, 646% 증가했다. LG는 전자와 화학, GS는 에너지와 유통 업계에서 각자의 영역을 굳혔다.

1993년 자산 기준 6위였던 SK그룹(당시 선경)은 2005년 3위로 올라선 뒤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년 전과 비교해 자산은 1215%, 매출은 1139% 늘었다. 시가총액 역시 2711% 증가했다. 1970년대 초반 시작한 정유 분야에서 국내 1위를 지키면서 사세를 키웠다. 1994년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들어 SK텔레콤을 국내 1위 이동통신사로 키웠고, 2012년에는 하이닉스를 인수해 다시 한 번 신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갈수록 심각

10대 그룹 중 자산과 시가총액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롯데그룹이었다. 각각 1464%, 3906% 늘었다. 그 사이 10위였던 자산 순위도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롯데제과를 필두로 한 식품 분야와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한 유통 분야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한화그룹은 20년 전과 순위(9위)가 같았다. 자산이 426% 늘었지만 10대 그룹 평균(579%)을 밑돌았다. 시가총액 역시 상위권 그룹에 비해 덜 늘었다. 한진그룹은 성장이 가장 더뎠다.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지난해가 마지막일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어서다. 1993년에 비해 자산과 매출액이 각각 304%, 291% 늘었지만 시가총액 증가율은 두 자릿수(79%)에 그쳤다. 10대 그룹 평균(1426%)을 크게 밑돈다.

눈에 띄는 건 삼성·현대차·SK·LG그룹의 탄탄한 ‘4강 구도’다. 이 같은 4강 구도가 자리잡은 건 2001년부터다. 2000년까지 2위였던 현대그룹이 현대·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으로 분리되면서 순위가 요동쳤다. 현대그룹은 2001년 7위, 2002년 9위로 하락하다가 2003년부터 10위권 밖으로 처졌다.

반면 분리 직후인 2000년 5위로 출발한 현대자동차그룹은 2001년 4위에 올라섰고, 이때부터 4강 구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초반에는 삼성·LG·SK·현대차 순이었지만 2004년 현대차가 2위로 올라서고, 2005년 SK마저 LG를 제치고 3위에 올라서면서 현재의 순위가 이어지고 있다. LG의 순위 하락은 GS와의 계열 분리 영향이 컸다.

지난 20년 간 10대 그룹이 큰 폭으로 성장하며 한국경제를 이끈 건 박수 칠 일이지만 그늘도 짙어졌다. 더 심각해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우리 경제의 큰 짐이다. 지난해 12월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발표에 따르면 2008~2012년 10대 그룹의 1인당 매출(이 자료에서는 포스코 포함, 두산 제외)은 14% 늘었다.

반면 통계청이 조사한 근로자 50명 이상, 자본금 3억원 이상 비금융 기업 1만2010곳 중 10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의 1인당 매출은 19% 줄었다. 액수로는 12억800만원과 6억600만원으로 거의 2배 차이다. 같은 기간 10대 그룹 계열사는 고용을 39% 늘리고, 매출은 58.4% 늘었다. 나머지 기업은 고용을 12% 늘렸지만 매출은 오히려 9.5% 줄었다.

벌이가 변변치 않으니 투자도 부실하다. 국내 기업들의 올해 설비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3.9% 증가(정책금융공사)할 전망이다. 대기업이 전년 대비 5.6% 투자를 늘릴 전망이지만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2.7%, 7.1%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를 받기도 여의치 않다. 대기업 채권이라면 부실하다고 말해도 사지만 중소기업은 채권 발행조차 쉽지 않다. 중소기업을 키워보자고 만든 코넥스가 출범 7개월이 됐지만 거래량은 미미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함께 시장의 독자적인 축으로 성장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이득이 많다. 중소기업연구원 오동윤 박사는 “수출이 늘 것이고, 일자리 부담도 함께 나눌 수 있다”며 “대기업 완성품의 품질에 기여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몇몇 대기업이 무너질 때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수 차례 했던 우리로서는 리스크 분산 효과 역시 크다. 10대 그룹의 20년 성장사를 돌아보며 한국 경제가 새겨야 할 부분이다.

1222호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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