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육·해·공 운송왕국’ 포기는 없다 

한진해운 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태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대한항공으로 한진해운 편입 예정, 선친인 조중훈 회장의 경영구상 지켜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한진해운은 대한항공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운송업은 인체의 혈관과 같다. 반도체는 못해도 육·해·공 운송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 트럭 한대로 시작해 세계적인 운송그룹인 한진그룹을 설립한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조 회장은 1980년대 삼성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1990년대에 큰 성공을 거두자 이런 말을 했다. 반도체 같은 신사업 대신 육·해·공 운송사업 외길을 걸어 외형 성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같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는 의미다.


7년여 만에 다시 한진그룹으로

조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65) 한진그룹 회장은 계열분리를 눈앞에 뒀던 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다시 품어 ‘육·해·공 운송사업’의 기틀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 채권단은 2월 5일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최은영(52)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진해운을 대한항공 계열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을 품에 안으면서 한진해운을 지원하기 위해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에도 한진해운에 2500억원을 지원했다. 결국 6500억원에 한진해운을 넘겨받는 셈이다. 이미 대한항공 측 인사인 석태수 전 한진 대표가 내정돼 구조조정을 맡고 있다.

남편인 고(故) 조수호 회장(조중훈 회장의 3남)을 이어 한진해운을 이끈 최 회장은 7년여 만에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긴다. 조양호 회장은 최 회장의 시아주버니다. 최 회장은 조수호 회장 별세 후 2007년 3월 한진해운 등기이사가 되면서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그 해 12월 회장이 됐다. 전문경영인인 김영민 전 한진해운 사장이 최 회장을 계속 보좌했다.

한진홀딩스 분할 과정에서 최 회장은 3자 물류 사업(제조·구매자 간 물류 연계)과 해운 관련 시스템 개발 업체인 싸이버로지텍, 선박관리회사인 한진SM, 여의도 사옥 등만 보유한다. 10조원 이상의 매출을 내던 해운그룹이 5000억원대 물류전문회사로 바뀌는 것이다.

최 회장은 2006년 11월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타계한 이후 직접 경영을 챙기면서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를 추진해 왔다. 임원 인사부터 재무까지 한진그룹과는 다른 길을 걸으면서 확실한 선을 그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지금은 누가 지배구조를 가져가는가 보다는 경영 정상화를 통한 흑자 전환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을 아꼈다.

한진해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 업황이 급격히 나빠져 경영난에 시달렸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6801억원으로 추정된다. 일부 자산을 팔았지만 자금난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부채비율도 754%에서 1462%로 껑충뛰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연말 임원인사에서 실적 부진 여파로 신규 임원 승진자를 아예 내지 않았다. 김 전 사장도 지난해 11월 사의를 표명했다. 한진해운이 대한항공 계열로 편입되고 유상증자가 끝나면 한진해운의 자금난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이 추진하는 한진해운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은 이렇다. 한진해운홀딩스를 인적분할한 뒤 생긴 한진해운홀딩스 신설법인과 한진해운을 합병하는 게 골자다. 이후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손자회사로 편입하는 수순이다. 해운과 홀딩스 두 회사가 지금처럼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아래로 편입하면 한진해운홀딩스는 대한항공 아래에 붙는 손자회사, 한진해운은 종손회사가 된다.

이럴 경우 손자회사가 종손회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는 문제가 생긴다. 해운사는 해외 합작 등의 필요성이 크다. 또 지주사의 증손자는 합작과 법인 설립에 제약이 많다. 두 회사를 합병하면 지분 문제도 해결하고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또 한진칼 지주사 체제 내에 또 다른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가 있는 어색함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한진해운은 조만간 이런 인적분할을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한진그룹 상장 계열사 주가 오름세

한진그룹은 지난해 말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은 에쓰오일 주식 3000만주와 부동산, 항공기 매각을 통해 총 3조5000억원을 확보해 800% 수준이던 부채비율을 400%대로 낮추겠다는 게 골자다. 한진해운 재무구조 개선과 관련해서는 올해 상반기 한진해운이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고 이를 대한항공이 인수한다.

이미 대한항공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한진해운에 최 회장의 한진해운홀딩스 주식을 담보로 2500억원을 지원했다. 합병과 손자회사 편입,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참여가 마무리되면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지분율은 3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대신 최 회장의 지분율은 10%대로 떨어진다.

합병안 윤곽이 알려지면서 한진그룹의 상장 계열사 주가가 오름세를 보였다. 2월 3일 현재 한진칼 주식은 연초 대비 43.3%, 한진은 37.5%나 뛰었다. 대한항공도 14.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4.5% 하락한 것에 비하면 크게 오른 것이다.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는 ‘한진칼-정석기업-한진-한진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다. 한진칼과 한진이 대한항공 지분을 각각 6.76%, 9.87% 보유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16.71%를 갖고 있다.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의 주가가 뛴 이유는 저평가 매력과 업황 호조 기대감 이외에 한진해운 편입도 작용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을 직접 지원하면서 한진칼과 멀어진 게 오히려 한진칼 주가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대한항공 영업실적 개선이 미약한 상황에서 한진해운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 것은 중단기적으로 대한항공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7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진해운의 경영권은 이미 한진그룹이 장악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11월 사의를 표명한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에 석태수(59) 전 한진 대표를 임명했다.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석 사장은 조 회장의 대표적 측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대한항공으로 입사해 미국 MIT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대한항공의 주요 보직을 경험했다.

석 사장과 김 전 사장은 경기고 동문이다. 재계에서는 한진해운 분리를 주도하던 김 사장이 갑작스럽게 해임된 것은 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 조 회장은 1월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형편없는 사람을 내보내고 능력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앉혔다. 올해 한진해운은 잘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적분할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기업분할 방식. 신설 회사와 기존 회사의 주주가 분할 초기에는 동일하지만 주식거래 등을 통해 지분구조가 달라져 독립된 회사가 된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없어 기업이 자금 부담을 덜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곧바로 주식 상장이나 등록이 가능하다.

1224호 (2014.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