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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회서 낮잠 자는 한·미 FTA 후속조치 - 韓 전문직 비자 쿼터 올해도 빈 손? 

 

박성균 중앙일보 워싱턴지사 기자
쿼터 5000개 상원법안은 통과 … 1만5000개 보장 하원법안은 계류 중

▎주한 미 대사관 인근에 늘어선 미국 비자 신청자.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활발한 교역을 벌이는 국가에 특별 분야 전문직 비자 쿼터를 보장하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전문직 비자를 무제한 발급하고 있다. 호주는 미 의회의 별도 입법을 통해 1만500개의 전문직 비자 쿼터를 할당 받았다.

호주보다 인구와 미국과의 교역량이 각각 2배와 2.6배가 많은 한국은 2만5000개를 적정 쿼터량으로 본다. 미 상원에서는 한국 전문직 비자(E-5) 5000개가 포함된 통합이민개혁법안이 지난해 6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상원 법안보다 쿼터가 1만개 늘어난 하원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조치로 실행돼야 할 한국인을 위한 전문직 비자 쿼터 문제가 미국 연방의회에서 3년 째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다. 한국 유학생들과 업계, 동포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한·미 FTA를 어렵게 비준했는데 미국에서 전문직 비자 쿼터가 물 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은 FTA 체결하고 활발한 교역을 벌이는 국가에 특별 분야 전문직 비자 쿼터를 보장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전문직 비자를 무제한 발급하고 있다. 반면 FTA 체결 국가인 칠레에는 1400개, 싱가포르에는 5400개의 쿼터를 보장하고 있다.

2003년 연방의회가 쿼터 부여 권한을 요구하자 연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쿼터를 주던 관행이 중단됐다. 이후 의회가 법안 제정을 통해 쿼터를 할당했다. 2004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는 이 같은 의회의 별도 입법을 통해 1만500개의 전문직 비자 쿼터를 할당 받았다.

한국 정부는 호주보다 인구와 미국과의 교역량이 각각 2배와 2.6배가 많다. 특히 유학생 수가 20배 많은 점 등을 들어 1만5000개의 전문직 쿼터를 미국 정부와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에는 7만3000명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이 중 2만2000명이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며 “호주보다 약간 많은 2만5000개를 적정 쿼터량으로 삼고 쿼터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멕시코에는 무제한 발급

한국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은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후속 조치의 하나로 ‘한국인을 위한 전문직 비자쿼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미 의회를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은 미국의 7번째 규모의 교역상대국이다. 두 나라의 무역액은 연간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는 양국 간 서비스와 투자, 교역 증대에 필요한 양국 전문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FTA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방미 때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의회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거듭 협조를 요청했다. 안호영 주미대사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곳곳을 방문하며 친한파인 에드 로이스 하원의원 등을 만나 한국인을 위한 전문직 비자 쿼터 실현을 요청했다.

미 연방의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상원과 하원이 따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원에서는 한국 전문직 비자(E-5) 5000개가 포함된 통합이민개혁법안(S. 744)이 지난해 6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5000개 비자 쿼터는 한국의 기대치에 크게 부족한 물량이어서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원에서는 지난해 4월 코리아코커스 공동의장인 피터 로스캄(일리노이·공화)과 짐 모랜(버지니아·민주) 등 양당 의원 8인이 공동 발의한 ‘한국과 동반자 법안(Partner with Korea Act, H.R. 1812)’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전문직 비자 쿼터(E-4 비자)를 상원 법안보다 대폭 늘려 모두 1만5000개를 부여했다.

이 법안은 민주·공화 양당 간 포괄적 이민개혁법안에 포함돼 일괄 처리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지난해 이민개혁법안이 통과되지 않자 새해 들어 독자적인 법안 통과 움직임이 일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STEM 분야의 한국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혜택을 받는다.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분야 미국 취업 호재

이민변호사들은 E-4 비자가 기존의 H-1B 취업비자보다 비자 신청자에게 유리하다고 평가한다. H-1B비자는 총 6년 간 미국에서 일을 한 뒤 1년 간 해외에 체류해야만 다시 6년 간 미국에서 일할 수 있다. 이와 달리 E-4 비자는 기간 제한이 없어 취업이 유지되는 한 무제한 체류가 가능하다.

H-1B비자 소지자의 가족은 취업을 못하지만 E-4 비자 소지자 가족은 취업할 수 있다. H-1B 비자 신청을 위해 이민국 신청비 외에 고용주들은 상황에 따라 1250달러에서 4500달러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E-4비자의 경우 이민국 신청비만 부담하면 된다.

가장 큰 장점은 고용주나 취업희망자가 비자 문제로 취업이 성사되지 않는 일이 없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H-1B비자는 연간 6만5000개의 쿼터가 있다. 지난해에는 H-1B비자 신청자들이 몰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추첨을 통해 비자 신청을 받았다. 이 때문에 취업이 확정됐지만 비자 추첨이 안돼 미국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E-4비자 쿼터가 확보될 경우 이 같은 불상사는 방지될 수 있다고 이민변호사들과 업계는 밝혔다.

동포사회도 미국에서 공부한 전문직 종사자가 취업을 통해 미국에 남게 된다는 점에서 전문직 비자 쿼터를 반기고 있다. 2월 13일 발표한 한국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미국 이민자는 3185명으로 전년의 1만843명보다 70% 가까이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불황 등으로 미국 이민이 앞으로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매년 1만5000명의 전문직 비자가 보장되면 동포사회에 상당수의 사람과 경제력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직 비자 법안 통과가 동포사회에 긍정적 역할만 하는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1.5세대와 2세대 등 동포 자녀들과 유학생들 간 취업 경쟁을 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다. 일부에서는 한인 IT업체 가운데 이 같은 경쟁을 악용해 저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인 단체 관계자는 “한·미FTA 발효 때문에 전문직 비자 쿼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는데 최대한 빨리 이를 할당 받는 게 유리하다”며 “중국계와 인도계가 차지하는 일자리에 유학생들이 취업하게 되면 전문직 비자 쿼터는 모국인 대한민국과 한인 동포사회, 미국에도 도움이 되는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하원에 계류 중인 ‘한국과 동반자 법안(Partner with Korea Act, H.R. 1812)’의 공동발의자가 최근 42명으로 증가하며 법안 통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 받는 이번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는 미주동포사회에서 조직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안 공동발의자 42명으로 증가

연방하원의 코리아코커스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며 이번 법안을 최초 발의한 피터 로스캄 의원과 짐 모랜 의원 측에 따르면 이번 법안 발의자는 애초 8명에서 42명으로 증가했다. 하원의원 전체 435명에는 크게 부족하지만 50여명 안팎의 발의자가 있는 법안은 의원들에게 관심 법안으로 부각되기 때문에 좋은 움직임으로 평가 받는다.

로스캄 의원은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이민개혁과는 별도로 한·미FTA 후속 조치 차원에서 추진 중”이라며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일단 안건으로 채택되면 의회 통과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미대사관의 정해관 경제참사관도 “FTA를 체결한 국가에 전문직 비자쿼터를 부여하는 것이 관례였던 만큼 한국에 쿼터를 주는 것에는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없다”면서도 “얼마나 많은 전문직 비자쿼터를 받아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H.R. 1812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자는 움직임이 동포사회에서 일고 있다. 주미대사관과 외교부 등을 통한 법안통과 활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방의원들을 움직이려면 유권자들로 구성된 한인 동포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에서는 한인회나 일반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운동을 전국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황원균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장은 “미국과 한국, 동포사회에 모두 도움이 되는 블루오션인 H.R. 1812법안이 되도록 빨리 통과돼야 그만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버지니아 동해병기법안 통과 캠페인에서 봤듯이 미국 유권자인 한인 동포들이 움직여야 미국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228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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