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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국내 수입차 판매 1위’ BMW 악몽의 서비스 

4시간 넘게 기다려 3분 서비스 받아 

장원석
혼유 사고에 지게차 불러 견인하라 배짱 … 김효준 대표 말로만 서비스 개선

▎BMW 서비스센터 직원은 현장 출동을 피하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 사고 접수 후 4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겨울의 끝이 보이던 날이었다. 공기는 맑았고, 미세먼지로 뒤덮였던 하늘은 오랜만에 민낯을 뽐냈다. “역시 서울과 다르군.” 전라북도 정읍. 처가 친지의 결혼식을 위해 방문했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들러 인사나 하고 가자는 장인의 말에 운전을 하던 처남은 국도변 한적한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직원에게 기름을 ‘가득’ 넣어달라고 주문한 뒤 인사를 하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기름이 제법 남아있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발걸음인데 선물을 챙기지 못한 게 못내 미안한 눈치다. 함께 들어가 인사를 하려는데 주유하던 직원의 탄성 소리가 들렸다. “아! 큰일 났어요. 제가 모르고 휘발유를 넣어 버렸네요.”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오후 2시 31분이었다.


시동 안 걸면 기어 변속 안 되는 신형 BMW

처남이 운전한 차는 BMW 520d. 경유 차량이다. 흔히 말하는 ‘혼유 사고’가 발생한 것. 자동차라고 하면 대부분 가솔린이던 시절에야 별 문제 없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연비에 민감한 운전자가 늘고, 성능이 좋아지면서 디젤차의 판매가 급증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디젤차 판매량은 지난해 처음으로 가솔린차를 추월(내수 기준)했다. 자연히 혼유 사고 역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혼유 사고는 2009년 55건, 2010년 103건, 2011년 119건, 2012년 131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는 200건을 넘어섰다. 소비자원에 신고하지 않은 사고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으리란 예상이 가능하다.

혼유는 심각한 사고다. 모르고 운전할 경우 큰 사고 위험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엔진 교체까지 각오해야 한다. 엄청난 교체 비용은 물론 중고차 시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사고를 당하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본인의 실수에 더 당황한 직원의 표정때문에 화조차 낼 수 없었다. 일단 수습이 급했다. 그나마 운행 전에 혼유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점과 주유 당시 시동이 꺼져 있었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시동이 켜져 있어 기름이 차량 내부와 엔진으로 돌았다면 끔찍한 수리 청구서를 만날 뻔했다.

처음엔 시동이 꺼져 있는 게 참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잠시 후 당혹스런 일이 됐다. 상황 파악을 끝내고 처음 BMW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건 시간은 2시 42분. 센터 측에선 보험사 견인차를 불러 전주 서비스센터로 차를 가져온 뒤 연료탱크 세척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시킨 대로 했다.

그런데 견인업체 측은 차량의 종류를 이야기하자 “견인할 수 없다”며 출동 서비스를 거절했다. 견인업체 직원은 “견인을 하려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중립으로 변환해야 하는데 신형 BMW는 시동을 걸어야만 변속을 할 수 있어 우리로서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혼유 때문에 시동을 걸 수 없는 상황이니 견인을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최근 출시된 차량들은 브랜드와 무관하게 전자식 변속 장치를 장착한 경우가 많다. 기어를 조작하면 연결된 케이블이 움직이고, 이에 따라 변속이 이뤄지는 수동식과 달리 전자신호를 전달해 기어를 변환하는 방식이다. 2012년 이후 출시된 BMW 5시리즈 차량에도 전자식 변속 장치가 장착돼 있다.

현대차 등 국산차는 물론이고, 벤츠나 아우디 등 다른 수입차는 대부분 시동을 걸기 전 전원이 들어오는 단계(ACC 또는 ON)에서 변속을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신형 BMW는 이 단계에서도 기어를 변속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반드시 시동을 걸어야만 변속이 이뤄진다.

도난 방지 목적에서다. 바퀴가 굴러가면 어떻게든 차를 훔쳐갈 수 있으니 아예 바퀴 4개를 묶어놓는 개념이다. 차량이 멈추고 시동이 꺼지면 자동으로 바퀴 4개가 잠긴다. 다시 시동을 걸기 전까진 차를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다. 견인업체 직원은 “서비스센터 직원만이 전자식 변속 장치를 해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비슷한 사고가 몇 번 있었고, 방법이 간단한 것 같아 알려달라고 했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시 BMW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일반 견인차량 대신 뒷바퀴에 보조바퀴를 달아 견인하는 차량을 부르라고 했다. 시내에서 주차 위반 차량을 견인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시 한 번 시킨 대로 했다. 30분 후 견인차 한 대가 도착했다.

하지만 직원의 말은 또 한 번 기대를 저버렸다. ‘견인비용(㎞당 2000원) 이외에 장치 사용료 15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화가 좀 났지만 이미 2시간을 기다린 터라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얘기는 그 다음에 나왔다.

“전주까지 약 45㎞ 정돈데 이 정도 거리를 보조바퀴를 달고 가는 건 사실 위험해요. 얼마 전에 사고도 있었고요. 사고가 나면 저희 보험으로 처리해야 되는데 솔직히 좀 부담스럽습니다. 저도 여기까지 왔으니 기왕이면 끌고 가는 게 남는 장사긴 한데 그래도 정확히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말씀 드리는 거에요. 그래도 가실래요?”


▎동네를 수소문해 도착한 지게차.



차 못 움직이는데 알아서 가져오라는 서비스센터

돈을 더 내라는 얘기까진 참을 수 있었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말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견인업체 직원은 돌아갔다. 다시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지게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지게차? 내가 생각하는 그 지게차?’ 혼유 사고가 났던 다른 차도 그렇게 한 적이 있단다. ‘그래, 삼세번이니 마지막으로 믿어보자’는 생각에 지게차를 불렀다.

휴일이라 섭외가 쉽지 않았다. 주변을 수소문해 40분 만에 겨우 지게차 한 대가 도착했다. 비용은 10만원이란다. 그런데 지게차가 시동을 건 순간 의문이 들었다. ‘만약 지게차가 차를 들다 파손되거나 사고가 나면 책임은 누가 지지?’ BMW 5시리즈의 측면 범퍼는 플라스틱 재질이라 파손 위험이 크다. 서비스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답변은 이랬다. “그건 저희가 책임질 부분은 아니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화를 냈다. 진상 고객이 되지 않고서는 해결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에 키를 잃어 버려도 지게차로 들어야 하느냐’ ‘서비스센터는 전화만 받는 곳이냐’ ‘구입할 때 이런 유의사항을 알려줬느냐’ 등등 온갖 논리를 들이대고, 언성을 높인 뒤에야 원하는 답변이 나왔다. “저희 쪽에서 출동하겠습니다.” 30분 후 서비스센터 직원이 도착했다.

트렁크 안 오른쪽 캡을 여니 컨트롤 박스가 나타났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이 컨트롤 박스의 존재조차 모른다. 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만질 수는 없다. 직원은 박스를 만지더니 운전석으로 옮겨 핸들을 잡았다. 그러자 요지부동이던 차는 단 몇 초만에 마법사라도 나타난 듯 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견인 차량도 도착했다. 직원이 차를 만져 견인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데 든 시간은 불과 3분. 고리를 연결하고 차를 견인차에 싣는 데 걸린 시간은 8분. 단 11분 만에 상황은 종결됐다.

애물단지를 실은 견인차가 전주 서비스센터를 향해 떠난 시각은 6시 51분. 사고 발생 이후 4시간 30분이 지난 뒤였다. 처남은 견인차에 동승해 전주로 향했다. 나머지 가족들은 택시를 타고 정읍역으로 이동한 뒤 KTX를 타고 서울로 왔다. 처남은 하룻밤을 연고도 없는 전주에서 묶고, 다음날 오후 늦게 수리된 차를 받아 서울로 올라왔다. 생각보다 대가가 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탱크 세척 비용 20만원과 견인비용 18만원이 들었다. 돈은 액땜했다 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 최악의 서비스는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진상’ 고객처럼 대하니 마지 못해 출동

첫째, BMW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견인이 불가능한 차를 만들어 놓고 사고가 나니 직접 센터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물론 혼유는 운전자의 책임이다. 그래서 주유소가 내든 운전자가 내든 견인비용과 수리비용을 지불한다. 마찬가지로 BMW 측은 사고를 접수하고, 출동해 사고를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BMW는 전국 각 지역 39곳에 서비스센터를 운영 중이다.

고장 수리는 물론이고, 출동과 견인 등도 서비스 항목 중 하나다. 그런데 그들은 출동을 미루고 알아서 차를 가지고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일반 견인→보조바퀴 견인→지게차 이용 등 자신들이 출동하지 않고 견인하는 방법만 바꿔가며 알려줬다. 심지어 파손 위험이 큰 데도 지게차를 이용을 권유할 만큼 출동을 꺼렸다.

둘째, 센터 측에선 사고 접수 당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시동을 걸기 전에는 변속이 안 된다는 사실, 보조바퀴 방식의 견인은 위험하다는 사실 등은 모두 사설 견인업체 직원이 알려준 내용이었다. 혼유 사고 발생 때 대처요령 등을 알려주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출동해야 한다는 서비스 규정이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셋째, 그들은 3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일로 고객을 4시간 넘게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나중에 현장을 찾은 센터 직원은 “다른 지역에 출동한 상태여서 빨리 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출동 직원의 고충도 이해는 갔다. 그는 24시간 대기해야 하는데다 전주와 정읍은 물론 인근 군산과 김제까지 혼자 커버하다 보니 일이 몰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기 전까지 “곧 출동할 테니 기다려 달라. 다만 시간이 좀 지체될 수 있다. 양해를 바란다”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만약 처음부터 ‘출동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면 고객 입장에선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믿고 기다렸을 터다.

BMW는 지난해 국내에서 3만3066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소속 브랜드인 미니를 포함하면 약 4만대에 달한다. 국내에 팔린 수입차 4대 중 1대는 BMW였다는 의미다. 특히 BMW 5시리즈 디젤(520d) 모델은 국내에서 월 평균 800대 정도 팔리는 베스트 셀링카다. 가격이 6000만원대로 비싼 편이지만 184마력의 고출력에 좋은 연비(16.9㎞/L)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많이 팔았는데 서비스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다. 수입차의 부실한 서비스와 과도한 부품 가격이 논란이 된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직접 경험한 BMW의 서비스는 악명 그대로였다. 이러니 ‘온갖 감언이설로 팔아놓고 문제가 생기면 나 몰라라 한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는 1월 서울 서초 중앙 서비스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올해 말까지 총 19개(MINI 포함)의 서비스센터를 추가로 열 예정”이라며 “고객 편의를 위해 센터를 추가 신설하는 동시에 각 센터의 서비스 수준을 더욱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걸 빈말이라고 한다.

1232호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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