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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내부 공기부터 바꾼다 

조사국장만 6번 맡은 자타공인 실력파 27년 만에 비고시 출신 차장 발탁 


박근혜 대통령이 7월 25일 김덕중 전 국세청장 후임으로 임환수(52)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내정하자 국세청 안팎에선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직원은 “(그가) 꼭 한 번쯤 청장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워낙 오래전부터 국세청 리더 후보감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경북 의성출신인 임 청장은 대구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28회에 합격, 국세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사무관 시절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국세청장 비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던 임 청장은 국세청 내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특히 국세청의 핵심인 조사국에서 다양한경험을 쌓았다. 2006년 전군표 국세청장 시절 혁신기획관(현창조정책담당관)에 발탁돼 조직관리도 업무를 경험했다. 전문분야인 조사 이외에 기획 및 민원업무에서도 깔끔한 일처리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세청이 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책 <세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를 제작할 때 실무 책임자이기도 했다. 서울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을 거친 뒤 다시 조사 분야로 돌아온 그는 중부국세청 조사1국장을 시작으로 조사국장자리만 무려 여섯 번 맡았다. 지난해 4월 본청 법인납세국장에 발탁된 뒤 4개월 만에 서울국세청장에 올라섰다. 실력만큼 관운도 따랐다.

원칙에 철저하고 소신이 분명한 성격이란 평가가 주를 이루는데 국세청 내에선 실력만큼 깔끔한 자기관리도 장점으로 꼽는다. 임 청장이 신고한 재산은 7억4482만원이다. 6억원 가량인 아파트를 제외하면 고위직 공무원치고 재산이 많지 않은 편이다. 세월호 특별법 지연에 따른 여야의 치열한 대립 구도 속에도 별 잡음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유기도 하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선 의외의 소통 행보로도 눈길을 끌었다. 직원들에게 ‘휴가를 떠나라’고 독려한 사실이 알려진 것. 국정감사에 인사청문회까지 겹쳐 직원들이 휴가 계획을 취소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임 청장은 “휴가는 1년에 한 번 가족과 하는 약속인데 어기면 되겠느냐”며 “간부들이 솔선수범해 먼저 휴가를 떠나라”고 말했다. 본청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청문회준비는 후보자의 몫”이라며 “직원들이 나 때문에 못 쉬는 건 말이 안 되니 휴가 잘 챙겨서 다녀오라”고 또 한번 강조했다. 임 청장의 채근에 간부들이 먼저 2~3일 정도 휴가를 다녀오는 분위기가 생겼고, 눈치를 보던 상당수 직원들도 덕분에 휴가를 즐길수 있었다고 한다.

실력+철저한 자기관리’로 일찌감치 리더 후보

임 청장이 8월 21일 취임식을 갖고 첫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서 그는 “어려운 경제 사정에 세입 예산 확보, 재정 정책 일조, 사회투명성 기여라는 국세청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많지만 낙담하거나 주위를 탓할 필요는 없다”면서 “국민이 신뢰하는 공정한 세정을 완수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 청장은 ‘국민과 함께 하는 세정’을 강조하면서 “생선을 익게 하려고 자꾸 뒤집다 보면 오히려 생선살이 다 부서져 버린다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오히려 불필요한 세정 간섭을 없애고 성실신고 지원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탈세 차단’에 매진할 뜻도 밝혔다. 임 청장은 “국세청은 탈세자를 막아 국민을 보호하는 기관”이라며 “국민의 일할 의욕을 상실케 하는 사회지도층의 탈세와 역외탈세 등 재산 국외도피를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취임식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켰던 건 인사문화 개혁에 관한 그의 언급이었다. 임 청장은 “출신 지역이 어디든 출발 직급이 무엇이든 능력과 평판에 의한 탕평인사를 하겠다”며 “열정을 갖고 헌신한다면 세무서에 근무해도 관리자로 승진하고, 나아가 서장은 물론 최고위직까지 갈 수 있는 희망 사다리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수장에 오른 고위직 공무원이 으레 하는 언급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의 말은 며칠 뒤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임 청장은 취임 후 첫 인사를 통해 7급 공채 출신인 김봉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을 국세청 차장(1급)으로 발탁했다. 행정고시 합격자가 아닌 사람이 국세청 차장에 기용된 것은 1987년 차장을 역임한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이후 27년 만이다. 그동안 국세청에선 비교적 숫자가 적은 행시 출신이 주요 요직을 독점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차별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국세청 안에서 김 차장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행시 출신 셋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라는 언급이 나올만큼 유력한 후보군도 있었다. 하지만 임 청장은 약속대로 출신배경보다 능력과 평판을 먼저 봤다.

경남 진주 출신인 김 차장은 부산 배정고를 졸업한 뒤 재수준비를 하다가 진로를 틀어 1979년 세무공무원이 됐다. 국세청 세원정보과장, 운영지원과장, 서울청 세원분석국장, 조사1국장등 주요 보직을 거친 김 차장은 온화한 성품 때문에 따르는 후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임 청장은 이러한 김 차장의 성실함과 평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의 위기는 늘 고위직으로부터 왔다”

군 특채 출신인 원정희 조사국장을 부산청장에 임명한 것도 눈에 띈다. 군 특채 10기인 원 청장은 올해 초 본청 조사국장에 임명된 뒤 8개월 만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국세청 내부에서 군 특채 출신 중 1급 자리에 오른 건 원 청장이 처음이다. 국세청 내에 차장을 포함해 지방국세청장급 자리는 총 7개다. 차장과 서울국세청장, 중부국세청장, 부산국세청장은 1급이고, 나머지 3자리는 2급이다.

이번 인사로 1급 자리 4개 중 3개, 지방국세청장급 자리 7개중 5개가 비고시 출신으로 채워지게 됐다. 국세청 역사에서 비고시 출신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고위직에 등용된 경우는 없었다. 국세청 내에서 이번 인사가 파격 중의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임 청장 취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국세청 안에선 이전과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인사 혁신을 통해 직원들에게 탕평인사에 대한 확실한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긍정적이란 평가다. 임 청장은 “국세청의 위기는 항상 고위직으로부터 왔다”며 “(본인부터) ‘외부에 설명되지 않는 인간관계나 만남’을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곳곳에서 조직 내부의 공기부터 바꾸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다음 목표는 ‘일 잘하는 국세청’이다. 그는 “조용한 국세청, 할일만 하는 국세청을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세금을 제대로 걷고, 탈세를 차단하는 국세청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겠다는 의미다. 일단 출발은 좋다. 그러나 내년 개청 50주년을 맞는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축하 인사를 받으려면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1252호 (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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