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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그 후… 

제일모직으로 옷 갈아입는 삼성에버랜드? 

윤주화 사장 “사명 변경 검토 중” 그룹의 모태로 상징성 커



제일모직이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3월 31일 삼성SDI의 제일모직 합병 발표 이후 재계에 화제가 된 의문이다. 삼성 측은 “삼성SDI의 2차전지·디스플레이 사업과 제일모직이 보유한 전자재료·케미컬 등 다양한 소재 사업의 전문역량을 상호 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만 설명했다. 제일모직은 이미 지난해 9월 패션사업 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겨 소재사업만 남은 상태다. 이마저 흡수 합병되면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모직이라는 실체는 60년 역사를 뒤로한 채 사라지는 것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한 후 이듬해 9월에 세운 기업이 제일모직이다. 삼성물산·제일제당에 이어 이 전 회장이 세 번째로 키운 회사다. 당시 ‘제일모직공업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섬유사업을 시작해 1960년대에는 직포·방모·염색 등을 위주로 규모를 키워 나가다 1970년대에는 화학섬유사업, 기성복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1983년에는 남성복 ‘갤럭시’를 출시해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갤럭시 남성복은 신사복의 본토인 영국으로 ‘역수출’에도 성공해 1987년 수출 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통사업인 섬유패션 분야가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을 무렵 제일모직은 소재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1989년 여수에 화학공장을 설립하며 플라스틱합성수지를 생산해 화학(케미칼)산업에 진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전자재료 부문을 신수종사업으로 채택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IT제품이 급격한 속도로 대중화되면서 제일모직의 소재 사업도 탄력을 받았다.

2000년에는 화학 부문 매출이 50%를 넘어서 주요 업종을 섬유에서 화학으로 변경했다. 본업이던 섬유패션 사업은 화학과 전자재료에 밀려 최근에는 영업이익 기여 3위 사업으로 전락했다. 2012년 제일모직 영업이익 약 3200억원에서 케미칼 부문이 약 876억원, 전자재료 부문이 1667억원, 패션 부문이 657억원을 각각 차지했다.

최근 소재사업의 육성과 성장을 강조한 제일모직은 패션 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독일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재료업체 노발레드 지분 50.1%를 획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제일모직이 삼성정밀화학 등과 함께 삼성전자 소재 연구단지로 입주하며 산업 기술의 첨단화에 박차를 가하고 그룹 내 사업 간 연계를 강화했다.

이병철 회장이 유일하게 대표이사 맡은 회사

제일모직은 인재 양성의 산실로도 삼성그룹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병철 전 회장이 삼성 계열사 중에서 유일하게 대표이사를 맡은 게 제일모직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이 삼성그룹에서 승승장구 하면서 최고 엘리트 코스로 불리기도 했다.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등 재무통으로서 삼성 내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전·현직 임원이 40여명에 달한다.

이런 상징성 때문일까?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의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일모직 상호의 상표권은 회사 합병이 완료되는 7월부터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가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가능하다. 삼성에버랜드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만큼 그룹 모태의 상징성을 나타내기에도 적합해 보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에버랜드는 리조트 사업 부문의 브랜드명으로 남기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4월2일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사명 변경에 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토 중”이라고 대답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절차는 7월까지 마무리 된다. 주식을 1(삼성SDI)대 0.4425(제일모직)의 비율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단순히 두 회사 규모만 합산해보면 자산 15조원, 매출 9조50000억원, 직원 1만4000명으로 그룹 내 매출 5위권으로 올라선다.




1232호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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