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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의사결정 때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져라 

영화 <벤자민 버튼의…>의 ‘역추론’ … 신중한 수읽기로 최선의 전략 짜야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돌아보면 모든 게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일 투성이다. 만일 나이를 거꾸로 먹어 간다면 좀 낫지 않을까? 2008년 개봉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는 이렇듯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안쓰러움을 다룬다. 1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여름, 미국 뉴올리언즈의 어느 가정집에서 아기가 태어난다.

그런데 가장 경사스러워야할 그 순간이 돌연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저주의 순간으로 바뀐다. 산모는 난산으로 세상을 떠나고 간신히 살아남은 아기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은 80세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분노와 고통에 휩싸인 아버지는 아기를 양로원 현관 앞에 내다 버린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양로원 노인들의 보살핌 속에 삶을 이어가던 벤자민의 얼굴이 해가 갈수록 젊어져 간다. 이제 12살이 되어 60대쯤의 얼굴을 갖게 된 벤자민은 어느 날 양로원에 놀러 온 6살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 마주친다. 첫 눈에 데이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의 괴이한 운명 앞에 체념할 수밖에. 벤자민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간직하는 걸로 만족한다.

시간이 흘러 데이지는 뉴욕의 잘 나가는 무용수가 된다. 그리고 나이를 거꾸로 먹은 벤자민은 의젓한 바다 사나이가 됐다.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해지는 인생의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의 운명은 극적으로 교차하며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슬픔이 예정된 사랑이다. 서로를 만지고 응시하는 매 순간 벤자민은 더욱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간다.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그랬을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 그게 자연의 법칙인 이상 예외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머리 속으로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가 먼 훗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미리 그려놓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오른 것이다. 바둑이나 체스에 등장하는 수(手)읽기도 마찬가지다. 이창호 9단 같은 절정의 고수는 1분에 100여 수를 내다본다고 한다. 머리 속에서 100번의 공격과 수비를 시뮬레이션 한 후에, 수순(手順)을 거꾸로 돌려 지금 이 순간 최선의 전략을 정하는 것이다.

시간을 거스르는 수읽기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비즈니스에서도 수읽기가 필수다. 다만 몇 수를 내다보느냐가 관건일 텐데,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말이 종종 들리는 걸로 봐서 비즈니스 수읽기가 그리 신통한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보자. 중소 부품업체 A사가 완제품 조립업체 B사에 부품을 공급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완제품 쪽 마진이 훨씬 높고 기술적으로도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부품 대느라 고생은 혼자 다 했는데, 알고 봤더니 실제 재미는 B사가 봐 왔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참에 아예 완제품 사업에 뛰어들까 한다. 부품도 팔고 거기다 완제품까지 조립해서 팔면 꿩 먹고 알 먹는 게 따로 없지 싶다. 자, 당신이 A사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게임이론에는 가위·바위·보처럼 경쟁자들이 동시에 의사결정을 하는 ‘동시게임(Simultaneous game)’과 바둑이나 체스처럼 한 명씩 순서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순차게임(Sequential game)’이 있다. 실제 비즈니스에서 관찰되는 많은 게임이 순차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경우 서로의 공격과 방어가 순차적으로 맞물려 갈 때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미리 점쳐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꾸로 따져 지금의 최적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이런 기법을 게임이론에서는 ‘역추론(Backward induction)’이라고 부른다.

A사 사장이라면 순간적인 충동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장을 잘 살펴야 한다. 완제품 시장에 진입했더니 B사가 발끈해서 부품 주문을 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만일 B사도 발끈해서 역으로 부품 시장에 뛰어든다면 경쟁구도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그동안 잠자코 있던 C사까지 A·B 두 업체의 행동에 자극 받아 나름의 행동에 나선다면 또 어떻게 되는가? 아, 머리 아프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 꼴 당하지 않으려면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최대한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한때를 풍미했던 스타 기업들이 어이없게 몰락하는 경우가 많다. 몰락 원인을 복기(復碁)해 보면 딱 하나다. 순간의 행동이 초래할 경우의 수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한 것이다. 스위스 시계업체 스와치(Swatch)는 시계에 패션 요소를 가미한 온갖 컬러풀한 시계로 성공한 케이스이다.

스와치라는 사명도 ‘두 번째 시계(Second watch)를 장만하라’는 의미에서 정했을 정도다. 그런데 패션시계의 성공에 탄력을 받아 본격적으로 패션 사업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앞의 A사 사례를 빼 닮았다). 결국 잠자는 사자(전통 명품 패션 업체)를 자극해서 패션 사업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명품 업체들을 시계 시장에 끌어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최근 가장 흥미 있는 수읽기 판은 삼성전자 대 애플의 특허전(戰)이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두 업체간 수읽기가 볼 만하다. 애플이 먼저 특허소송을 제기하니까 삼성은 불과 일주일 만에 맞소송으로 나선다(사전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애플이 삼성의 갤럭시 판매금지 소송을 하니까 삼성은 무효소송으로 대응한다.

애플이 반도체 주 공급선을 바꾸겠다는 소문을 흘리니까 삼성은 두 기업은 ‘경쟁이자 협력관계’라며 코웃음 친다. 정보통신 무림의 두 고수들 간 다음 수순이 어떻게 될지 은근히 기대된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상대보다 단 한 수라도 먼저 내다보고 대비하는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될 거라는 사실이다.

80세로 태어나 18세 향해 늙어간다면

자, 다시 영화 이야기. 이 영화의 원작은 1922년 미국의 작가 피츠 제럴드가 발표한 단편집 <재즈 시대 이야기>에 수록된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이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고 한다. 영화의 결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완성돼 가는 인간의 일생이 담담한 톤으로 담겨 있다.

영화에서처럼 노인으로 태어나 삶을 거꾸로 거슬러 간다면 과연 더 완벽한 삶이 될까? 그보다는 순리를 따라 늙어가되 매 순간 역추론을 통해 즉흥적이고 어리석은 실수에 대비하며 사는 삶이 더 드라마틱할 것 같다. 결국 삶이란 정답을 향해 질주하는 수학보다는 끊임없이 지우고 고쳐 써야 하는 철학에 더 가까운 법이니까.

영화는 몬트리올·카리브해·뉴올리언즈 등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됐다. 특히 영화 속 벤자민의 고향인 뉴올리언즈에서의 촬영은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쓴 직후 진행됐다.

1246호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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