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World | 美 정부의 세금 전쟁 - 해외로 본사 옮기는 조세회피 관행에 제동 

Global Monitor 美 기업-소규모 외국 회사 간 합병 규제 선거 앞둔 미봉책이란 비판도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1960년대에는 세계 20대 기업 가운데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17곳에 달했다.


지난 9월 22일(현지 시각) 제이콥 루 미 재무장관은 ‘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라고 불리는 기업들의 세금 회피 행태를 단속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 사진:중앙포토
지금은 불과 6곳에 불과하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난 50여년 동안 유럽과 일본, 중국의 기업들이 비약적인 성장을 하기도 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하면서 세금이 싼 지역으로 본사를 옮겼기 때문이다. 영업활동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높은 세율을 물어가면서 본사를 굳이 미국에 둘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아예 룩셈부르크나 바하마제도의 조세 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실제 생산·판매를 하는 공장을 자회사로 등록했다. 미국의 법인세 명목세율은 최고35%에 달한다. 그러나 2012년 말 기준으로 실효세율은 고작 12.1%에 불과하다. 온갖 종류의 감면 혜택과 세법상의 허점을 이용해 기업들이 세금을 피해갔고, 그 결과로 국가의 재정은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마침내 미국 정부가 칼을 뽑았다. 지난 9월 22일(현지 시각)제이콥 루 미 재무장관은 ‘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라고 불리는 기업들의 세금 회피 행태를 단속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세금이 작은 미국 밖에서 모기업을 만들어 미국 내 기업을 자회사로 만들어 세금을 회피하는 행위를 단속하는 데 있다. 국제 조세협정상 미국 내 자회사는 모기업이 속한 지역의 세율만을 적용 받게 되기 때문에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명목 법인세율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세금은 조금밖에 거두지 못했다.

기업은 세금 덜 내고 국가 재정은 악화

이번 조치를 부른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8월 버거킹이 캐나다의 커피와 도너츠 체인을 인수합병 하면서 모회사를 아예 캐나다로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아스트라-제네카를 인수해 본사를 영국으로 옮기려고 시도했다. 이들 기업들의 규모는 인수 대상 기업에 비해 덩치는 수십배나 크지만 합병을 핑계로 합법적으로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려고 시도했다(마치 한국에서의 코스닥 우회상장 방식과 유사하다).

미국 의회에서는 2012년부터 법인세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과 민주당의 견해차가 커서 계속 의회에서 표류 중이었다. 이번 조치는 감세를 주장하는 공화당과 증세를 주장하는 민주당이 모두 비난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미 행정부가 대신 총대를 메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단지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막거나 세금을 징수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 5년 동안의 저금리와 완화적 통화정책 덕분에 약 2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해외 자회사 혹은 해외 모기업에 사내 유보금의 형태로 쌓여있어 미국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재 세법상 배당금으로 지급하거나 투자를 하기 위해 현금을 미국으로 들여오면 그 자체로 미국 세법의 적용을 받아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미 의회는 기업들의 해외 보유 현금을 미국으로 반입할 때 이른바 ‘면세 기간(tax holiday)’으로 불리는 임시 세금 면제 조치를 검토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00억 달러에 가까운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애플이 대표적이다. 현금의 대부분을 해외 법인에서 펀드 형태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배당금 증액을 위해서 지난해 회사채를 발행할 정도였다. 애플의 경우에는 해외 법인의 보유 현금을 자사주 매입에 활용한다. 지난해 애플주식의 최대 거래자는 애플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헤지펀드였다.

따라서 미국 정치권 입장에서는 연방준비위원회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지원해준 자금이 고작해야 기업의 주가를 올리기나 인수합병에 쓰일 뿐 미국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 봉착했고, 이에 따른 대중들의 정치적 비난도 급등했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인수합병에 보유 현금을 소진하게 되면,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거의 종료되는 마당에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감소하게 된다. 이 경우 경기 침체라도 찾아오면 기업들이 다시 정부와 연준에 손을 벌릴 게 뻔하다. 그래서 이번조치는 예방적인 성격도 함께 띠고 있다.

이번 조치로 가장 타격을 받는 건 잠재적으로 모기업의 해외 이전을 준비하고 있거나, 또는 인수합병의 대상이 될 만한 기업들이다. 또한 기업들이 앞으로는 세금 회피가 어려워져 배당금 지급 여력이 감소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주식의 가치에도 타격을 주었다. 이 조치가 발표된 뒤 이틀 동안 S&P500 지수는 거의 2% 가까이 하락했다. 또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네슬레·로열더치셀·에어버스·BASF 등도 미국 내 자회사에 대해 같은 조항이 적용될 것을 우려해 미 정치권에 예외조항을 요구하는 로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세금 바꿔치기’가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단지 그 같은 추세가 둔화될 것으로만 예측했다. 또 소급 적용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와 함께 국제 조세협정과의 충돌 여지가 있어서 콜롬비아 법대의 마이클 그래츠 교수는 법정 소송이 빈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는 한, 실제 미치는 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정치적으로 선거철을 앞두고 대중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제스처의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츠 교수는 어정쩡한 이번 조치로 미 의회가 법인세 개혁을 서두르지 않아도 될 핑계거리만 만들어 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경쟁과 규제 완화, 그리고 기업 유치라는 명목으로 기업의 투자에 대해 세율을 낮춰주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기업 모시기’ 관행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심지어는 이를 자랑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제살 깎아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들은 조세상의 허점을 이용해 늘 좀 더 적은 세금을 찾아 움직인다. 서로가 세금을 깎아주다 보면 결국 기업만 살찌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같은 경쟁의결과는 역사상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와 지난 50년 간의 지속적인 노동 소득의 감소, 그리고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대중들의 실질소득은 전혀 증가하지 않는(지난 1년 동안 미국은 0.1% 증가, 일본은 0.3% 감소)하는 것으로나타났다.

선진국도 세금 깎아주기 경쟁에 두 손 들어

국가 채무 사정이 점점 악화되면서 선진국들도 이 같은 세금 깎아주기 경쟁에 두 손을 든 것으로 보인다. OECD는 지난 9월 17일 회원국들에게 지침을 보내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를 차단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지침은 세금 할인경쟁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니며, 단지 세금 바꿔치기와 같은 노골적인 세금 회피행위를 차단하는데 그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과잉 국가 채무에 대해 위기의식은 커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결국은 대중들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무려 240%에 달하며, 소비세를 인상하고 엔화 약세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대중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 일본의 경우에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는 여전히 높다. 오히려 자민당의 법인세 인하 논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진적인 조세 제도는 국가 재정의 부실을 심화시켜 결국에 가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2012년 제안한 것과 같은 일회성 부유세(wealth tax, 소득이 아니라 보유 자산의 40%를 세금으로 징수하자고 제안)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국가 파산을 맞게 될지 모른다.

1255호 (2014.09.2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