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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66] 스테판 페르손 H&M 회장 - 패스트 패션 제국 만든 스웨덴 최고 부호 

디자인·기획은 본사가, 생산은 모두 아웃소싱 … 영국·프랑스 등지에 부동산 투자도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스웨덴의 세계적인 의류유통 업체인 H& M(Hennes & Mauritz)의 스테판 페르손(67) 회장은 스웨덴 최고이자 세계 12위의 부자다.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2014년 10월 현재 재산이 311억 달러에 이른다. 페르손 회장은 지난해 280억 달러의 재산으로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에서 스웨덴 1위, 세계 17위에 올랐다. 세계적인 불황기에 재산이 1년 새 31억 달러나 증가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10 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호가 12명 있는 스웨덴에서 최고 부자의 위치에 올랐다는 점도 눈에 띤다. H&M은 지난해 1410억 크로나(약 21조 원)의 매출과 150억 크로나(약 2조2300 억원)의 순익을 냈다. H&M은 자라로 유명한 스페인의 인피덱스에 이어 세계 2위의 SPA업체다. 미국의 갭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H&M은 현재 전 세계 53개 국에서 26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H&M의 브랜드 가치다. 영국계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지난 10월 9일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H&M 은 브랜드 가치 210억 8300만 달러로 21위에 올랐다. 198억 7500만 달러로 22위를 차지한 나이키나 191억 1900만 달러로 24위를 차지한 펩시보다 높게 평가됐다. 올해 15회째인 이번 조사에서 애플은 1188억 달러(약 127조6000억 원)로 글로벌 1위를 유지했다. 구글(1074억 3900만 달러)·코카콜라(815억 6300만 달러)·IBM(722억 4400만)·마이크로소프트(611억 5400만 달러)가 2~5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들은 지난해와 순위 변동이 없이 자리를 지켰다. 한국에선 삼성전자가 평가가치 454억 6200만 달러로 글로벌 브랜드 7위에, 현대자동차가 104억 900만 달러로 40위에, 기아자동차는 53억 9600만 달러로 74위에 각각 올랐다.

페르손 회장의 H&M은 이런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거뜬히 21위에 올랐다. 특히 동종 SPA업계에서는 1위를 지켰다. 158억 8500만 달러로 26위를 차지한 이케아나 121억 2600만 달러로 36위를 차지한 자라보다 높았다. SPA는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를 가리킨다. 한 업체에서 기획·생산·판매를 일괄적으로 모두 담당하는 브랜드를 말한다. 생산 단가를 낮추고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단계를 축소해 생산과 관리 비용을 줄여 더욱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고객에게 공급할 수 있다. 패스트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듯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 최근 패션 분야 유통에서 각광받고 있다. 디자인은 특화하면서도 재료값과 제조 비용은 낮춰 전체적으로 보기는 좋으면서 제품의 주기는 줄이는 방식이다. 옷은 한 번 사면 두고두고 입는다는 고답적인 개념을 타파하고 패스트 푸드처럼 간단하게 소비하는 제품으로 만든 것이다. 고객은 해당 디자인이 유행하는 짧은 기간에만 입고 버리는 개념이다.

물론 제조 비용과 재료비를 극도로 절감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다양한 제품으로 고객층을 늘리고 있다. 기존의 주 타깃이던 2030세대는 물론 4050세 대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장이 갈수록 넓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격을 중시하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기는 무리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정도로 브랜드를 키운 것이다.



포브스 부자 순위 세계 12위

페르손 회장은 이 회사의 두뇌와 손발을 철저히 분리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스웨덴과 유럽의 로컬기업이던 H&M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본사는 브랜드 관리, 디자인·기술 개발, 제품 기획, 판매전략 수립, 매장 이미지 관리만 맡고 생산은 모두 아웃소싱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은 철저히 본사의 전유물이다. 그 결과 ‘디자인드 인 스웨덴’은 하나의 권위 있는 브랜드가 됐다. 이제 ‘메이드 인 어디’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정평 있는 스웨덴 디자인이면 족하다. 가구 등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유통업체 이케아가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를 고용해 다양한 디자인을 한없이 쏟아내 세계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H&M 디자인팀은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들어오는 판매 정보를 바탕으로 곧바로 필요한 디자인을 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공장들의 제품 제조 단계를 관리·통솔하고 있다. 상품 기획과 디자인, 제조와 판매 관리를 책임지는 두뇌격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800개 정도의 공장과 계약을 맺고 본사가 디자인한 패션 아이템의 생산을 맡기고 있다. 모두 아웃소싱이 원칙이다.

800여 개에 이르는 전 세계 협력업체는 H&M과 수직 통합되지 않고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가가 맞지 않거나 품질관리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협력업체만 바꾸면 된다. 더 좋은 가격, 더 나은 품질로 물건을 공급하겠다는 납품 희망 업체는 늘려 있다. 이들에겐 H&M의 하청업체를 맡는 것 자체가 경력이 되고 노하우를 쌓아가는 길이 된다. 따라서 800 개의 업체는 물론 주변의 동종업체가 모두 상호 경쟁 관계에 있게 된다. 성장하는 기업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테판 페르손의 아들로 현재 H&M의 CEO인 카를요한 페르손.
세계의 디자인 유행 주도

본사는 몽키(Monki), 위크데이(Weekday), 칩 몬데이(Cheap Monday) 등 다양한 자매 브랜드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한다. H&M의 생산성은 이러한 효율적인 관리에서 나온다는 평이다. 본사는 두뇌 역할을 담당하고 생산은 아웃소싱하는 방식은 IT업체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섬유업체는 상당수가 두뇌가 아닌 생산을 맡는 손발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거대 기업으로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 산업혁명 초에는 생산업체가 왕이었으나 이제는 두뇌가 이익을 내고 생산은 손발 구실만 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H&M은 잘 보여주고 있다.

페르손 회장은 2세 경영인이다. 그의 아버지인 에를링 페르손(1917~2002) 선대 회장이 1947년 H&M을 창업했다.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패션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해 하이 패션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판매하는 유통업체다. 독특한 것은 패션 유통업계 세계 최상위를 자랑하는 H&M의 사업 아이디어가 미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에를링 페르손 선대 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을 여행했다.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과 달리 미국은 활기가 넘쳤고 다양한 산업이 활황 상태였다. 2차 대전 승전국으로서 영국에 이어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모습이었다.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도 넘쳤다. 자국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이 열리면서 사업 아이디어가 어지간하면 장사가 되는 분위기였다.

숱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미국의 산업계와 시장을 둘러보던 에를링 페르손은 미국의 효율적인 유통업체에 눈길을 멈췄다. 상품이 품목별로 각자의 진열 공간을 확보하고 종류별로 대량으로 쌓여 있는 점포를 보고 무릎을 쳤다. 몇 가지 안 되는 상품이 무질서하거나 빈약하게 진열된 유럽식 작은 가게와 비교가 됐다. 유럽식 작은 가게는 손님이 아닌 상품이 중심이었다.

가게는 팔 수 있는 상품만 소량으로 가져다 뒀고 손님은 여러 가게를 돌아보고서야 자신에게 맞는 디자인과 사이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이렇게 만날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손님은 대부분 있는 상품 중에서 대충 사이즈가 맞는 걸로 살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아닌 판매자 중심의 유통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었다. 특히 괜찮은 디자인의 하이패션 의류를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격도 문제이고 마음에 맞는 옷을 찾기도 힘들었으며 찾았다고 해도 사이즈까지 맞는 일은 좀체 드물었다. 이런 유럽의 유통산업에 익숙했던 에를링의 눈에 미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형태의 유통 산업은 그야말로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스웨덴 중부 달라르나주에 있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볼렝에 출신인 그는 고향과 수도 스웨덴 사이에 있는 베스트만란드 주의 인구 13만 도시 베스테로스에서 창업을 했다. 면 출신이 읍내에 나와 창업을 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스톡홀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멜라렌 호의 서안에 위치한 베스테로스는 수력 발전을 이용한 전기공업이 발달해 스웨덴의 중요한 공업도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스톡홀름과는 100km 정도 떨어 져 있는 도시다.

에를링은 이곳에 헤네스(Hennes)라는 이름의 여성 의류점을 창업했다. 스웨덴어로 ‘그녀들의 것’이라는 뜻인데 지금 상호인 H&M에서 ‘H’가 여기에서 나왔다. 미국 의류매장을 흉내 내 다양한 상품을 쌓아놓고 파는 혁신적인 판매 방식의 헤네스는 장사가 잘 됐다. 돈을 모은 에를링은 1968년 스톡홀름에 있던 사냥도구 유통업체인 마우리츠 비드포르스의 부동산과 재고를 인수했는데 여기에서 H&M의 ‘M(Mauritz)’이 나왔다. 에를링은 여성 패션에 이어 남성 패션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H&M을 스웨덴에서 가장 창의적인 패스트 패션 유통업체로 키웠다.

1982년 에를링은 아들인 스테판을 이사에 앉혔으며 스테판은 1998년까지 이사로 일하다 이후 H &M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현재는 회장을 맡고 있다. 페르손 집안은 주식의 33%, 의결권의 69%를 보유하고 있다. 스테판은 현대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으로 H&M을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스테판 페르손 회장은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정밀기계·계측 제어 업체인 헥사곤 AB의 주식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의 주요 건설, 엔지니어링 기업은 물론 자동차와 항공 업체도 다수 고객으로 하고 있는 이 업체는 산업로봇 개발 등으로 미래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35개국에서 1만 2000여 명이 일하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다국적 유망기업이다. 1992년 설립된 이 기업에 투자한 스테판 페르손 회장의 안목이 돋보인다. H&M과는 별개로 개인 명의의 부동산 개발업체 램스베리를 차려 런던·파리·스톡홀름의 부동산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사업 수완 보인 아들에게 경영 맡겨

그는 2009년 당시 34세의 아들 카를요한 페르손에게 최고경영자(CEO)를 맡겼다. 스테판 페르손 자신은 회장으로서 회사의 미래 청사진과 굵직한 결정만 맡았다. 3세 경영인인 카를요한 페르손 대표는 1996년 런던의 유럽경영학교(European Business School)에 들어가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2002년 마쳤다. 그는 졸업 전인 2001년 이벤트 회사를 매입해 이 분야에서 스칸디나비아 최대의 기업으로 키운 뒤 2007년 MCI에 거액을 받고 팔아 사업 수완을 보였다. 2005년 H&M에 입사한 아들은 회사의 확장을 맡다가 실적을 낸 뒤 2007년 영업기획 담당으로 올라서며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수완을 보인 뒤 비로소 H&M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사자 새끼를 제대로 키우는 페르손 가문의 모습이다.

1257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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