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Travel with bike | 섬진강 상류 - 첩첩산중 따라 펼쳐진 소담한 풍경 

임실군 회문삼거리~순창군 구남교 25km … 한가로운 시골의 정취 

김병훈 월간 자전거생활 발행인

일중리의 잠수교에 물이 많을 때는 상류의 일중교로 우회하면 된다.
섬진강 상류

이렇게 맑고 깊숙한 강변 풍경이 남아 있었던가. 섬진강은 가장 맑고 아름다운 강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상류에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섬진강 자전거길 상류 인증센터가 있는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의 회문삼거리에서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 남교까지 25km 구간이다. 전체 섬진강 자전거길 148km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가장 절묘하고 한적하며 깊숙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섬진강의 최상류는 섬진강댐이 막고 있어 거대한 산중호수를 이룬다. 섬진강댐에서 회문리 인증센터까지는 6km 정도 된다. 이곳은 30번 국도가 지나고 댐 직후의 마른 물길이라 경관은 그리 볼품이 없다.


김용택 시인 생가에서 장군목 현수교까지는 민가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오지다. 강변에서 멀지 않다.
잠시 말랐던 섬진강은 인증센터에서부터 임실 쪽에서 흘러온 갈담천 물을 더하면서 비로소 강의 면모를 갖추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강이라기보다 개울이나 습지 정도다. 평소에는 수량이 많지 않아 바지를 걷고도 건널 수 있을 것만 같다. 양편 둑 사이로 물이 그득 찬다고 해도 폭은 100m 남짓.

산이 높고 험하지는 않지만 첩첩산중을 이룬 산간지대를 뚫고 가늘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자전거길은 더없이 한가롭다. 인증센터에서 4km 가량 내려오면 일중리에서 수중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낮은 잠수교를 만난다.

강물이 바퀴와 같은 높이로 찰랑이거나 때로는 얕은 물을 두 바퀴로 가르고 지나는 느낌이 각별하다. 물이 너무 많을 때는 치천 상류로 조금 올라가 일중교를 건너면 된다. 이 일대는 빨치산 실록소설 <남부군>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깊고 외진 산골이다.


잘 보존된 김용택 시인의 생가. 강변에서 멀지 않다.
잠수교에서 한 구비를 돌면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의 생가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산간지대를 벗어나는 순창 평남리까지는 그야말로 오지의 개울길이다. 중간중간 토속미와 향수 어린 시인의 시비가 소담한 풍경과 어울 려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이런 산골에 깃들어 있는 작 은 마을은 ‘천천히 가라, 느리게 살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이제 섬진강은 개울이 아니라 조금 널찍한 계곡 분위기다. 이 산간지대에서도 풍경의 절정을 이루는 장구목 즈음에 이르면 하얀 화강암이 물속에서 드러나 요강바위 같은 기묘한 형태를 이루며 계곡미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강변 비탈에 위태롭게 자리한 한가로운 식당과 민박에 하룻밤 묵어 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장구목에서 1.8km 내려가면 마실휴양 숙박시설단지도 산뜻하게 조성되어 있다.

이 구간의 마지막 화룡정점은 강변 언덕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구암정(龜岩亭)이다. 텅 빈 공간에 바위처럼, 나무처럼 이미 자연 속의 풍경으로 동화된 작은 정자는 전통 산수화 속으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마저 준다. 이런 자리에 정자를 만든 선조들의 안목, 풍류정신이 새삼 놀랍다.

구암정에서 위태로운 산허리길을 지나면 마침내 산 이 물러나고 널찍한 들판이 펼쳐지면서 고졸미 그윽한 어은정(漁隱亭)이 풍광을 조망하고 있다. 어은정 앞 평 남리는 오랜만에 보는 큰 마을인데 그래 봐야 100가구 정도일까. 이 깊고 드문 경관을 편도만 지나치는 것은 아깝다. 같은 길을 되돌아가도 새로운 신선경을 맛볼 것이다.



코스 : 섬진강댐 인증센터→일중리→김용택시인 생가→장군목 인증센터→구암정→구남교. 25km, 2시간30분 소요.

여행 만들기 : 섬진강댐 인증센터에서 출발해 구남교를 돌아 왕복해도 50km 정도여서 하루 코스로 여유롭다. 수도권에서도 호남고속도로 태인IC에서 진입하면 당일 코스로 가능하다. 보통 당일 또는 1박2일로 섬진강 자전거길 완주를 목표로 해서 바쁘게 달리면 상류 구간의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그렇게 섬진강 길을 가보았더라도 천천히 이 구간을 다시 돌아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또 느껴질 것이다.

맛집 : *장구목가든: 장군목 현수교 맞은편에 있다. 민물 매운탕이 맛나다(063-653-3917). *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장군목 인증센터 맞은편에 있으며, 숙박과 매점을 겸하고 있다(063-653-9688).

1257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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